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48

       시한부.

         

       누구나 알겠지만, 앞으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

         

       나는 프란체에게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했다.

         

       시한부이지만, 마법만 있다면 소드 마스터의 생명력을 토대로 때를 늦출 수 있다는 거짓말.

         

       카자르는 알 것이다.

         

       이게 개소리라는 걸.

         

       “소드 마스터가 시한부라니, 그게 말이 돼요?”

         

       그래서 저런 소리를 하는 거고.

         

       “전쟁에서 마법사에게 당한 상처라고 했어. 마법사가 주변에서 꾸준히 돌보지 않으면 증상이 악화될 거래.”

         

       카자르가 일그러진 얼굴로 나와 프란체를 번갈아 봤다. 지금 대체 뭔 개소리를 하고 있나 싶겠지.

         

       일반적으로 오러라는 힘을 깨워 소드 마스터의 경지까지 오른 사람은 쉽게 병에 걸리지 않는다. 그게 저주건, 마법이건 상관없다. 지속되는 고통만 참으면 저항할 수 있는 수준.

         

       거기에 진 바렌베르크는 소드 마스터들 중에서 최강이었다. 설정에 있었던 초월 마법사나 신화 속 드래곤이 와서 용언을 때리지 않는 이상 절대 불가능하다는 소리.

         

       “…그런 병이 있다고요?”

         

       프란체의 설명에도 역시나 이해 가지 않는 듯했다. 나는 카자르를 쏘아보며 눈치를 줬다. 오묘한 얼굴을 짓는 거로 대신 대답하는 카자르. 내 눈빛을 이해하지 못했나 보다.

         

       ‘괜한 얘기를 하면 복잡해지는데.’

         

       이것저것 변명을 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여기선 카자르의 눈치를 믿는 수밖에…….

       

       지금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냐는 듯 카자르는 계속해서 나를 힐끔힐끔 쳐다봤다.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모양. 나는 연신 고개를 휘저으며 내 속마음을 눈빛으로 전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카자르가 말이 없자 프란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랫동안 연구해온 너도 처음 듣는 병이니?”

       “아, 아니요? 들어본 적 같기도 하고…?”

         

       차라리 안 하는 게 나은 이상한 연기. 그래도 다행이다. 내 눈빛을 이해했어. 내가 농담으로 이런 얘기를 한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겠지.

         

       “혹시 치료 방법은 알고 있니?”

       “어… 저런 경우는 지극히 드물어서요.”

       “완치시킬 방법은 모른다는 거네?”

       “그런 거죠?”

         

       입술을 삐죽이며 시무룩해진 프란체. 왠지 저러면 내가 미안해지는데. 트루먼 쇼 같잖아.

         

       “그런데 시한부 얘기가 왜 나온 거예요?”

         

       카자르가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프란체에게 물었다.

         

       “진이 나중에는 사업을 나 혼자서 이끌어가야 한다고 하더라고. 왜 나 혼자냐고 하니까 앞으로 자기는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모른다고…….”

         

       혼란 그 자체가 된 카자르. 대체 지금 흘러가는 얘기가 무슨 얘기인가 싶겠지. 뜬금없이 소드 마스터가 시한부라는 소리를 듣고, 프란체는 그걸 믿고, 자기는 대충 눈치를 맞춰주고.

         

       “그, 그러셨구나. 치료 방법은 제가 따로 연구해볼게요…?”

       “그래 주면 고맙지. 너에겐 여러모로 신세를 지는구나.”

       “아니요! 당연히 제가 해야 할 일이죠! 공녀님 덕분에 연구에 집중할 수 있었던 걸요!”

         

       다행히 싸해진 분위기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순간 어떻게 되나 싶었는데 카자르가 이렇게 눈치가 빠를 줄이야. 나는 이때다 싶어 기회를 잡았다.

         

       “공녀님. 이제 슬슬 돌아가시죠.”

       “응?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됐니?”

       “앞으로의 일도 얘기해야 할 것 같아서요.”

       “그래, 그럼 돌아가자꾸나.”

         

       프란체가 자리에서 일어나고, 돌아가려던 그때 카자르가 “잠깐!” 하면서 붙잡아 세웠다.

         

       “무슨 일이니?”

       “어, 호위기사분이랑 잠깐 얘기 좀 하려고요.”

       “치료 때문이니?”

       “네. 마법으로 지연시킬 수 있다고 했으니 알아봐야죠.”

       “그래, 부탁할게.”

         

       프란체는 혼자 문을 열더니 뒤를 돌아봤다.

         

       “그럼 진. 잘 하고 오렴.”

       “예. 오늘은 모시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그럴 필요는 없단다. 치료가 우선이니까.”

         

       하.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죄책감이 가슴을 찌르는데.

         

       “들어가십시오.”

         

       프란체는 싱긋 웃고는 떠나갔다. 그렇게 나와 카자르는 집안에 덩그러니 남겨지고…….

         

       “시한부라니, 대체 무슨 헛소리예요?”

       “그렇게 됐다…….”

         

       카자르의 얼굴이 종이 구겨지듯 일그러졌다.

         

       “그렇게 됐다? 아니, 소드 마스터가 시한부라는 건 들어본 적도 없어요. 그것도 마법에 당해서 그렇다? 말이 안 되죠. 신화 속에 있던 드래곤한테 당한 거라면 모를까.”

         

       오. 내 예측이 맞았군. 드래곤이라면 가능한 건가.

         

       “여기엔 깊은 사정이 있어. 설명하자면 긴데…….”

       “저한테도 말할 수 없는 건가요?”

       “그래. 아마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겠지.”

         

       어떻게 말하겠나. 세상 밖의 내가 프란체와 알 수 없는 관계가 있던 진의 몸으로 들어왔고, 그녀에게서 무언가 느낄 때마다 인격이 잡아 먹힌다는 걸.

         

       “뭐, 다들 숨기고 싶은 건 있으니 더 캐묻진 않을게요. 그런데 어떻게 하실 거예요? 공녀님의 마법 경지가 이 이상으로 올라가면 무조건 들킬 거예요.”

         

       어, 그것도 그렇네. 아무리 이 세상에 대해 문외한이라고 해도, 마력을 볼 수 있는 이상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챌 테니까.

         

       “그건 내가 알아서 할 일이고. 너는 그때까지 말만 맞춰주면 돼.”

       “제가 마법으로 치료해준다는 거를요?”

       “그래. 내게 있는 병은 초월 마법사에게 당한 상처고, 치료할 방법이 없다고 해.”

       “으으. 거짓말을 하고 싶진 않은데.”

       “어쩔 수 없어. 내겐 사정이 있거든. 아, 그리고 죽을지도 모른다는 건 사실이야.”

         

       정확히는 내 인격이 죽는 거지만.

         

       “…그럼 정말 시한부가 맞잖아요?”

       “그게 좀 복잡해. 조건이 있어.”

       “조건? 증세가 보이는 조건이 따로 있다고요?”

       “그래. 그래서 나는 언젠가 여기서 떠나야 해.”

         

       카자르는 눈썹을 좁히며 입술을 톡톡 건드렸다. 내가 가진 병을 유추하고 있는 듯했다.

         

       “음. 증세가 보이는 조건이 따로 있다는 건 처음 듣네요. 지금까지 온갖 마법과 연금술 연구는 다 했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진짜 놀랐다니까? 갑자기 형용할 수 없는 두통이 몰려오면서 진의 목소리까지 들리는데 이게 대체 뭔 상황인지. 심지어 가끔 내가 모르는 인격도 나오고 있어. 실제로 내 성격이 좀 미묘하게 달라진 거 같기도 하고.

         

       “아무튼. 그렇게 된 거니 말만 맞춰주면 돼.”

       “으음. 저는 공녀님한테 금방 들킬 거 같은데요.”

       “그때는 또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 말고.”

       “일단 알겠어요. 뭔진 모르겠지만, 말은 맞출게요.”

         

       깊게 물어보지 않는 건가. 공과 사는 확실히 구분할 줄 아는군.

         

       “그렇게 된 거니까. 공녀님한테는 대마법사에게 당한 마법 잔해가 남아있다고 말해.”

       “네. 이게 언제까지 통할지 모르겠지만요.”

         

       이제 다음 용건이다. 여기는 이것 때문에 왔지.

         

       “카자르. 사실은 부탁할 게 하나 더 있다.”

       “이번엔 또 뭔데요?”

       “내일 공사 작업을 좀 도와줘라.”

       “…공사 작업을 도와달라고요?”

         

       카자르가 불쾌하다는 듯 오만상을 찌푸렸다.

         

       “저보고 지금 하급 마법사들이나 하는 공사 업무를 하라고요? 많이 불쾌한데요.”

         

       염동력을 쓰는 마법사들은 하급 마법사들인가. 그냥 기사와 소드 마스터를 비교하는 느낌인가?

         

       “사업 때문에 꼭 해야만 하는 일이야. 공녀님에게 말씀드려서 원하는 거 하나 들어줄 테니 이번만 부탁한다.”

         

       여전히 못마땅한 듯 표정을 구기며 고개를 휘젓는 카자르. 마법사로서 자존심이 꽤 강한가 보네.

         

       “후, 좋아요. 대신 제가 부탁하는 건 무조건 들어주셔야 해요?”

       “내용에 따라서. 들어줄 수 없는 거면 곤란하잖아.”

       “그 정도는 당연히 저도 생각할 줄 알죠.”

       “무슨 부탁을 하려는 건데? 들어나 보자.”

         

       카자르가 하는 부탁이니 마법 관련인 건 확실한데.

         

       “사실, 이번 연구에 마력이 많이 필요하거든요. 그래서 마석을 구해보려고 했거든요? 근데 이걸 취급하는 곳이 아무 데도 없어요.”

         

       아, 그런 거군. 마석은 수요가 없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마법사들도 적고, 마력을 사용할 수 없으면 마석으로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어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그걸 대신 얻어와 달라?”

       “맞아요.”

       “간단한 문제네.”

       “그게요? 마석이 어딨는 줄 알고요?”

       “내가 알고 있어.”

       “…그걸 알고 있다고요?”

         

       게임에서 마석은 필수였다. 소미레의 초반 마력이 부족한 걸 채워주는 역할이 마석이었거든. 구하는 방법이 어려워서 직접 캐러 갔어야 했다.

         

       그리고 나는 그걸로 사업도 할 생각이고.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었으니 앞당기는 거로 생각하자.

         

       “그건 내게 맡겨. 대신 시간이 좀 걸릴 수 있어.”

       “아, 그건 신경 안 써요. 어차피 찾는 데만 시간이 걸릴 테니까.”

       “그럼 다행이군. 연구는 최대한 미뤄두고, 당분간은 다른 연구에 집중해.”

       “그렇게 할게요. 대신 마석을 많이 구해오셔야 해요?”

       “그건 문제없으니 걱정 말고. 내일 일이나 제대로 도와줘.”

         

       카자르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계약 성립이네요.”

         

       이걸 계약이라고 말할 것도 있나. 그냥 사소한 약속이지.

         

       “그럼 내일 공작령 13번 구역으로 와. 마차는 필요하나?”

       “아니요. 제가 새로 개발한 비행 마법도 시험해볼 겸 혼자 갈게요.”

         

       오, 비행 마법까지 익힌 건가.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경지였군. 염동력만 쓸 줄 아는 마법사와는 비교하는 게 실례였어.

         

       “그럼 그렇게 알고 있겠다. 이만 가보지.”

       “들어가세요.”

         

       카자르가 벌써 저런 경지라면…….

         

       다행히 앞으로의 일도 잘 풀릴 거 같다.

         

         

       * * *

         

         

       이튿날.

         

       오늘도 작업을 준비하기 위해 일찍 공작저를 나섰다.

         

       프란체가 사업하는 걸 공작에게 허락받아서 그런지 다른 이들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에덴은 몰라도 라인은 무조건 트집 잡을 거 같았는데.

         

       아마 사업이 실패할 거란 걸 예상하고 그때를 노리고 있지 않을까.

         

       ‘뭐, 그럴 일은 없으니 괜찮겠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공녀님. 오늘은 일정이 없습니다.”

       “뭐? 마법 공부는?”

       “황실 파티까지는 휴식입니다.”

       “휴식? 난 더 할 수 있어. 조금이라도 더 성취를 이뤄야지.”

         

       너무 조급해하면 안 돼. 모든 건 길게 봐야 한다고. 조금만 하고 끝날 거 아니잖아?

         

       “저번에도 말했듯이 휴식은 필수입니다. 그리고 너무 조급해하지 마세요. 마음이 급하면 무너지기 십상이니까.”

         

       내가 유튜브를 처음 시작하던 시절, 불안감에 휩싸여 조급해하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오히려 더 안 되고 스트레스만 받아왔지. 경험자로서 말해주는 거다.

         

       “그래,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잘 생각하셨습니다.”

         

       나는 피식 웃고는 말을 이었다.

         

       “오늘 현장 구경이라도 하시겠습니까?”

       “구경? 나쁘지 않겠네. 우리 매장이 어떻게 되는지는 알아야지.”

         

       사장으로서 좋은 태도다.

         

       “그럼 바로 갑시다.”

         

       공작저를 나와 마차를 타고 바로 현장으로 이동했다.

         

       “아침부터 부지런하네.”

       “그러게 말입니다.”

         

       도게자 인력소의 사람들은 아침부터 일하고 있었다. 심지어 우리가 도착하기 전부터.

         

       ‘이런 사람들은 부지런한 게 몸에 배어있지.’

         

       고개를 돌려보니 프란체는 현장이 신기한 듯 멀뚱멀뚱 지켜보고 있었다.

         

       “공녀님. 자리를 만들어드릴 테니 구경하고 계세요.”

         

       나는 휴게실로 만들어놓은 장소에서 파라솔과 의자를 가져왔다. 휴게실은 여기 말고도 많으니 괜찮겠지.

         

       “그럼 저도 작업에 합류하겠습니다.”

       “그래, 여기서 지켜볼게.”

         

       건축 전문가에게 물었다.

         

       “일은 어느 정도 됐습니까?”

       “음. 반 정도 완성됐네요. 근데 나머지 일이 좀 힘들어서 시간이 더 걸릴 거 같습니다.”

       “그거라면 마법사를 불렀으니 걱정 마세요. 금방 올 겁니다.”

         

       그렇게 한참을 작업에 몰두하고 있자, 저 멀리서 익숙한 얼굴이 날아왔다. 시간은 점심이었다.

         

       “왜 이렇게 늦게 왔어?”

       “늦잠을 자서요.”

       “그러냐.”

         

       도와주는 입장인데 뭐라 할 수도 없지. 귀한 마법사기도 하고.

         

       “그래서, 제가 뭘 해야 하는데요?”

       “말 그대로 작업 도와주는 거야.”

       “염동력으로요?”

       “그래.”

         

       카자르는 흐응, 하면서 현장을 잠시 지켜봤다.

         

       “여기 건축 담당자는 있어요?”

       “어, 저기에.”

         

       뚜벅뚜벅 걸어가며 건축 전문가와 대화를 나누는 카자르. 자기가 해야 할 일에 관해서 묻는 듯했다.

         

       “간단하네요. 바로 시작할게요.”

         

       우우웅…! 거대한 마력의 흐름이 돌며, 공간이 깨지듯이 주변이 일렁인다. 도게자 인력소의 마법사는 기껏해야 자재 두 개를 띄우는 게 한계였는데, 카자르는 단번에 모든 자재를 띄웠다.

         

       “…대단한 마법사긴 하구나.”

       “그럼요. 저를 뭐로 보고.”

         

       건축 전문가가 감탄했다.

         

       “…이런 광경은 처음 보는군요.”

         

       카자르는 의기양양한 얼굴로 미소를 지었고, 나는 전문가에게 물었다.

         

       “이 정도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 거 같습니까?”

       “오늘 하루만 해도 완성할 수 있겠군요.”

         

       뭣, 그 정도라고?

         

       “내부 작업까지 포함입니다.”

       “그거 다행이네요…….”

         

       도배 작업만 끝마치면 되겠는데? 카자르가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마법사라서 그런지 속도가 압도적으로 빨라졌다.

       

       “자, 그럼 오늘 하루도 열심히 해봅시다!”

       ―안전! 제일! 안전! 제일!

       

       그렇게 시간이 한참 흐르고, 저녁이 되었을 즘에는 도색 작업까지 끝났다. 프란체 의류점의 완성이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시작이군.’

         

       드디어 첫 발판을 밟았다. 남은 건 황실에서 광고를 제대로 때려 버리는 것.

       

       ‘근데 황실 파티에서 무슨 일 나는 건 아니겠지?’

       

       괜히 불안하다. 황실이 관련된 거면 나도 쉽게 움직이지 못할 텐데.

       

       ‘이상한 일 벌어지지 않도록 기도해야겠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다음화 보기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