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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79

       까맣게 그을린 세상 위에 타들어 가는 촛불의 심지마냥 제 목숨을 불태운 여인이 쓰러진다.

         

       털썩!

         

       죽음이란 늘 그런 것이었다.

         

       죽어 마땅한 희대의 악인조차도 일순 안쓰럽게 여길 만큼 참담하고, 참혹한 것.

         

       물론 한순간의 감정일 뿐이다.

         

       죄는 살아서 짓고, 죽은 이에겐 더 이상 죄가 없다고 한들 그녀에게는 어떤 동정 어린 감정도 생겨나지 않았다.

         

       “…할 일은 해야지.”

         

       곳곳이 까맣게 그을린 진미연의 시신에 칼을 박아 넣는 백우진.

         

       쩌적!

         

       딱딱하게 굳어버린 가슴을 열자 보이는 한 방울의 피조차 남아 있지 않은 매캐한 내부.

         

       그곳에서 여전히 열기를 내뿜고 있는 화행신주가 보인다.

         

       예상대로였다.

         

       “역시 화행신주가 맞았구나.”

         

       이미 확신에 가까운 예상을 품고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 느낌이 또 다르다.

         

       머릿속에 가장 강하게 남는 것은 다름 아닌 의구심.

         

       ‘어째서 그녀에게 화행신주를 주었지?’

         

       초원을 헤집고, 고원에 자리한 대문파를 멸문에 가까운 피해를 입혀 가며 얻은 보물이다.

         

       모르긴 몰라도 그녀의 계획에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기물인 것은 분명한데, 어찌하여 그런 귀한 물건을 진미연의 손에 쥐여 보냈을까.

         

       “벌써 오행신주의 쓰임새가 다 한 건가?”

         

       불길한 생각이 들었으나, 그것은 아닐 듯했다.

         

       그 근거는 조금 전 진미연의 태도였다.

         

       “분명히 나뿐만 아니라 곤륜산 전체를 불태우려고 했었지.”

         

       마지막으로 선보인 거대한 화구.

         

       그것은 분명 위력적이었으나, 효율적인 공격 수단은 아니었다.

         

       자신에게 복수하기 위함이었다면 더더욱.

         

       ‘나를 죽일 생각이었다면 더 작고, 날카로운 공격을 퍼부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녀는 압축 대신 비대해지기를 택했다.

         

       어째서 그런 선택을 하게 되었을까.

         

       그녀가 멍청해서?

         

       ‘그건 아니야.’

         

       미친 여자일지언정 멍청한 여자는 아니었다.

         

       자신을 죽이는 데에 어느 공격이 더 효율적인지 모를 리가 없다.

         

       결국 그러한 선택에는 제 죽음만이 아니라, 다른 목적 또한 숨겨져 있었다는 건데.

         

       “곤륜산….”

         

       어쩌면 곤륜산을 태우는 것 자체가 목적이었는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머릿속을 스친다.

         

       분명 제수천류에 곤륜산 어딘가에 제단이 있다고 적혀 있다.

         

       과거 신에게 오행신주를 하사받았던 바로 그곳.

         

       만약 자신이 그곳을 찾지 못하게 하는 것 또는 당도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목표였다면?

         

       ‘그걸 원한 게 천마라면…, 모든 게 아귀가 들어맞아.’

         

       그녀가 진미연에게 화행신주를 준 까닭도, 곤륜산 전체를 불태우려 했던 마지막 공격도.

         

       그에게 의구심을 안겨주었던 난제들이 전부 해소된다.

         

       “그렇다면 결국…, 그녀가 제단에서 무언가를 꾸미려 한단 얘기가 되는데.”

         

       분명 평범한 제단은 아닐 터다.

         

       신이 오행신주를 내려준 제단이니 또 다른 무언가를 꾸미는 것 역시 불가능하진 않을 테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제단을 찾는 게 우선이겠지.”

         

       그녀가 제단을 통해 무엇을 꾸미려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일이 그리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게 만들었음은 확신한다.

         

       ‘오행신주 중 세 개가 내 손에 들어왔다.’

         

       기존에 지니고 있던 목행신주와 수행신주에 이어 화행신주까지.

         

       다섯 개 중 무려 세 개를 손에 넣었으니 그녀의 계획에도 심대한 타격이 전해졌을 터.

         

       그러한 상황에서 그녀가 일을 꾸밀 것으로 예상되는 제단까지 찾아낸다면?

         

       ‘그곳에서 농성을 준비한다면 승산은 더욱 높아진다.’

         

       진법, 기관, 그리고 사람.

         

       가용할 수 있는 것들을 모두 동원하여 제단 주변에 철옹성을 쌓아 올린다.

         

       만반의 준비가 끝난 상태에서 그녀를 맞이할 수만 있다면 분명 승산은 크게 상승할 터.

         

       ‘예상되는 시작의 때는 일식(日蝕).’

         

       남은 시간은 충분하다.

         

       그때까지 부지런히 움직여 제단을 찾고, 농성의 준비를 끝마칠 수만 있다면.

         

       이를 도와줄 만한 이들 또한 존재한다.

         

       수백 년간 곤륜산에 터를 잡고 무공을 갈고닦은 곤륜파.

         

       그들이라면 제단을 찾는 데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그럼 곧장 장문인을….’

         

       곤륜파의 장문인에게 사정을 설명하면 분명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

         

       그리 생각하며 걸음을 옮기려던 백우진은 이내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저 멀리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는 곤륜파의 제자들이 보인다.

         

       “아아…, 어찌하여 이런 일이…!”

       “으허헝! 푸르른 녹음은 어디 가고, 매캐한 냄새만 가득하냔 말이야….”

         

       모두가 눈물 흘리며 가슴 아파하고 있다.

         

       앞서 말했듯, 이곳은 수백 년간 지켜온 그들의 터전.

         

       청해성 밖에서 수도 없이 치고받고 싸우기를 반복하고, 정마대전 때 중원의 절반 이상을 빼앗겨 위기에 봉착했을 때도 굳건히 지켜냈던 그들의 역사이기도 한 곤륜산이 불에 타 수백, 수천 그루의 나무들이 불타 앙상한 흔적만을 남긴 채 죽어버렸다.

         

       하루아침 사이에 자신들의 터전에,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이 남게 되었으니 그 슬픔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그들의 모습을 보며 백우진은 우선 순위를 정했다.

         

       “…도움 요청은 며칠만 뒤로 미루자.”

         

       그들의 의욕을 고취시키기 위해선 일단 그들을 도와 터전을 바로잡는 것이 우선시되어야 할 듯했다.

         

         

       * * *

         

         

       진미연의 죽음 소식은 얼마 지나지 않아 천마의 귀에도 흘러들어왔다.

         

       이와 더불어 그녀의 발악에 곤륜산 일부가 불타고, 이를 수복하기 위한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라는 것까지.

         

       “결국 그리되었나.”

         

       이미 세상을 떠난 그녀가 보면 피눈물을 흘릴 만큼 슬프게도, 천마는 그녀의 죽음에 어떤 감정도 내비치지 않았다.

         

       아니, 내비치지만 않은 게 아니라 속내 또한 겉과 다르지 않았다.

         

       그저 예정되어 있던 일이 마침내 펼쳐졌구나, 하는 당연한 감정뿐.

         

       그녀는 물었다.

         

       “백우진…, 그자도 곤륜산을 수복하기 위한 작업에 동참하고 있나?”

       “예. 백우진과 그를 따르는 조원들 모두 도움을 주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머릿속에 자연스레 떠오른다.

         

       진미연의 죽음 이후 그가 떠올렸을 생각이나, 표정 등.

         

       ‘그녀의 죽음은 네게 많은 생각을 안겨주었을 테지?’

         

       그녀는 누구보다도 그를 잘 안다.

         

       지나치게 똑똑하고, 지나치게 강한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평범하디 평범한 인물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만큼 능력이 충분히 발휘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고, 그 시간을 벌기 위해 너무나도 많은 이들이 그를 대신해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그 죽음 하나하나가 그의 성장을 촉진했다.

         

       ‘너는 늘 하나라도 더 많이 생각하려고 노력했지.’

         

       적이 보이는 작은 움직임, 말투, 시선에서 작은 정보라도 얻고자 무던히도 애쓴다.

         

       그것을 모으고 또 모아 커다란 조각을 완성하기 위하여.

         

       그렇게 만든 조각이 자신이 아끼는 이들을 보호하는 방패가 될 것이라 믿었기에.

         

       ‘하나 이번만큼은 아닐 것이다.’

         

       이번만큼은 그 노력이 그의 발목을 붙잡을 것이다.

         

       그것이 그녀가 원하는 것이었다.

         

       하여 백우진을 향한 복수심으로 가득 차 있는 그녀에게 지시를 내렸고, 힘을 원하는 그녀에게 화행신주까지 쥐여 주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고 하였다.

         

       그러한 과정에서 백우진은 느꼈을 터다.

         

       자신을 죽이고자 하는 복수심 외에 그녀에게 주어진 임무가 존재한다는 것을.

         

       진미연의 행동에서 근거를 얻은 그는 마침내 곤륜산이야말로 마지막 격전지가 되리라 굳게 믿고서 자신을 맞이할 준비에 한창 열을 올리고 있을 테지.

         

       ‘곤륜파를 돕는 것 또한 그것을 위해서일 테고 말이야.’

         

       하나, 그는 모를 것이다.

         

       그것이 전부 제 계획이라는 것을.

         

       그녀는 바랐다.

         

       그의 몸이 곤륜산에 얽매여 섣불리 돌아다닐 수 없게 되는 순간을.

         

       오직 그녀만을 위해 마련된 옥좌.

         

       그곳에서 몸을 일으킨 그녀가 부복한 사내를 향해 지시했다.

         

       “제단으로 떠날 테니, 오늘 내로 채비를 마쳐두도록 하여라.”

       “존명.”

         

       준비는 모두 끝났다.

         

       이제는 밑바탕으로 그려둔 그림에 색을 입힐 차례.

         

       오랜 시간 어둠 속에 숨어서 때를 기다리던 그녀가 마침내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곤륜산은 빠르게 회복되었다.

         

       수행을 위해 매년 그곳을 찾는 수행자들.

         

       곤륜파의 제자들에게 도움받은 적 있는 인근 주민들.

         

       청해성의 무인들, 심지어 성주까지.

         

       그들이 한평생 쌓아 올린 덕이 위기의 순간에 빛을 발했다.

         

       모두가 도움을 자처하고 나섰다.

         

       누군가는 인력을, 누군가는 물자를.

         

       그렇게 모인 것들이 불에 탄 곤륜산을 빠르게 수습하는 데에 전부 쓰였다.

         

       물론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노력한들 화행신주의 기운에 타들어 간 흔적은 쉬이 지울 수 없기에.

         

       다만, 마련은 해두었다.

         

       까맣게 그을린 땅 위에 새롭게 돋아난 새싹들.

         

       그것들이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새로운 거목이 되어 산을 가득 채울 수 있도록.

         

       어느 정도 사태를 수습한 백우진은 곧장 곤륜파의 장문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리고 이는 손쉽게 받아들여졌다.

         

       모두가 아는 까닭이었다.

         

       그가 없었다면 곤륜산은 지금의 형태조차 남아 있지 않았을 것임을.

         

       “제단을 찾으란 말씀이시지요?”

       “곤륜산에 제단이 꽤 많은데…, 부지런히 돌아봐야겠습니다.”

         

       모두가 제 일인 것처럼 발 벗고 나섰다.

         

       백우진은 그들과 함께 곤륜산 곳곳을 누비며 제단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자신이 간과했던 사실을 깨달았다.

         

       “…제단이 뭐 이리 많아?”

         

       숨겨진 제단을 어떻게 찾아야 하나 걱정할 게 아니라, 곤륜산 곳곳에 놓인 수많은 제단 중에 무엇이 진짜 자신이 찾는 제단인지 구별할 방법을 알아내는 게 급선무임을.

         

       “돌겠네, 정말.”

         

       제수천류를 아무리 뒤져 봐도 제단의 모습에 관해서는 나오지 않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장문인의 허락을 받아 곤륜파의 서고까지 찾아보았지만 마찬가지.

         

       작은 실마리조차 없어 끙끙거리며 앓는 데에 시간을 허비하고 있을 때였다.

         

       무엇이라도 해봐야겠다 싶어 또 다른 제단을 찾아 산을 뒤적이고 있을 무렵.

         

       덜그럭

         

       허리춤에 매고 있던 호리병이 멋대로 몸을 떨어대기 시작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서 죄송합니다.

    오늘은 썼다가 지우는 양이 더 많아서 한 편 마무리 짓는 데에 너무 오래 걸렸네요.

    그럼 저는 다음 편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매번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 되셔요. (_ _)

    다음화 보기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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