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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73

        

       절낙성과 강패천이 쩍 갈라진다.

         

       초절정 무인이 죽어서 그 심장을 바쳐야 한다면, 적어도 우리 절낙성/강패천 무인의 심장은 안 된다!

       두 사파의 생각이 일치한 것이다.

         

       절정 무인 정도만 되어도 어찌어찌 말로 잘 구슬려 볼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초절정이라니?

       문파 내에서도 핵심 전력이다.

       젊으면 젊은 대로 더 키워야 하는 문파의 보물이자, 늙으면 늙은 대로 산전수전 다 겪은 위대한 노장이 아니겠는가.

         

       깜깜한 밤.

       횃불들이 흔들려 그림자들만 휘휘 요란을 떨며 음영을 드리운다.

         

       순간, 두 사파의 눈동자들이 다급하게 서로의 숫자를 가늠한다.

         

       사도십대천성은 오천 오성.

       규모로 따지자면야 오천 중에서도 삼강에 속하는 강패천이 절낙성보다야 훨씬 성세한 문파지만.

       하지만 당장의 전력으로는 저내 우두머리가 직접 행차한 절낙성의 압승이다.

         

       강패천 무사들이 슬금슬금 움직여 퇴로를 등지려 한다.

       당장 열세이니 죽이겠다고 달려들면 문파 전체의 전력과는 달리 수색조는 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도망칠 준비를 하는 것이다.

         

       준기충의 눈동자가 마구 흔들린다.

       지금 쳐? 말아?

         

       하지만 밤중에 길을 도외시하고 도망치는 초절정 고수를 잡는다는 보장이 있나?

       그렇게 놓치고 나면?

       강패천의 보복을 감당할 능력은 없는데?

         

       하지만, 싸우면 당장을 이길 텐데.

       후환? 흡정마공을 손에 넣고 나면 강패천 따위가 두렵겠냐마는.

         

       하지만, 준기충이 꾹 참았다.

         

       입구부터 초절정 무인의 심장을 요구하는 기이한 기관진식이다.

       과연 내부에는 함정이 없을까?

       그리고 내부는 얼마나 넓지?

       당장 들어간다고 치면.

       그러다 함정을 밟으면 나중에 들어오는 놈들을 위해 개척하는 꼴이 되지 않겠는가.

         

       게다가 그리도 화려하게 불꽃이 피어올랐으니 산 밖에서 눈치만 살피던 놈들도 죄다 뛰어 올라오리라.

         

       그러는 동안 강패천 무사들이 퇴로를 옆구리에 끼고 자리를 잡았다.

       공격하면 도망치겠다는 무언의 신호다.

         

       강패천의 누구도 지휘하지 않았지만, 순수하게 눈치만으로 이뤄낸 재배치였다.

       저네들 안전을 확보하는 데는 아주 이심전심 마음이 통하는 것이 사파 아니겠나.

         

       “이보시오, 천승인. 지금 우리가 싸울 때가 아니오. 천승인도 불꽃을 보고 올라온 것이 아니시오? 어중이떠중이들이 죄다 몰려올 텐데, 그런 놈들에게 마공을 넘겨줄 수는 없지 않겠소?”

         

       “그러면? 초절정의 심장은 성존께서 마련하실 요량십니까?”

         

       도련님을 대신해 수색조를 지휘하는 육 천승이 대답했다.

         

       그에 준기충이 고개를 젓는다.

         

       “어중이떠중이 중에도 초절정 한 명쯤은 있겠지. 우리 사도의 기둥들이 힘을 합치면 그거 하나 마련하기가 어려울까.”

         

       틀린 말은 아니지만, 글쎄?

         

       혈교를 규탄하다가 머저리처럼 글씨 찬양 시간으로 큰 주접을 떤 육 천승이다.

       하지만, 글씨가 진짜 훌륭해서 그랬다.

       글씨를 알아보려면 여러 글씨를 보면서 안목을 길러야 하고, 이렇게 글씨 볼 줄 아는 이들이란 글줄을 많이 읽었다는 뜻이다.

         

       육 천승의 머리가 마구 구른다.

         

       당장 붙으면 패배할 것이다.

       하지만 절낙성은 절대로 싸울 수 없다.

       절낙성 역시 피해가 클 것이고, 그러고 나면 방금 성주가 제 입으로 말한 어중이떠중이를 감당할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저놈들이 마공을 우리와 나누려 할까?

         

       아니지.

       애초에 마공을 강패천으로 가져간들, 그 절세의 신공을 가르쳐 줄 것인가?

       심지어 천주의 자식, 강패천의 후계자를 지키지도 못했다.

       아무리 공평무사한 수장이라 해도 아비의 마음이 어떠할까.

       심지어 강패천주, 강추온이 애초에 공평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이고.

       흡정마공을 바쳐도 토사구팽 꼴이 날 것이 뻔하지 않겠는가.

       그럴 바에야…….

         

       육 천승이 음험한 속마음을 꾹 삼켰다.

         

       “좋소. 천하의 살중살을 어중이떠중이가 가지도록 놔둘 수는 없지. 그러면 마땅한 방책이 있으십니까?”

         

       “낭인들이나 잡다한 문파 조무래기들 중에 초절정이 있지 않겠소? 하나 잡아다 문을 열고, 나머지는 먼저 통로에 밀어 넣으면 몸으로 함정을 뚫어 주겠지.”

         

       “오, 성존께서 참으로 신묘한 책략을 내셨습니다.”

         

       그렇게 두 사파가 조금은 누그러진 채로, 그러나 여전히 칼자루에 손을 올려놓고는 서로를 마주한다.

         

       그야 당연한 일이다.

       힘을 합치자고는 했다.

       하지만 마공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

         

       필사해서 사이좋게 너 한 권 나 한 권 나눠 가질 신물이 아니다.

       종래에는 결국 비급을 두고 다투게 될 것이라고.

         

       그러던 중이었다.

         

       -## ### ##### #……

         

       굉장히 생소한 발음으로 고저 없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속삭이는 듯하다.

       모든 방향에서 속삭이는 듯한 육합전성의 기예까지는 아니다.

       그래도 한 방향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모두에게 선명하다.

       여간한 내공이 아니라는 뜻.

         

       모두의 시선이 내리막의 톡 튀어나온 돌출부를 향했다.

         

       마침내 화광 속에 모습을 드러내는, 너무 말라 기괴한 느낌을 주는 승려가 한 명.

         

       전신에 근육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뼈 위에 살가죽이 붙은 듯 목내이(미라)같은 형상이다.

       그러나 퀭한 눈구멍 사이로 비치는 눈동자는 형형하니 사나워 모두가 움찔하도록 만드는 위압감이 있었다.

         

       일단은 힘을 합치기로 한 상태.

       개중 가장 높은 이는 절낙성존이었기에, 준기충이 앞으로 나서 포권을 취한다.

       

       “고인께서는 어떠한 분이신지.”

         

       그에 승려가 눈을 부라리더니, 모래가 낀 듯 케케한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다.

         

       “천처니……”

         

       “예? 무얼 천천히라는 말씀이십니까?”

         

       “중원말, 어렵. 본인이다. 아묵합랍.”

         

       “아묵합랍!” “괴승!” “아묵합랍!”

         

       괴승 아묵합랍.

       보통 괴라고 하면 이상한 놈에게 붙이는 칭호를 말한다.

       이상하다고 하면 성정이 괴팍하다는 뜻이 아니다.

       행동에 일관됨이 없다는 뜻으로, 어떤 때는 마두처럼 굴고 어떤 때는 협객처럼 구니 이도 저도 아니라서 이상한 놈, 괴(怪)다.

       즉, 종잡을 수 없다는 뜻이다.

         

       “괴승께서는 어찌하여 중원 일에-”

         

       아묵합랍이 손을 들어 준기충의 말을 뚝 끊는다.

       그리고는 재차 말하는 것이다.

         

       “천천히. 중원 사람들은 모든 사람이 중원 말을 쓰는 것으로 압니다. ###, 어머니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도중에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가 섞였다.

       하지만 모두가 알아듣기를 뭔지는 모르겠지만 욕설이겠구나.

         

       내용은 모욕적이지만 발음이 어눌하기에 별반 와닿는 타격은 없다.

         

       “본인은 흡성대법을 찾으러 오셨습니다. 길을 비켜나십시오. 본인의 무공은 몹시 매섭습니다.”

         

       준기충이 잠시 머리를 굴려본다.

       저 서장의 노괴를 지금 해치워야 하는가?

       그에 육 천승을 슬쩍 바라보니, 고개를 끄덕이며 신호를 맞추는 것이다.

       그에 준기충이 손가락을 세 개.

       그리고 두 개, 한 개.

       마지막 손가락이 막 접히려는 때였다.

         

       토독. 가벼운 것이 내려앉는 소리.

       그러나 정작 내려앉은 것은 능히 이백오십 근은 나갈 법한 살덩어리였다.

         

       작은 키에 비해 어마어마하게 붙은 비계.

       얼굴에도 살이 붙어 이목구비는 가운데에 몰리고, 몸통은 아예 부풀린 돼지 오줌보처럼 둥근 꼴이다.

       누구라도 한 번 보면 잊지 못할 꼴이니, 알아보기도 쉽다.

         

       보따리같이 푸짐하게 생긴 돼지 새끼가 날래기로는 아주 날아다니는 것만 같다고 하여 중원의 사람들이 부르기를 포비돈.

       포비돈 장소남이라 부르는 고수다.

         

       “이미 선객들이 많으시구만.”

         

       “포비돈!” “포비돈!” “천하오랑!”

         

       “그래 바로 천하오랑 중 돼지를 담당하는 포비돈이올시다. 클클, 강패천에다 절낙성? 거기에 라마승께서 계시고? 아니, 이미 좋은 무공 가지신 대협분들이 굳이 다 가져야만 하시겠소? 이런 마공일랑 무림의 집 없는 떠돌이에게 양보를 하시지 않고.”

         

       “감히 사도십대천성의 행사를 방해하겠단 말이오?”

         

       그러나 포비돈은 태연하게 귀를 판다.

       다만 팔뚝에도 포동포동하니 살이 쪄서, 겨우 귀 파는 동작임에도 굉장히 힘이 들어 보인다.

         

       “솔직히 거, 흡정마공만 얻으면 사도련에서도 큰 자리 하나 차지하고 떵떵거릴 수 있을 텐데, 뭐 조금 방해하는 게 대수요?”

         

       “뭣이? 지금 그 말, 책임질 수 있소?”

         

       “둥지 없는 떠돌이들에게 너무 박하게 구는 거 아니신가? 안 그렇소?”

         

       “암암. 옳은 말씀이셔요.”

         

       그에 산길에서 솟아나는 신형이 하나.

       양 손에는 강철로 긴 손톱을 찼으니 무림에서는 철조라 하는 기문병기였다.

       철조를 쓰는 여인이라면 모두가 떠올리는 별호가 있었으니, 바로 조아요 이혜혜다.

         

       그리고 이혜혜 하면 그녀의 충성스러운 추종자 세 명으로 유명하기도 하다.

       아니나 다를까, 장정 셋이 그 뒤를 따라 이혜혜를 호위하듯 좌우와 뒤편으로 척 둘러싸는 것이다.

         

       “이게 누구야, 조아요 아닌가? 이 소저도 그 흉악한 마공을 찾으러 오셨소?”

         

       “그럼요. 그럼 안 찾겠어요? 제대로 된 신공 하나 익혀보는 게 평생 소원인데.”

         

       “팔철아조 정도면 충분히 신공 아니오?”

         

       “아이 참, 왜 그러실까. 다 아시면서. 포비돈 오라버니는 육보금강공으로 만족하세요?”

         

       기문병기나 기괴한 무공을 쓰는 이들은 특히나 이러한 신공에 목이 마르다.

         

       기문병기가 말이 좋아서 기문병기지.

       낯설어서 상대하기 까다롭다는 장점 딱 하나를 빼면, 사실상 하자 있는 병기가 아니겠는가.

       진짜 좋은 병기면 검이나 도처럼 너 나 우리 모두가 함께 썼을 테니까.

         

       기괴한 무공들 역시 마찬가지다.

       육보금강공은 몸의 살을 찌워 막강한 방어력을 얻는 독특한 무공이다.

       하지만 그게 진짜 효율적이라면 무림인 모두가 제 엉덩이도 스스로 못 닦을 정도로 살을 찌웠어야지 왜 군살 없이 날렵한 꼴이겠는가.

         

       만약 이렇게 하자 있는 병기, 하자 있는 무공을 쓰면서도 이름을 날릴 정도다?

       우스갯소리로 그러면 애초부터 신공을 익혔다면 천하십대고수의 판도가 바뀌지 않았겠냐고.

       그러니 이들이 신공에 목마를 수밖에는.

         

       준기충이 속으로 이를 으득 갈았다.

       하필이면! 이 돼지 새끼가! 여기로!

         

       천하오랑이란 낭인 중 최고 고수 다섯을 이르는 말이다.

       물론, 낭인 중에 스스로 드러내지 않는 이들이 한둘이랴.

       그보다 더한 고수가 있을 수는 있지만.

         

       활발히 활동하며 낭인들에게 우러름을 받는 천하오랑이다.

       하나하나가 낭인을 대표할 자격을 갖춘 이들인 것이다.

       포비돈이 낭인들을 제 편으로 모아버리면, 초절정 하나 잡아 문 열고 밀어넣겠다는 계획이 참으로 험악해지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포비돈의 노림수 또한 그랬다.

         

       그러니 올라오는 족족 면면을 보고 자리를 잡으니, 사도련 소속, 낭인들, 그리고 노승을 앞에 세운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마두나 무명객들의 삼파전이다.

         

       그리고 사람이 늘어날수록, 장내에는 점차 스산한 살기가 차오른다.

         

       초절정 하나는 죽어야 한다.

       그래야 문이 열릴 테니까.

         

       청 일행이 서문에 도착한 때가 바로 이런 신경전의 한복판이었다.

         

       변장을 준비하느라 늦게 출발한 치고는 그래도 빠른 산행이다.

       천유학의 머리에 든 지도와 청의 초월적 밤눈이 합쳐서 만들어낸 준수한 결과였다.

         

       석문 앞은 이미 세 파로 갈라진 상태.

         

       한쪽은 사도련 놈들이네.

       그런데 나머지는?

         

       그때 천유학이 앞장 서서 한 편에 척 자리를 잡는다.

       기타, 마두와 무명객들이 선 자리였다.

         

       ‘사부님? 여기 맞아요? 좀 나쁜 놈들이 쫙 깔린 것 같은데. 혹시 아시는 분이라도.’

         

       ‘솥발의 형상이니, 이럴 때는 제일 약한 쪽에 붙어야 할 것 아니냐.’

         

       솥발의 형상이란 그 유명한 제갈량의 그보다 조금 덜 유명한 천하삼분지계를 말하는 것이다.

       물론, 천하삼분지계의 원조는 괴철이라는 옛날 사람이지만, 억울하면 제갈량보다 더 유명했어야 한다. 유감.

         

       큰 가마솥에는 다리가 세 개 달린다.

       다리가 세 개면, 아무리 울퉁불퉁하고 다소 경사가 있더라도 흔들림이 없이 자리를 잡기 때문이다.

       다리가 네 개면 평평하지 못한 지형에서는 덜컹덜컹 흔들릴 수밖에는 없고, 다리가 두 개면 서 있지를 못하니까.

         

       그러니 일단은 제일 약한 쪽에 붙어서 돌아가는 꼴을 좀 지켜보자는 것이다.

         

       안 그래도 머릿수가 딸리는 기타 등등 나머지 조가 아니겠나.

       다섯 명이나 합류하니 경계하면서도 적이 안심하여 누그러지는 기묘한 반응이었다.

         

       그리하여 청이 돌아가는 꼴을 보아하니.

         

       석문을 열기 위해서 초절정의 심장을?

       안 그러면 무너진다고?

         

       “허. 흡정마인의 묘소라더니, 입구부터가 흉악하기 그지없구나. 음.”

         

       -조금 구차하지만, 편을 옮겨야겠다.

         

       천유학이 전음을 보내온다.

       청이 그에 대답한다.

         

       -왜요!!!

         

       그에 천유학의 표정이 팍 찌그러진다.

       천유학 뿐만 아니라, 천유학을 주변으로 작은 원뿔 범위에 있던 무인들도 인상을 팍 쓰며 청을 바라본다.

       청이 전음을 잘 쓰지 않는 이유다.

       도무지 성량 조절이 안 된다.

         

       -이것아, 그냥 와서 귓속말이나 해. 일단 문을 열어야 들어가서 흡정마공을 없애건 말건 할 것 아니냐. 보아하니 이쪽이 제일 만만한 모양인데. 낭인 편으로 가자.

         

       그러나 청은 미동도 없다.

       그냥 제 턱에 붙인 가짜 살점을 살살 만지작거릴 뿐이다.

         

       -왜?

         

       청이 스승의 귀에 속삭였다.

         

       ‘입구가 무너지면 아무도 못 들어가는 거 아니에요?’

         

       -우리도 못 들어가지 않냐.

         

       ‘우리는 왜 들어가는데요?’

         

       -그야 그 저주받을 마공을 세상에서 없애버려야 하니, 아.

         

       그에 청이 씩, 개구진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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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This Murim’s Crazy B*tch

I Am This Murim’s Crazy B*tch

이 무림의 미친년은 나야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female character in a martial arts game I’ve played for the first time. I know absolutely nothing about Murim, th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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