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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73

    -퍽!

    깔끔하게 들어간 수도.

    루크는 실 끊어진 인형처럼 힘없이 쓰러지는 시루드를 가볍게 받아낸 후, 케이프를 벗어 깔아둔 바닥 위에 조심스레 눕혔다.

    그리고 시루드의 신경계에 가한 가벼운 충격과 손상을 회복시키기 위해 목 근처로 신성력을 흘려보냈다.

    ‘충격으로 기절시킨다’. 

    단순하기는 하지만, 물리적인 방식의 제압은 언제나 뒤탈을 낳게되기 마련이다.

    애초에 목 부분의 혈자리를 손상시켜 뇌로 가는 혈류를 순간 차단해 강제적으로 기절시키는 방법인 만큼, 아무리 조심해도 결코 안전할 수가 없는 방식이기도 하니까.

    시루드가 소중한 제자이니만큼, 이런 후조치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신성력을 사용하기 싫어서 어떻게든 마법으로 해결을 보려고 했건만, 더이상 시간이 지체된다면 오히려 더 많은 신성력이 들어갈 판이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생각보다 애를 먹었군. 대단해. 내가 이 나이였을 때에도 이정도로 빠르게 성장할 수는 없었는데 말이야.’

    아무리 마법으로 탐지와 경계를 유지하고 있었다고는 해도, 자신이 이 정도로 수세에 몰릴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결국 마법을 포기하고 몸을 직접 움직여야한다는 선택지까지 골라야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루크는 목관절을 이리저리 꺾으며 한숨을 쉬었다.

    “하아, 그나저나, 너무 갑자기 움직여서 그런가. 허리와 어깨가 조금 당기는 것 같구나.”

    아무래도 준비운동도 없이 몸을 갑자기 움직여서 그런가, 약간 뻐근한 감각이 느껴지고 있었다.

    -어머, 설마 운동부족이신가요?

    “아니, 그럴리가.”

    최근에 아린세이아를 가꾸는 것 외에 운동을 한 적이 없다는 건 사실이나, 운동부족이라 할 만큼 운동량자체가 부족한 건 아니었다.

    웬만한 운동이 의미가 없을만큼 육체의 성능이 원체 높기도 하고.

    그러니 아마 신성력의 영향으로 이미 저하된 연산능력과 신체능력 때문에 문제가 된 것이 맞겠지.

    거기에, 신성력의 영향을 받아 과성장한 이 몸은 불필요하게 무게중심을 방해하는 덩어리가 추가되기도 했으니까.

    “…….”

    잠시 자신에게 매달린 그 짐덩어리들을 내려다보던 루크는 생각했다.

    역시, 이것 때문에 몸이 결리는 거겠지?

    이해가 잘 되질 않는다.

     

    신성력과 유방의 발달에 대한 신학적, 마법적 연관관계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이리저리 연구할 것도 없이, 정확히 레니에의 사례만 보더라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이 크기는 그저 순수하게 이 몸이 지닌 성장의 포텐셜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그렇다면, 키메라인 자신의 몸에 대체 이런 크기의 물건이 왜 필요한 것일까?

    아이를 낳아 기를 수도 없는 자신에겐 커봤자 그저 불편하기 짝이없는 기관일 뿐인데.

    하지만 그런 투덜거림을 입밖에 낼 수는 없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조차 가지지 못한 여성들에게는 상당히 상처가 되는 모양이라.

    아마 레니에가 없었다면 입 밖으로 투덜댔을수도.

    -아. 이제 됐네요. 그 정도면 될 거예요.

    “음.”

    이제 슬슬 신성력이 충격으로 손상된 부위에 도달했는지, 시루드의 표정이 점차 평온하게 되어가는 것을 보며 루크는 생각했다.

    언제나 간단히 이길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어느 새에 이렇게 성장한 건지.

    요즘 아이들의 성장을 얕봤다가 곤란한 상황이 될 뻔 했다.

    응용, 발상, 제어, 실현.

    그 모든 분야에서 정말 못 알아볼 정도로 성장하지 않았나.

    루크는 성장에 뿌듯함이 느껴지는 한편, 질투마저 생겨날 정도였다.

    실제로 자신이 11살일 때조차 이런 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했었으니까.

    “재능은 있는 줄 알았는데, 이 정도로 흉악한 재능인줄은 몰랐군. 대체 어떻게 가능했던 것이지?”

    최근에는 자신이 딱히 마법을 가르쳐준 적도 없는데, 이 정도로 발전한 마법실력이라니.

    이건 그동안 전문적인 서적을 쉬지 않고 읽는다고 하더라도 시간적으로 도달할 수 없는 성장속도다.

    “나 말고 누군가 마법스승이 따로 있는 건가?”

    의문에 찬 루크의 중얼거림을 들은 레니에가 답했다.

    -뭐, 생각해보면 특별한 것도 아니죠. 얘도 나름 돈 많은 집 자식이잖아요? 괜찮은 선생쯤은 어디서든 쉽게 구할 수 있지 않겠어요?

    “아, 하긴. 그럴수도 있겠군.”

    레니에의 의견에 루크도 고개를 끄덕였다.

    따로 가르쳐주는 인물이 있다면 이 성장속도도 나름 말이 된다.

    본디 독학을 한다면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책 한권을 모두 정독하고나서 따로 정리까지 거쳐야하는 것과는 달리, 제대로 된 스승이 있다면 궁금한 부분을 질문하는 것 만으로도 쉽게 높은 신뢰도를 가진 답변을 얻어낼 수 있으니까.

    ‘아무래도 정말 좋은 스승을 찾은 모양이지?’

    루크는 살짝 씁쓸하게 웃었다.

    이름모를 자에게 제자를 빼앗긴 것 같아 쓸쓸하기도 하고, 자신이 그동안 시간을 잘 내어주지 않아서 그렇게까지 했다는 게 미안하기도 하고, 참 복잡한 기분이다.

    이렇게 복잡한 기분이 드는 것도 다 신성력의 영향인걸까?

    그렇게 시루드의 모습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루크가 입을 열었다. 

    “역시 회복이 늦어지는 모양이군. 레니에, 서드에게 이리와서 이 아이를 데리고 나가달라 연락좀 해 주겠나? 아무래도 내가 데리고 나갈 수는 없으니까.”

    시루드가 완전히 치료될 때까지 자신이 여기 앉아 기다릴 수도 없는 일이고, 그렇다고 이렇게 무방비한 상태인 시루드를 버리고 가거나 자신이 여기서 자리를 비울 수도 없는 노릇이니, 여기서 서드를 부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선택지였다.

    레니에는 흔쾌히 대답했다.

    -네, 그러죠! 바로 지금 위치 전달할게요!

    “그래. 부탁하네.”

    잠시 레니에가 서드에게 연락을 돌리기 위해 잠시 조용해진 사이, 루크는 생각했다.

    그러고보면, 서드도 처음에는 약해서 도움이 안 될거라는 둥의 이야기를 하며 떼어두려고 했었지만 막상 상황이 닥치니 상당히 자신에게 도움이 되어주고 있다.

    뭐, 혼자였어도 하려고 한다면 이 정도는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서드가 있어서 일이 훨씬 수월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다.

    덕분에 자신의 자원이나 노력이 덜 들어간다는 건 사실이니까.

    그때였다.

    -……!!

    그것은 무언가 폭발하여 발생한 폭발음과 창문이 깨지는 파열음, 돌이 끊어지는 듯한 파쇄음과 커다랗고 무거운 물체가 떨어져 발생하는 충격음이 합쳐진 굉음이었다.

    그에 루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군, 이 폭발은 원래 계획에 없었던 것 같은데?”

    그러자, 레니에로부터 다급한 목소리가 전해져왔다.

    -이건 아니에요! 

    “아니라니, 뭐가?”

    -이건 우리쪽에서 일으킨 현상이 아니라고요!

    “응?”

    이 폭발이 서드가 일으킨 것이 아니라면, 대체 누가?

    “!”

    그 순간, 루크의 바닥이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

    “으윽….”

    이곳저곳 욱씬거리는 통증과 함께 눈을 뜨니, 가장 먼저 들려오는 것은 레니에의 간섭파였다.

    -…님!, 저… 여기….!, ……!

    충격때문에 레니에의 마석이 몸에서 떨어져나가 연결이 약해진 탓인지, 지금은 그녀가 뭐라고 말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후우.”

    잠시 정신을 가다듬고 심호흡을 하며 연결을 재확인하자, 깨끗하고 호들갑섞인 목소리가 루크의 머릿속을 울리기 시작했다.

    -루크님, 루크님! 아아, 드디어 연결이 복구됐군요! 이제 정신이 좀 드세요? 이게 다 무슨 일이래! 어디 잘못되신 건 아니시죠? 

    “내가 잘못된 건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 레니에.”

    -아니, 지금 간단히 신체 수치를 보니까 지금 출혈이 발생하고 계신데요?! 정말 괜찮으신 거 맞죠?

    아, 지금 얼굴을 타고 흐르는 이 물기가 그냥 땀이 아니었던건가?

    설마 피가 났을 줄은 몰랐군.

    “괜찮다. 가벼운 상처야.”

    하지만 어차피 자신은 불사의 원리가 적용된 키메라.

    목이 잘려나간 것도 아닌데, 고작 이런 가벼운 상처로 새삼 난리를 피울 것도 없다.

    그러니 지금은 그런 사소한 것보다는 일단 상황을 파악하는게 무엇보다 급선무.

    “지금 상황이 대체 어떻게 된 거지?”

    그러자 레니에가 빠르게 대답했다.

    -지금 갑자기 건물 내 모든 감시체계의 연동이 끊어졌어요! 아무것도 확인할 수가 없다구요! 급한대로 위성을 해킹해 위에서 확인해보니까, 전시장이 있던 자리는 완전히 돌무덤이 되어버렸구요! 아무래도 건물이 통째로 무너진 것 같아요!

    “흐음….”

    갑자기 건물이 무너지다니… 

    설마, 지반을 무너트려 건물채로 매장시킨건가?

    “뭐,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을 못한 건 아니지만 말이야.”

    적이 땅 속을 마음대로 오갈 수 있다고 한다면, 당연히 가장 먼저 생각해볼 수 있는 방식이었으니까.

    그리고 이 방식이 가지는 장점은 꽤나 확실하다.

    사회적인 시선으로 보자면 니드호그의 존재를 지상으로 드러낼 필요가 없어지니 나중에 ‘불행한 사고’로 언론에 위장하기 훨씬 쉽다는 점이 있고, 전술적인 시선으로 보자면 잔해로 인해 거동이 제한되니 움직이지 못하는 이들을 사냥하기 매우 쉬워진다는 점이 있다. 

    뭐, 어딜가든 항상 무덤이나 파내고 다니는 만큼, 흑마법사에게는 친숙한 환경이기도 할테고.

    단점으로는 범위 안에서 그 피해를 제어하기 어렵다는 것인데, 자신들의 투자자가 있는데도 이런 짓을 벌인 거라면 그들은 처음부터 피아를 가릴 생각따위 없었다고 보아야하니 의미없는 단점이라고 해야겠군.

    하지만, 자신의 테러행위 때문에 이미 건물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자신과 시루드를 제외한다면.

    ‘아니, 아직 한명이 더 있을 수도 있군.’

    “서드는 어떻게 됐지? 연락이 되나?”

    -서드는 이미 건물 밖에서 인질을 잡고 있었던 덕분에 무사한 모양이에요.

    “아. 그건 다행이로군.”

    그렇다면, 이렇다 할 피해는 아무것도 없다는 얘기다.

    루크는 고개를 내려 자신의 품 안에서 상처하나 없이 평온하게 눈을 감고 있는 시루드의 표정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솔직히 크게 걱정하고 있었다.

    급하게 피해를 경감시키는 케이프로 몸을 감싸긴 했지만, 그것으로 물리적인 충격량 자체를 감소시킬 수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이 케이프는 절단과 관통에 대한 내구성과 내마법성은 아주 뛰어나지만 천 너머로 전해지는 물리적 충격에는 비교적 약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니까, 사실상 낙하나 타격에 의한 충격은 제대로 보호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헌데, 이토록 편안한 표정이라니….

    이건 마치 달콤한 잠에 빠져있는 것 같지 않은가.

    “훗, 이게 도움이 되는 부분도 있구나….”

    방금 전, 이런 건 쓸모없는 짐덩어리일 뿐이라고 생각한 자신이 너무 성급했던 것은 아닌가 반성을 하게 된다.

    그러자 자신의 중얼거림을 들은 것인지, 레니에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물어왔다.

    -도움이 되다니, 뭐가요? 

    그에 대답할 거리가 되지 못한다고 생각한 루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냐, 아무것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뭐든지 다 쓸모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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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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