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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73

       “……야, 다시 한번 말해 봐.”

        

       그거 봐. 이런 반응일 줄 알았다니까.

        

       “검술을 가르치겠다고?”

        

       나는 굳이 고개를 끄덕이거나 대답하지는 않았다. 왠지, 굳이 그렇게 하고 싶지가 않았다.

        

       아니, 뭐, 물론 말을 꺼낸 쪽은 나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내가 굳이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검성에게 부탁했는데 거절당하고, 검성은 또 나한테 ‘직접 해보라’라고 했으니까.

        

       무려 검성의 말이니 긴가민가하면서도 일단 만나서 말을 꺼내 보긴 했는데, 당연하게도 이런 반응이 나왔다.

        

       나올 수밖에 없었다.

        

       상대는 원작에서 검성을 베어 죽이기까지 했던 루카스다.

        

       검술이라면 이제 막 초보 티를 벗은 내가 가르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네가, 나한테?”

        

       루카스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한 번 더 확인하듯 물었다.

        

       아니, 그래도 그렇게까지 확실하게 확인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나도 황당하다는 건 알고 있거든.

        

       황당한 소리를 한 사람이 나라는 것을 확실하게 이해하고 있었기에, 나는 잠깐 생각하다가 루카스에게 말했다.

        

       “거, 검성이 그렇게 하라고—”

        

       그렇다. 나는 그냥 검성에게 뒤집어씌우기로 했다.

        

       뭐.

        

       왜.

        

       검성이 그러라고 했으니까 그래도 되는 거 아니야?

        

       원래 조언해주는 건 그 조언에 대한 보증도 서겠다는 거나 다름없잖아? 말하자면 AS 같은 거라고.

        

       게다가 검성이 직접 루카스를 찾아오지 않으면 그 이야기를 들을 일도 없으니, 나는 망설임 없이 그렇게 하는 것을 택했다.

        

       “검성? 그 할배 노망났나?”

        

       음.

        

       이 이야기를 그대로 전하면 검성이 열받아서라도 달려오지 않을까?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데, 루카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대체 무슨 생각인 건지 모르겠네.”

        

       그러게 말이다.

        

       “…….”

        

       루카스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좋아.”

        

       “뭐?”

        

       나는 루카스에게 검성의 이야기를 전한 뒤 처음으로 소리를 냈다.

        

       “검성이 그렇게까지 말했으면 무슨 의미가 있는 거겠지. 이유가 있으니까 그렇게 말했을 거 아냐. 아닌가?”

        

       아니, 나도 모르겠는데.

        

       “……이런 저택이라도 그런 공간은 있지. 일단 따라와라. 네가 나를 가르칠 방법이 있는지 한번 보자고.”

        

       “아니.”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루카스를 따라 일어났다.

        

       어, 뭐지.

        

       나는 그냥 뒤집어씌울 생각으로 말했는데, 루카스는 또 이상하게 설득되었다.

        

       그래도 앨리스나 클레어같이 내 주변에 있는 애들은 이제 슬슬 성격이나 버릇 같은 것을 하나하나 파악해가고 있는데, 정작 이쪽에서 거의 내내 같이 지낸 루카스는 전혀 모르겠단 말이지.

        

       하긴, 내가 검에 목숨 건 인간들의 삶을 이해하는 날은 아마 평생 오지 않겠지만 말이다.

        

       *

        

       “좋아. 그럼—”

        

       나와 마주 보고 서서 검을 든 루카스는, 별로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을 대놓고 지은 나를 마주 보고 섰다.

        

       나는 양손으로 검을 꽉 쥔 채 루카스를 똑바로 보았다.

        

       그리고 루카스가 단번에 달려들 것에 대비했는데—

        

       “……아니다.”

        

       루카스는 검을 내렸다.

        

       아니, 내리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땅바닥에 대충 떨어뜨렸다.

        

       “그만하자.”

        

       뭔데?

        

       그런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간신히 참아낼 수 있었다.

        

       “……전할 말은 그게 다였냐?”

        

       “다였는데.”

        

       내 말에 루카스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내 옆을 스쳐 지나가며 말했다.

        

       “역시 바보스러운 소리야. 검성이 진짜 단단히 노망났나 보다. 어디 요양원이라도 소개해주는 건 어때?”

        

       하지만 그렇게 악담을 퍼부으면서도 내 쪽은 전혀 돌아보지 않는 루카스에게서, 나는 조금 이상한 기색을 느꼈다.

        

       돌아서서 멀어지는 루카스의 뒷모습을 가만히 살폈다.

        

       손이, 조금 떨리고 있었다.

        

       ……뭐지.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일단 루카스의 뒤를 따랐다.

        

       *

        

       “죄책감 아니야?”

        

       다음날.

        

       그리폰 먹이 먹는 것을 구경하다가 나의 이야기를 들은 앨리스는 그렇게 물었다.

        

       “죄책감? 루카스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아니, 자기 목숨을 거둘 수 있는 수준의 강자라면 오히려 즐거운 표정으로 검을 휘두르고 상대의 목숨을 취하려고 하는 루카스였다. 심지어 남매인 나를 몇 번이나 공격하기도 했고.

        

       게다가 그 공격은 대부분 성공했다. 내 목을 단번에 날려버린 적은 한 번도 없지만, 허벅지 살을 거의 뼈까지 도려내거나, 내장이 드러나게 한다던가, 폐를 찔러 숨이 막히게 만든다던가, 팔이 바닥으로 툭 떨어지게 한 적이 있다던가…….

        

       나도 참 많이 당하면서 살았구나.

        

       대부분의 공격은 고통이 느껴지기 전에 얼른 시간을 돌려서 생각만큼 데미지가 크지는 않았다. 왜, 갑자기 너무 큰 상처를 입으면 쇼크사하기 전에 뇌가 시간을 벌려고 뇌내 마약을 마구 뿜어댄다고 하지 않던가. 대충 그런 원리일 거다.

        

       “그래, 그래서 아니야?”

        

       앨리스가 재차 물었다.

        

       “루카스는…… 뭐, 결국 우리한테 검을 겨누긴 했지만…… 나름대로 너를 남매라고 생각했잖아. 널 데리고 온 사람도 루카스였고.”

        

       “그렇긴 했지.”

        

       나와 클레어 중, 내 쪽이 더 재미있을 것 같다는 이유로 나를 골랐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황제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었던 일등 공신이기도 했다. 물론 그게 절대로 의도한 일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자기가 골라온 만큼 나름대로 애정이 있었을 거야.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랬어.”

        

       “루카스가 나를 벨 때마다 당황하긴 했었지.”

        

       나는 순순히 인정했다.

        

       “휘요?”

        

       그리폰이 고개를 들고 나를 봤다.

        

       “옛날 일입니다.”

        

       내가 그리폰에게 그렇게 말하자, 그리폰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다시 밥그릇에 얼굴을 박았다.

        

       신선한 생고기가 가득 담긴 밥그릇이었다.

        

       이젠 먹는 거만 빼면 거의 개가 된 것 같은데. 음, 실수라도 본인 앞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도록 조심하자. 얘는 사람 말을 거의 다 알아들으니까.

        

       “제이든과 루카스 사이에 네가 있을 때마다 얼마나 즐거워 보였는지 알아? 솔직히 조금 부러울 때도 있었거든? 나야 티 내지 않으려고 너한테 더 짜증을 냈지만.”

        

       “…….”

        

       “제이든은 네 모든 행동 하나하나가 아름답다고 극찬하고, 루카스는 그런 제이든이 느끼하다는 듯 헛구역질을 하면서 너를 떼어내려고 하고, 너는 두 사람 다 귀찮다는 듯 무표정하게 거리를 벌리고. 솔직히, 아버지가 그런 의도로 모아둔 것이 아니었다면 그림으로 그린 것 같은 남매였다고 생각해.”

        

       “……부러웠다고?”

        

       “조금은?”

        

       내가 되묻자, 앨리스가 말했다.

        

       “그러니까, 루카스는…… 너한테 꽤 많은 죄책감을 품고 있을 거야. 어쩌면 당한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깊게. 아마 스승님은 그래서 너를 직접 보낸 게 아닐까?”

        

       “……그런가?”

        

       “그래. 그래서, 두 사람이 제대로 대련할 수 있게 되면 관계가 회복되었다고 할 수 있는 거지.”

        

       가만 생각해보니 앨리스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나는 이마를 짚은 채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럼 처음부터 그렇게 말했으면 좋았을 텐데.”

        

       “원래 스승이라는 사람이 다 그렇지 뭐.”

        

       앨리스는 그리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요는, 다른 사람한테 맡기지 말고 스스로 해결하라는 거야. 그렇지 않으면 의미가 없으니까.”

        

       ……음.

        

       그런데 문제는, 루카스가 내 앞에서는 절대로 검을 잡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건데.

        

       나는 그리폰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는 앨리스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한가지 깨달았다.

        

       아니, 왜 쟤는 굳이 존댓말 쓰지 않아도 머리를 내어주는 건데?

        

       *

        

       좋아. 작전을 세웠다.

        

       일단, 루카스가 나한테 죄책감을 품고 있다면, 적어도 내가 그 녀석과 있을 때 죽을 일은 없다는 소리다. 죽이지도 않았는데 죄책감을 가진 상대가 나를 죽일 정도로 움직일 이유는 없으니까.

        

       그렇다면 옆에서 조금 성가시게 굴어도 상관없다는 소리고.

        

       그래서 내가 생각한 것은, ‘내가 어렸던 시절의 루카스 흉내 내기’였다.

        

       내가 어렸던 시절, 그러니까 루카스가 나를 처음으로 황궁에 데려다 놓았던 시절부터 루카스는 나에게 칼을 휘둘렀다.

        

       물론 그건 북유럽 신화의 발두르에게 신들이 이것저것 던지면서 경의를 표한 것과 같은 의미였다.

        

       루카스가 어떤 방식으로 나를 공격하더라도 나는 미리 알고 공격을 피했다. 당연히 루카스는…… 내가 피할 것이라고 가정하고 검을 휘두른 거다.

        

       그래서 한 번에 목이 잘리는 일이 없었던 거고.

        

       하지만 발두르와 다른 점은, 발두르는 이것저것 다 처맞아도 절대 죽거나 다칠 일이 없었지만, 내 몸은 무슨 푸딩 잘리듯 잘렸다는 거다. 어린아이의 몸에 뭘 바라겠는가. 게다가 루카스가 쓰는 검은 당시에 명검 중의 명검이었다.

        

       전혀 기억하지 못해야 했을 그 사실을, 루카스가 떠올린 것이니, 이번에는 내가 갚아줄 차례였다.

        

       “……핫!”

        

       루카스가 저택 뒤뜰에서 산책하고 있을 때, 나무 뒤에 숨어있던 나는 갑자기 확 튀어나와서 루카스 뒤통수에 대고 목검을 휘둘렀다.

        

       당연히 루카스는 너무나 손쉽게 그 공격을 피했다.

        

       “……뭐하냐, 너?”

        

       황당하다는 듯 물어보는 루카스였지만, 나는 그저 아무렇지도 않게 검을 거둬들이고 몸을 돌려 돌아갔을 뿐이다.

        

       “아니, 뭐냐고, 진짜.”

        

       그리고 그런 내 뒤통수에 대고 루카스가 물어보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게. 사실 나도 내가 정확히 뭘 바라고 이러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그래도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관계를 이대로 끝내버리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너무 늦어서 죄송합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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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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