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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74

       “야, 솔직하게 말해봐라.”

        

       내가 루카스 뒤통수를 노렸다가 실패한 것이 스무 번 넘어갔을 때쯤, 루카스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너 사실 할 일 없지? 그냥 심심해서 이러는 거 아니냐?”

        

       “…….”

        

       나는 말없이 검을 다시 휘둘렀다.

        

       툭.

        

       이번에는 루카스의 어깨에 제대로 맞았다. 별로 아프지는 않았겠지만.

        

       “할 일이 없다는 건 맞아.”

        

       나는 검을 테이블에 올려두며 말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심심해서 그냥 이러는 건 아니고. 뭔가…… 방법을 찾아보고 있는 거거든.”

        

       “방법? 무슨 방법?”

        

       “…….”

        

       왠지 ‘너랑 관계를 회복하는 방법’ 같은 걸 말했다가는 말짱 도루묵이 될 것 같아서, 나는 그냥 입을 꾹 다물었다.

        

       “하아.”

        

       루카스는 결국 두 손으로 얼굴을 쓱쓱 문지르고는 눈을 이리저리 굴리더니 말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네가 잘하는 방법을 선택하는 건 안 되는 거냐?”

        

       “내가 잘하는 방법?”

        

       “너, 총은 잘 쏘잖아.”

        

       “…….”

        

       음.

        

       “아, 물론 빗나갈 때마다 다시 조정해서 맞을 때까지 계속 쏘면 누가 못 맞추기야 하겠냐만.”

        

       “……그래도, 내 실력은 진짜거든.”

        

       그래.

        

       그렇게 했던 건 상대를 확실하게 맞춰야 할 때뿐이었다.

        

       물론 실전에서는 언제나 상대를 확실하게 맞춰야 해서 어쩔 수 없이 시간을 수십 번 수백 번씩 돌리긴 했지만, 그래도 루카스 어깨를 맞췄던 건 진짜 내 실력이었다. 루카스가 어디로 어떻게 피할지 알아서 할 수 있었던 일이니까.

        

       “그래서, 실탄을 들고 와서 쏘라고?”

        

       “……뭐, 해보시던가.”

        

       나는 루카스를 빤히 바라보았다.

        

       사실은 그냥 죄책감 덜어보자고 저런 소리 하는 거 아냐? 지금까지 피하던 건 내가 휘두르던 게 목검이라 그랬던 거고, 정말로 살이 베일 정도의 칼이었다면 맞아주었을지 모르겠다.

        

       실탄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

        

       “한 번 고민해 볼게.”

        

       나는 의자에 푹 기대앉으며 말했다. 루카스의 눈썹이 살짝 움찔거렸다. 내가 정말로 저런 대답을 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걸까?

        

       하지만 루카스는 그런대로 표정을 잘 감추었다.

        

       뭐, 시도해봐서 나쁠 것은 없지 않은가? 총 맞는다고 무조건 죽는 것도 아닌데.

        

       아니, 물론 사람 대부분은 그냥 죽겠지만. 루카스 같은 인물들은 조금 다르다는 이야기다.

        

       *

        

       자, 어떻게 할까.

        

       원래대로라면, 루카스가 연금되어있는 저택에는 무기를 들고 들어갈 수 없다.

        

       목검도 상황에 따라서는 훌륭한 살인 병기지만, 내가 목검을 들고 루카스에게 달려들어 봐야 절대로 루카스를 죽이지 못할 거라는 걸 사람들도 아는지, 그 정도 무기를 들고 가는 것 정돈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다면 진검은 어떨까?

        

       진검을 들고 가더라도, 루카스가 일부러 맞아주지 않는 이상은 내가 루카스를 죽일 가능성은 없다.

        

       이 경우에는 황녀인 나의 목숨이 날아가게 되기 때문에, 이런 이유로 검을 들고 들어가지는 못한다.

        

       그렇다면, 총은?

        

       당연히, 일반적으로는 들고 들어갈 수 없을 거다.

        

       제국군이라면 내가 총으로 무슨 짓을 할 수 있는지 다들 들었을 거다. 지난번 전투에서 그리폰을 이끌고 돌아온 뒤로, 나는 군인들에게는 그야말로 존경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존경의 대상이 되었다고 규칙을 무시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차기 황제인 앨리스가 하지 말라고 한 것은 나도 일단 지켜야 했다.

        

       그러니 일반적인 크기의 총기는 죄다 불가능하다.

        

       대놓고 들고 들어가야 하는 소총은 물론이고, 권총도 일반적으로는 옷 안에 차더라도 티가 확 난다.

        

       여길 지키고 있는 베테랑 군인들의 눈에는 내가 권총을 숨기고 있다는 것이 훤히 보이겠지.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철컥.

        

       탕!

        

       방 안에서는 아무리 작은 권총이라도 소리가 엄청나게 크게 들린다.

        

       사실, 데린저형 권총은 한 발로 사람을 확실하게 저지하는 게 목적인 호신용 권총이니, 크기나 장탄수와는 다르게 탄환은 꽤 대구경탄이 들어간다. 물론 이것도 크기에 비해 대구경이라는 것이니 일반적인 군용 리볼버에 들어가는 433구경 탄이지만.

        

       위쪽 총구에서 흘러나오는 연기에 화약 냄새가 강하게 났다.

        

       “황녀님!? 황자님!?”

        

       총소리에 문밖을 지키고 있던 병사들이 황급히 들어왔다.

        

       철컥, 철컥하면서 우리 두 사람 쪽으로 총을 겨눈다.

        

       과연 훈련이 잘 되어있는 병사들이다. 무려 황자와 황녀에게 총을 겨누다니. 뭐, 루카스 입장에서는 조금 억울할지도 모르겠네.

        

       표정만 보면 딱히 그런 것 같아 보이지는 않지만 말이다.

        

       “……뭐 하는 거냐, 너.”

        

       루카스가 물었다.

        

       내 총구는 정확히 루카스를 향했다. 아마 안에 있는 게 탄두 없는 공포탄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다섯 발자국 정도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도 루카스는 총에 맞아 죽었을 거다.

        

       그러니 루카스는 지금 상황에 대해서 황당하다는 듯 물어보는 것이다.

        

       총에 맞아 쓰러져야 했을 자신이 서 있었으니까.

        

       그런데, 내가 바보냐.

        

       피하지 않을 걸 알면서 실탄을 쏴버리게.

        

       “……너야말로 뭐 하고 있는 건데.”

        

       나는 목소리에 조금 짜증을 담아서 말했다.

        

       말을 편하게 하기로 생각한 이후부터, 나는 조금 더 감정적으로 굴었다. 물론 평소에도 감정을 완전히 숨기고 살았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컨셉까지 포기했는데 조금 편하게 살겠다고 마음먹는 게 나쁜 것은 아니리라.

        

       루카스는 그래서 그런 나에게 당황하고 있는 것 같다. 자기 앞에서도 대놓고 말을 놓던 나였지만 이렇게까지 감정을 드러내는 건 처음이었으니까.

        

       “소리 들었잖아? 일부러 시간까지 줬는데 피하지 않은 건 뭐야?”

        

       “……아, 역시 그랬냐.”

        

       루카스는 숨을 푹 내쉬고 대답했다.

        

       “역시 그랬냐, 라니.”

        

       나도 한숨을 푹 쉬었다.

        

       “황녀님?”

        

       병사 쪽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다음 탄은 실탄인데, 그래도 괜찮겠어?”

        

       “…….”

        

       “뭐, 물어볼 것도 없지. 내가 쏘면 그냥 맞을 테니까.”

        

       나는 손을 쫙 펴고 손등을 위쪽으로 쭉 올렸다.

        

       소매 안에 되어있던 장치가 다시 줄어들면서 권총을 소매 안으로 숨겼다.

        

       나는 병사들에게 손을 살짝 휘저어 보였다. 병사들은 조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일단 총을 내렸다.

        

       내가 딱히 루카스를 죽일 생각이 없다는 것은 확실히 전해진 모양이다.

        

       나는 의자를 끌어 앉았다.

        

       “대체 뭐가 문제야?”

        

       짜증 한껏 섞인 내 목소리에, 루카스가 어깨를 움츠려 보였다.

        

       그리고는 자기도 나와 조금 떨어진 곳의 의자에 앉았다.

        

       하지만 그 눈이 나를 똑바로 향하지는 않았다.

        

       거 엄청 답답한 놈이네.

        

       “그렇게 죽고 싶어?”

        

       “……그런 건 아니야.”

        

       루카스가 대답했다.

        

       “그럼 대체 뭘 하고 싶은 건데? 내가 너를 쏴주기를 바래? 변태야? 여동생이라고 여기던 존재한테 그렇게 맞고 싶어?”

        

       “…….”

        

       얼씨구.”

        

       나는 한숨을 푹 쉬면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냥 까놓고 말하자.”

        

       내가 천천히 접근하려고 했는데, 도저히 속이 답답해서 못 참겠다.

        

       “나를 몇 번이나 베어냈던 거, 그게 그렇게 미안해서 그래?”

        

       “…….”

        

       묵묵부답.

        

       “내가 네 머리에 총알 박아넣었던 건 기억하지?”

        

       물론 다시 돌려놓긴 했다.

        

       사실 그것도 내 실력이 좋아서 박아넣었다기보다는, 루카스가 방심하고 있었던 것 때문에 우연히 들어갔던 것이긴 했다.

        

       루카스가 그것도 기억하고 있을까? 자기가 죽었던 것까지 기억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나는 정말로 죽어본 적은 없으니까.

        

       “너는 나를 죽여본 적이 없지만, 나는 너를 죽여봤어.”

        

       내 이야기를 병사들이 전혀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었지만, 나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설명해도 이해하기 어려워할 테니까.

        

       “그러니까, 이건 그냥 서로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자고.”

        

       “어떻게 그러겠냐?”

        

       루카스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네가 나의 공격을 한 번 피하려고 몇 번이나 시간을 돌리는 걸 내가 전부 기억하는데.”

        

       “어차피 다 없었던 일이 되었잖아.”

        

       “내가 기억하는 이상은 전부 실제로 겪은 일이야.”

        

       “아니.”

        

       나는 손으로 목덜미를 문질렀다.

        

       “……너, 황제를 닮은 구석이 있네.”

        

       내 말에 루카스가 나를 노려보았다.

        

       “아주 사람 말 귓등으로만 들으면서 자기 할 말만 하는 게 꼭 닮았어. 역시 피는 못 속이는 건가?”

        

       “네가 할 소리냐?”

        

       “나는 피는 안 섞였거든.”

        

       우리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병사들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나는 병사들에게 다시 휘휘 손을 저어 보였다. 병사들은 더 듣고 싶지 않다는 듯 허둥지둥 자리를 떴다.

        

       “하나하나, 천천히 맞춰보자.”

        

       내가 최대한 침착함과 냉정함을 되찾고 말했다.

        

       “그러니까, 너는 나를 몇 번이나 베어냈다는 것에…… 나름대로 죄책감이나, 후회나, 아무튼 뭐 그런 걸 하고 있다는 거 아니야. 그런데 되돌릴 수도 없고, 내가 되돌린다고 해도 네가 기억하고 있으니 그냥 네 잘못이고. 맞아?”

        

       “…….”

        

       자기가 생각해도 너무 억지스러운 생각이었는지, 루카스는 입을 꾹 다물었다.

        

       “……아니.”

        

       어?

        

       아니라고?

        

       “그럼 대체 뭔데?”

        

       “네…….”

        

       루카스는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네, 노력을 무시한 셈이 되었으니까.”

        

       “그건 또 무슨 헛소리야.”

        

       나는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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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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