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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79

        

       법의학자의 말을 들은 경찰들의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엽기 살인사건.

         

       새로 발견된 시체는, 엽기 살인사건이라는 이름을 달고 전국을 들썩이게 만들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국민을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것은 물론, 잘못하면 축제마저도 취소시키거나 연기시킬 수준의…어마어마한 파괴력이다.

         

       ‘아, 안 돼.’

         

       경찰들의 얼굴이 점점 하얗게 질려갔다.

         

       ‘가뜩이나 사건·사고도 연달아 일어났는데….’

         

       평화로울 때 터져도 나라를 뒤흔들 수준이다.

         

       그런데 그게 지금, 나라에 온갖 우환들이 들이닥친 지금 터져버렸다.

         

       전국 각지에 괴물들이 튀어나오질 않나, 괴물의 출현이 일본과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 때문에 나라가 뒤집히질 않나, 일본과 전쟁 직전까지 가지를 않나….

         

       온갖 끔찍한 사건·사고가 잔뜩 터지고, 사람들의 피로감이 극에 달하고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는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엽기 살인사건?

         

       터진다.

       안 좋은 쪽으로, 분명히 터진다.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던 사람들은 당장 무공축제인지 무술축제인지 때려치우고 범인이나 잘 잡으라면서 난리를 칠 거고, 정치권에서는 아직 불연소 상태가 된 일본에 대한 감정을 어떻게든 돌리기 위해 이 엽기 살인사건을 적극적으로 이용할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경찰들은 도마 위에 올라간 생선처럼 토막 나고, 회 쳐지면서 온갖 고생을 해야 할 것이 뻔했고.

         

       물론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을 때 멋지게 사건을 해결하면 오히려 이득이 될 수도 있기는 했지만….

         

       그게 되겠는가?

         

       경찰 일을 하다 보면 어떤 사건을 맡게 되었을 때 대충 견적을 낼 수 있게 되는 법.

         

       지금 이 건은, 그들이 감당할 수가 없는 건이다.

         

       감당할 수 없다.

       감당하기 싫다.

         

       그런데…해야 한다.

         

       어쩌겠는가.

       충주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인데.

       해야지….

         

       『 일단…. 이 미라 같은 시체는 과학수사대나 국과수에 맡기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도록 하지. 신원을 알 수 있는 시체가 있지 않나? 』

         

       일단 경찰들은 쉬운 것부터 해결하기로 마음먹었다.

       신원도 알 수 없고, 섣부르게 조사를 할 수조차 없는 시체에 신경을 쏟느니, 확실하게 신원을 알 수 있는 시체부터 조사하는 것이 바르다고 여긴 것이다.

         

       그렇게 경찰은 채찍에 맞아 죽은 시체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너덜너덜한 시체의 얼굴을 복원해서 신원을 확인했고, 사망한 사람이 일본에서 온 격투가임을 알아냈다. 그리고 그 격투가가 어젯밤까지 살아있었다는 것 역시 알아내었고,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아내었다.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

         

       경찰에게 양해를 구하고, 도장으로 격투가를 데리고 간 사람.

         

       몽골에서 온 무인, 타부다이.

         

       충주 세계무공축제에서 중요한 직책에 있는 외국의 무인이, 용의자로 올랐다.

         

       『 하, 돌겠네. 일본인이 한국에서 죽었는데, 용의자가 몽골인이다? 하….』

         

       심지어 명성을 꽤 떨치는 무인이며, 유명한 축제와 얽혀있기까지 하다.

         

       국제적인 문제로 비화하기 딱 좋았다.

         

       『 진짜 돌아버리겠다. 지금 전쟁 직전이었다가 서서히 좀 분위기 가라앉고 있는데, 이거 알려지면 일본이랑 진짜 전쟁하는 거 아니야? 』

         

       하필이면 얽혀있는 게 일본이랑 몽골이다.

       전쟁 직전까지 갔던 일본이 얽혀있는 게 재앙인 것은 당연한 이야기고, 요새 중국과 러시아를 오가며 이상한 기류를 보이는 몽골 역시 주의해야 해야 하는 나라였다.

         

       『 아니, 전쟁이 문제가 아니지. 이건 무조건 정치권이랑 얽히겠는데…. 하. 』

         

       그리고 그 말은 뭐냐?

       정치권이 이 사건에 관심을 가진다는 소리다.

         

       그리고 정치권이 이 사건에 관심을 가진단 소리는, 이 사건이 전국적으로 알려지고 시끌벅적해진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도 했으며, 정치권에서 분위기를 전환하고 국민의 이목을 집중하기 적합한 용도로 사용된다는 것을 말하기도 했다.

         

       그렇게 사람들이 물고 뜯고 맛보기 좋게 밥상 위에 올라가고….

       일선에서 뛰는 경찰은 욕받이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수명이 두 배로 늘어날 정도로 욕을 바가지로 처먹고, 때에 따라서는 무능력한 인사 취급받으면서 출셋길이 막혀버릴 수도 있으리라.

         

       활약한다고?

       그래, 활약하면 오히려 출셋길이 열릴 수도 있다.

         

       그런데…만약 국제적인 문제로 커지면?

       그러면 활약한 인사가 정말 어지간한 수준이 아닌 이상, 제물로 바쳐지며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리라.

         

       뒤에서 부채질한 정치인과 권력자들은 쏙 빠지고, 일선에서 뛰었던 이가 제물로 바쳐져 난도질당하게 될 것이다.

         

       국제적인 문제로 커지지 않을 수도 있지 않냐고?

       그럴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없지는 않은데….

         

       타부다이가 몽골에서 떨치고 있는 유명세를 생각해본다면, 그 가능성은 적어 보였다.

         

       하지만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다.

       당연하지만, 깽값 물어주고 끝낼 수 있는 폭행 사건도 아니고 살인사건의 용의자를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었으니까.

         

       게다가….

         

       『 타부다이가 데려간 사람이 두 사람이야. 일본인 격투가, 한국인 검사. 그리고 그다음 날 일본에서 온 격투가의 시체가 발견되었고, 검사로 추정되는 신원 미상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하. 』

         

       타부다이가 한 사람이 아닌, 두 사람을 죽인 것으로 의심되니 더더욱 봐줄 수 없었다.

         

       『 신원을 알 수 없는 시체…. 속단하기는 좀 그런데, 정황상 한국인 검사가 맞아. 』

         

       『 어디, 이름이…. 이철혁. 평안남도 태생이었다가 북한 멸망 후 내려와서 남한에서 자랐고…. 북한에서의 이름은 리충일. 』

         

       『 충주 세계무공축제를 위해서 2주 전부터 충주에서 머무르기 시작했고…. 어제 일본인 격투가와 말싸움을 하다가 타부다이에게 제압당해서 끌려간 뒤 행방불명. 숙소나 자주 가는 곳 어디에서도 목격된 바 없음….』

         

       신원을 알 수 없는 시체.

       지문도, 얼굴도 없는 시체.

       현재 이철혁의 숙소에서 발견한 머리카락과 시체에서 채취한 머리카락을 비교해서 유전자 감식으로 신원을 밝혀내려 하는 그 시체.

         

       이철혁으로 추정되는 사람을 죽인 용의자 역시…타부다이였다.

         

       『 일단 일본인 격투가에게 대입해본다면 말이 안 되는 건 아니야…. 경지 차이도 크게 나고, 채찍을 써본 적 없을 테니 흔적이 그런 것도 이해되고…. 일본인 격투가를 죽일 수는 있을 것 같기는 한데….』

         

       『 그런데 이철혁으로 추정되는 시체는…. 이걸 그 무인이 이렇게 만들었다는 건 이해할 수가 없는데….』

         

       하지만 이상하다.

       말이 되는 듯하면서도 말이 되지 않는다.

         

       기이하고, 기괴하다.

         

       그나마 일본인 격투가는 상식선에서 생각할 수 있지만…. 이철혁으로 추정되는 시체는 그가 가지고 있는 상식으로는 도저히 재단할 수가 없었다.

         

       『 일단 수사부터 해야지. 뭐, 조사하다 보면 뭐라도 나오겠지….』

         

       그렇기에 경찰들은 망망대해를 헤엄치는 듯한 막막함을 느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고, 섬도 배도 보이지 않는 적막한 바다.

       흔들리는 물결과 저 멀리에서 관심이란 이름의 폭풍우가 몰려오는 것이 보이는…망망대해.

         

       그곳에서 경찰은 헤엄쳐야만 했다.

         

       하지만, 바다 한가운데에 떨어져도 희망은 있는 법.

         

       속된 말로 맨땅에서 헤딩해야 하는 경찰에게 동아줄이 내려왔다.

         

       [ 이보게. 나 일검 그룹의 장영철이야. ]

         

       재벌.

       일검 그룹의 전 회장, 장영철.

         

       그가 충북경찰청장에게 연락한 것이다.

         

       [ 어, 어르신! 안녕하십니까! ]

         

       [ 그래. 저번에 모임을 할 때도 봤었지? ]

         

       [ 예. 그간 강녕하셨는지요? ]

         

       [ 그래, 뭐 모임 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큰일이 있었겠나. 내 몸이야 멀쩡하다네. 그런데….]

         

       장영철은 허허 웃으면서 말하다가 말을 잠시 멈추더니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 내 듣기로, 자네는 그리 안녕하지 않은 모양이야? ]

         

       [ …그. ]

         

       [ 아, 내가 뭐 떠보려고 하는 말이 아니네. 자네도 알다시피 우리 일검 그룹이 충주 세계무공축제를 후원하고 있지 않나? 그런데 오늘 충주에서 무슨 사건이 터졌다면서 보고가 올라왔는데, 내가 그걸 보고 기함해서 이렇게 연락하였어. ]

         

       [ 아, 보고가….]

         

       [ 허허. 뭐 어디 야산에 파묻힌 게 발견된 것도 아니고, 대놓고 사람 오가는 데에 시체가 놓여 있으면 당연히 나한테도 보고가 오지. ]

         

       [ …. ]

         

       [ 그래서, 내가 그 소식을 듣고 자네가 큰 곤경에 빠져있을 것 같아서 연락하였어. 딱 봐도 범상치 않은 사건인데다가, 출셋길 막히기 딱 좋은 상황 아닌가. 내가 정치인이라면 자네를 희생양으로 삼으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일 것인데….]

         

       [ 예, 어르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

         

       [ 그렇네. 뭐 정치권에서 본격적으로 나서면 이 힘없는 늙은이가 뭘 할 수 있겠나? 하지만 사람이 정이 있지. 모임에서 자주 만나고, 친분도 나누고. 우리 꽤 괜찮은 사이 아니었는가. ]

         

       [ 예, 물론입니다. ]

         

       [ 그래서 하는 말인데, 내가 자네를 좀 도와주려고 하네. 정치인들이 냄새 맡고 하이에나처럼 물어뜯으려고 몰려들기 전에, 이 사건을 해결할 수 있도록 내가 도움을 좀 주려고 한다 이 말이야. ]

         

       충북경찰청장은 그 말에 눈을 번쩍 떴다.

         

       [ 도움, 말씀이십니까? ]

         

       [ 그래. 거, 대단한 도움은 아니네. 그 일본인이 죽은 건 어쩔 수 없는데…. 그, 습지에서 발견되었다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

         

       [ 예. ]

         

       [ 그, 리충일이라는 사람 시체. 내가 보고를 보고 퍼뜩 떠오르는 게 있었거든. 뭔가 시체 상태가 기괴한 것이, 주술과 연관이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딱 들었다 이 말이야. ]

         

       [ 주술, 말입니까? ]

         

       [ 그래. 때마침 내가 알게 된 주술사가 있어. 자네도 알 것 같은데, 얼마 전에 TV에도 나온 대한민국 토종 주술사. 이름은 박진성이라고 하는데. ]

         

       [ 아, 네. 들어봤습니다. 그 광양 그룹의…?]

         

       [ 그래, 그 광양 그룹의 박진성이. 내가 자네 생각에 그 박진성이한테 연락했어. 그러니까 박진성이가 사정을 딱 듣고는 말이야, 흔쾌히 돕겠다고 하더군. 지금 서울에서 충주로 내려가고 있을 텐데, 몇 시간 후면 도착을 할 거야. 나이는 젊지만, 실력은 있으니, 큰 도움이 되겠지. ]

         

       주술사가 수사를 돕는다…?

         

       좋다.

       아주 좋다.

         

       충북경찰청장은 박진성이 정확히 무슨 주술을 사용할 수 있는지는 몰랐다.

       하지만 점을 치든, 영혼을 불러오든, 기기묘묘한 주술로 흔적을 읽어내거나 증거를 찾아내든….

         

       어떻게든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설령 수사에 도움이 되는 주술을 익히지 않는다고 해도 나쁘지 않았다.

       희귀한데다가 다루기 힘든 기인인 주술사마저 설득해서 수사에 참여하게 한 것만으로도, 자신이 최선을 다했다고 주장하는 것이 가능했으니까.

         

       이 점을 잘만 어필한다면 난장판 속에서도 몸을 지킬 수 있으리라.

         

       [ 감사합니다, 어르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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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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