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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74

       백우진이 청해성에 당도했다는 소식은 곧장 진미연에게도 전해졌다.

         

       알기 싫어도 알게 될 수밖에 없었다.

         

       하루 전까지만 해도 살기를 포기한 사람처럼 굴던 이들의 얼굴에 활기가 돌기 시작했으니.

         

       “빌어먹을 새끼.”

         

       얼굴과 체형을 완전히 바꾼 채 청해성 안으로 잠입한 진미연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이래선 청해성을 점령할 수가 없잖아…!’

         

       무인들의 살아난 사기도 문제지만, 백우진과 그의 조원들이 더 큰 문제였다.

         

       그들이 앞으로 나서서 시간을 벌고자 한다면 지금의 마물들로는 뚫어낼 수 없다.

         

       그렇게 차일피일 시간이 미루어지다 보면 정사연합에서 또 다른 지원군을 보낼 터.

         

       “하….”

         

       시간마저 자신의 편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한숨 쉬는 진미연.

         

       울적한 마음에 멍하니 서 있던 그녀는 이내 결심했다.

         

       ‘청해성은 포기한다.’

         

       기왕 할 수 있으면 점령해볼 생각이었을 뿐, 애시당초 그녀의 목표는 청해성이 아니라 백우진이었다.

         

       곁들여 시도한 청해성 점령이 어렵게 된 이상 백우진에 집중하는 수밖에.

         

       그녀는 차분하게 목표를 정리했다.

         

       ‘첫 번째는 백우진을 죽이는 것.’

         

       진미연이 가장 바라는 것은 그의 죽음.

         

       그것도 기왕이면 제손으로 직접 생살을 찢고 심장을 꺼내어 잘근잘근 씹어주고 싶다.

         

       하나 그것이 불가능한 상황 또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를 죽이기 위해 준비한 모든 수가 무위로 돌아갔을 때.

         

       ‘놈이 곤륜으로 올라서는 걸 막는다.’

         

       천마가 내린 진짜 명령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의 곤륜산 진입을 막는 것.

         

       잠시 의아했다.

         

       ‘대체 왜 막으시는 거지?’

         

       곤륜산은 곤륜파의 영역.

         

       그 말인즉, 명백히 정파 무림의 권역이라는 건데 어째서 그곳으로의 진입을 막는 걸까.

         

       하나 그러한 의문은 금세 연기가 되어 흩어졌다.

         

       ‘이유 따위는 상관없어.’

         

       이유는 중요치 않다.

         

       자신의 신께서 그것을 바라신다면 미천한 종은 그저 따르면 그뿐.

         

       버릴 것은 버렸고, 절대 버려선 안 되는 것은 품었다.

         

       그렇게 제 행동을 단순화한 그녀는 곧장 성문을 빠져나와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마련해둔 은신처로 향했다.

         

       준비를 마치려면 시간이 촉박했다.

         

         

       * * *

         

         

       마기가 말끔히 제거된 명현의 육체는 빠르게 회복되었다.

         

       노쇠한 몸이 스스로 회복력을 끌어올려 자아낸 기적 같은 건 아니었다.

         

       “허허…, 자네 또 왔나?”

       “아직 다 낫지 않으셨으니까요.”

       “이제 거의 다 나았대도.”

       “혼자 계시다가 고독사하면 어쩝니까.”

       “…아니, 노부가 그 정도까진.”

       “어서 누워 보십쇼.”

         

       명현이 한사코 거절해도 백우진은 매일 같이 그의 처소를 찾았다.

         

       그리고 그의 어깻죽지가 빠르게 회복될 수 있도록 제 기운을 듬뿍 불어넣어 주었다.

         

       이는 제 나름대로 죄책감을 덜기 위한 방식이었다.

         

       깨어난 후야 어쨌든, 죽고 싶다던 사람의 의지를 멋대로 꺾고 살리지 않았나.

         

       심지어 살리고 싶었던 이유조차 지극히 개인의 실리를 위해서였고 말이다.

         

       이러한 죄책감을 덜기 위한 그만의 궁여지책이었다.

         

       “자네도 황소고집이구먼.”

       “현경쯤 오른 이들이 다 그렇지요.”

       “허허…, 그것도 그렇군.”

         

       현경에 오른 고수들은 저마다 심상을 확고히 하여 영역을 구축한 이들.

         

       그들이 한 번 꺾이지 않기로 마음먹으면 그 무엇으로도 꺾을 수 없다.

         

       명현은 제 어깨에 기운을 불어넣는 백우진을 향해 물었다.

         

       “곧 출전할 예정이라고 들었네.”

       “맞습니다.”

         

       명현을 극진히 보살피는 한편, 백우진은 청해성 밖으로 나갈 준비 또한 게을리하지 않았다.

         

       진미연의 귀에 자신이 청해성에 도착했다는 사실이 들어갔기 때문일까.

         

       매일 같이 이루어지던 마물의 진격이 백우진이 도착한 시점을 기준으로 며칠째 멈추었다.

         

       백우진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엉망이 된 청해성의 정비를 서둘렀다.

         

       바닥까지 떨어진 사기를 일정 수준까지 끌어올리고, 그들과 검까지 맞대주었다.

         

       오랜 전투로 녹슨 검을 다시 갈고, 아무렇게나 쓰이던 물자를 다시 정리하여 채워 넣었다.

         

       이 과정에서 청해성의 수뇌부는 물론이고, 성주까지 나서서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기는 했다.

         

       청해성이 무너지는 순간 그들 모두 목이 달아나는 건 마찬가지니까.

         

       그렇게 어제부로 모든 정비를 끝마쳤다.

         

       “굳이 성 밖으로 나가야겠나?”

       “직접 찾아오지 않으니 그래야지요.”

         

       청해성 밖으로 마물이 보이지 않은 지도 어느덧 닷새가 넘었다.

         

       그 때문에 잠시 고민했다.

         

       마물들이 다시 진격해올 때까지 성에서 기다려야 할지.

         

       아니면 먼저 성 밖으로 나가 놈들이 숨어 있는 곳을 찾아 요격할지.

         

       ‘안정적인 측면에서는 전자가 나으려나.’

         

       처음에는 그리 생각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생각이 바뀌었다.

         

       ‘가만히 숨죽이고 있을 여자가 아니지.’

         

       진미연.

         

       그녀는 쉽게 뒤꽁무니를 뺄 만한 여인이 아니다.

         

       특히 자신으로 인해 많은 것을 잃은 지금이라면 더더욱.

         

       ‘분명 그녀가 등장하고 나서 마물들이 크게 바뀌었다고 했었지.’

         

       어쩌면 그녀는 지금도 마물을 더욱 진화시키기 위해 숨을 고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어설프게나마 생전의 초식을 떠올리고, 특성이 강화된 녀석들로 인해 애를 먹었는데, 그것들이 한층 더 강화된다면 어떻게 될지는 불 보듯 뻔한 일.

         

       ‘시간을 더 가져서도, 주어서도 안 된다.’

         

       시간이 필요한 것은 이쪽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를 움직이게 했다.

         

       “예정일은 언제인가?”

         

       그의 물음에 백우진이 답했다.

         

       “모레쯤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잠시 끊어지는 대화.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하던 명현이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이틀 뒤에 노부도 함께하겠네.”

         

       이에 놀란 백우진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되물었다.

         

       “…선존께서 다시 전장에 나서시겠단 말씀이십니까?”

       “그렇네.”

         

       허언은 아닌 듯했다.

         

       그의 눈에 담긴 진심은 백우진을 바라보고 있되, 이미 전장을 향해 있었다.

         

       그렇기에 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그의 몸 상태가 하루가 멀다고 쇠약해져 가고 있음은 누구보다 본인이 더 잘 알 텐데, 어찌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그런 그의 마음을 알아차린 듯, 명현이 답해주었다.

         

       “내게 남은 미련이 그곳에 있기 때문일세.”

       “미련…말입니까?”

         

       나이가 적든, 많든.

         

       육신이 건강하든, 썩어 문드러졌든.

         

       둘러싼 상태나 상황이 어떠하든, 그는 결국 무인이다.

         

       승리하면 기쁘고, 패배하면 더없이 쓰라린 무인(武人).

         

       이제는 때가 되었다.

         

       손에 쥔 검을 내려놓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날 때가.

         

       피 튀기는 전장이 아닌, 그보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정파 무림의 상징으로만 남아야 하는 순간이 마침내 도래하고야 말았음을.

         

       그는 안다.

         

       눈앞의 젊은 사내가 자신을 살린 이유 또한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터였다.

         

       처음 본 자신을 이토록 지극히 모시는 것은 그로 인해 품은 죄책감 때문이라는 것도.

         

       ‘참으로 올바른 청년이다.’

         

       시간이 갈수록 말투나 행동이 조금 건방지기는 하나, 심성은 분명 그러했다.

         

       그렇기에 조금도 괘씸하지 않았다.

         

       도리어 깨어나 그를 보고서 스스로 반성하게 되었다.

         

       ‘칼을 들지 못한다고 하여 노부의 할 일이 사라진 것이 아니거늘.’

         

       몸과 함께 정신까지 늙을 대로 늙어서 그랬는지,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삼존의 일좌인 선존(仙尊).

         

       정파 무림의 세 기둥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제 죽음이 어떤 파장을 몰고 올지.

         

       또 자신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아군에게 어떠한 힘이 되는지도.

         

       “물러날 때가 되었음을 아네.”

         

       비로소 인정했다.

         

       자신이 목소리를 높이고, 열의를 보여야 할 곳은 이제 전장이 아님을.

         

       그렇기에 더욱 미련이 남았다.

         

       “노부는 마지막에 패자(敗者)로서 쓸쓸히 물러나고 싶지 않아.”

         

       제 어깻죽지에 구멍을 다섯 개나 박아 넣은 반인반마의 여인.

         

       자신을 죽음 직전까지 내몰고 간 다섯 구멍의 설욕은 남에게 맡기고 싶지 않았다.

         

       “그 여인은 노부에게 맡겨주게.”

         

       구십구 세의 노인이라고는 믿기 힘든 형형한 눈빛이 백우진에게로 향한다.

         

       이에 고민하던 그는 이내 작게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자신은 있으신 겁니까?”

         

       반쯤 허락이나 다름없는 말에 명현이 웃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물론일세.”

         

       노인의 꼬장꼬장한 아집도, 패자의 만용도 아니었다.

         

       제 어깻죽지가 꿰뚫리던 상황을 몇 번이고 되새기며 승률을 점쳤다.

         

       그리고 충분히 승산을 확보했기에 주장하는 것이고.

         

       누구에게나 한 번쯤 절대로 물러나고 싶지 않은 순간이, 미련이 있기 마련이다.

         

       몇 번이고 그러한 상황을 겪어본 백우진이었기에.

         

       “그렇게 하십시오.”

         

       그는 차마 명현의 앞을 막을 수 없었다.

         

         

       * * *

         

         

       이틀 뒤.

         

       백우진과 그의 조원들을 필두로 청해성의 무인들이 성을 빠져나왔다.

         

       성문을 나서기 전, 백우진은 모두에게 말했다.

         

       이번 한 번으로 밀려난 전선을 원래대로 되돌리고 말겠노라고.

         

       단 한 번의 싸움으로 잃었던 모든 것을 되찾을 수 있게 된다.

         

       바꿔 말하면 이번에 패배를 겪는 순간 모든 게 끝이라는 말이기에.

         

       그들은 하나 같이 비장한 표정으로 성문을 나섰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멀지 않은 곳에서 마물들이 뭉쳐 자아내는 더러운 마기가 느껴진다.

         

       백우진은 곧장 그곳으로 향했다.

         

       혹시 모를 함정이나 습격을 대비해 날카롭게 세워둔 감각에는 아무것도 걸리지 않았다.

         

       지나치게 평온한 상태로 마물들의 주둔지에 당도한 백우진.

         

       “크아아아-!”

       “크르륵…!”

       “쿠워어억!”

         

       인간을 보자마자 살기를 가득 담긴 흉성을 내지르며 달려드는 마물들.

         

       스릉!

         

       서걱!

         

       단 일 검으로 달려오는 수십 마리의 마물을 도륙한 그는 인상을 와락 구겼다.

         

       ‘무언가 이상해.’

         

       달려드는 마물들은 하나 같이 기존의 마물들뿐이었다.

         

       청해성의 존속을 위태롭게 만들었던 진화한 마물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된 일이지?’

         

       기감을 아무리 넓혀도 인근 수백 장 안에는 진미연도, 다른 마물도 느껴지지 않는다.

         

       ‘주둔지를 두 곳으로 나누어 뒀나?’

         

       의아해하며 정신없이 마물들의 목을 베는 사이.

         

       백우진의 시선 끄트머리에 간신히 들어온 산자락에서 검은 연기가 솟아올랐다.

         

       나무를 집어삼키며 점점 더 몸집을 키워 가는 것은 다름 아닌 화마(火魔).

         

       자연적으로 발생한 불꽃은 절대로 아니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이곳에 없는 진미연이, 진화한 마물들이 저 산에서 난동을 부리고 있다는 것.

         

       하늘로 솟아오르는 까맣게 그을린 연기를 발견한 누군가가 소리쳤다.

         

       “고, 곤륜산에 불길이…!”

         

       백우진은 그제야 깨달았다.

         

       그가 당도한 이곳은 진미연이 일찌감치 내던진 버림패라는 것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그럼 저는 다음 편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매번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 되셔요. (_ _)

    다음화 보기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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