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Please report if you find any blank chapters. If you want the novel you're following to be updated, please let us know in the comments section.

EP.473

       성주궁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한 심처(深處).

         

       오랫동안 청해성을 지켜온 운중유선 명현의 노고를 인정한 청해성의 성주가 내어준 성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 속 자리 잡은 모옥(茅屋).

         

       잉어가 뛰어다니는 넓은 연못과 싱그러운 꽃이 형형색색 피어난 정원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남루한 공간에 한 노인이 죽은 듯 눈을 감고 누워 있다.

         

       “윽.”

         

       모옥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백우진은 느꼈다.

         

       두꺼운 이불에 덮인 그의 몸에서 새어 나오고 있는 지독하리만치 역겨운 마기.

         

       그의 옆에 주저앉아 이불을 살짝 들춰내자, 어깻죽지에 난 상처가 보인다.

         

       어깨를 완전히 관통한 다섯 개의 구멍.

         

       마기는 바로 그 구멍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상처가 전혀 아물지 않았어.’

         

       지혈 자체는 혈도를 눌러 억지로 막아둔 듯하나, 그 외의 모든 것들이 심각했다.

         

       안 그래도 회복력이 낮은 노쇠한 몸.

         

       거기에 어지간한 마기와는 비교도 안 되는 역겨운 마기가 회복을 아예 틀어막고 있다.

         

       ‘전투 직후 바로 쓰러지셨다고 했지.’

         

       아마 그것이 문제였을 터다.

         

       만약 그가 곧바로 정신을 잃지 않았다면 많은 게 달라졌을 터다.

         

       의식이 남아 있는 그였다면 곧장 가부좌를 틀고 앉아 마기부터 몰아냈을 테니까.

         

       하나 떨어질 대로 떨어진 체력과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소모된 막대한 내공.

         

       거기에 어깨를 완전히 꿰뚫는 깊은 상처와 마기의 침투까지.

         

       제아무리 현경의 고수라고 해도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의 정신으로는 버티기 쉽지 않았으리라.

         

       “으음….”

         

       끔찍한 고통 탓에 수혈을 짚어 강제로 잠이 든 명현을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기는 백우진.

         

       삼존 중에서도 가장 연배가 높은 구십구 세.

         

       환갑까지만 살아도 장수했다는 말을 듣는 시대적 배경을 생각하면 그의 연세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사실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현경이면 한창이어야지.’

         

       그는 환골탈태까지 겪은 현경의 고수.

         

       인간을 초월한 경지는 구십구 세의 나이마저 무색하게 만들어야 옳겠으나, 지나온 그의 험난한 삶이 그를 막아섰다.

         

       젊어서 강호행을 나선 뒤, 명성을 쌓고 청해성으로 돌아온 그는 그때부터 마물들과 싸웠다.

         

       끊임없이 마물을 베어 넘겨 화경에 다다랐고, 어느 날 돈오(頓悟)하여 현경에 올라섰다.

         

       이후 환골탈태를 통해 가장 완벽한 육신을 손에 넣은 뒤, 그는 쭉 싸웠다.

         

       구십 세에 달하여 제 몸이 망가질 때까지.

         

       지금의 곤륜파가 무당, 소림과 어깨를 견줄 수 있게 된 까닭은 그의 헌신 덕분이었다.

         

       그의 헌신으로 곤륜의 기틀이 잡혔고, 그의 등을 보고 자란 어린 도사들은 하나 같이 소탈하고 정의로웠기에.

         

       이렇듯 그는 청해성, 곤륜파, 정파 무림의 홍복(洪福)이었다.

         

       그러나 그의 삶 자체만 놓고 본다면…, 글쎄.

         

       “미련한 삶이었지.”

         

       제아무리 환골탈태한 몸이라고 해도 계속 쓰면 닳고, 오래 닳으면 망가지기 마련이다.

         

       명현의 육체가 그러했다.

         

       제 몸이 망가지는 줄도 모르고 끊임없이 싸웠고, 마침내 망가졌다.

         

       막대한 내공을 쏟아붓지 않으면 더 이상 전투에 나설 수 없게 되었을 만큼.

         

       이제는 그냥 편히 쉬게 해주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의 배, 정확히는 단전 위에 손을 올리고 나서 그러한 생각이 더욱 깊어졌다.

         

       ‘단전에 내공이 가득하다.’

         

       성주는 그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유명한 의원은 물론이고, 황궁에서 하사받은 비싼 영약들을 그에게 손수 먹였다고 했다.

         

       단전에 가득 차 있는 내공은 필시 그 때문일 터.

         

       ‘내공이 이리 차 있으면 자연스레 마기를 제거했을 법도 한데….’

         

       경지에 오른 육신은 몸을 망가뜨리는 기운에 날 선 반응을 보인다.

         

       더군다나 그의 심후한 내공은 전부 도가 계열의 심법을 통해 쌓아 올린 것.

         

       그러니 어깨의 회복을 방해하는 마기를 몰아내려 애써야 마땅하건만.

         

       ‘내공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있다.’

         

       마치 그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자연스러운 반응은 절대로 아니다.

         

       마기에 길길이 날뛰어야 할 내공이 이리도 잠잠하다는 것은….

         

       ‘선존께서 죽음을 바라시는 걸지도.’

         

       그의 의지가 어깨의 회복을 억지로 막아서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 이러한 현상을 보이려면 그것밖에 없다.

         

       평생 무거운 짐을 어깨에 짊어진 채 살아왔다.

         

       그 과정에서 쌓인 깊은 상처.

         

       그는 이 상처를 통해 투쟁 그 자체였던 기나긴 삶의 종지부를 찍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닐까.

         

       ‘어떡하지.’

         

       그는 고민했다.

         

       명현의 의지를 존중해야만 하는가.

         

       아니면 그가 깨어나기만을 바라는 이들을 위해 살려야만 하는가.

         

       전자를 택하자니 남겨진 이들의 슬픔이 우려된다.

         

       그렇다고 후자를 택하자니 삶의 주체인 이의 의지를 강제로 꺾는 것이 되지 않나.

         

       “하.”

         

       허탈한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드는 백우진.

         

       “제대로 걸렸네.”

         

       그냥 어깻죽지로 침투한 마기만 간단히 제거해서 살리면 되는 줄 알았는데.

         

       쓰게 웃으며 고민한 끝에 백우진은 결정했다.

         

       그를 살리기로.

         

       이유는 별거 없었다.

         

       ‘아직 당신이 필요합니다.’

         

       전장에서의 그는 죽었으나, 삼존으로서의 그는 여전히 중원 전역에 살아 숨 쉬고 있다.

         

       삼존(三尊).

         

       정파 무림을 지탱하는 세 개의 기둥.

         

       그 기둥의 죽음이 몰고 올 여파는 보지 않아도 훤했기에.

         

       약간의 혐오감이 그의 몸을 휘감는다.

         

       혐오가 향하는 방향의 끝에 선 것은 다름 아닌 백우진 자신.

         

       ‘살리는 데에 고작 그런 이유밖에 못 대는 인간이 되었나.’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된 데에 명현의 의지도, 남은 이들의 슬픔도 중요하게 작용하지 않았다.

         

       오직 쓰임새.

         

       마교와의 전쟁이 코앞인 지금, 그가 여전히 필요하다는 이유 딱 그것 하나만이 중요했다.

         

       그는 쓰게 웃으며 자신의 결정을 합리화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오랜 전투와 전쟁에서 너무나도 많은 사람을 잃었다.

         

       억울하게 죽어간 이들, 자신을 대신하여 목숨을 잃은 이들, 배신당해 죽은 이들 등.

         

       그들의 죽음 하나하나가 켜켜이 쌓여 오직 정의뿐이던 그를 크게 바꿔 놓았다.

         

       지금보다 덜 죽는, 덜 희생하는, 덜 배신하는 승리.

         

       이상이나 다름없는 그러한 승리에 다가가기 위해선 정의만으론 불가능하다는 것.

         

       그보다는 조금 비열해야 하고, 손익을 따질 수 있어야 하고, 가리는 수단과 방법의 선을 한 걸음, 아니, 두어 걸음 크게 뒤로 밀어내어 영역을 확대해야만 했다.

         

       이 또한 같은 맥락이었다.

         

       ‘당신의 존재가 많은 이들을 살릴 것입니다.’

         

       그의 등을 보며 자라난 어린 도사들, 그리고 그를 우상으로 삼고 있던 무인들.

         

       그들은 선존이라는 존재 그 자체로 위안을 얻고, 더 큰 힘을 발휘할 것임을 알기에.

         

       ‘그러니 죽음은 조금만 뒤로 미뤄주십시오.’

         

       다섯 개의 구멍이 뚫린 어깨 위로 손을 얹은 채 내공의 순환에 제동을 건다.

         

       강제로 시작된 역행(逆行).

         

       역천의 무공, 천마신공의 구결을 따라 순수한 마기가 샘솟는다.

         

       천마는 마교인들의 신이다.

         

       그녀가 죽으라면 죽고, 살라면 살 정도로 맹신하는 현세에 강림한 신.

         

       백우진은 처음에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한 사람 정도는 천마를 못마땅히 여기고, 그 자리를 빼앗기 위해 반란을 획책할 법도 하건만, 그들은 어찌하여 천마를 맹신하는지.

         

       그리고 그러한 까닭 중 한 가닥을, 천마신공을 익힘으로써 깨달았다.

         

       ‘순수한 마기.’

         

       천마신공으로 만들어지는 순수한 마기는 마교도들이 사용하는 탁한 마기의 천적이다.

         

       한 줌의 양으로도 몇 배나 되는 탁한 마기를 지워낼 수 있을 만큼.

         

       흔히들 마기의 대항마로 잘 알려진 도가 또는 불가 계열의 내공을 능가하는 최악의 상성.

         

       이러한 상성이 고스란히 전해져 마교도에게 천마의 위엄을 한층 더 날카롭게 만들었으리라.

         

       “조금 아픕니다.”

         

       잠들어 있는 명현을 향해 짧은 경고를 남긴 뒤, 순수한 마기를 어깻죽지에 흘려보낸다.

         

       순식간에 쪼그라들며 발악하는 탁한 마기에 의해 들썩이는 명현의 육신.

         

       “으음…!”

         

       다물어진 그의 입술 사이로 고통 어린 신음이 새어 나온다.

         

       하나 그것도 잠시.

         

       미약하나마 발악하던 탁한 마기들은 이내 말끔히 소멸했다.

         

       백우진은 곧장 기운의 흐름을 순환시켜 정순한 내공으로 그의 상처를 감쌌다.

         

       마기를 제거하기는 했으나, 여전히 노쇠한 몸의 더딘 회복력은 그대로다.

         

       이를 조금이나마 활성화하기 위해 제 기운을 더한 것.

         

       거기까지 처치를 끝마치자 마침내 거뭇거뭇하게 변해 있던 어깻죽지가 원래의 색을 되찾았다.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던 명현의 얼굴이 편안해진 것도 그쯤이었다.

         

       당장 할 수 있는 것들을 모두 끝낸 백우진이 기운을 갈무리하여 손을 떼어낸다.

         

       “후우….”

         

       적잖은 내공을 소모한 그가 작게 숨을 내쉬며 호흡을 가다듬을 때.

         

       “으음.”

         

       잠들어 있던 명현의 닫혀 있던 눈꺼풀이 서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뜨인 눈동자.

         

       잠시간 초점을 잃은 채 방황하던 시선이 이내 백우진에게로 향한다.

         

       “자네인가…?”

         

       초라한 음성.

         

       주어가 없어도 말뜻은 이해되었다.

         

       자신을 살린 사람이 맞냐고 물어보는 것일 터.

         

       백우진은 최대한 담담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예, 제가 마기를 몰아냈습니다.”

       “그런가….”

         

       다시 천장으로 향하는 명현의 시선.

         

       거기에는 무수한 세월이 쌓여 있었다.

         

       그렇기에 알 수 없었다.

         

       다시 깨어난 그가 현재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지.

         

       어쩌면 죽지 못해서 아쉬워하며 자신을 원망하고 있을지도.

         

       내려앉은 어색한 침묵 속에서 생각을 정리한 명현이 입을 열었다.

         

       “고맙네.”

       “…….”

         

       겉치레가 아닌 진심이 담긴 감사 인사에 벙찐 표정을 짓는 백우진.

         

       그런 그를 향해 명현이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 표정을 보아하니 내 의지를 읽었나 보군.”

       “…예.”

       “자네가 보았던 대로 격통에 시달리던 노부는 죽고 싶었어. 한데…, 이거 참, 눈을 뜨고 나니 처음으로 드는 생각이 무엇인 줄 아는가?”

         

       백우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자, 그가 쓰게 웃으며 대답했다.

         

       “살아서 참으로 다행이구나, 그리 생각했네.”

         

       힘겹게 팔을 뻗은 그가 백우진의 손등에 손을 올리며 말을 이었다.

         

       “고맙네. 이런 기쁨을 느끼게 해주어서. 노부의 의지를 꺾어주어서 참으로 고마우이.”

         

       의지를 꺾은 제 마음을 달래기 위함일까.

         

       아니면 깨어나며 새로운 감정을 깨달았기 때문일까.

         

       어느 쪽이든 그의 말에 한시름 덜어낸 백우진이 가볍게 웃으며 고개 숙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그럼 저는 다음 편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매번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 되셔요. (_ _)

    다음화 보기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