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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78

        

       상식 밖의 기이함.

       그리고 이 기이함은 수많은 가정을 불러온다.

         

       흉수가 채찍으로 맞는 것과 비슷한 상흔을 입히는 아티팩트를 사용했을 가능성, 촉수 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 소환수에게 살해당했을 가능성, 저주가 서려 있는 밧줄이라던가 머리카락 뭉치 등의 주물에 의해 당했을 가능성, 무인은 아니지만, 육체를 극한으로 단련한 사람이 채찍을 휘둘러서 죽였을 가능성, 연금술사가 채찍 형태의 무기를 장착한 골렘을 이용해서 무인을 살해했을 가능성….

         

       수많은 가능성.

       그래, 수많은 가능성이다.

         

       경찰 인력을 갈아 넣어야 할 정도의…수많은 가능성 말이다.

         

       경찰들은 이 끔찍한 사건에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무인끼리의 싸움으로 인해 사망자가 발생한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수준의 업무에 치일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그런데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불행은 혼자서 다니지 않는다는 말.

       불행은 항상 무리를 짓고, 파도처럼 들이닥치며, 압도적인 고통과 함께 사람의 마음을 휩쓸어버리려고 한다.

         

       그리고 지금 역시 그와 같으니.

         

       『 …시체가 발견되었습니다! 』

         

       『 뭐? 』

         

       불행이 친구를 불러왔다.

         

       아니, 어쩌면 두 불행은 하나의 불행이었을지 모른다.

       단지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이 불행의 반쪽이었을 뿐.

         

       『 하방 생태습지에서 시체 발견! 』

         

       또다.

       또 시체가 발견되었다.

         

       이번에 발견된 시체는, 나름 인적이 드문 곳에 속하는 하방 생태습지였다.

         

       『 하방 생태습지라고? 』

       

       하방 생태습지는 특정 기간에 가게 되면 흐드러지게 핀 꽃을 감상할 수 있는 아름다운 명소였다. 하지만 동시에, 인적이 드물고 자연 그대로라는 점 때문에 무인들이 시비가 붙었을 때 와서 쌈박질하는 곳이기도 했다.

       술 퍼먹고 쌈박질하는 무인들 때문에 습지가 망가지는 것이 일상이었는데, 경고를 해도 술을 처먹고 눈 돌아간 무인들이 말을 제대로 들어 먹지를 않아서 골머리를 앓게 했다.

       그 때문에 충주시는 무인들이 열심히 가꿔놓은 명소를 개판으로 만드는 것이 계속되자 아예 하방 생태습지 안에 싸우기 좋도록 널찍한 공터를 만들어놓았다.

         

       그 덕분에 하방 생태습지는 벚나무가 분질러지거나 열심히 심어두었던 핑크뮬리랑 코스모스가 쥐어뜯기는 대신에 공터만 울퉁불퉁하게 변하는 것으로 그치게 되었다.

       그렇게 하방 생태습지에 평화가 찾아온 것이다.

       비품도 부서지지 않고, 꽃도 나무도 멀쩡하고, 주기적으로 크레이터가 생긴 공터에 흙을 붓고 평탄화하는 작업만 하면 되었으니…. 충주시 입장에서도 최선은 아니어도 차선쯤은 되는 일이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말이다.

         

       그래.

       적어도 지금, 그 공터에서 시체가 발견되기 전까지는…모두에게 좋았다.

         

       『 일단 착용하고 있는 물건으로 볼 때 무인으로 추정됩니다. 』

         

       『 뭐? 추정됩니다? 뭔 미친 소리야? 얼굴 대조하면 되잖아? 그게 안 되면 지문을 따. 장비 안 갖고 갔어? 』

         

       『 …그게…. 시체의 상태가 좀 그렇습니다. 』

         

       하방 생태습지에서 발견된 시체는 끔찍했다.

       물론 모든 시체가 끔찍하기는 했지만…. 하방 생태습지에서 발견된 시체는, 그 끔찍한 시체 중에서도 특별하게 끔찍했다.

         

       일단 가슴에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총알구멍이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날붙이가 들어갔다 나오면서 구멍이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성인 남성의 주먹 정도는 너끈히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거대한 구멍이, 시체의 가슴에 뻥 뚫려 있었다.

         

       그리고 그 뻥 뚫린 구멍에는 무언가 있어야 할 것이…없다.

         

       가슴 안에 있어야 할 것.

       사람의 목숨과 직결된 것.

         

       심장.

         

       심장이 없었다.

         

       그뿐이 아니다.

         

       『 그리고, 피부가 미라 같습니다. 생기(生氣)를 다 빨린 것처럼 피부가 푸석푸석하고, 잔뜩 쪼그라들어 있습니다.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졌는데 도저히 생전에 어떤 모습이었는지 알 수가 없고…. 그리고 손가락 끝부분이 불어 있는데, 지금 가지고 있는 장비로는 지문을 딸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이거 전문가가 손대야 할 것 같아요. 』

         

       『 …그거, 시체 맞아? 아니. 시체는 맞겠는데…. 내 말은, 어디 무덤 파서 갖다 놓은 거 아니냐고. 』

         

       『 그건 또 아닌 것 같습니다…. 이 미라는, 눈알도 있고 혀도 있어요. 배를 살짝 눌러보니까 내장이 만져지는 게 내장도 멀쩡한 것 같습니다. 게다가 파리가 꼬이는 것도 보이는 걸로 봐서,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아요. 』

         

       『 구더기는? 』

         

       『 없습니다. 적어도 외관상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

         

       『 …한참 전에 뒈진 거라면 내장이랑 눈알, 혀는 없어야 정상이고…. 파리가 꼬이는 걸 보니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구더기도 없고 파먹은 자국도 없는 걸 보니 죽은 지 하루도 되지 않은 것 같고…. 이런 젠장. 』

         

       시체 하나로도 버거워 죽겠는데, 또 발견됐단다.

       심지어 그 시체가 어떤 사람인지 알지도 못하겠단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시체는 발견됐고, 수사는 해야 한다.

       그것도 그냥 대충 해서는 안 된다.

       공권력의 지엄함을 알리고, 충주의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서…그리고 시민들의 불안을 줄여주기 위해서 어떻게든 이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고 범인을 잡아야만 했다.

         

       그리고 그 말은 뭐다?

         

       사람을 갈아 넣어야 한다는 소리다.

         

       『 할 수 있는 수단 다 써서 빨리 범인 잡아! 』

         

       충주의 경찰들이 미친 듯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앞서 발견된 시체를 조사하기 위해 행했듯, 자그마한 실마리라도 잡기 위해서 온갖 인맥을 동원하고 온 신경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범인은 교묘했다.

       교활하고, 사악했다.

         

       『 하, 이거 참. 보이십니까? 무슨 수를 쓴 건지는 모르겠는데, 썩은 피를 손가락 끝으로 몰아넣었어요. 이거 그냥 썩은 피가 아니라 독성 물질들이 섞여 있는 것 같은데…. 부패를 촉진하는 용도인 것 같기도 하고…. 자세히는 모르겠습니다. 정밀검사가 필요할 것 같아요. 』

         

       『 지문 채취요? 아니 뭐 불가능하진 않을 것 같은데….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안 될 것 같단 말이죠. 이거 피 보이십니까? 열에 아주 민감해요. 열을 조금만 받으면 단백질을 녹여버리려고 난리를 치는데…. 그냥 평소대로 고온 처리법을 사용해서 지문 채취하려고 했으면 아마 손이 죄다 녹아서 망했을 겁니다. 』

         

       『 그렇다고 다른 방법이라고 괜찮냐 하면 그건 또 힘들 것 같습니다. 분말을 사용하는 것도 힘든 게, 뭔 짓을 했는지는 모르겠는데 손가락이 지금 반쯤 녹아내리게 만들어서…. 붓질만 해도 피부가 짓이겨질 것 같거든요. 예, 거의 녹은 아이스크림을 휘젓는 것처럼요. 』

         

       『 닌하이드린(Ninhydrin) 용액이나 시아노아크릴레이트(Cyanoacrylate)를 사용해서 따려고 해도…. 자, 보이시죠?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거? 이 독성 물질이 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네요. 』

         

       『 게다가, 이야. 이게 독성 물질 때문인지, 이 시체가 가지고 있던 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는데…. 마력을 사용해서 따는 것도 힘들고, 생기를 일시적으로 돋워서 따는 것도…. 이 독성 물질 때문에 힘들고. 아주 치밀합니다, 정말로 치밀해요. 뭐 이렇게까지 해도 지문을 못 딸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따려면 시간이 좀 걸리긴 하겠어요. 시간을 끈다는 생각이라면, 완벽한 성공이네요. 』

         

       『 진짜 보면 볼수록 감탄이 나옵니다. 이 정도면 일반인이 할 수 있는 게 아닌데…. 뭐 요원들끼리 싸우기라도 한 겁니까? 아니면 뭐, 킬러가 암살이라도 한 건가? 』

         

       대놓고 시체를 발견하게 했다.

       하지만 그 신원은 쉽게 알아챌 수 없게 만들었다.

         

       마치 경찰을 비웃는 것과 같은 행보였다.

         

       미지의 약품으로 지문을 딸 수 없게 만들다니!

         

       게다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 그리고 말입니다. 이거…. 제가 이 시체를 요원으로 의심한 게 말입니다. 크흠. 다들 놀라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

         

       『 자, 여기 쇄골 부분 보이십니까? 쇄골 윤곽이 좀 짙죠? 마치 쇄골에 화장이라도 한 것처럼? 자, 잘 보세요. 쇄골의 요 부분을 메스로 살짝 자르면…. 자, 이렇게 피부 한 겹이 슥 드러납니다. 이게 뭔지 아시겠습니까? 』

         

       『 예. 피부 한 겹을 벗겨냈는데 그 아래 피부가 또 있죠? 이거 특수분장입니다. 』

         

       『 근데 이게…참 이상한 말로 들릴 수도 있는데, 이거 이 시체가 원래 쓰고 있던 게 아니라, 범인이 씌운 것 같아요. 제가 왜 그렇게 생각하냐면…. 자, 제가 이 특수분장 천천히 벗겨낼 테니까 잘 보세요. 』

         

       『 보이십니까? 목 중간까지는 피부가 있는데, 그 위로 싹 벗겨진 거? 피하지방이랑 근육이 훤히 들여다보이죠? 게다가 색을 보세요. 이건 막 벗긴 겁니다. 이게 무슨 소리인지 아시겠습니까? 』

         

       『 예. 이 사람, 얼굴 가죽이 벗겨져서 특수분장을 하고 다닌 게 아니에요. 이 사람을 이렇게 만든 범인이 얼굴 가죽을 벗겨낸 다음, 특수분장을 씌운 거예요. 심지어 제대로 된 얼굴도 아니고, 무슨 미라 같은 모습으로. 』

         

       시체는 얼굴이 없었다.

       아니, 정정하겠다.

         

       얼굴이 있었지만, 도려내졌다.

         

       『 대체 무슨 목적으로 이런 짓을 벌인 건진 모르겠지만, 정말 싸이코 같지 않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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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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