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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76

        

         

       “불길한 흉조(凶鳥)여. 그리스도를 공경하지 않는 새여. 성 세케르의 이름으로 묻나니 세상이 끝나는 날에 악인이 있을 곳을 말하라. 영원한 지옥의 유황의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오고, 타오르는 불구덩이 아래에서 눈을 부릅뜨며 기다리고 있을 사악한 존재에게 공양하게 하도록 마땅히 의무를 다하라.”

         

       남자는 까치의 앞에 서서 중얼거렸다.

         

       불길하기 짝이 없는 말들.

       흉조, 그리스도를 공경하지 않는 새, 성 세케르, 유황, 불구덩이, 사악한 존재….

         

       하나하나가 심상치 않은 단어들이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까치는 마땅히 행해야 하는 행동을 하는 듯, 낭인을 빤히 바라보았다.

       기척을 완전히 숨기고 있는 낭인을 말이다.

         

       그리곤 천천히 부리를 열고, 새빨간 혀를 드러내며-

         

       까악-

         

       울었다.

         

       “오. 그곳에 있었구나.”

         

       나지막한 한 마디.

       약간의 기쁨이 담긴, 크게 이상한 것이 없는 말.

         

       하지만 그 순간, 낭인의 등골에 섬찟함이 스쳐 지나갔다.

         

       본능.

       본능이다.

         

       낭인은 척수를 타고 흐르는 끔찍한 오한을 느끼자마자 본능에 따라 귀식대법을 멈추고 그대로 몸을 던졌다. 어떠한 계산 없이, 그냥 옆으로 몸을 던진 것이다.

         

       스아아악-!

         

       그렇게 낭인이 몸을 던진 그 직후.

       낭인이 있었던 그 자리에, 무언가가 허공을 갈랐다.

         

       가를 수 없는 허공임에도 검고 짙은 선 하나를 남긴 채 낭인이 있었던 그 자리를 스쳐 지나간 것은 커다란 흔적을 남겼다. 낭인이 조금 전까지 발을 디디고 있었던 땅에는 여러 개의 평행선이 그려졌고, 낭인의 근처에 있었던 나무와 나뭇잎은 악마가 손톱으로 그어버린 듯 넝마가 되어버렸다.

         

       투두둑.

         

       나뭇잎이 떨어진다.

       나무껍질이 떨어진다.

         

       “미…친.”

         

       본능에 따르지 않았다면.

       본능에 따라 몸을 옆으로 던지지 않았다면 죽었다.

         

       저 이상한 남자가 휘두른 것에 의해서, 분명히 죽었다.

         

       낭인은 그 사실을 깨닫자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다.

         

       스릉-

         

       그는 재빨리 몸을 일으킨 뒤, 차고 있던 검을 뽑아 들었고, 다짜고짜 자신이 있던 곳을 향해 공격을 가한 남자를 노려보며 외쳤다.

         

       “넌 누구냐!”

         

       산 지 얼마 되지 않은 칼이라서 그런 것일까?

       반짝이는 금속이 달빛에 빛났다.

       점에 가까운 칼끝은 후드티를 입고 있는 남자를 향하고 있고, 고개 역시 남자를 빤히 바라보고 있다. 한쪽 발은 뒤로, 한쪽 발은 앞으로 향했고, 자연스레 몸이 비틀리며 급소를 노리기 힘든 자세로 변한다.

       한쪽 손은 단단히 검을 쥐고, 남은 한쪽 손은 다른 손을 아래에서 받치되 언제든 포지션을 변경할 수 있도록 힘이 덜 들어간 상태로.

         

       그렇게 낭인은 남자를 경계하며, 언제든 공격할 태세를 갖추었다.

         

       그리고 이러한 낭인의 태도를 보며 남자는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겁을 먹고 뒷걸음질을 치지도 않았고, 흠칫 놀라지도 않았다.

       주춤하지도 않았고, 기꺼워하지도 않았으며, 호전성을 드러내지도 않았다.

         

       그저 고개를 살짝 들었을 뿐이다.

         

       너무 깊게 눌러써서 푸른 눈밖에 보이지 않는 얼굴이 낭인을 바라보았고, 푸른 눈이 호선을 그렸다. 그렇게 호선을 그린 푸른 눈은 눈웃음을 한 번 짓는 것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는 듯 천천히 뜨이기 시작했다. 마치 초승달이 보름달이 되듯이, 달이 차오르듯이 서서히 커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커지기 시작한 눈은 한껏 부풀어 올랐다.

       타원에서 원형으로.

         

       원형은 두 개로 나뉘며 분열한다.

       그렇게 나뉜 원은 찌그러진 타원의 형상.

       하지만 달이 차오르는 것처럼 타원은 다시 부풀어 오른다.

       보름달이 차오르는 것처럼.

       하늘에 자리 잡은 눈이 그러하듯, 한껏 차오르며 둥그스름한 형태가 되고, 다시 분열한다.

       위로.

       옆으로.

       아래로.

         

       눈이.

       눈이 분열한다.

       눈이, 늘어난다….

         

       “뭐, 뭐, 뭐….”

         

       보라.

       저 눈의 개수를.

       흔들리는 수면에 얼굴을 비춘 것처럼 흔들리는구나.

       흔들거리고, 늘어나고, 흐려지며 그 숫자를 더하는구나.

         

       한 쌍이 두 쌍이 되고.

       두 쌍이 네 쌍이 되고.

       그렇게 늘어나고 늘어나 얼굴 전체가 눈으로 뒤덮이는 꼴이 되었나니.

         

       과연 어느 것이 자기 눈인고?

       어느 것이 허상이고, 어느 것이 진짜인고?

         

       “Domine, salva nos, perimus! Domine, salva nos, perimus!”

         

       “Domine, salva nos, perimus! Domine, salva nos, perimus!”

         

        “Domine, salva nos, perimus! Domine, salva nos, perimus!”

         

       눈은 본디 얼굴에 붙어있는 것이니.

       위대한 창조주께서는 사람을 창조할 적에 두 개의 눈과 두 개의 구멍이 뚫린 한 개의 코, 하나의 입과 두 개의 귀를 갖고 태어나게 하셨음이라. 이는 사람이 위대한 창조주를 본떠서 만들어진 까닭이다.

         

       “Domine, salva nos, perimus! Domine, salva nos, perimus!”

         

       “Domine, salva nos, perimus!”

         

       그리하여 말하노니.

       눈이 한 쌍이면 입이 하나요.

       눈이 두 쌍이면 입이 둘이요.

       눈은 두 개마다 하나의 입을 가지니.

       그리하여 여러 입이 소리를 내는 것은 이상한 것이 없느니라.

         

       그것이 바로 올바른 이치이기 때문이니라.

         

       “Domine, salva nos, perimus!”

         

       그리하여 여러 입으로 소리치나니.

       여러 입을 하나로 모아 외치나니!

         

       오, 주님.

         

       “주님, 구해주십시오! 저희가 죽을 것 같습니다(Domine, salva nos, perimus)!”

         

       구원을!

       구원해주소서!

       우리를 살려주소서!

         

       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

         

       “이런 미친…!”

         

       목소리가 들린다.

       수없이 많은 목소리.

       동굴 깊은 곳에서 소리를 치는 듯한 울리는 소리가 들린다.

       늙은 남자의 목소리, 폐병 환자가 내는 소리, 목이 반쯤 떨어져 나간 듯한 소리, 걸걸한 소리, 어린 소년의 소리, 늙은 여인이 내는 소리, 중년의 여성이 내는 소리, 소녀가 내는 소리.

         

       그 모든 소리가 저 남자의 얼굴에서 나고 있었다.

       순차적으로 나는 것도 아닌, 동시에 나고 있다.

       저 얼굴 하나에 수많은 사람이 입이 붙어있기라도 한 것처럼, 소리가 저 남자의 얼굴 곳곳에서 나고 있었다.

         

       어떤 목소리는 이마에서 울린다.

       어떤 목소리는 눈가에서 울린다.

       어떤 목소리는 입이 붙어있는 곳에서 울린다.

       어떤 목소리는 턱 밑에서 울린다.

         

       수많은 목소리가.

       여러 입으로 내는 소리가, 동시에 나고 있다.

         

       저 목소리는 라틴어를 소리치고, 비웃음을 터뜨리고 있다.

       지금 낭인을 비웃으며.

         

       그렇게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Progenies viperarum, quis demonstravit vobis fugere a futura ira?”

         

       “Facite ergo fructum dignum paenitentiae.”

         

       “Et cum transiret inde Iesus, vidit hominem sedentem in teloneo, Matthaeum nomine, et ait illi: “Sequere me”. Et surgens secutus est eum.”

         

       “Paenitentiam agite; appropinquavit enim regnum caelorum.”

         

       “Paenitentiam agite; appropinquavit enim regnum caelorum.”

         

       “Sequere me.”

         

       하하하하하-!

         

       남자는 수없이 많은 목소리로 웃었고, 수없이 많은 목소리로 외쳤고, 수없이 많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수없이 많은 눈동자를 치켜뜬 채 낭인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고, 한 손에는 기다란 쇠스랑을 들고 한 걸음 한 걸음 낭인에게로 다가왔다.

         

       스윽.

         

       날카로운 쇠스랑이 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들린다.

       나뭇잎이 갈라지고, 땅이 긁히고, 녹슨 자욱이 땅에 남는다.

       피범벅이 되는 것처럼 붉은 자국을 남기고, 상처 옆에 핏물을 흐르게 만든다.

         

       한 걸음을 걸을 때마다 말발굽이 찍히고, 푸르스름한 그림자가 남자가 지나간 자리에 흔적처럼 남나니.

         

       저것을 어찌 사람이라 부를 수 있겠는가.

         

       저것은 사람의 생각으로는 재단할 수 없는 것이라.

       감히 저것을 사람이라 부르는 것은 사람에 대한 불경에 가까운 것이라.

         

       그리하여 낭인은 공포에 질린 채, 덜덜 떨리는 입술을 열어 물었다.

         

       “너, 다, 당신.”

         

       검의 끝이 가늘게 떨린다.

       검을 붙잡은 손은 팔의 흔들림에 따라 검을 움직인다.

       악행을 일삼으며 쌓아 올린 성취는 흐려지고, 사람의 피를 머금으며 날카롭게 벼려왔던 검술은 무뎌져 몽둥이나 다름없이 변한다.

       남자가 다가옴에 따라 반짝이던 검에는 녹이 슬기 시작하고, 남자의 피부는 수분을 빼앗기기라도 하는 듯 건조해지기 시작한다. 손톱의 끝에는 멍이 들기 시작하고, 피부 곳곳에는 반점이 자리를 잡는다. 숨을 쉴 때마다 폐가 간질거리기 시작하였고, 목구멍에는 가래가 끼기 시작한다. 코에는 콧물이 가득 들어차 숨을 쉬기 어렵게 변하고, 입으로 숨을 쉬고자 하면 점차 숨이 차지는 것이 폐가 쪼그라드는 듯하다.

         

       저벅.

         

       발소리가 들릴 때마다 수명이 깎여나가는 듯.

       달이 차고 기우는 것처럼, 하지만 기울었다가 다시 차오르는 것을 볼 수 없는 것처럼.

       그렇게 모든 것에게 평등하게 찾아오는 것이 낭인에게로 다가온다.

         

       칼은 녹이 슬고.

       옷은 부서져 먼지가 되고.

       살점은 썩어 문드러지며.

       뼈는 새까맣게 변해 흙으로 변해간다.

         

       “당신은, 누구, 뭐야.”

         

       그리하여 그것은 마침내 다다른다.

       낭인이 간신히 입을 떼서 질문을 입에 담았을 때.

       그것은 수없이 많은 눈으로 낭인을 바라본다.

       낭인이 남자를 바라보듯, 남자 역시 낭인을 바라본다.

         

       “저는-”

         

       낭인의 눈동자에 남자가 들어왔다.

       내려앉은 달빛이 남자의 윤곽을 드러내었고, 남자의 발밑에 그림자를 만들었다.

       그 그림자는 존재하기는 하되 사람의 형상이 아니었으니.

       길목에 남는 푸르스름한 빛과 얽히고설키며 마치 푸르스름한 말을 탄 사람의 형상과 똑 닮은 형태를 만든다.

         

       푸르스름한 말을 탄 사람.

       

       수많은 눈을 가지고, 수많은 목소리를 가지고, 수많은 기척을 한 몸에 끌어안고.

       남자는 입을 열어 말했다.

         

       “-죽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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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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