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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76

       하루면 충분하다고 주장하는 나, 그리고 무조건 삼일 이상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제이든은 팽팽하게 맞서다가, 결국 이틀이라는 기간으로 극적인 합의를 나누었다.

        

       뭐 이런 걸로 합의 같은 것을 하고 있어야 하는지는 나도 모르겠다만, 아무튼 그래도 덕분에 방법 하나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래서, 정확히 뭘 해주면 되는 거냐?”

        

       “루카스를 조금 설득해줬으면 하는데.”

        

       “내가 설득한다고 설득될 놈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을 텐데?”

        

       제이든은 어이없다는 듯 되물었다.

        

       “굳이 설득에 성공할 필요는 없어. 그냥…… 말이나 걸어주면 돼.”

        

       “호오.”

        

       “걔가…… 음.”

        

       나는 잠깐 고민했다.

        

       루카스가 나를 공격한 건 보통 내가 혼자 있을 때뿐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당연히 다른 사람이 그 공격을 막아줄 테니까.

        

       제이든의 실력은 루카스에게는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공격을 막을 수 없다는 소리는 아니다. 서로 목숨 걸고 싸우면 어쨌거나 루카스가 그럭저럭 여유롭게 이기긴 하겠지만, 갑자기 날아온 선빵 정도는 충분히 막을 수 있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제이든은 루카스가 나를 칼로 베어버린 적이 있다는 것을 모른다는 소리다.

        

       그래서 고민했다.

        

       내가 이렇게 말을 까면서 당당하게 구는 와중에도 제이든은 나를 아끼는 모습을 보였다.

        

       피도 이어지지 않은 나를 상대로 진짜 동생처럼 대해주는 것이다.

        

       나는 일방적으로 그 호의를 거절해왔지만, 사실 따지자면 이건 앨리스가 나에게 보이는 호의와 거의 비슷한 것이었다.

        

       물론 차이라면 있다.

        

       앨리스는 황제를 따르지 않는 길을 택했고, 제이든은 황제를 따르는 길을 택했다.

        

       앨리스는 조금 덜 부담스러웠고, 제이든은 꽤 부담스러웠다. 앨리스는 나에게 바라는 것이 거의 없는데, 제이든은 나에게 바라는 것이 조금 있었다. 아마 거기서 오는 차이일 것이다.

        

       황제 관련된 일이야 이미 끝난 일이니 조금 밀어둔다고 쳐도, ‘부담스럽다’라는 것은 그 미묘한 차이만으로도 거리가 꽤 많이 느껴지게 했다.

        

       “…….”

        

       나는 잠깐 생각하다가 먼저 조건을 걸기로 했다.

        

       “우선, 맹세를 해줬으면 좋겠는데.”

        

       “무슨 맹세 말이냐?”

        

       제이든은 조금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면서 말했다.

        

       “내가 말하더라도 루카스를 절대로 죽이지 않겠다는 맹세.”

        

       “대체 그놈이 무슨 잘못을 했길래?”

        

       “네게 해가 되는 잘못은 아니야.”

        

       “그래도 내가 그놈을 죽이고 싶게 만들만한 잘못이라는 소리이지 않냐?”

        

       젠장.

        

       “아무튼. 그렇지 않으면 나는 너한테 더 부탁하지도 않을 거고, 내가 너를 오라버니라고 부를 일도 없게 될 테니까.”

        

       제이든은 잠깐 심각하게 고민했다.

        

       자기가 루카스를 죽이고 싶을 만큼 빡칠 이유와, 내가 자길 오라버니라고 불러주게 할 기회.

        

       “그래, 맹세하마.”

        

       제이든은 후자를 선택했다.

        

       아니, 대체 오라버니라는 단어에 뭐가 있길래?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보는 제이든에게, 나는 입을 열었다.

        

       “루카스가 날 베어보겠다고 몇 번이나 칼질했어. 다 세지도 못할 만큼 많이 성공했고, 덕분에 나는 여기저기 잘려봤거든?”

        

       “…….”

        

       깜빡.

        

       제이든의 눈이 깜빡였다.

        

       나는 제이든이 내 말뜻을 정확하게 파악할 시간을 주지 말자고 생각했다.

        

       “내가 다시 시간을 돌려놓긴 했으니 결국 없던 일이 되긴 했는데, 하필이면 그때의 기억이 돌아왔잖아? 루카스는 자기가 나를 베던 순간을 다 기억하고 있나 봐.”

        

       “아니, 잠깐. 잠깐 기다려 봐.”

        

       “루카스도 뭐, 내가 싫어서 그랬던 건 아니고—”

        

       “잠깐만.”

        

       제이든이 손을 내밀며 정색해서,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니까, 루카스가…… 그 칼로 너를 베어냈던 적이 있다는 거냐? 그것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뭐…… 그렇지.”

        

       그렇게 잘린 살점을 다 모으면 지금의 내 몸무게의 수십 배는 될 정도로. 한 번 피한다고 성공하는 게 아니었으니까.

        

       “…….”

        

       “걔는 내가 피할 거라고 생각해서 그냥 적당히 놀자는 마음으로 칼을 휘두른 거야. 실제로 내가 시간을 돌려서 피할 때마다 걔 눈에는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피한 걸로 보였을 거고.”

        

       “그게 자기 동생한테 검을 휘두른 변명이 될 거라고 생각하냐?”

        

       “루카스는 변명한 적은 없어. 그냥…….”

        

       나는 잠깐 생각을 정리했다.

        

       “처음에는 내가 시간을 돌려 피했다는 게, 그냥 쉽게 쉽게 반칙하듯 피하는 건 줄 알고 배신당했다고 생각했데. 그런데 지금은 그게 아니라는 거지. 자기가 베는 걸 내가 분석해서 피했다는 걸 아니까. ‘노력’이라는 거야.”

        

       “그래서?”

        

       제이든이 아주 빡친 목소리로 말했다.

        

       제이든이 화난 것을 거의 볼 일이 없던 나였기에, 솔직히 조금 무서웠다.

        

       “그 노력을 무시했던 자신이 한심하다고 생각하나 봐. 그걸 잘못이라고 생각하면서 아직도 꽁해 있어.”

        

       “그래서 내게 그 녀석을 설득해달라고 한 거군.”

        

       제이든은 깊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잠깐 말없이 생각하던 제이든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렇게 해주마.”

        

       “……고마워.”

        

       “그렇게 진심 어린 감사는 또 오랜만에 듣는군.”

        

       그런데 그 감사의 원인이 루카스에게 있다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그런데, 그럼 나는 여기서 나갈 수 있게 되는 건가?”

        

       “아니. 연금 상태니까.”

        

       “그럼? 전화라도 걸 수 있게 해주나? 전화선을 신설하는데 돈이 꽤 많이 들 텐데. 앨리스가 허락할까?”

        

       “아니, 그것도 아니야.”

        

       “방법이 있긴 한 거냐?”

        

       “있긴 있지. 네가 마음에 들어 할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꽁꽁 숨기지 말고 말이나 해 봐라.”

        

       나는 제이든을 보면서 간단하게 대답했다.

        

       “그리폰.”

        

       *

        

       “그리폰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솔직히 조금 두근거렸는데 말이다.”

        

       제이든이 투덜거리면서 말했다.

        

       “창문 앞에 서 있으라더니, 그리폰이 창문을 깨고 발로 쑥 집어 올 줄은 몰랐다.”

        

       “그래도 중간부터는 등에 타고 왔잖아.”

        

       그리폰은 똑똑하다.

        

       그 지능이 분명 사람 이상은 된다고 나는 확신했다.

        

       물론 그…… 좀 짐승 같은 면이 있어서 가끔 멍청하거나 소심해 보이긴 해도, 영물은 영물이다. 자기가 날아다닌 항로는 정확하게 기억하니까.

        

       그래서 나는 그 그리폰에게 부탁했다.

        

       제이든을 조금 납치해달라고.

        

       병사들은 그리폰을 향해 차마 총을 쏘지는 못했다. 일단 그리폰이 나의 소유로 되어있기도 했고, 총을 쐈다가 괜히 발에 잡은 제이든이 죽으면 곤란하니까.

        

       중간까지 제이든을 집은 채 날아와 내려놓고, 그다음에는 기다리고 있던 나를 등에 태우고, 제이든도 그 뒤에 태우고 다시 날았다.

        

       루카스가 있는 곳으로 와서는 다시 2층 창문을 깨고 나와 제이든을 밀어 넣고, 지금은 저택 입구를 가로막고 앉아있었다.

        

       아마 자는 척이라도 하고 있겠지.

        

       ‘그리폰이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라고 한 뒤, 사과하고 제이든을 원래 자리로 돌려놓으면 끝나는 일이다.

        

       참고로 그리폰은 이 계획을 조금 재미있게 여기는 것 같았다.

        

       걔도 반항아 기미가 있다니까.

        

       “……니들 뭐냐?”

        

       그리고 루카스는, 우리가 저택으로 들어온 것을 보고 멍하니 쳐다보기만 하고 있었다.

        

       음.

        

       “잠깐 만나러 왔어.”

        

       “저놈이랑?”

        

       “그렇다.”

        

       제이든이 말했다.

        

       “거래를 했지.”

        

       “……대체 무슨 거래를.”

        

       “그건 됐고.”

        

       제이든이 대답하기 전에 나는 얼른 말했다.

        

       “자, 자리에 앉자.”

        

       “글쎄, 굳이 자리에 앉을 필요가 있을까 싶다만.”

        

       “……응?”

        

       내가 자리에 앉으려고 의자를 빼는데, 제이든이 그렇게 말했다.

        

       제이든은 그리폰을 타고 오느라 조금 망가진 옷매무새를 적당히 만져서 펴더니, 루카스 앞으로 다가갔다.

        

       “뭔데?”

        

       루카스는 어이없다는 듯 제이든을 보고 있었을 뿐이었다—

        

       퍽!

        

       그리고, 순식간에 옆으로 나가떨어졌다.

        

       쿠당탕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의자 몇 개를 부숴 먹고 바닥을 구른 루카스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괜찮으십니까!?”

        

       바깥에서 그런 소리가 들렸다.

        

       음.

        

       나는 잠깐 고민했다. 이게 괜찮은 건가?

        

       그런데 생각해보니 두 사람이 싸운다고 어느 한쪽이 죽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게 판단한 나는 외쳤다.

        

       “괜찮아요!”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아, 괜찮다니까.

        

       뭐, 괜찮다. 어차피 들어오려면 몇 분은 더 걸리겠지. 싸움은 그 안에 결판이 날 거다.

        

       의자에 앉아서 테이블에 있는 과자 그릇을 내 쪽으로 당겨오는 와중에, 일어난 루카스가 제이든에게 달려들었다.

        

       “뭐 하는 짓이야!?”

        

       “내 동생의 몫이다.”

        

       “어.”

        

       루카스가 잠깐 멈칫하는 사이에, 그 얼굴에 다시 주먹이 꽂혔다.

        

       다시 바닥을 구른 루카스는 이번에는 바로 일어나지 못했다.

        

       “일어나라.”

        

       제이든이 손가락을 뿌득거리며 다가갔다.

        

       “……이게 거래였냐? 널 이용해서 나에게 복수하는 거?”

        

       “아니.”

        

       제이든은 말했다.

        

       “너를 설득해달라더군.”

        

       “……설득?”

        

       “네가 내 동생의 이야기를 들어 먹지 않으니, 들어먹고 이해하도록 설득할 생각이다. 내 사랑스러운 여동생의 부탁이니 말이다.”

        

       “…….”

        

       루카스가 입을 벌리고 나를 보았다.

        

       그 코에서 피가 한줄기 흘러내렸다.

        

       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사실 내가 굳이 제이든에게 부탁한 건, 제이든이 설득하려고 하면 루카스가 열받아서라도 반박하고 나설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뭐, 그건 부탁받은 제이든이 알아서 하는 거니까. 나는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고. 방법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만, 이것도 이거 나름대로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다.

        

       루카스도 생각이 있다면 반격하겠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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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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