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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77

   중간고사까지 일주일이 남은 이 때. 아카데미의 여러 교실에는 수업을 하는 소리가 사라진다.

   

   소울 아카데미의 살인적인 시험범위를 아는 교수들이 학생들을 배려해 여유를 주는 것이다. 물론 몇몇 교수들은 학생들이 비명을 지르건 말건 제 할 일을 하곤 하지만 대개의 교수들은 학생들의 눈치를 본다.

   

   어찌되었건 아카데미에 발을 들이는 학생들은 훗날 상당한 권력을 쥘 이들이니까.

   

   본래 나는 이 기간 동안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조이의 방에 갇혀 공부를 했을 것이다.

   

   평소 수업이 있을 때에도 내게 모든 시간을 투자하던 조이인데 수업이 없는 이 때에 날 내버려 뒀을 리가 없잖은가.

   

   얼마 전 지능이 오르고 있을지도 모른단 느낌까지 받았던 나는 기꺼이 공부 지옥에 몸을 던지려 했다.

   

   허나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루카 이 분탕충이 제 미래와 목숨을 판돈으로 삼아 지랄을 할 것이라는 게 분명해졌는데 어찌 공부나 하고 있겠는가.

   

   <상황을 타개하는 것 자체는 가능할 것 같구나.>

   ‘그렇죠. 어쨌든 저희한텐 페이비가 있으니까요.’

   

   페이비가 지닌 발언권은 상당하다. 특히 악신과 관계된 분야라면 일국의 왕보다도 드높겠지.

   

   그런 그녀가 아카데미 내부에 무언가 벌어지고 있노라고 이야기를 한다면 1왕비나 2왕비의 파벌이라 한들 거기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루카가 세운 계획은 상당히 뒤틀릴 것이다.

   

   <문제는 상대의 계획이 어느 정도 완성된 상태일거란 게지.>

   ‘그쵸. 너무 늦게 알았어요.’

   

   근데 그렇다고 허망하게 무너질 것 같진 않아. 페이비나 내가 벌인 것들이 있는데 루카가 그걸 고려하지 않을 리 없어.

   

   계획이 진행되기 전이라면 모를까 어느 정도 진행된 지금 루카는 상황이 애매해지는 순간 발악을 시작할 거야.

   

   <최선은 그 발악을 하기 전에 몰아쳐서 끝을 내는 거다만. 하. 파벌 싸움이 영 거슬리는 군.>

   

   아카데미의 학장조차도 제 마음대로 무언가를 하지 못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페이비나 내 인맥을 이용해서 계획을 어그러트리는 것은 가능해도 계획 자체를 망가트릴 만큼 급진적인 움직임은 절대 불가능 해.

   

   젠장. 결전병기인 베네딕을 불러오고 싶다. 베네딕이 기사단과 함께 들이닥치면 악신의 무리고 나발이고 박살낼 수 있을 텐데!

   

   근데 베네딕 이 인간 알른 가문의 방계랑 대화하러 가겠다 하고 나서 연락이 잘 안 돼!

   

   작년까지만 해도 하루에 한 번은 연락을 하던 사람이 지금은 일주일에 한 번 연락이 될까 말까한 상황이라고!

   

   저번에 그 괴물 같은 베네딕의 얼굴에서 살짝 피곤한 기가 드러난 걸 보면 알른 영지의 방계와 대화하는 일이 쉽지 않은 게 분명하다.

   

   …그래도 베네딕이라면 내가 진짜 간절히 도와 달라 했을 때 자신이 하던 일을 모두 다 내버리고 올 거다.

   

   그는 그런 사람이니까. 자신의 딸을 위해서라면 무어라도 할 인간이니까.

   

   그걸 알기에 난 더더욱 베네딕에게 괜한 부담을 줄 수가 없었다.

   

   베네딕이 있으면 편한 건 사실인데 딱히 베네딕이 없다고 해서 일을 진행할 수 없는 수준은 아니니까.

   

   괴물한테 박살이 나면서 허탈해진 루카의 얼굴을 못 보는 건 아쉽지만 딱 그 정도.

   

   <어찌할 게냐.>

   ‘상대가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 두려고요.’

   

   이제 와서 나 하나가 움직인다 한들 커다란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럼 굳이 상대를 자극하기보단 상대가 자신의 계획을 진행하게 내버려 두는 편이 낫다.

   

   중간고사까지 남은 기간은 일주일. 루카가 일주일을 더 보낸다 해서 극적인 변화는 없을 테지만. 내게 주어지는 일주일은 전혀 다르거든.

   

   ‘일단은 주변 사람들에게 언질부터 해두고. 그 후엔 정신없이 움직여봐야죠.’

   

   *

   

   “그러니까 얼빵이랑 놀아주는 건 이제 끝이야.”

   

   루시에게 이야기를 전해들은 조이는 잠시 생각이 멈추는 것을 느꼈다.

   

   루카 교수가 공허의 추종자와 연을 맺고 일을 벌이려한다고? 요 몇 년 간 아카데미에서 수많은 성과를 냈던 그 루카가?

   

   “흐음. 그 녀석이.”

   

   허나 조이의 옆에 있던 아서는 덤덤한 기색이었다.

   

   “불쌍왕자님. 그 추잡한 변태에 대해서 뭐 알고 있어요?”

   “작년에 그대와 내기를 할 때 벌어졌던 사고. 그게 루카 그 녀석과 관련이 있지 않나 싶었거든.”

   

   여러 정황상 의심이 가는 구석은 있었지만 그 후로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아 자기도 더 깊게 발을 들이진 않았단 아서의 이야기에 루시가 눈을 살짝 치떴다가 가벼운 웃음을 짓는다.

   

   “놀랍네요. 전 불쌍왕자님이 멍청하게 당하기만 한 줄 알았는데.”

   “멍청하게 당하기만 한 거 맞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지 않은 이유는 괜히 벌집을 건드릴까 싶어서였으니.”

   

   사생아에 가까운 자신이 무얼 할 수 있겠느냐며 자조 섞인 한탄을 내뱉은 아서는 몸을 뒤로 빼며 팔짱을 꼈다.

   

   “결국 네가 우리에게 전하려는 건 대비하되 먼저 움직이지는 말란 소리냐.”

   “후훟. 엉큼한 왕자님답게 이해가 빠르시네요.”

   

   루시의 웃음에 다른 이들의 시선이 미묘해진다.

   

   또 다시 혼자 위험 속에 몸을 내던지는 것이냐고.

   

   우리는 그저 지켜야할 대상일 뿐이냐고.

   

   자신들을 믿어줄 수는 없는 거냐고.

   

   다들 그리 생각을 하지만 입 바깥으로 내진 않는다.

   

   이러한 투정이 괜히 루시에게 짐이 될까 싶어 걱정을 마음속에 억누른다.

   

   “또 혼자가?”

   

   갑작스런 침묵 속에서 프레이의 목소리가 툭 튀어 나왔다.

   

   “치사해.”

   

   눈치라고는 조금도 없는 행동에 다른 이들이 프레이를 시선으로 질책하지만 프레이는 그딴 건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자기 혼자서 재미있는 거 하고.”

   “바보 검사. 멍청한 너 대신 고생하러 가는 거거든?”

   “같이 가. 나 루시 옆에 있을래.”

   “흐응. 뭐. 상관은 없는데.”

   “상관없어요!?”

   “상관없다고요?!”

   “상관없는거냐!?”

   

   조금도 예상치 못한 루시의 말에 모두가 놀라 한 마디 씩을 내뱉었다가 루시의 게슴츠레한 눈을 보고서 헛기침을 하며 뒤로 물러선다.

   

   그를 보던 루시는 손바닥으로 반쯤 입을 가린 채 키득거리다가 프레이 쪽으로 다시금 시선을 돌렸다.

   

   “재미있는 건 오히려 이 쪽일 걸? 이 허접하고 허술한 아카데미는 공허를 믿는 병신들이 한 가득이니까.”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은 루시가 말하려는 바를 이해했다.

   

   진정 그들을 유모차 안의 아기처럼 아꼈다면 내버려두지 않고 함께 데려갔을 거라고.

   

   그들을 믿고 있기에 자신이 없는 이 곳에 남겨두는 거라고.

   

   “바보 검사가 너~무 무서워서 질질 짜며 도망치고 싶다 그러면 데려가주긴 할 건데. 어떡할래?”

   “…으음. 알겠어. 여기 있을래.”

   

   프레이가 아쉬움을 숨기며 뒤로 물러서자 루시가 말 잘 듣는 강아지 같아 귀엽다 웃고는 자리를 떴다.

   

   그렇게 남겨진 이들은 닫힌 문을 바라보며 저 마다 다른 생각을 했다.

   

   “일단 난 세실 형님 쪽에 언질을 주도록 하마. 자세한 건 아니라도 형님의 세력이 움직일 수 있도록 대비는 해둬야지.”

   

   아서가 자신이 생각한 것을 이야기하자 기다렸다는 듯 조이가 말을 잇는다.

   

   “그럼 저는 영애들께 주의하란 말을 해둘게요. 지난 납치 사건 때의 일이 있으니 크게 이상해보이진 않을 거에요.”

   “그럼 저도 교회 측에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른단 걸 전해두겠습니다. 학기 초의 일 때문에 다들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으니 일이 벌어졌을 때 빠른 대처가 될 거라 생각합니다.”

   “성녀님. 실례가 되는 말입니다만 모든 사제들에게 이야기를 전하진.”

   “걱정 마세요. 믿을 만한 사람에게만 이야기를 할 테니.”

   

   아서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듯 했지만 페이비는 그 눈빛에도 부드러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과거의 페이비였다면 저를 불쾌하게 여겼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다.

   

   주신의 아래에 있다고 하여 모두가 따뜻함을 지닌 게 아님을 눈으로 볼 수 있게 된 그녀는 아서의 걱정이 마냥 잘못된 게 아님을 알았다.

   

   그래서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페이비에게는 주신의 따스함을 지닌 이들이 눈에 보였으니까.

   

   그렇게 저마다의 이야기를 내뱉던 중 프레이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프레이. 어딜 가는 거냐.”

   “훈련하러.”

   “…훈련?”

   “뭐가 내 앞에 오더라도 베기 위한 훈련. 이번엔 루시한테 닿기 전에 내가 벨 거야.”

   

   *

   

   휴우우. 핑계가 먹혀서 다행이다. 프레이가 끈덕지게 달라붙었으면 엄청 귀찮았을 텐데. 그 녀석이 단순한 바보인 게 도움이 되기도 하는 구나.

   

   <무얼 준비할 생각인지 물어봐도 되겠느냐?>

   ‘크게 대단한 건 아니에요. 버로우 영지에서 그랬던 것처럼 대단한 걸 준비하긴 좀 그렇잖아요?’

   

   기적을 일으키고자 한다면 할 수 있긴 하다. 아르테아 백작가에 방문해서 기도와 축복을 내려주겠다 그러면 원하는 걸 다 손에 쥘 수 있을 테니까.

   

   정 안 되면 변태 사도한테 이야기해서 아르테아 백작 개인을 위한 장신구를 제작해주겠노라 이야기해도 되고.

   

   그럼에도 이를 생각하지 않는 이유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너무 눈에 띈다는 거다.

   

   안 그래도 장신구 때문에 이목을 끌고 있는 내가 기적을 일으켜봐라. 주신 교회 쪽에서 내게 시선을 둘 게 분명하지 않은가.

   

   주신의 사도라는 게 들켜선 안 되는 내 입장에서 그들의 관심은 껄끄러울 뿐이다.

   

   다른 하나는 내가 기적을 일으키면 루카가 좋아할 거란 사실이다.

   

   생각해봐라. 나 같은 학생이 일으킬 리 없고 일으켜서도 안 될 일이 루카가 만든 시나리오 아래에서 펼쳐지는 거다.

   

   그럼 루카는 마지막 그 순간에도 웃으면서 죽겠지.

   

   자신이 나라는 작품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면서.

   

   그럴 순 없다. 그래선 안 된다.

   

   그 분탕충 새끼의 최후는 허무해야한다.

   

   내가 루카 그 새끼한테 당한 게 얼만데! 저어어얼대 편하게는 못 보내 주지!

   

   모니터 너머에서의 일방적인 원한이긴 하지만! 어쨌든 그 놈이 웃으며 가는 꼴은 못 봐!

   

   ‘루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고 가장 싫어할 사람을 부르려고요.’

   <…네가 루카를 도발할 때 언급했던 인물이냐?>

   ‘네.’

   

   루카가 아카데미 교수가 되기 전 모험가로 살 때 함께했던 인물이며.

   

   스스로가 지닌 재능만으로 루카에게 절망을 안겨주었던 자.

   

   현직 검성.

   

   본래 게임 속 스토리에선 프레이에게 무척이나 중요한 영향을 끼쳐주었어야 할 인물.

   

   ‘하늘에서 빛나는 별을 보는 우둔한 암석의 심정은 어떨까요? 더 밝아진 별을 마주했을 때의 그 표정은 얼마나 재밌을까요?’ 

   

   상상만 해도 절로 웃음이 지어지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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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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