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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75

       후우.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니까…… 내가 그냥 시간만 돌려서 샥 샥 피하기만 한 줄 알았는데, 사실은 계속 연습하면서 연구하고 내 것으로 만들어서 피할 수 있었다는 소리지?”

        

       “그래.”

        

       “그런데 너는 그 노력을 그냥 속임수라고 생각했고.”

        

       “그렇지.”

        

       “그것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고.”

        

       루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아니.

        

       이놈한테 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

        

       “야, 들어봐.”

        

       나는 손가락을 척 들어 올리며 말했다.

        

       “첫째. 나는 그때 선택지가 없었어.”

        

       루카스가 나를 보았다. 표정만 봐서는 무표정에 가까웠지만, 내 말에 약간의 흥미를 느낀 것 같기도 했다.

        

       “봐. 세상에서 가장 검이 빠른 인간 중 하나가 나한테 검을 휘둘러. 그런데 나에게는 피할 여유가 없어. 그래, 네가 날 죽일 생각은 아니었겠지. 그래서 날아온 검도 웬만해서는 즉사할만한 검은 아니었고. 치명상을 입을 법한 곳인 경우는 많았지만.”

        

       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 말했다.

        

       “팔이나 다리가 하나 사라지거나, 내장 일부를 드러내야 하거나, 뭐 그런 일을 겪어야 할지 몰라. 그러니까 방법이 있겠어? 그냥 시간을 돌려가면서 최대한 피해를 줄이려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지.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야.”

        

       굳이 따지자면 사격 같은 건 내가 하고 싶어서 한쪽에 가깝기는 했다. 이것도 자세하게 파고들면 내가 살아남기 위한 일의 일환이긴 했지만, 적어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했던 건 아니니까.

        

       “그러니까, 그냥 노력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하지 안 그래? 날아오는 돌을 피했을 뿐이니까.”

        

       루카스가 팔짱을 꼈다.

        

       저 행동은, ‘아니, 아직 납득 못했다’라는 의미였다.

        

       나는 손가락을 하나 더 펴면서 말했다.

        

       “두 번째. 아무튼 나는 운이 좋았을 뿐이야. 시간을 돌리는 능력이 없었다면 그렇게 실력을 키울 기회도 없었겠지.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도 없었을 거고. 상대방의 승리를 패배로 비틀어버리는 능력이나 다름없어. 반칙 맞아.”

        

       나는 손을 폈다. 그리고 양 손바닥을 천장 위로해서 살짝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러니까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전혀 모르겠다. 일부러 죄책감을 만들어내고 있는 거 아니야?”

        

       “……나는 검을 그냥 배우고 싶어서 배우기 시작한 줄 아냐?”

        

       ……얼레.

        

       “나도 어린 시절에는 너처럼 그렇게 유복하지 못한 곳에서 자랐어. 그런데 어른들은 다들 나보다 힘이 셌고, 그래서 어떻게든 거기 저항하기 위해 배운 게 검술일 뿐이야. 그리고 정말 우연히도, 나는 재능을 타고났지.”

        

       “…….”

        

       “결국 너랑 비슷해. 만약 내가 네 능력을 깎아내리면, 내 노력을 헐뜯는 거랑 다르지 않지.”

        

       “그게 뭐가 어때서?”

        

       나도 똑같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이렇게 하니 가슴 부분이 조금 불편해서 가슴 아래에 팔짱을 끼웠다가, 이렇게 했더니 가슴을 괜히 강조하는 것 같아서 그냥 팔을 풀어버렸다.

        

       보기 좋은 건 고맙다만, 그 외에는 딱히 쓸만한 곳이 없었다.

        

       하긴 있는 거랑 없는 것 중 뭘 고를 거냐고 물어봤다면 당연히 있는 쪽을 고르긴 했겠지만.

        

       “이제라도 알았으니 된 거 아니야? 그냥 서로 좋게 생각하고 넘어가자니까? 당사자인 내가 괜찮다잖아.”

        

       루카스는 요지부동이었다.

        

       나는 한숨을 푹 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튼, 시간은 줄 테니까 생각해봐. 솔직히 지금 가지고 있는 것도 시간뿐이잖아. 다음에 또 올게.”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뒤로 돌아섰다.

        

       루카스는 굳이 잡지 않았다.

        

       저택 밖으로 나와 등을 쭉 폈다.

        

       병사들은 여전히 잔뜩 긴장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 내가 또 무슨 이상한 짓이라도 할까 무서운 모양이다.

        

       그런 병사들을 안심시키듯, 나는 당당한 걸음걸이로 앞으로 나아갔다.

        

       음…….

        

       솔직히, 루카스의 저 태도가 무지막지하게 답답하긴 했지만—

        

       조금은 후련해졌다. 적어도 내가 하고 싶었던 얘기는 다 한 것 같아서.

        

       여기 오기 전까지만 해도 어떻게 풀어낼까 싶었는데.

        

       혹시 검성이 ‘네가 직접 가르쳐라’라고 했던 건, 정말로 검술을 가르치라는 게 아니라 네 일을 남한테 미루지 말라는 소리가 아니었을까.

        

       그냥 말했으면 내가 또 피하려 들었을 테니까.

        

       “…….”

        

       아직도 수련이 부족하구만.

        

       나는 숨을 푹푹 내쉬면서 자동차가 세워진 곳까지 걸었다.

        

        

       *

        

        

       루카스에게는 조금 시간을 주기로 했고.

        

       그다음으로 향한 곳은 제이든이 있는 곳이었다.

        

       거의 벽이나 다름없는 상대와 말을 했으니, 이번에는 조금은 쉬워 보일 것 같은 사람을 상대하기로 한 거다.

        

       나도 내가 왜 이렇게까지 열정적으로 관계 회복을 하려고 하는지 의문이긴 하다. 그런데, 왠지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앞으로 몇 년은 발 뻗고 잘 수 없을 것 같다.

        

       아마 평생 ‘황제의 아이들’을 가두어두려고 하겠지. 앨리스나 나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

        

       당장은 탈출하려는 생각도 없는 것 같지만, 혹시 시간이 지나면 또 생각이 바뀔지도 모른다.

        

       그럴 바에, 관계를 확실하게 정리하고 앨리스의 황위를 공고히 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니까.

        

       그리고…… 약간의 연민도 있었고.

        

       “동생!”

        

       저택으로 들어가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제이든을 보고 나는 뒤로 그냥 돌아설 뻔했다.

        

       하지만 그래도 대화는 해봐야 하지 않겠나. 그러려고 온 거고.

        

       돌아가려는 발을 억지로 앞으로 향하게 하느라 걸음이 살짝 비틀거렸지만, 어쨌든 나는 앞으로 가는 데 성공했다.

        

       “이 오라버니를 다시 만나려고 하니 그렇게까지 마음이 떨리니? 발걸음마저 떨 정도로?”

        

       아닌데.

        

       “……일단 좀 앉아.”

        

       “앉……?”

        

       내가 다짜고짜 반말을 날리자, 제이든은 충격이라도 받은 듯 얼어붙어 버렸다.

        

       나는 그를 마주 보는 자리의 의자를 끌어당겨 앉았다.

        

       혹시라도 황제나 황제의 아이들이 서로 내통하게 될까 봐, 연금되어있는 저택의 거리는 서로 엄청나게 떨어져 있었다.

        

       여기까지 오는데도 자동차로 한 시간 넘게 걸린 것 같다. 적기조례가 없는 제도 도심 바깥이었는데도.

        

       “다른 사람들한테도 말 놓기로 했으니까 너무 놀라지 말고. 그러고 있으면 말을 못 하잖아.”

        

       내가 말하자, 제이든은 얼떨떨한 표정인 채로 자기 자리에 앉았다.

        

       음.

        

       쉬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얘도 어려울 것 같다. 루카스와는 다른 의미로 말이 안 통할 것 같다.

        

       “그래서, 실비아, 내 동생아.”

        

       제이든은 그래도 금방 회복했다.

        

       테이블에 살짝 기대서 조금 과하게 웃어 보이며, 제이든이 말했다.

        

       “무슨 일 때문에 왔느냐?”

        

       “…….”

        

       이런 표정을 보니까 더 싫은데.

        

       진짜 꺼내기 싫은 말이었지만, 나는 입을 우물거리다가 겨우 말했다.

        

       “……조금 도와달라고.”

        

       “호오!”

        

       내 말에 제이든의 어깨가 쫙 펴졌다.

        

       “그, 우리 서로 칼 겨눴던 사이라는 거 알고 있지?”

        

       “물론 기억하다마다. 별로 영광스러운 이유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 인생에서 가장 영웅적인 전투를 벌였지. 평생 잊지 않을 거다.”

        

       얘도 루카스와는 다른 의미로 전투광이다.

        

       “……명예 같은 건 신경 안 써?”

        

       “나는 속기는 했다만, 그래도 내 모든 것을 바쳐서 싸웠다. 그리고 졌고. 그렇다면 깨끗하게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 기사의 길이겠지. 그리고, 죽는 것 보다는 훨씬 긍정적인 상태이니 이렇게 내 동생도 만날 수 있지 않았냐!”

        

       제이든은 정말로 기분 좋다는 듯 말했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고 말했다.

        

       “뭐…… 좋아.”

        

       나는 작게 숨을 내쉬고 말했다.

        

       “루카스를 좀 도와줬으면 좋겠는데.”

        

       바로 조금 전까지 기분 좋게 웃고 있던 얼굴이 순식간에 사정없이 구겨졌다.

        

       “내가…… 그 녀석을?”

        

       “응.”

        

       “어째서?”

        

       음…….

        

       뭐라고 설득해야 하나.

        

       형제니까, 같은 말은 전혀 통하지 않을 것 같다.

        

       실제로 그 둘은 붙여두면 그냥 서로 조금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형 동생 같은 관계로 보였고, 실제로도 서로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정말로 피가 섞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는 더 그렇다.

        

       하지만, 그렇기에 딱히 돕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을 거다.

        

       아마 내가 루카스의 상태를 이야기해도 그다지 심각하다고 여기지 않을걸.

        

       아니, 그보다, 루카스가 그런 상태가 된 게 나를 몇 번이고 난도질한 기억이 돌아와서 그렇다고 하면 제이든은 눈이 돌아갈지 모른다.

        

       내가 피가 이어지지 않은 유일한 황제의 아이라고 해도 제이든은 나를 이렇게 자기 동생으로 보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말이다.

        

       나에게는 제이든에게 확실하게 먹히는 무기가 하나 있었다.

        

       “쓰읍, 하아.”

        

       하지만 이것도 막상 말을 꺼내려니 엄청나게 껄끄럽다.

        

       “……하루 동안, 존댓말을 쓰면서 널 오라버니라고 불러줄게.”

        

       “삼 일.”

        

       “…….”

        

       내가 입을 벌리고 제이든을 보자, 제이든은 입에 멋들어진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네가 나를 아는 것만큼, 나도 너를 알지. 실비아. 네가 나를 찾아와 도움을 청할 정도면, 내가 아니면 도울 수 없는 일이라 그런 거 아니냐? 그러니 삼 일이다. 협상은 없다.”

        

       나는 뒷목을 잡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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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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