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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72

    오늘은 특별한 날이었다.

    루체스트에서 투자자들과 기업인들에게 자신들이 시작할 사업의 이야기를 하는 설명회가 이 전시장에서 시작된다고 했고, 헬레나의 아버지도 루체스트와 파트너관계에 있는 기업을 경영하는 위치에 있는만큼 당연히 이번 설명회에 참석하기로 했으며, 헬레나 또한 자연스럽게 그런 아버지를 따라 설명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비록 헬레나는 객관적으로 보나 주관적으로 보나 사업을 계승하기엔 너무 어린 연령이기는 했지만, 이전부터 가정교육의 일환으로서 이런 식으로 아버지와 함께 이런저런 사업적인 자리에 동행하는 일이 꽤 많았기에 사실 헬레나에겐 이것이 특별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오늘의 특별한 일은, 바로 이것.

    바로, 자신의 곁에 또래의 남자아이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 미안해. 이렇게 갑자기 불러내서.”

    시루드, 같은 아카데미에 다니고 있는 2학년생.

    시루드는 헬레나에게 아주 특별한 아이였다.

    1학년 때에는 자신의 내성적인 성격에 더해 공부와 함께 아버지에 손에 이끌려 이곳저곳을 따라다니느라 피곤해서 별로 친구를 사귀지 못했지만, 2학년이 되면서 처음으로 제대로 사귀게 된 친구였으니까.

    오늘도 아버지를 따라 전시장에 오기 전, 우연히 전시장에서 아이들도 볼만한 전시를 하고 있다고 하길래 지르듯 딱 한번 제안을 건네본 거였는데 그렇게 흔쾌히 수락해줄 줄이야….

    그 덕분에 자신은 사교를 핑계로 대면서 지루한 설명회의 중간에 나와서 직업박람회를 구경할 수가 있게 되었다.

    “사실 원래 이런 약속은 적어도 3일 전에 해 둬야 하는 거였는데….”

    그러나 헬레나가 알기로는, 사업의 자리에서는 기본적으로 최소한 3일 전에 약속을 건네고 거기에 일정을 맞추는 것이 상식이었다.

    그런 상식적인 사업적 매너조차 지키지 않은 갑작스런 제안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시루드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아냐, 나도 뭐, 이건 마침 관심이 있었으니까. 딱히 집에서 하는 것도 없었고.”

    집에서 하는 일이 없었다, 라고 저렇게 말은 하지만 사실은 그럴리가 없다는 것을 헬레나는 아주 잘 안다.

    왜냐하면 시루드가 자신도 조기졸업을 준비하고 있다며, 되도록이면 내년에 졸업을 하는 걸 목표로 마법 이외의 과목을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3주 전에 나누었던 것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10살에 그 졸업시험을 만점으로 통과한 기록도 있다는 걸 생각해보면 남들이 보았을 때 그 난이도를 평가하기에 살짝 미묘해진다는 것도 사실이기는 하지만, 그건 루크가 너무 이상한 것이지 시루드가 목표로 하는 길이 어렵지 않다는 건 절대 아니었다.

    아카데미에서 제대로 8년을 채우지 않고 졸업을 하려면 성적의 커트라인이 훨씬 높아지니까.

    따라서 3학년에 졸업을 하려면 전 과목에서 어려운 문제 두세개만 틀려도 졸업이 불가능할 가능성도 높다.

    자신이라면 1년동안 밤낮 없이 공부를 붙잡고 있어도 조기졸업은 어려울지도 모르지.

    아카데미를 그토록 싫어하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조기졸업을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였다.

    그러니 집에서 공부해야 할 양이 결코 적을 수가 없는데, 그런데도 저렇게 말해주다니.

    …아마 자신을 배려해서 저런 말을 하는 거겠지.

    “그, 그래? 헤헤….”

    왠지 그렇게 생각하니 괜히 웃음이 새어나오려고 하는 것을 헬레나는 목도리를 끌어올려 입가를 가리는 것으로 가까스로 참아냈다.

    그런 헬레나의 모습에 시루드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왜 그래, 헬레나. 혹시 어디 안좋은 곳이라도 있어?”

    “아, 아냐. 아무것도.”

    그에 헬레나는 더욱 얼굴을 불게 물들이며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시루드가 자신을 걱정해주는 건 또 왜 이렇게 즐거운걸까?

    잘 모르겠다.

    그 모습에 시루드는 더욱 의문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지만.

    ‘뭐, 아무것도 아니라면 아닌 거겠지.’

    —–

    그렇게 전시장을 돌아다니다 조금 지쳐서 쉬기로 한 시루드와 헬레나.

    “직업박람회라는 거, 의외로 볼 거리가 많구나.”

    “응, 그러네. 그동안 전혀 몰랐던 직업도 많았어.”

    의외라고 해야할까, 전시장은 꽤 볼거리가 많았다.

    관심이 없어 평소에는 생각해보지도 못했던 직업들을 알게되는 경우도 상당히 많았고, 평소에 한가지로 뭉뚱그려서 생각하고 있던 직업도 각각 세분하게 나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직업체험 프로그램도 상당히 즐거웠다.

    ‘어쩌면 시루드랑 같이 해서 더 즐거웠던 걸지도 몰라.’

    마도구의 상업적 회로 디자인체험처럼 전문적인 건 솔직히 조금 어려웠지만, 시루드와 함께 빵이나 쿠키를 반죽해 만들거나, 찻잎을 달이거나, 조그만 악세서리를 만드는 체험은 또 하고 싶을 정도로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런 쪽으로 장래를 정하는 건 어떨까 순간 고민이 들어버릴 정도로 말이다.

    “특히 빵 만드는 건 진짜 재밌더라. 그렇게 반죽한 밀가루가 구워서 부풀어오르는 게 되게 신기했어. 그렇게 식빵이 만들어진다는 거잖아.”

    “응,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때문에 그걸 처음부터 직접 만들어 보지는 못했지만 말이야.”

    “맞아. 평소에 아무생각 없이 먹는 거라서 쉽게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손이 되게 많이 가더라.”

    짧은 체험시간 때문에 반죽의 처음부터 만드는 것은 할 수 없었지만, 식빵이 오븐에서 구워지는 걸 보면서 설명을 듣기만 해도 식빵 하나를 만들기 위해 상당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반죽하고, 발효하고, 반죽하고, 발효하고.

    식빵은 평소 아침식사로 자주 먹는 것이라 쉽게 생각했는데, 그렇게 힘들여서 만들어진다는 사실이 상당히 신기했다.

    이렇듯 평소 사소하다고 생각한 것들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노력이 들어간다고 생각하면 뭔가 대단하다는 느낌도 든다.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자신이 아침에 편하게 빵에 잼을 발라서 먹을 수 있는 거겠지.

    시루드는 의외로 곤충에 관심을 보였다.

    채집통에 잡힌 반딧불이를 보면서 꼬리에서 빛을 내는 원리를 설명해주기도 했는데, 솔직히 너무 마법적인 이야기라 이해는 잘 안 갔지만 즐겁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구경하는 것도 정말 재미있었다.

    그리고, 반딧불이만큼은 헬레나도 그렇게 싫어하지 않는 곤충중에 하나였다.

    물론 그 생김새는 몸에 닿고 싶지 않을 정도로 끔찍하긴 하지만, 그래도 낭만이 있는 곤충이 아닌가?

    반딧불이가 반짝거리는 호숫가의 풍경은, 자신도 언젠가 꼭 한번 감상해보고 싶은 풍경이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던 헬레나는 문득, 시루드의 장래희망에 관해 궁금증이 생겼다.

    “근데 시루드, 너는 나중에 크면 뭐가 되고싶어?”

    “나?”

    갑작스런 질문이었기 때문일까?

    시루드는 살짝 당황한 듯 잠시 입가를 만지작거리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나는 할아버지를 따라서 정치인으로 가려고.”

    “정치인?”

    시루드가 정치인이라니, 상당히 의외인 말이었다.

    시루드라면 틀림없이 마법사가 된다고 말할 줄 알았는데.

    그런 헬레나의 반응에 시루드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왜? 정치인은 이상해?”

    그에 헬레나는 다급하게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 아냐. 난 그냥 의외라서. 나는 네가 마법사가 된다고 말할 줄 알았거든.”

    시루드는 평소 마법에 관심이 많았을 뿐만 아니라, 잘 하기도 했다.

    지금 졸업을 하기 위해 마법 이외의 과목을 열심히 공부하는 중이라는 건, 마법은 이미 졸업생 수준이라는 것이라는 얘기니까.

    티그 아카데미는 마법 특성화 아카데미인만큼, 마법과목이라면 다른 아카데미보다 훨씬 더 어려운 과목일텐데도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법사가 아니라 다른 직업을 하겠다고 하는 건,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닐까.

    “왜 그런거야? 혹시 마법사는 관심이 없어?”

    그에 시루드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음. 마법이 재미있기는 하지만, 마법은 어차피 루크가 알아서 잘 할 것 같아서. 그리고 내가 마법사가 된다면, 또 직업으로까지 루크랑 경쟁하게 되잖아. 그건 좀 싫을 것 같지 않아?”

    “아.”

    시루드의 대답에 헬레나는 자신도 모르게 감탄인지 탄식인지 모를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과연, 그런 깊은 뜻이 있었구나.

    …하긴, 자신도 루크하고는 아카데미를 넘어 직업으로까지 엮이고 싶지 않다는 시루드의 그 마음은 너무나도 잘 알것 같다.

    “그리고, 원래 관심도 있었어. 왜냐면, 할아버지는 내 우상이었거든.”

    “그렇구나.”

    마나심축적 증후군, 이른바 ‘서클’이 새겨진 사람에게 이렇다할 지원이 전혀 없었던 시기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값비싼 서클 제거 수술을 받지 못해 고통을 받으며 죽어가야만 했다.

    그런 상황을 해소한 것이 바로 당시 서클을 가진 유일한 정치인이시던 할아버지, 소리드였다.

    당시에는 자신의 서클때문에 그런 정책을 내는 것이 아니냐며 크게 반발도 있었지만, 어떻게든 이겨내시고 그 후에도 꾸준히 수많은 사람들을 실제로 살리는 정책을 내시며 지금까지 꽤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훌륭한 정치가가 되셨지.

    그런 이야기를 하며 시루드는 씨익 웃었다.

    “어때? 영웅같지 않아?”

    “…응, 그러네.”

    법을 만들어서 수많은 사람들을 살리다니, 그건 정말 영웅같았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꿈을 정한 시루드도 멋있어 보였고.

    ‘뭔가, 어른같아….’

    그런 시루드의 모습에 비하면 나는…….

    그 순간, 시루드가 헬레나를 향해 물었다.

    “그러는 너는 어때? 생각한 직업 있어?”

    “나? 나는 뭐…” 

    헬레나는 잠시 이야기를 망설였다.

    꿈을 자기 스스로 결정한 것처럼 보이는 시루드와는 달리, 자신은 그저 의지도 없이 아버지에게 이끌리듯 정해진 꿈이었으니까.

    “그냥 아빠를 따라서 그룹을 이어받아 경영인이 되려고…”

    스스로의 부끄러움에 목소리가 작아진 헬레나였지만, 그 말을 들은 시루드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 대답을 긍정해주었다.

    “그래? 그것도 좋네.”

    “정말?”

    “응, 가업을 물려받겠다는 거잖아? 나는 대단하다고 생각해. 그것 때문에 공부도 열심히 하는 거구나.”

    “으, 으응….”

    헬레나는 사실 공부에 그런 거창한 생각을 한 적은 전혀 없었고 그저 아빠한테 칭찬을 받고 싶어서 그러는 것 뿐이지만, 오늘부터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 모습을 가만 바라보던 시루드는 문득 지나가듯 중얼거렸다.

    “그래도 축제때 노래를 부르던 걸 보면, 가수도 괜찮을 것 같은데.”

    그에 헬레나는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저었다.

    “꺄! 가, 가수라니. 그건 좀…!”

    순간 너무 놀라서 음이탈이 일어날 정도였지만, 시루드는 오히려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헬레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왜? 노래가 싫어서? 하지만, 그 때 보니까 엄청 즐거워보이던데. 노래하던 목소리도 예뻤고.”

    “예, 예쁘….”

    ‘시루드가 나한테 예쁘다고 했어…!’

    헬레나의 심장이 빠르게 박동하기 시작했다.

    물론 목소리의 얘기이기는 했지만, 목소리 또한 자신의 일부니까 자신에게 예쁘다고 말한 것과 다름이 없지 않을까?

    —–!

    심장이 얼마나 강하게 두근거렸는지, 마치 머릿속에서 사이렌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응? 이게 무슨 소리지?”

    “어?”

    아니, 사이렌소리는 자신의 환청이 아니라 실제로 들려온 소리였던 모양이다.

    “아.”

    바보같긴, 아무리 심장이 빨리 뛰어도 갑자기 사이렌소리가 울릴 리가 없잖아!

    헬레나가 바보같은 생각을 하던 스스로를 탓하며 얼굴을 부여잡고 앓는 소리를 내던 사이, 시루드는 주변을 둘러보며 상황을 살폈다.

    아무래도 전시장쪽이 상당히 소란스러운 것 같은데.

    “전시장에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그, 글쎄.”

    그러자 잠시 후, 시끄러운 소리가 끊기고 안내가 이어졌다.

    -불편을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방금 전의 경보는 잠시 시스템의 오류로….

    “뭐야, 별 일 아니었나.”

    “오류였구나.”

    그렇게 바로 이어진 정정 및 안내방송은 사람들을 빠르게 진정시켰다.

    그것은 시루드도 마찬가지였다.

    “별일 아니었대.”

    “으, 응.”

    하지만, 아까 전까지 두근거리던 심장이 아직 진정되지 않아서일까?

    헬레나는 여전히 어딘가 석연찮은 느낌을 받고 있었다.

    왠지, 진짜로 무슨 일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해야하나….

    ‘착각이겠지…?’

    그러자, 바로 곁에서 시루드의 걱정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그래? 너 안색이 별로 안 좋은데.”

    헬레나는 차마 시루드에게 걱정을 끼칠 수는 없었기에 애써 웃는 표정을 지어내며 고개를 저었다.

    그냥 착각이겠지, 방송에서 들었듯이 별일 아닐거다.

    “아, 아냐. 금방 괜찮아질 거야.”

    “그래? 그럼 됐고…. 이제 다음은 어딜 갈까?”

    “응, 다음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쾅!!

    “꺄아아아악!”

    “아아악!”

    어디선가, 귀가 멀어버릴것만 같은 폭발음이 들려왔다.

    시루드가 놀란 표정으로 소리가 난 쪽을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갑자기 무슨 일이지?”

    “그, 글쎄…? 사고라도 났나?”

    그것은 명백한 특이 현상이었기에, 이번에는 헬레나도 스스로의 착각이라고 치부할 수 없었다.

    설마, 아까 그 느낌은 이것 때문에?

    “그런데 저 방향은….”

    ‘분명 아빠가 설명회를 듣는 게 저쪽 방향이었던 것 같은데…?’

    그 순간, 헬레나는 갑자기 오싹한 느낌이 자신을 엄습해오는 것을 느끼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건 방금 전에 있었던 그 느낌과 거의 비슷하다.

    설마, 아빠가 잘못된 건-.

    —–!

    헬레나가 생각을 끝맺기도 전에, 이번에는 훨씬 더 가까운 곳에서 폭발음이 터져나왔다.

    —–

    그동안 즐거움이 가득했던 공간이 공포와 절규의 공간으로 바뀌는 시간은, 그야말로 찰나였다.

    폭발과 함께 전시장 안쪽에서 터져나온 돌가루들이 순식간의 전시장 전체를 장악했고, 사람들은 너도나도 그곳에서 벗어나겠다며 서로를 당기고 밀쳐내면서 뒤엉키고 짓밟힌다.

    그것은 무질서를 그대로 형상화한 듯한 끔찍한 풍경이었다.

    만약 지옥이 있다면 이럴까.

    하지만 보이는 풍경과는 달리 들려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너무나도 고요했다.

    마치, TV에서 재생되는 재난영화를 음소거를 하고 보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건 그런 식으로 만들어진 환상이 아니었다.

    너무나도 생생한, 실제로 눈앞에서 발생한 상황.

    이것은 바로 비현실적인 현실, 그 자체였다.

    “—–!”

    헬레나는 자신의 성대가 찢어질 정도로 비명을 질러보았으나, 어째서인지 스스로의 목에서 터져나오는 비명소리조차 들을 수 없었다.

    그것은 마치 상황자체가 자신에게 그러는 것이 무의미한 행동이라고 말을 건네는 듯 했다.

    그럼에도, 헬레나는 비명을 지르는 것을 멈출 수는 없었다.

    자신의 목에서 무언가 울린다는 감각이라도 없다면, 자신을 그대로 잃어버릴 것만 같은 끔찍한 공포가 자신을 먹어치울 것 같았으니까.

    어째서, 왜 하필 오늘 이런 일이…….

    그렇게 온통 먹먹한 세상 속에서, 희미하게 자신을 붙잡는 감촉과 소리가 들려왔다.

    “……레나! 헬레나! 정신 차려! ”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서서히 청각이 돌아오는 듯한 느낌이 들자, 헬레나는 잠시 강하게 감았던 눈을 뜨며 중얼거렸다.

    “…시루드?”

    그러자 여전히 온통 흐려진 시야 속에서, 시루드만큼은 금방 선명해졌다.

    모든 초점이 시루드라는 한 아이에게 맞춰지는 듯 하다.

    그에 시루드 또한 헬레나에게 침착하게 눈을 맞춰왔다.

    그러자 자신의 몸의 떨림도 조금씩 진정이 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다행이다, 정신이 들었어?”

    “으, 으응.”

    아직은 조금 어지러웠지만, 시루드가 곁에 있어서인지 버틸 만 했다.

    헬레나가 겨우 진정하고 눈을 뜬 것으로 보이자, 시루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침착하게 자신이 본 상황을 최대한 간결하게 설명하며 헬레나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우리 어서 도망쳐야 해! 이건 테러야!”

    “테러…?”

    갑자기 테러라니, 그게 무슨 소리인가?

    헬레나는 잠시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되물었다.

    그러자 시루드가 한쪽 방향을 가리키며 외쳤다.

    “그래! 이 폭발을 일으킨 테러리스트가 지금 이쪽으로 오고 있다고!”

    헬레나가 시루드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긴 쪽에는, 하나의 그림자가 서서히 인간의 형태를 가지며 커져가고 있었다.

    일단은 여성으로 보임에도 결코 작지 않은 키, 아비규환 속에서 홀로 평온한 걸음걸이, 정체를 알 수 없는 가면과 그 너머로 드러나는 날카로운 눈빛.

    그것은 마치 공포라는 감정을 그래도 인간의 모습으로 형상화해서 가져다 놓은 듯한 흉흉한 분위기를 풍겼다.

    사람 한둘 정도 죽이는 데엔 고민조차 하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왠지 익숙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왠지 그런 그녀에게서 너무나도 친숙한 느낌이 든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그녀에게는 자신이 친숙함을 느낄 구석이 절대로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 느낌은 대체…

    그 때, 시루드가 헬레나의 손을 잡아끌며 외쳤다.

    “뭐해, 헬레나! 아직 정신이 덜 든거야? 도망쳐야 한다니까!”

    “하, 하지만-, 기다려봐. 저 사람 왠지-.”

    그 순간이었다.

    “으아아앙-!”

    “살려줘, 다리가-”

    “도, 도와주세요….”

    그녀의 평온한 걸음이 문득 폭발로 인한 부상자들이 신음하는 소리에 멈춘 것이다.

    그 행동에 모든 이들은 숨을 죽인 채 그 모습에 집중했다.

    앞으로 일어날 끔찍한 일을 보고 싶지 않다는 마음과, 어쩌면 자신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그들의 모습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다는 마음이 동시에 섞이고 있는 것이다.

    그 중에서 헬레나와 시루드는 목격자가 되는 것을 선택했다.

    헬레나는 그녀가 왠지 그들을 죽이지 않을 것 같다는 막연한 믿음으로, 시루드는 그녀가 그들에게 행하는 것을 보고 가늠하기 위해서.

    “제발, 살려 ㅈ-”

    -파앗!

    그녀의 무심한 손짓 한번에, 고통을 참으며 목숨을 구걸하던 이들이 모조리 사라졌다.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

    그 광경에는 누구하나 다를 것 없이 모두가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일말의 희망이라도 품고 있었던 이들은 그 광경을 보고난 후 모조리 그 희망을 버렸다.

    “시체조차 남기지 않고 완전히 소멸시켜버리다니, 그런 끔찍한 짓을!”

    “저렇게 되어버리면 제대로 된 장례조차 치를 수 없잖아…!”

    “나, 나는 저렇게 허무하게 죽고싶지 않아!”

    그에게 붙잡히면 그대로 목숨을 잃는다.

    그에겐 이곳을 테러한 데에 대한 어떠한 목적도 없으며, 인질은 더더욱 필요가 없다.

    그렇기에 그들은 더더욱 절박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이전과 비교해 더욱 격렬해진 탈출시도로 부상자가 나오지 않는 것이 신기할 지경이 되었다.

    그 모습에 충격을 받은 것은 헬레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역시, 그 친숙함은 자신의 착각일 뿐이었다.

    하마터면 자신 뿐 아니라 시루드마저 위험하게 할 뻔 했다.

    …왠지 아는 사람인 것 같다니, 상식적으로 절대 말이 안되는 이야기 아닌가.

    “…시, 시루드. 우리도 이제 도망을 가야….”

    “헬레나, 잠시만.”

    그 모습을 바라보던 시루드는 이내 결심을 굳힌 듯 헬레나의 손을 놓으며 말을 이었다.

    “내가 가서 막아야겠어.”

    “뭐어어어?”

    그건 그야말로 미친소리였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네가 무슨 수로? 저런 무서운 마법을 쓰는 사람을 네가 어떻게 할 수 있다는 거야? 우리 그냥 도망치자!”

    “아니, 마법사라서 더욱 내가 나설 수밖에 없어. 저런 사람들 때문에 여태껏 마나 심축적 환자들이 고통받아야 했던 거니까. 우리 할아버지를 포함해서.”

    “그래도!”

    헬레나의 절규에 가까운 외침에, 시루드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나밖에 없어. 여기서 저 마법사를 조금이라도 상대할 수 있는 건. 그러니까, 그동안 너는 안전한 곳으로 도망쳐. 알겠지?”

    “하, 하지만!”

    헬레나는 황급히 말로 시루드를 말리려 했으나, 시루드는 더이상의 이야기는 시간을 지체할 뿐이라고 생각했는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테러리스트를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시루드, 시루드!”

    마음만은 당장이라도 그 뒤를 따라가 손을 붙잡고 싶었지만, 아니. 

    그의 곁에서 직접 도움을 주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아까 전에 본 광경이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는지 발걸음이 도무지 떨어지지가 않았다.

    “제발!”

    결국 소녀는 간절한 염원을 담아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제발, 무사하기를…!’

    그 때, 헬레나는 보지 못했다.

    아비규환 속, 버려진 채집통 속에서 한마리의 반딧불이가 날아가는 것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랜만에 헬레나 시점이네요.
    이러면 진행이 조금 늦어지게 되지만, 그래도 헬레나의 시점이 한번은 나와야 할 것 같아서…….

    루크가 나오지 않아 저도 참 괴롭습니다.

    대신 최대한 글을 많이 썼으니까 봐주세요…….

    이렇게보면 누가봐도 개나쁜 테러리스트인 루크.

    그리고 하필이면 직업박람회를 테러해서 모두에게 테러체험을 시켜주는 루크.

    근데 이런 루크를 보고 ‘엄마! 난 커서 테러리스트가 될래요!’ 라고 하는 어린애는 아무래도 없겠죠?

    다음화 보기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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