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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74

    예르나는 작게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루크는 지금쯤 재밌게 놀고 있으려나?”

    어제 밤에 갑자기 친구와 함께 전시장을 구경하기 위해 여기서 자고 가겠다는 연락이 왔을 때는 좀 걱정이 되었다.

    아직 10살밖에 안 된 여자아이가 혼자 나가서 잔다고 하면 걱정하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니까.

    루크는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스스로 방도 구할 수 있을 정도로 돈도 있고, 힘세고 똑똑해서 이상한 사람을 따라가지도 않을 거라는 다이튼의 부연설명에 별 일 없겠지 싶어서 허락을 해 주기는 했지만, 역시 어딘가 불안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게다가, 오늘 아침에 잠깐 문자로 방금 일어났다며 안부인사를 전해온 것을 제외하면 연락이 전혀 오지 않기도 했고.

    “연락이 없는데,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

    예르나의 수심에 잠긴 목소리에 다이튼이 위로하듯 말을 건네왔다.

    “예르나, 그렇게 걱정할 것 없다니까. 보나마나, 재밌게 노느라 연락도 까먹은 거겠지. 걔가 원래도 연락을 꼬박꼬박 하던 애는 아니었잖아.”

    “하긴, 평소에도 루크가 연락을 자주 안 하는 성격이긴 하니까….”

    실제로 루크는 먼저 연락을 해오는 경우가 별로 없었다.

    정말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닌 이상, 별 시덥잖은 이유로 먼저 연락을 하는 성격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에 예르나가 어느정도 납득한 것 같아 보이자, 다이튼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보통은 연락이 없는 게 좋은 거야. 그 왜, 무소식이 희소식이라잖아.”

    “응, 그건 또 그렇네.”

    보통은 놀러가서 재미있게 즐기고 있다면, 집에 연락할 생각도 안 나는 게 정상이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연락이 온 거라면, 그건 노는 게 재미가 없다던가, 무슨 일이 생겼다던가 하는 경우밖에 없지 않겠는가.

    “매번 말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루크도 이제 자기 앞가림은 충분히 하니까.”

    옛날에야 애가 똑똑해보이는 것에 비해 아는 게 정말 아무것도 없어서, 마치 물가에 내놓은 자식처럼 걱정이 되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루크도 이제 알건 다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스스로 돈을 벌어서 가족 살림에 보탬이 되어주고 있을 정도였으니까.

    이 쯤 되면 나이만 10살이지, 엄연히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성숙한 아이라고 생각을 해도 괜찮을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들은 예르나는 점차 안심이 들기 시작했다.

    “음, 역시 그렇겠지?”

    루크에 대한 걱정이 너무 많다는 건 자각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이건 고치기가 쉽지 않다.

    성격이라는 게 그렇게 금방 바뀔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잠시 후, 다이튼이 예르나에게 무언가를 건네며 말했다.

    “자. 그러니까 걱정 말고, 이거나 마시고 얼굴 펴.”

    “아, 응. 고마워.”

    다이튼이 건네준 것은 따듯한 차가 담긴 컵이었다.

    급하거나 귀찮을 때에는 미리 루크가 만들어 둔 티백을 이용하곤 했지만, 요즘 다이튼이 찻잎을 직접 가루내어 걸러마시는 데에 재미가 들렸는지 종종 이렇게 제대로 된 차를 대접받고는 했다.

    -후룹.

    “어때? 이번엔 잘 했지?”

    자신이 차로 입술을 적시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평가를 요구해오는 다이튼의 행동에 예르나는 살짝 웃었다.

    솔직히 다이튼이 엘프인 자신에 비하면 찻잎 우리기를 아주 잘 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정성이 너무 고맙지 않은가.

    고작 이런 걸로 칭찬을 받고 싶어하는 게 뭔가 애 같기도 하고, 간식을 목전에 둔 대형견같은 느낌도 있어서 덩치에 맞지 않게 귀엽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응, 잘 했네. 이번엔 혀에 걸리는 것도 없고 깔끔해. 온도도 괜찮고.”

    “하핫! 역시 그렇지? 나 이런 거 금방금방 배운다니까!”

    잠깐 칭찬해주니 금세 또 기고만장해져서 호탕하게 웃어 젖히는 다이튼.

    정말 아이같이 순수한 사람이었다.

    ‘이런 남자가 침대에선…. 뭐, 그게 싫다는 건 아닌데.’

    원래 사람이 열정적인 편이라서 그런가, 뭐든지 다 열심히 하는 편이더라.

    예르나는 그때를 생각하니 살짝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것 같아 다시 찻잔을 입가에 가져갔다.

    찻잔을 들어 얼굴을 가리겠다는 심산으로.

    -후룹.

    오늘도 평화로운 일상이었다.

    틀어둔 TV에서 들려오는 방송소리와, 차에서 풍기는 은은한 풀내음. 사랑하는 사람과 마주잡은 손의 감촉과, 은은한 분위기의 시선교환.

    마침내 예르나가 조금 부끄럽다는 듯 찻잔을 내리며 다이튼과 점차 얼굴을 가까이 다가가고 있던 바로 그 때였다.

    -벌컥!

    “파이! 이제 우리 정령소녀놀이 하자! 이번엔 내가 특별히 정령소녀인형 빌려줄게!”

    “!”

    “!”

    거칠게 방문이 열리며 들어오는 디아나.

    그에 예르나와 다이튼도 화들짝 놀라 서로 멀찍이 떨어지고 만다.

    디아나의 출현은 언제나 참으로 무서운 타이밍이었다.

    다이튼과 숨바꼭질을 하며 늘린 마력은폐의 재능덕분인지 신경쓰지 않으면 다가오는지 눈치채는 것도 쉽지 않으니까.

    “어? 어디갔지? 오빠, 혹시 파이 못 봤어?”

    디아나의 천진난만한 질문에 다이튼은 살짝 원망스러운 목소리로 대꾸했다.

    “뭐야, 무슨 일인데?”

    “파이가 갑자기 없어졌어. 여기로 온거 아냐?”

    “글쎄? 여기엔 안 왔는데. 다른 방에 있는 거 아냐?”

    “몰라, 다 찾아봤는데 안 보여. 나랑 놀기 싫어서 도망간건가?”

    디아나는 금세 울상이 되었다.

    “놀다가 말도 없이 그냥 가버리는 게 어딨어. 아까 내가 인형갖고 놀지 말라고 뭐라고 한게 싫었나봐….”

    이제보니 디아나의 한손에는 루크에게 정령절 선물로 받은 후로 그렇게나 아끼던 정령소녀 메루루 인형이 아무렇게나 들려 있었다.

    매사에 부주의한 파이가 만지다가 망가트릴까봐 조금 큰 소리를 치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게 미안해서 사과하는 셈으로 이번에 큰맘먹고 빌려주려고 했는데.

    자신이 이미 화를 내서 감정이 상해버린게 분명하다.

    그에 다이튼이 디아나를 위로하듯 말을 건넸다.

    “야, 그건 아니겠지. 걔가 설마 그런걸로 화내겠냐?”

    “응. 걔 완전 쫌생인데.”

    “아하하….”

    디아나의 즉답.

    하지만 그 말에는 예르나도 다이튼도 딱히 반발할 말이 없었다.

    파이가 좀 참을성이 부족하기는 하지.

    특히 먹을 것 앞에선…

    그렇지만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디아나에게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었기에, 예르나는 차분하고 침착한 목소리로 대답해주었다.

    “…그냥 잠깐 어디 간 거겠지. 기다리면 금방 돌아올거야.”

    “그런가…”

    바로 그때였다.

    -속보입니다.

    “응?”

    틀어둔 TV에서 갑작스레 시작된 속보에 예르나의 신경이 순간 그쪽으로 쏠렸다.

    갑자기 속보라니, 무슨 일일까?

    -현재 세밍턴 전시장에서 발생한 테러로 인해, 전시장 전체가 완전히 붕괴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테러범의 목적은 아직 밝혀진 바가 없으며, 추가붕괴의 위험성으로 접근이 현재 금지되어 사상자 또한 집계되지 않아….

    “어?”

    —–

    “후, 이거 쉽지 않구만….”

    루크는 중얼거렸다.

    건물 잔해나 낙하의 충격으로부터 어떻게든 시루드를 보호한 것 까지는 좋은데, 이게 여기서 탈출하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쿠르릉-.

    쌓여있던 잔해의 중심이 무너지며 떨어져나가는 소리.

    몸을 아주 조금만 잘못 움직이더라도 곧바로 저런 소음이 들려온다.

    ‘자칫 잘못하면 시루드가 깔려 죽겠어.’

    자신이야 깔려도 큰 문제가 없겠지만, 시루드는 아니었다.

    시루드는 이미 과도한 마력 사용으로 상당히 지친데다가, 그렇다고 마법으로 잔해를 치우기엔 이곳의 기반이 너무 불안정하다.

    지금은 그만큼 섬세한 컨트롤이 될지도 의문이고.

    자칫 실수로 시루드가 다치거나 죽기라도 한다면 정말로 큰일이었다.

    시루드의 목을 치료하는데 힘을 쓴 이후에는 정말로 한계다.

    여기서 더이상 신성력을 쓸 수는 없어.

    “레니에, 텔레포트는….”

    레니에가 즉답했다.

    -안돼요. 건물 자체가 무너지면서 좌표고정 아티팩트도 모조리 어긋나버렸으니까. 그러니 아마 텔레포트를 하려면 루크님의 서클을 매개체로 마법을 사용해야 하는데…

    “지금 내 서클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지.”

    -맞아요. 아마 서클이 텔레포트의 권한을 못 버티실거예요.

    마력을 잃지 않는 텔레포트는 8서클의 권한이 필요한 고위마법.

    7서클의 앞자락을 쥐고있는 상태인 자신이라도, 그런 격상의 마법을 이런 상태로 시전한다는 건 무리가 있었다.

    결국에는 최대한 마법이 아니라 몸을 사용하는 방향으로 탈출을 해야 한다는 것인데….

    “그렇군, 그럼 현재 탈출 경로와 중심점 계산은 가능할까?”

    -네! 탈출유도는 제가 완벽하게 해드릴 수 있죠! 반면 중심점 계산은… 물론 최대한 서포트하겠지만, 제가 지금 볼 수 있는 건 위성사진밖에 없어요. 아마 내부정보를 몰라 정확도는 많이 떨어질거예요.

    “괜찮아. 그 부분은 내가 탐지를 병행하며 어떻게든 해보지.”

    지금은 자신에게 굉장히 불리한 상황이기에 지하의 니드호그에게 역탐지가 들어올 수도 있는 대규모 탐지를 사용할 수는 없겠지만, 레니에의 대략적인 계산을 받고 자신은 탐지를 소규모로 운용하며 조심히 움직인다면 아마 문제는 없을 것이다.

    -네, 알겠어요!

    “좋군. 이제 움직여볼까.”

    레니에의 대답을 들은 루크는 시루드의 몸을 조심스레 방마케이프로 감싸안은 뒤, 시루드의 몸 위를 덮는 듯 엎드려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렇게하면 적어도 무너진 잔해가 시루드를 다치게 할 일은 없을 테니까.

    그렇게 루크는 조금씩 레니에의 탈출 유도를 받으며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

    작업은 처음에는 아주 순조로웠으나, 이내 신성력의 영향으로 성장하여 크고 둔해진 몸이 좁은 잔해의 틈을 헤쳐나가는 데에 큰 방해가 되기 시작했다.

    아이 하나가 겨우 탈출할 수 있을 정도로 비좁은 틈을 마주한 루크는 생각했다.

    ‘이건 너무 좁잖아. 지나갈 수 있게 조금만 틈을 넓혀야겠어.’

    그렇게 루크가 힘을 주어 잔해를 치우려던 바로 그 순간.

    -툭, 쿠구궁-!

    중심점 계산이 잘못되어 잔해의 어딘가에서 중심이 무너진 건지, 잔해가 붕괴하는 굉음과 함께 마치 8서클 마법사의 그래비티라도 맞은 것처럼, 묵직한 감각이 루크의 등을 강타했다.

    “윽!”

    그에 순간적으로 팔의 힘이 부친 루크는 시루드의 위에서 버티고 있던 팔이 굽어지고 말았다.

    현재 건설용으로 사용되는 인조 암석 1세제곱미터의 무게가 1.5톤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지금 루크의 등을 누르는 잔해의 무게는 그야말로 엄청난 무게라고 할 수 있었다.

    -루크님! 괜찮으세요?!

    “으윽, 괜찮…아…!”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키메라인 몸.

    순수 육체능력으로는 무리여도, 마력의 도움을 받는다면 버티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니다.

    그렇게 루크는 순간적으로 소규모 탐지마법을 끊고 급히 몸에 마력을 두르며 잔해를 받아내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시루드에게 피해는 가지 않도록 했나?’

    하고 생각하며 시루드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내리자, 정말 끔찍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었다.

    “……읍!”

    시루드가 자신의 가슴에 짓눌려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 시루드!”

    그에 화들짝 놀란 루크는 힘조절도 잊어버리고 온 힘을 다해 잔해를 밀어버리며 경악했다.

    그리고 루크의 그런 격한 움직임에 레니에 또한 경악하며 외쳤다.

    -루크님! 그렇게 갑자기 움직이시면 안돼요! 그러면 길이-

    -콰앙!!

    -…길이 막혀버린다구요…

    레니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간신히 중심을 잡고 있던 잔해가 무너지는 굉음과 동시에 탈출로가 막혔다.

    하지만, 루크에게는 그보다 더 급한 일이 있었다.

    마치 악몽이라도 꾸고 있는 듯, 창백하게 잔뜩 찌푸려진 인상의 시루드를 보며 루크는 허둥대기 시작했다.

    “시루드, 시루드! 정신 차리거라, 내 말이 들리느냐?”

    루크는 곧, 이 상태를 들키고싶지 않다고 생각했던 건 완전히 잊어버린 채 정신을 차리라며 시루드의 볼을 쳐대기 시작했다.

    “이런, 맙소사. 얼굴에 상처까지…!”

    심지어 이 어린 제자의 얼굴에 흉터까지 남기다니, 스승으로서 보호한다고 해놓고 정말이지 면목이 없는 상황이었다.

    “아, 이건 내 피구나.”

    피를 닦아내기 위해 손으로 문지르니 아예 지워져버리는 것이, 그냥 자신이 안 닦은 피가 얼굴에 묻은 모양이다.

    그럼 출혈은 없는 건가? 그건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심각한 상황이다.

    루크는 시루드의 파리한 안색을 지켜보다 무언가 이상한 느낌을 받아 손등을 들어 시루드의 콧잔등에 가져다 대 보았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호흡이 없었다.

    그것은 루크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제자를 제 가슴으로 짓눌러 죽인 스승이라니! 

    정말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루크는 황급히 레니에를 부르기 시작했다.

    “레니에, 시루드가 아예 숨을 안 쉬는데? 이 경우엔 어떻게 하느냐?”

    -네? 설마 호흡 곤란인가요?

    루크는 고개를 저었다.

    마법사로서 인간의 장기위치와 작동원리는 대충 알지만, 그것이 현재 시루드의 상태가 의학적으로 정확히 어떤 상태인지 알아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아니었다.

    “모르겠어, 설마 주, 죽은 건 아니겠지?”

    루크는 금방 부정적인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숨을 쉬기가 어려운 좁은 공간이었다.

    이 연약한 아이가 잘못되려면 얼마든지 잘못될 수 있었다.

    만약 이대로 시루드가 죽는다면…, 타이밍을 놓쳐 제대로 살려낼 수 없을 가능성도 높았다.

    모든 것이 자신의 탓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루크가 자책하기 전, 레니에가 루크의 말을 끊었다.

    -진정해요, 제가 있으면 그렇게 되지는 않을거에요. 일단 상태부터 보죠. 제가 볼 수 있게 얼른 휴대전화 꺼내서 보여주세요. 

    “아, 알겠어. 그러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뭔가 나쁜 말이 자꾸 떠오르는데 그냥 독자님들의 재미로 남겨두고 저는 안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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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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