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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8

     제국의 황궁, 황태자 집무실.

     서걱, 서걱.

     식기 소리만이 고요히 울리는 넓은 방.

     군청색 머리칼에 군복을 입은 중년인이 은으로 된 식기를 움직이며, 하얀 그릇에 담긴 음식을 자른다.

     푸우우.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회백색의 무언가.

     잘 익힌 살점 사이로 기름이 흘러나오고, 남자는 옆에 놓인 작은 유리병을 들어 안에 든 붉은 소스를 직접 붓는다.

     “흠, 흐음, 흠.”

     낮은 콧노래까지 흘리며, 먹기 좋은 한 입 크기로 잘라 포크로 가볍게 살덩이 하나를 찍은 순간.

     콰ㅡㅡㅡ앙!

     거칠게, 집무실의 문이 열린다.

     “황태자ㅡㅡㅡ!”

     “…하.”

     날카로운 비명을 내지르며, 입가에 주름이 살짝 진 백발의 귀부인이 성큼성큼 걸어들어왔다.

     “모처럼 분위기를 잡고 즐기려는데.”

     “아스타시아를 지브롤터로 보냈다는 게 사실인가요?!”

     “그렇소만. 아. 멈춰.”

     여인이 집무실 가운데까지 걸어오자, 중년인-황태자는 손을 들어 여인을 막아섰다.

     “이사벨라. 그 이상 다가오면 암살이라고 생각하고 쏘겠소.”

     “…나는 당신의 아내입니다! 황태자비란 말입니다!!”

     “수많은 여자 중에 가장 고ㅡ귀하신 혈통인 여자일 뿐이지.”

     “이, 이…!”

     황태자비, 이사벨라는 하얀 장갑을 낀 손을 쥐락펴락했다.

     전신에서 분노를 표출하고 있으나, 그녀는 더 이상 걸음을 앞으로 뻗지 못했다.

     “좋은 선택이오.”

     

     황태자는 붉은 소스가 묻은 포크를 만지작거리고 있었으니까.

     한 걸음만 더 가까이 다가갔다면, 저 포크가 바로 목이나 심장-미간에 박혔겠지.

     “15분만 주지. 그래도 아내인데, 24시간 중에 그 정도도 할애하지 못할까.”

     “…황손녀를 지브롤터로 보냈다.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나의 의중을 묻는 건가? 아니면 에르윈의 의도를 묻는 건가?”

     “둘, 다.”

     “그런가. 별거 없지.”

     황태자는 옆에 놓여있는 와인잔을 가볍게 들었다.

     “에르윈은 아스타시아를 어떻게 해서든 내게서 떼어놓고 싶어 했지. 그리고 그녀는 내게 적절한 명분을 제시했다.”

     “명분?”

     “아스타시아를 비롯하여 지브롤터로 간 아이들이라면 지브롤터 백작의 자식들을 유혹할 수 있을 거라고.”

     “에르윈 그 여자가, 그런 말을…?”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자기 딸을 빼돌리고 싶은 거겠지. 어리석게도.”

     황태자가 잔에 붉은 와인을 가득 채우며 씩 웃었다.

     “계산상으로는 0.3% 정도의 성공률이지만, 성공한다면 그야말로 기적이지.”

     “그, 그렇게 된다면….”

     “본인이 황제가 되었을 때, 제1 황위 계승권은 당연히 아스타시아에게로 넘어가겠군.”

     “안 돼요!!”

     이사벨라가 다급하게 소리치며-

     “아, 아스타시아는 안 돼요! 내, 내 자식들이 있는데!!”

     한 걸음 물러나며 두 무릎을 꿇었다.

     “앞으로 나서면서 꿇을 자신은 없으면서, 이렇게 애원하는 건 괜찮나?”

     “제, 제발! 아이작과 프란체스카에게도 기회를 주세요!”

     “아이작, 프란체스카. 흐음….”

     황태자가 인상을 찌푸린다.

     마치 서류 뭉치 속에서 기억을 더듬어 자료를 찾아내듯, 와인잔을 빙글빙글 돌리며 생각에 잠긴다.

     “…아, 그래. 그대를 닮아 참으로 귀족적인 아이들이지. 귀족인 것 말고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혈통이, 곧 가치잖습니까!”

     “황태자로부터 태어났다고 황족인가? 아니다, 아니야. 귀족 부모에게서 태어났다고 귀족이다? 노스트럼 왕국 같은 낡은 사고방식이군. 이사벨라 후작 영애.”

     “황태자비입니다!!”

     황태자는 대놓고 이사벨라를 비웃었다.

     “황손녀의 지브롤터 유학에 대해서는 이미 황제 폐하께서 승인하신 일이고, 나 또한 개인적으로 몹시 기대하는 바. 공식적으로는 잠시 자리를 비운 것이니, 어디 가서 말하면…반역으로 간주하겠소.”

     “화, 황손녀의 빈자리를…!”

     “프란체스카가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그대의 착각이지. 어머니라면 더 자식의 재능에 대해 냉정하게 봐야 하는 거 아닌가?”

     황태자는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오르지 못할 나무는 아예 바라보지도 못하게 해야 한다. 자식에게 헛된 꿈을 심어주어 좌절하고 절망하게 할 바에는, 차라리 제 분수를 알고 제 그릇에 맞는 삶에서 행복을 찾도록 해야지.”

     “…….”

     “개인적으로 궁금하군. 만일. 이건 정말 만약의 이야기지만.”

     황태자는 포크로 살덩이를 다시 푹 찍으며, 싱글벙글 웃었다.

     “아스타시아가 지브롤터 백작의 아들을 유혹하는 데 성공한다면, 지브롤터는 사실상 제국 자치령이 되는 셈이 아닌가.”

     “…….”

     “정 불안하거든, 그대도 이번에 한 번 노스트럼으로 가보겠나? 혹시 모르지. 그대의 유혹에 크림슨 지브롤터 변경백이 불륜을 생각하게 될지도.”

     “그게, 황태자비에게, 할 소리입니까…?!”

     “잊었나 본데, 그대가 혈통을 걸고넘어지지만 않았으면 황태자비 자리는 그대의 것도 아니었어.”

     “에르윈, 그 여자를…!”

     “아니.”

     덥석.

     “에르윈뿐만이 아니지.”

     황태자는 살덩이를 크게 한 입 베어 물며 말을 이었다.

     “너 말고도, 황태자비 할 사람은 지천으로 널렸거든.”

     “…….”

     “그리고 아스타시아가 진짜로 지브롤터를 유혹하는 데 성공한다면….”

     황태자는 냅킨으로 입을 닦으며 씩 웃었다.

     “에르윈이 황후가 되는 거고.”

     * * *

     지브롤터 백작가에 여아들을 보내 미인계로 홀린다.

     “…라는 명목으로, 저는 지금 아이들을 빼내는 데 성공했어요.”

     컨테이너 내부에서 그레이 지브롤터가 여아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솔직하게 말할 줄은 몰랐소.”

     “그래야 투명한 거래가 되니까요.”

     에르윈 회장은 크림슨 변경백과 따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서 모든 것을 깔끔하게 밝혔다.

     “제국의 사정은 복잡해요. 황태자는…여러모로 정상적인 사람은 아니죠.”

     “으음….”

     “백작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 세상에는 사랑으로 태어나지 않는 아이들이 있어요. 아, 저는 물론 제 딸을 사랑해요.”

     “확실히, 조금은 이해하기 난해하군.”

     변경백은 최대한 말을 아끼며, 품에서 물건을 하나 꺼냈다.

     “그대가 부탁한 물건이오. 이거면 그대와의 거래를 위한 초석이 될 것이오.”

     에르윈 회장은 놀란 얼굴로 백작이 꺼낸 물건, 사진기를 받았다.

     “사진, 정말 찍어주신 건가요?”

     “밀정이 찍은 것처럼 최대한 자연스럽게. 그레이가 찍은 것도 있으니, 어색하지는 않을 것이오.”

     “…잘 통과되기를 바라야겠네요.”

     사진기 속에는 크림슨 변경백을 아주 멀리서 찍은 사진들이 여럿 있었다.

     “가까운 거리는…없네요?” 

     “평상시 소드 마스터가 느낄 수 있는 거리 밖에서 찍은 사진들이오. 괜히 가까이에서 찍었다가는 의심을 받을 수도 있다고 하더군.”

     “그레이가요?”

     “그렇소.”

     너무나도 먼 곳에서 찍어서 얼굴이 잘 보이지는 않지만, 머리칼의 색만큼은 선명했다.

     “그레이에게 상황을 전해두겠소. 그레이라면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는 선에서, 적절히 유혹당하는 연기를 할 수 있을 것이오.”

     “…죄송해요. 정말.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는데.”

     “지브롤터가 수용할 수 있는 선 안에 있는 부분이니, 그렇게까지 마음 쓰지 않아도 좋소. 대신.”

     “네. 나중에 남부에서 협약이 체결되고 상행에 대한 허가가 나오면, 바로 마트-아니, 백화점을 열어드릴게요.”

     “음. 그리고….”

     크림슨 변경백은 잠시 생각에 잠긴 뒤.

     “아이의 신원을 하나 만들어줬으면 하오. 제국에서 태어난 고아.”

     “예?”

     “그럴 상황이 생겨서.”

     뒤에 있는 마차를 가리켰다.

     “잠깐 기다리시오.”

     마차까지 제법 거리가 있었으나, 변경백은 단숨에 마차로 가서 한 명의 소녀를 에스코트하여 데리고 왔다.

     “이름은 자베스. 나이는 13살.”

     “…잠깐만요. 이분은 설마?”

     “…….”

     변경백은 잠시 눈을 감고, 에르윈 회장은 ‘자베스’라는 소녀를 위아래로 빠르게 훑었다.

     “…금발 녹안이 흔하기는 하지만, 딱히 문제 될 것도 없죠. 자세한 건 묻지 않겠어요.”

     “제국에 엄청난 첩보가 될 수도 있을 텐데.”

     “제가 황태자에게 도움을 줄 생각이 없으니, 안심하세요. 대신, 저희 쪽의 일도….”

     “지브롤터와 아이페리아 사이의 비밀일 뿐.”

     변경백과 회장은 서로를 바라본 뒤, 동시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제가 데려가는 건…아니, 그건 말이 안 되는데.”

     “10명이 아니라, 11명을 보낸 걸로 하지.”

     “하지만 보육원 기수는 10명 단위라고 들었는데요.”

     “1명 더 늘어난다고 달라지는 건 없으니 괜찮소. 여기 있는 이 아이도 그렇고, 저기 컨테이너라는 곳 안에 있는 아이들도 그렇고.”

     변경백은 잠시 침을 삼킨 뒤.

     “내 아내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이라고 생각할 테니.”

     “감사해요. 진심으로. 음, 이런 말을 하기는 좀 그렇지만.”

     에르윈 회장은 품에서 새로운 사진기를 꺼낸 뒤, 변경백에 건네며 낮게 웃었다.

     “만일 진짜로 그런 관계가 된다고 하면, 그때는 진짜로 잘 부탁드려요. 저, 노스트럼으로 망명해야 할 수도 있을 테니까.”

     “그 반대가 될 수도 있고.”

     “하하하! 백작님, 농담도 참.”

     “훗.”

     크림슨 변경백은 사진기를 받으며, 단숨에 마차 안에 집어넣고 돌아왔다.

     “그러면 저 컨테이너라는 걸 통째로 옮기는 게 일인데….”

     “아.”

     “왜 그러시오?”

     “…혹시 말은 한 마리뿐인가요?”

     “…….”

     마차에 묶여있는 말은 단 한 마리.

     “…저걸 그냥 끌고 가기에는 시선이 끌릴 수밖에 없는데.”

     “저 마차에 태우는 건….”

     “4인승이라 무리요.”

     “어, 으음…. 쟤한테 어떻게 끌어달라고 하면 안되겠…죠?”

     그리고 말은 이미 이전부터 자신이 끌어야 할 것 같다고 느낀 건지, 컨테이너로부터 고개를 돌린 채 바닥만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어쩔 수 없군. 내가 걸리지 않게 알아서 할 테니, 그대는 가보시오. 혹시 아이들에게 전할 말이 있으면 지금 하시고.”

     “으음, 아녜요. 그렇게 하지 않아도…아드님께서 이미 잘 다독여 주고 계신 것 같으니까.”

     에르윈 회장은 컨테이너 안을 가리켰다.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도, 아직도 저 안에 있잖아요?”

     * * *

     ‘집중해. 정신 차려라, 그레이.’

     아스타시아와 만났지만, 일단 할 일은 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 자기소개를 하도록.”

     “어…저기….”

     “묻지 마라. 나는 너희들에게 질문을 허락하지 않았다.”

     소녀들은 직감했다.

     아스타시아 또한 내 행동에 잠시 옆으로 물러섰다.

     “묻는 말에, 대답해라. 두 번 말하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아.”

     내가 아스타시아를 대하는 태도가 자신들과는 확연히 다르다는걸.

     “그래. 조금, 이상하겠지? 소개를 다 듣고 이야기하도록 하지.”

     눈치 빠른 이들은 혹시나 하고 있고, 모르는 이들은 다른 소녀를 바라보며 눈짓을 주고받는다.

     “너희들이 이곳에 보내진 대외적인 신분을 소개해라. 내가 이해할 수 있게끔.”

     “!!”

     “허튼수작은 말고.”

     9명의 제국 고아가 눈짓을 주고받은 뒤, 하나둘 자신의 배경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거지 굴에서 자랐던 아이.

     아버지 없이 자랐다가 재혼가정으로 들어갔다 버림받은 아이.

     날 때부터 보육원에서 자라기는 했지만, 아이페리아의 도움으로 기숙사에 들어갔던 아이.

     “…과연. 이제 알겠다. 너희들의 신원.”

     밖에서 어른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아스타시아를 시작으로 한 아이들의 호구조사를 마쳤다.

     “친아버지는 전부 모르고, 고향도 배경도 나이도 전부 다르다. 에르윈 회장님에게 거두어져, 초중급 아카데미 기숙사에서 자라다가 이렇게 선택을 받아 지브롤터에 오게 되었다.”

     몇몇 소녀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공통점이 또 하나 있지.”

     “예?”

     “너희 모두, 제국에서 보낸 첩자인 것.”

     “…….”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정곡이 찔려서 당황스러운 모양인데, 그렇다고 쫓아내거나 버리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

     가장 나이가 많은 소녀가 내게 달려들려고 했으나, 나는 바로 손을 뻗었다.

     “너희들이 첩자로서 정보를 빼가든 사람을 홀리든, 나는 관여하지 않을 테니.”

     “뭣…?”

     “그리고 내가 말을 좀 해야 하니까.”

     나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뒤.

     “제발, 제발 저기 앞에 앉아주시겠습니까.”

     “왜에?”

     아스타시아가 말을 늘어뜨리며 묻는다.

     내 바로 옆에서, 상자 위에 앉아, 다리를 앞뒤로 움직이며.

     “정신 사나워서요.”

     “제일 보기 좋은 자리에서 구경하고 있는 것뿐인데?”

     “좀 같이 앉으세요. 제발.”

     내 바로 옆의 상자 위에 앉아, 나를 옆에서 계속 구경하고 있던 아스타시아에게 부탁했다.

     “당신이 황손녀라는 것, 이미 파악했습니다.”

     “엣, 정말?! 회장님이 알려줬을 리가 없는데?!”

     “지브롤터는 생각보다 많은 걸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황손녀인 것도, 저들이 당신을 보좌하기 위해 온 이들인 것도.”

     그리고 보좌만 하는 게 아니라, 황손녀의 자리를 기회만 되면 차지하려고 하는 후보자들인 것도.

     ‘다들 숨기려고 하지만, 눈에 욕심이 가득해.’

     내게는 보인다.

     

     다른 건 다 차치하고, 저들의 마음속에 있는 근본적인 ‘욕망’이.

     그리고 셋 정도.

     ‘그림자도 섞였네.’

     품에 몰래 감추고 있는, 희미한 향기가.

     “아스타시아 전하. 저와 변경백, 두 사람만 있을 때는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말해도 됩니다. 구분은…존대와 반대로 할까요.”

     “존대면 전하, 반대면 노예인 거죠?”

     “…노예는 아니고.”

     “아차! 고아였죠! 참. 헤헤. 그러면 주인님이라고 해야 하나요?”

     “…호칭에 관한 것도, 일단 가면서 이야기합시다.”

     아스타시아와 계속 이야기를 하면, 여러모로 말린다.

     “흐응, 왜 그러세요? 어디 몸이 안 좋으신가?”

     “…전하께서 지금 제 머리를 아프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야기하면 할수록, 자꾸만 ‘그녀’가 겹쳐 보여서.

     “전하. 나중에 따로 시간을 드릴 테니, 지금은 협조해 주시겠습니까?”

     “으음….”

     “부탁드립니다, 공주님.”

     “와ㅡㅡ아!”

     아스타시아가 눈을 반짝이며 두 팔을 들었다.

     “왕자님 부탁이라면 어쩔 수 없네요! 조용히, 합!”

     그리고 그대로 두 손으로 입을 막으며 눈을 반짝였다.

     “예, 잘하셨습니다.”

     “흐흥.”

     ‘나 잘했지’라고 묻는 것 같았다.

     “…그러면, 다시.”

     나는 고아이자 첩자인 소녀들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너희들도 마찬가지다. 다른 모두에게는 너희 ‘신분’을 그대로 말하되, 결코 제국의 정보원이라는 걸 들키지 말도록. 물론, 너희들에게는 존대 따위는 하지 않겠지만.”

     다들, 이해하는 듯하면서도 의아한 눈치다.

     “어째서냐고? 너희들이 제국의 첩자인 걸 알면서도 받아들인 이유?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가볍게 손을 하나 들었다.

     “도구가.”

     황제는 말했다.

     “머리를 이해하려고 하지 마라.”

     “……!!”

     이해할 수 없다면, 이해할 필요도 없게 만드는 게 편하다.

     도구는 사용되는 것이지, 스스로 의문을 품는 게 아니니까.

     “다른 건 다 치우고, 여러모로 귀찮은 건 딱 질색이기 때문이다. 뭐…자세한 건 가는 동안 이야기하도록 하지.”

     마침, 밖에서 발소리가 들린다.

     “이야기는 끝났습니까?”

     “그래.”

     아버지가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오자.

     “네 말대로더구나.”

     “헙….”

     소녀들이 단숨에, 아버지에게 시선이 꽂힌다.

     “자세한 설명은 네가 알아서 하도록 하거라. 가는 동안 시간은 충분할 테니.”

     “네.”

     조금, 씁쓸하다.

     기껏 분위기를 다 잡아놓았더니, 아버지 얼굴 한 방에 첩자들이 조용히 입을 다물고 말을 들을 자세로 바뀌었다.

     역시 아직은, 어른의 얼굴을 이길 수 없는 걸까.

     “에르윈 회장님은?”

     “먼저 가셨다. 그….”

     “작별 인사는 이미 관문 열리기 전에 했어요! 괜찮아요!”

     아스타시아가 손을 번쩍 들며 답하더니, 그대로 상자에서 내려와 두 손을 모아 허리를 90도로 숙인다.

     “잘 부탁드립니다, 백작님!!”

     “…아아, 그래.”

     아버지는 아스타시아와 나를 잠시 번갈아 본 뒤.

     “…씁. 설마. 아니겠지.”

     “설마는 무슨 설마입니까.”

     “아무것도 아니다. 그보다, 곤란한 일이 생겼는데.”

     아버지의 뒤, 나리아 공주가 마차를 가리켰다.

     “말이 기어이 도망쳤다. 스스로 고삐를 끊어냈어.”

     마차의 앞.

     헤진 고삐와 달려 나간 말발굽 자국만이 남아있었다.

     “…말 교육, 누가 한 겁니까?”

     “그러게. 나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놀랍군.”

     말이 도망갔다.

     컨테이너의 크기를 보고 자기가 끌어야 하나 놀란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마도 엔진 동력 때문에 겁을 먹은 거네.’

     지금은 꺼져있지만, 이 컨테이너를 움직이는 엔진의 진동에 겁을 먹어서 도망갔다.

     “그레이. 일단 기다려보거라. 내가 저택으로 간 다음, 말을 일단 한 다섯 필 정도-”

     “아버지.”

     나는 컨테이너에서 내려 마차로 다가가 말의 고삐를 푼 다음.

     “그렇게 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걸립니다. 지금 이 일, 조용히 처리해야 하는 거 아시죠?”

     컨테이너의 연결장치에 단단히 묶었다.

     “끄세요.”

     

     나는 아버지에게 밧줄을 내밀었다.

     “언제까지 여기 있을 수도 없잖습니까. 이 추운 밤에. 다 감기 걸리게 할 수도 없고.”

     바퀴가 안 달린 것도 아니고.

     “얘기를 하더라도, 좀 따뜻한 코코아라도 마시면서 이야기를 하자고요. 여기 말고. 예?”

     “…타라.”

     

     약, 30분 뒤.

     

     12명의 아이들을 태운 바퀴달린 컨테이너가 협곡을 지나, 보육원에 도착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47화 마지막씬에 힘을 소진한 작가는(이하생략)

    쉬어가는 화.
    한 템포 쉬어갑니다.

    금요일 저녁 8시에 일러 교체합니다.
    누구로 교체할지는 비밀
    기존 일러는 아닙니다

    다음화 보기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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