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Please report if you find any blank chapters. If you want the novel you're following to be updated, please let us know in the comments section.

EP.476

       계약의 진행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손쉬웠다.

       

       회사 측에서 이러한 계약을 해 본 일이 한 두 번이 아닌 듯 밑준비만 끝나면 기계적으로 절차만을 따르면 그만이더군.

       

       그 과정에서 본인이 한 것이라고는 그저 뭉치 녀석의 힘을 약화시키는 것뿐이었다.

       

       “이런 식이 아니어도 약화시킬 방법은 많잖아! 왜 물리적으로 해결하려는 건데! 그만. 그. 끄아아아악!”

       

       다소 소란스러운 소리가 나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본인은 뭉치와의 계약을 맺는 데에 성공했다.

       

       계약의 조건은 쉬이 말해 노예계약이었다.

       

       내가 시키는 것은 무조건 따라야 하고 내게 해를 끼칠 수 없으며 내게 거짓을 고하는 것도 불가능한.

       

       말 그대로 본인의 의향을 강제적으로 따르는 꼭두각시로 만드는 계약 말이다.

       

       사장 녀석이 자신 있게 이야기하길 온갖 꼼수를 막아두었기에 빠져나가는 것이 불가능하다 했으니 어지간한 방법이 아니라면 계약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겠지.

       

       “그래도 만약이라는 것이 있으니 몇 가지 시험을 해보시겠어요?”

       

       사장의 말을 듣고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시험이라 함은?”

       “명령을 내려 보는 거죠. 계약이 제대로 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그러니까 평소의 이 녀석이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법한 명령을 내려보자는 소리구나.

       

       이제는 손바닥 위에 올려놓아도 문제없을 듯한 크기가 된 뭉치를 보던 난 머릿속에 떠오른 것을 바로 입에 담았다.

       

       “개처럼 짖어 보거라.”

       “이봐! 네 녀석은 내가… 왈! 왈왈! 아니. 이게 무.”

       “다시 짖어봐라.”

       “왈! 왈오라알아랄!”

       “호오. 이것 참 재밌군.”

       

       스스로의 의지와 관계없이 명령을 충실히 수행하는 걸 보고 있자니 절로 즐거움이 생겼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이 녀석이 먼지뭉치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다는 것이겠구나.

       

       보들보들한 짐승처럼 생겼더라면 이 기쁨을 행복으로 바꿀 수.

       

       아니지. 생각해보면 이 녀석의 모양새는 딱히 정해져 있는 게 아니잖나.

       

       본인이 균열 너머에 쫓아가 마주했을 때에도 지속적으로 형체가 바뀌고 있었으니.

       

       마음만 먹는다면 짐승의 형상을 취할 수 있는 것이.

       

       흐음. 이 정도 크기면 강아지나 고양이의 모습을 취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보다는.

       

       그래.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낸 본인은 햄스터의 사진을 찾아 뭉치에게 보여 주었다.

       

       “이것의 모습을 취해라.”

       “젠장. 젠장. 젠장.”

       

       뭉치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면서도 본인의 명령에 저항하지 못했다.

       

       호오오오. 이것 참. 전체적으로 거뭇거뭇해서 그렇지 모양새만큼은 귀여워졌구나.

       

       흥미로움을 느끼며 녀석을 집어 들려던 순간 겉부분의 딱딱함을 느낀 나는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

       

       “이게 아니다! 이런 건 내가 바라는 햄스터가 아니야!”

       

       살갗을 만지는 순간 부드러움과 온기가 느껴져야 햄스터다!

       

       이런 딱딱하고 차가운 것은 햄스터가 아니다! 햄스터의 흉내를 내는 기괴한 것일 뿐!

       

       네 이 놈! 주인의 명령을 제대로 따르지 않다니! 또 다시 어딘가가 잘리고 싶은 것이냐!

       

       “그림만 보고 그걸 어찌 아느냐! 난 노력 했다!”

       “시끄럽다! 빨리 제대로 된 햄스터로 변해라!”

       

       본인의 종이라면 본인이 바라는 형태를 취하란 말이다!

       

       “실물을 보여봐라! 그럼 내 얼마든지 따라 해주마!”

       

       이는 옳은 제안이군. 본인이 어설프게 묘사를 하는 것보다 실물을 보이는 것이 나을 터이니.

       

       허나 이 곳에서 어찌 햄스터를 구한다는 말인가.

       

       백호를 시켜야하나? 마음 같아서는 본인이 직접 움직이고 싶다만 햄스터처럼 심약한 녀석들은 본인이 손이 닿자’마자 심장이 멈춰 죽는 경우가 있는지라.

       

       “아라님.”

       “무어냐. 본인은 지금 심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그 고민의 해결책이 있어서 말입니다.”

       “흠?”

       “지난 번에 제가 제안했던 것 있지 않습니까. 그 중에는 햄스터의 형상을 취하는 이도 있습니다.”

       “…그런 것이 있었으면 진작에 이야기를 했어야지!”

       

       어디냐! 어디에 있는 것이냐!

       

       신수의 경지에 도달한 햄스터라니 그런 귀한 존재가 어디에 있단 말이더냐!

       

       당장에 안내를 해라!

       

       뭉치를 손에 집어든 채 사장의 뒤를 따라간 나는 온갖 보슬보슬하고 복슬복슬하며 따끈따끈하고 부드러운 이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고는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 곳은 천국인가? 본인은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천당에 도달해 버린 것인가?

       

       “…아해야. 본인이 정말 이 곳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도 괜찮은 것이야?”

       

       그래도 되는 게냐? 저들 또한 본인을 두려워 할 터인데 본인이 저들을 괴롭히는 꼴이 되는 것 아니더냐?

       

       “걱정하지 마십시오. 모두의 동의를 구했으니까요. 저희 직장이 좀 직원을 험하게 굴리기는 합니다만 바라지 않는 일을 시키진 않는답니다.”

       “그런 것치고 백호는 제발 좀 쉬고 싶다고 소리치고 다니던데.”

       “죽을 정도로는 안 굴리잖습니까. 온건하죠.”

       

       그대가 아는 온건하다는 단어와 내가 아는 온건하다는 단어가 많이 다른 듯 하다만.

       

       무어. 그런 것이 내 알 바더냐.

       

       중요한 것은 지금 저들의 사이에서 마음껏 놀 수 있다는 사실 뿐!

       

       좋아! 그럼 어디 한 번 즐겨볼까!

       

       *

       

       힘을 잃어버리고 본래의 이름을 잃어 버렸으며 얼마 전 형태와 존엄마저 함께 잃어버린 뭉치는 여러 털뭉치들을 쓰다듬으며 히죽거리는 아라를 보다가 속으로 한탄했다.

       

       내가 진정 저런 녀석에게 패배했단 말이더냐!

       

       더 짜증이 나는 것은 다시 생각을 해 보아도 저 놈을 이길 방도가 보이지 않는단 것이다!

       

       내가 모든 권능을 담아 공격을 했음에도 상처 하나 낼 수 없었고, 저 녀석이 내지른 공격은 단번에 나란 개념을 존재 채로 지워버릴 뻔 했으니.

       

       몇 번을 다시 덤비더라도 결과는 똑같을 것이다.

       

       나는 저 빌어먹을 녀석을 이길 수 없다.

       

       저 괴물을 쓰러트릴 수 없다.

       

       하아아.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애초부터 호기심을 가지지 말았어야했어.

       

       햄스터의 형상을 하고 있는 뭉치는 자신의 두 손으로 뺨을 누르면서 과거의 자신을 원망했다.

       

       그 시작은 어린 외신 중 하나가 발악하던 것을 느꼈을 때였다.

       

       반쯤 멸망해버려 집어삼킬 것도 없는 세계에서 권능과 권능이 부딪히고 있기에 무언가 싶었지.

       

       그리고 그 끝에 어린 외신의 자취가 사라졌을 때 난 그 곳에 무언가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가지고 놀 재미가 있는 장난감이 말이다.

       

       그래서 그 후로 계속해서 신경을 곤두세우며 그 기운의 자취를 찾았지.

       

       그러다가 어린 외신을 짓뭉개던 그 기운을 다시금 느낀 순간 나는 그 곳을 향해서 발을 움직였다.

       

       스스로가 패할 것이란 걱정 따윈 하지 않았다.

       

       여러 세상을 돌아다니며 그 곳의 모든 것을 집어 삼키던 내가 한 세상의 존재에게 패할 것이라는 것을 어찌 예상할 수 있을까.

       

       그 오만의 결과는 처참했다.

       

       보라. 온갖 제약에 걸려 저 한심한 녀석에게 나쁜 말 한 마디 못 하는 내 모습을.

       

       이전의 위엄은 어디로 가버렸는지 조금 더 보드랍고 따뜻해질 방법을 찾고 있는 나를.

       

       “이번엔 어떠냐.”

       “와아. 진짜 햄스터 같아요! 촉감 장난 아니에요!”

       “허나 엔리야. 저 분의 부드럽고 커다란 볼과 비교하면 어설픔이 있지 않나?”

       “으으음. 확실히 그건 그렇지만 그건 저 분이 너무 귀여운 게 아닐까요.”

       “이 녀석은 마음대로 변할 수 있는 놈이다. 그렇다면 최고의 이상을 찾아야지.”

       

       그리고 나의 주인이 되어버린 자의 친구들에게 평가를 받고 있는 내 꼴을!

       

       젠장! 이전의 나였다면 이 따위 녀석들은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 미쳐 죽음을 택하게 되었을 터인데!

       

       힘을 잃지만 않았어도 이런 굴욕을 당할 일이 없었을 텐데!

       

       아니 계약에 의해 이 두 녀석에게도 해를 끼치지 못하게 된 것만 아니었어도오오오!

       

       “그치만 바루님. 너무 귀여운 것도 곤란하지 않을까요?”

       “흠?”

       “생각해봐요. 아라 씨의 손길이 바루님에게 덜 가게 될 지도 모른다고요.”

       “너는 본인이 아라의 애완동물처럼 보이느냐?”

       “비슷한 거 아니었어요?”

       “…엔리야.”

       “네?”

       “교육을 좀 받아야 쓰겠구나.”

       “농담! 농담이었어요! 제가 설마 바루님을 그런 식으로 생각했겠어요?! 그러니까 저기 주변에 띄워 놓은 얼음 좀 없애주세요!”

       “차가움 속에서 네 잘못을 깨달아라.”

       “히야아악?!”

       

       자신은 신경 쓰지도 않고 꺄악거리는 바루와 엔리의 모습에 뭉치가 한층 더 자신의 뺨을 강하게 눌렀다.

       

       빌어먹을. 이것도 다 저 아라라는 녀석 때문이다.

       

       나를 이긴 것까지는 그럴 수 있다.

       

       세상이라는 것은 나조차도 모두 보지 못했을 정도로 넓디 넓은 것이니. 나보다 강한 상대가 나타나는 거야 별 이상한 일이 아니지.

       

       허나 날 이긴 상대라면 최소한 그만한 권위를 지니고 있어야 할 것 아니냐!

       

       대체 지금 저게 뭘 하는 짓거리인가!

       

       여러 털뭉치 사이에 끼어들어서는 녹아내리는 웃음을 짓고나 있다니!

       

       이 나를 이긴 자가 저 따위 짓을 하고 있으니 나까지 저평가를 당하게 되는 것일터!

       

       억울하다! 너무도 억울해!

       

       나는 이런 대우를 받을 존재가 아닌데!

       

       무수히 많은 세상의 공포로 군림했던 존재인데!

       

       멸망이란 개념이 구체화된 존재라 여겨졌던 외신인데!

       

       여러 외신들 사이에서도 두려움이라 여겨지던 자인데!

       

       “호오. 이것 참. 그새 괜찮게 변했군.”

       

       분노에 몸부림치던 뭉치는 아라의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었다.

       

       그러기 무섭게 아라의 양 손이 그의 뺨을 잡고는 주무르기 시작했다.

       

       “나쁘지 않아. 방금 전 저 거대 햄스터를 만지고 왔음에도 꽤 괜찮게 느껴지니 말이야.”

       “…이 정도면 되나?”

       “좀 더 개선됐으면 하는 부분이 있긴 하다만.”

       

       그 때였다. 어느새 여우의 형상을 취한 바루가 뭉치와 아라 사이에 끼어든 것이다.

       

       “흥! 이런 가짜를 만질 바에야 본인의 제대로 된 털을 쓰다듬는 편이 낫지 않겠느냐!”

       “…설마 지금 질투하는 게냐?”

       “질투는 무슨! 이 부정한 털을 매만지는 것보다 신령의 털을 만지는 것이 낫다 생각할 뿐이다!”

       “하여간 솔직하지 못하긴.”

       “그런 게 아니래도!”

       “하하. 알겠다. 알겠어. 자아. 어디를 쓰다듬어 줄까.”

       

       아라의 손에 들려가며 자신을 가소롭다는 듯 지켜보는 바루의 모습에 뭉치는 한숨을 내뱉었다.

       

       언젠가 반드시 이 제약에서 벗어나고 말리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