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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8

       

       

       

       

       나는 고개를 흔들어 잠을 쫓아냈다. 

       

       ‘그래, 하마터면 경계를 늦출 뻔했어.’

       

       배가 부른 상태에서 아르의 말랑한 배를 만지며 뀨 소리를 듣다 보니 마음이 자꾸 풀어지는 것 같은데….

       

       ‘정신 바짝 차려야지.’

       

       무엇보다 아까부터 거리가 자꾸만 가까워지는 실비아를 좀 멀리 떨어뜨려 놓을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실비아 씨, 조금 떨어져 주실래요?”

       

       나는 나름 눈에 힘을 주며 단호하게 말했다. 

       

       솔직히 아까도 그렇고 내가 대놓고 경계하는 눈빛을 보냈었는데, 둔감한 건지 일부러 모르는 척하는 건지 아랑곳하지 않고 자꾸 접근해 왔다.

       

       나보다 객관적으로 실력이 뛰어나니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여기는 것 같아 괜히 자존심이 조금 상하는 것 같기도 했다. 

       

       ‘지금도 보나마나 또 능구렁이처럼 빠져나가려 하겠지.’

       

       하지만 이번에는 내 예상이 틀렸다. 

       

       “레온 씨…. 레온 씨는 왜 그렇게 절 싫어하세요…?”

       

       내 옆에 앉은 실비아는 풀이 죽은 표정으로 시선을 떨궜다. 

       

       “저는 레온 씨랑 아르 맘에 들려고 노력하는데, 레온 씨는 제가 싫으신 거 같아요. 제가 뭔가 잘못한 게 있나요? 그렇다면 사과드릴게요.”

       

       실비아의 에메랄드빛 눈에 수심이 드리웠다. 

       실비아는 다소곳이 무릎과 손을 모은 채, 검지를 서로 톡톡 부딪쳤다. 

       

       “…….”

       

       예상치 못한 대답에 나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왜 그렇게 자기를 싫어하냐니….’

       

       그야 온천에서부터 자꾸 수상한 행동을 하니까….

       

       ‘…라고 말할 수가 없잖아?’

       

       딱히 실비아를 ‘싫어한다’고 하기보다는 ‘경계하는’ 쪽이지만, 어쨌거나 조금 생각해 보니 나는 지금 그 이유를 말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실비아는 온천에서 나에게 ‘귀여운 드래곤이네요’라고 말했던 게 농담이라고 하고 자리를 떴다. 

       

       ‘그런데 내가 지금 그것에 대해 걸고 넘어지면, 오히려 드래곤임을 인정하는 게 돼 버려.’

       

       물론 실비아의 행동은 내 입장에서 볼 때에는 하나하나가 수상한 게 맞다. 

       

       하지만 실비아가 그게 의도한 행동이 아니었다고 한 이상, 내가 거기다 대고 뭐라고 해 봐야 도둑이 제 발 저린 꼴이 될 뿐이었다. 

       

       나는 결국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 실비아 씨를 싫어하는 건 아니에요. 다만 처음 본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접근해 오시니 제 입장에서는 조금 부담이 된다고 할까….”

       “부담이요?”

       “네. 으음…. 솔직히 말하면 이렇게 예쁜 분이 저한테 자기 스타일이라고 하면서 다가오는 것 자체가 수상하죠.”

       

       나이스.

       내가 생각해도 꽤나 잘 둘러댄 것 같다. 

       

       드래곤이라고 해서 수상한 게 아니라, 이렇게 예쁜 사람이 나한테 맘에 든다면서 접근한다는 게 수상하다. 뭔가 목적이 있는 것 같다.

       이렇게 스탠스를 잡고 나가면 드래곤 얘기를 꺼내지 않고도 실비아를 밀어 낼 수 있는 명분이 생긴다. 

       

       ‘후후. 빙의 전의 경험 중 레키온 사가와 관련되지 않은 경험이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저기요, 혹시 번호 좀 알려주실….

       -아, 죄송합니다. 저 무굡니다.

       

       집에서 나와 자취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나는 고시원에서 좀 정상적인 월세집으로 가기 위해 상하차도 마다하지 않고 돈을 모으고 있었다. 

       

       ‘그리고 당시 뉴튜브 알고리즘에는 보이스 피싱이나 사이비 종교에 대한 뉴스가 꽤나 자주 떴었지.’

       

       한 번만 제대로 걸려도 자신이 모았던 모든 돈을 사기꾼들에게 몽땅 빼앗길 수 있다고 생각하니 등골이 서늘해서, 나는 해당 영상의 댓글들을 참조해 그런 걸 예방하는 방법을 몇 가지 알아냈다. 

       

       ‘보이스 피싱 같은 경우는 뭐, 모르는 번호로 오는 전화는 안 받으면 그만이라고 하지만, 사이비 종교는 특히 멀쩡한 고학력자들도 어쩌다 꾀임에 넘어가 돈을 스스로 갖다 바치게 된다고 하니 말만 들어도 무서웠지.’

       

       특히 놈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법이 이성적으로 접근한 뒤 물 흐르듯 종교에 빠져들도록 만드는 거라고 했다. 

       

       —이거 하나만 기억하면 사실 큰 문제 없다. 1. 나한테 관심이 있는 여자는 없다. 2. 나한테 관심이 있는 것 같은 여자가 있다면 1번을 보라.

       ┖이게 마따.

       ┖ㅇㄱㄹㅇ

       ┖특히나 예쁜 여자가 나한테 웃는 얼굴로 접근한다? 100프로임.

       

       좋아요 1.7만 개를 받은 해당 댓글을 마음속에 새긴 나는 언젠가 예쁘장한 여자 한 명이 길에서 번호를 물었을 때, 넘어가지 않고 단호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하물며 실비아 씨처럼 그냥 예쁜 게 아니라 내 이상형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사람이 내게 접근을 한다? 이거 백 퍼센트 뭔가 있거든.’

       

       실비아 씨가 나한테 ‘제 스타일이라서요’라고 했을 때 솔직히 마음이 아예 동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나는 더더욱 마음을 다잡았다. 

       

       “큐우우…. 큐우….”

       

       그래, 이렇게 자는 아르의 말랑뚠뚠한 배를 쓰다듬으면 특히 마음이 잘 다스려진단 말이지.

       

       역시 아르밖에 없다니까.

       

       ‘여튼. 이제 확실히 이유까지 말했으니 물러나시겠지.’

       

       아니나 다를까, 내 대처가 먹혀 들어갔는지 실비아는 조금 나에게서 떨어져 앉았다. 

       

       그리고 조금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계신 줄은 몰랐네요. 제 진심을 알아주시지 않는 건 조금 섭섭하지만…. 어쩔 수 없죠. 레온 씨가 절 믿으실 수 있게 제가 더 노력할게요.”

       

       아니, 그러니까 그렇게 노력하지 말고 안전 거리만 좀 유지해 달라는 건데….

       

       ‘그 와중에 씁쓸하게 웃는 것도 사기적으로 예쁘네.’

       

       생각해 보면 내가 빙의 초반에 계획한 ‘레온의 행복 라이프 플랜’에는 딱 저렇게 예쁜 여자와 알콩달콩 사는 게 포함돼 있었다. 

       

       ‘만약 이런 사람과 결혼해 인적 드문 곳에서 아르를 키우며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면….’

       

       그런 생각을 하던 나는 다시금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고마워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제가 실비아 씨를 싫어하는 건 아니니 너무 섭섭해하진 마세요.”

       “알겠어요. 고마워요, 레온 씨.”

       

       실비아 씨는 물러나 앉은 채 바른 자세로 아까 마시던 우유를 마저 마셨다. 

       

       “…….”

       

       다시 마차는 조용해졌다.

       

       “드르렁….”

       

       마이어 씨도 이미 우유 한 병을 마시고 푹신해 보이는 목베개를 목에 끼운 채 앉아서 잠들었고.

       

       “뀨우우, 큐우….”

       

       아르는 아까부터 이미 자고 있었고.

       

       “…….”

       

       이제는 실비아 씨도 물러나 앉은 채로 눈을 살며시 감고 있었다. 

       

       ‘…진짜 졸려 죽겠네.’

       

       안 그래도 졸음을 억지로 쫓았는데, 이렇게 긴장이 풀리고 나자 한 번에 잠이 밀려오는 것 같았다. 

       

       ‘실비아 씨도 이번엔 자는 것 같으니까…. 잠시 눈을 붙이는 것 정돈 괜찮겠지?’

       

       한 10분 정도만 잠깐 졸고 일어나면 개운해질 거다. 

       

       “뀨우. 뀨우….”

       “으응, 아르야. 깼어?”

       “뀨….”

       “응, 다시 안아 줄게.”

       

       깊이 잠든 것 같아서 무릎에 내려 놓았더니 뒤척이다가 잠깐 깬 모양.

       

       “뀨우….”

       

       졸린 탓에 눈은 반 밖에 뜨지 못한 채 안아 달라는 듯 팔을 내 쪽으로 뻗는 아르를 다시 품에 꼭 안아 주자, 아르는 만족한 듯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몸을 말았다. 

       

       ‘그래, 이렇게 아르를 계속 안고 있으면 졸다가도 잘 일어나지겠지.’

       

       나는 아르를 안은 채로 결국 쏟아지는 졸음을 받아들여 눈을 감았다. 

       

       “큐우우….”

       

       고개가 떨궈진 탓인지, 아르의 숨소리가 가까이서 들렸다. 

       

       ***

       

       마차 안의 모두가 잠들자마자, 실비아는 조용히 눈을 떴다. 

       

       ‘후후, 드디어 잠드셨네.’

       

       아까부터 자신을 경계한다고 졸음을 억지로 참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안쓰러워, 일부러 자는 척을 했더니 이내 레온은 마음을 놓고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아르 역시 레온의 품이 굉장히 포근한 듯, 행복한 얼굴로 레온의 옷자락을 꼬옥 잡은 채 자고 있었다.

       

       ‘귀여워….’

       

       실비아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그런 아르를 바라보았다. 

       

       “뀨우웅….”

       

       아르는 뭔가 맛있는 걸 먹는 꿈을 꾸는지 입을 벌렸다가 챱, 하고 입을 다문 채 오물오물거리고는, 곧 눈을 초승달처럼 접으며 웃었다. 

       

       ‘잠꼬대 하는 것 좀 봐….’

       

       저렇게 뽀짝한 해츨링이 후에 커서 카르사유 님처럼 엄청난 드래곤이 된다니. 

       

       지금으로서는 잘 상상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난 카르사유 님을 직접 뵌 적이 없지만…. 할아버지 말을 들어 보면 정말 어마어마하셨다고 했지.’

       

       찬란한 은빛 비늘은 그 어떤 검으로도 벨 수 없으며, 어떤 마법으로도 뚫을 수 없고.

       마법에 대한 이해도와 응용력은 모든 종족뿐 아니라, 같은 드래곤들 사이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으며.

       그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 섬광과도 같은 브레스는 그것에 닿은 모든 것을 무無로 돌려 놓는다고 알려진, 최후의 실버 드래곤 카르사유.

       

       “뀨웅….”

       

       그리고 그가 남긴 유일한 후손.

       천 년 후에야 알에서 깨어난 작은 해츨링.

       

       ‘그런 해츨링이 정말 이렇게 귀여워도 되는 걸까.’

       

       어쩌면 카르사유 님도 해츨링일 적에는 이렇게 귀여웠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실비아의 입가에 절로 웃음이 걸렸다. 

       

       덜커덩.

       

       그렇게 실비아가 평화로운 광경을 마음껏 눈에 담고 있던 어느 순간. 

       

       “……!”

       

       자신의 감각망에 낯선 기척이 들어온 걸 감지한 실비아의 눈이 매섭게 변했다. 

       

       ‘스캔(Sc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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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I Picked Up a Hatchling

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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