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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8

       긴장한 다른 수험생들과 다르게 나는 싱글벙글한 마음으로 이야기 구성에 임했다.

         

       내가 구술면접을 엄청 걱정했던 이유도 면접만 잘하면 사실상 합격은 확정이어서 그랬다.

         

       솔직히 이야기 구성은 나한테 누워서 떡 먹기 수준이니까. 그리고 그 이유는 이 한마디로 설명이 가능하다.

         

         

       ‘나 927 작가인데.’

         

         

       이야기 구성의 시험 시간은 총 2시간이 주어진다. 그 안에 A4용지 두 장 분량 정도도 제대로 못 채우면 잠정 은퇴고 뭐고 진짜 은퇴해야 할 것 같은데…….

         

       어쨌든 진짜 말도 안도 안 되는 문제만 아니면 된다.

         

         

       ─시험 시작하겠습니다.

         

         

       앞에 있는 시험 감독의 말과 함께 앞자리부터 차례대로 시험지가 전달되었다.

         

       음… 어디 보자.

         

         

       [이야기 구성 : 50점]

         

       사진) 어느 집 앞 골목 / 서로를 마주 보며 애써 웃고 있는 경찰과 활짝 웃고 있는 할머니

       제시어) 따뜻함

         

       ※위의 요소들을 활용하여 A4 한 장~ 두 장 분량의 이야기를 구성하시오.

         

         

       시험지의 가장 위에는 두 개의 사진과 제시어 하나가 적혀있었다.

         

       당연한 소리지만 누가 봐도 배경은 집 앞 골목으로 잡아야 할 것 같고, 인물은 서로 다른 감정을 느끼곤 있지만 어째서인지 함께 웃고 있는 할머니와 경찰이었다.

         

       사실 이 정도면 나름 쉬운 축에 속하는 구성이다.

         

       저 요소들만을 가지고 제시어가 요구한 것처럼 따뜻한 이야기를 만드는 일은 그다지 어려운 게 아니니까.

         

       굳이 예를 들어보면 할머니의 전화 조작 미숙으로 잘못 신고된 전화가 경찰서로 간다. 곧바로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그 사실을 깨닫고 친절하게 할머니에게 전화 조작을 알려주며 훈훈하게 사건이 마무리된다.

         

       대충 이런 느낌의 내용을 구성한다면 무난할 것이다.

         

       다만.

         

         

       ‘그래도 입시 시험인데 너무 무난하면 그만큼 점수가 낮아지겠지.’

         

         

       딱 봐도 대부분의 지원자들이 이런 느낌으로 내용을 구성하려고 들 텐데 나도 그중 하나가 된다면 높은 점수를 얻기는 힘들다.

         

       쓰으읍…….

         

       그렇기에 더더욱 어떤 내용을 적을지 고민이 되었다.

         

       보통 이런 식의 이야기 구성을 할 때는 제시어에 힘을 싣는 쪽이 임팩트를 주기 쉽다.

         

       여기서 문제의 제시어는 따뜻함.

         

       따뜻함이라…….

         

       따뜻함을 떠올려보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단어는 무엇일까?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나는 ‘가족’이 먼저 떠올랐다.

         

       전생의 힘든 시절에 술 한잔을 건네며 내게 좋은 말씀을 해주신 아버지, 그리고 지금 세상에서 나를 아껴주고 믿어주는 가족들.

         

       그들을 떠올려보면 저절로 마음이 훈훈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기에 문뜩 경찰과 할머니가 가족 관계라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이미지가 점점 머릿속에 떠오른다.

         

       이 이야기의 배경은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어느 집 앞 골목길.

         

       그래…….

         

       이왕이면 따뜻함이 좀 더 극대화될 수 있도록 첫눈이 내린 추운 겨울이 좋겠네.

         

       슥스스-

         

       나는 거침없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야기를 시험지에 써 내려갔다.

         

         

         

       ***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빛예고의 영상제작과는 가장 마이너한 학과였다.

         

       그도 그럴 것이 양옆의 라인업에 연예과, 실용음악과, 실용무용과가 떡 하니 버티고 있는데 영상제작과가 학생들의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사실 지금도 지원율과 경쟁률만 놓고 본다면 모든 학과 중에 꼴찌긴 하다.

         

       그마저도 어떤 작가 한 명 덕분에 작년부터 3:1에서 7:1로 두 배가량 확 뛰긴 했지만.

         

       자라나는 학생들은 미디어의 노출이 가장 심한 나잇대다. 즉, 세간을 뜨겁게 불태우는 소식을 가장 먼저 접하고, 유행에도 민감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작년 한 해,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화제가 되었던 927 작가의 작품은 어떨까?

         

       아마 수많은 학생이 생방송이든 재방송이든 하이라이트든 그것을 시청했을 것이다. 당장 서은우의 학교만 봐도 927 작가의 드라마 내용을 모르면 대화에 끼기 힘든 수준이었으니까.

         

       덕분에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드라마의 재미를 알리게 되었고, 더 나아가 누군가에게는 어떠한 목표를 제공했을 수도 있다.

         

       언젠가 나도 저런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다…… 라는 강렬한 목표를.

         

       작년부터 한빛예고뿐만 아니라 전국의 모든 영상제작과의 지원율이 올라간 것도 이런 목표를 가진 젊은 청춘들이 많아졌기 때문이었다.

         

         

       슥스스-

         

         

       한편…….

         

       종이 위로 사르륵 번지는 볼펜과 샤프 소리의 합주를 들으며 교탁 앞에 서 있던 한 남성이 흡족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제 갓 3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그는 이번 한빛예고 영상제작과, B반의 입시 시험 감독을 맡게 된 한동훈이었다.

         

       한동훈은 여전히 흡족한 미소를 지은 채로 정면을 바라보았다.

         

       영상제작과에 지원하는 학생들이 교실을 꽉 채우고 있지만, 어째 귀에 거슬리는 소음 따윈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오직 고요하게.

       

       종이에 무언가를 적는 소리만이 교실 안에 울려 퍼지고 있을 뿐…….

         

       아마 지금 저들의 귀에는 그것마저도 들리지 않겠지.

         

       모두 똑같은 저 표정들을 보면 대충 알 수 있다.

         

       몰입.

         

       교실 안에 있는 학생들은 하나같이 자신만의 세상에 빠져있었다.

         

       이것이 이야기 구성 시험의 묘미다.

         

       어느샌가 시험인 것을 망각하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것.

         

       한 사람의 교사로서 이 광경을 보고 어찌 미소 짓지 않을 수가 있을까?

         

       영상제작과 1학년의 시나리오 창작 실기 수업을 담당하고 있는 한동훈은 작년부터 수많은 학생들이 이쪽 분야에 관심을 가져주고 지원하는 것이 한 사람의 교사로서 순수하게 기뻤다.

         

       이것도 다 927 매직 덕분이었다.

         

       세간에선 927 작가로 인해 일어나고 있는 사회적 현상들을 927 매직이라고 일컫는다.

         

       일본의 정부를 상대로 국민들이 분노했던 일과 플래시 몹이 그 대표적인 예시였다.

         

       어쨌든 그 작가 덕분에 이쪽 분야의 꿈나무들이 많아진 것은 좋은 일이다.

         

       어쩌면 여기 있는 꿈나무들 중에서 그 작가를 뛰어넘는 각본가가 언젠가는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많이 힘들겠지.’

         

         

       시나리오 창작 실기 수업의 교사인 만큼 한동훈은 927 작가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다.

         

       뛰어난 스토리와 마치 살아있는 것 같은 캐릭터들 간의 대화. 그의 작품은 하나같이 사람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기고 불현듯 사라진다.

         

       심지어 매화 끝을 맺는 타이밍도 철두철미하다. 덕분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드라마를 보고 있던 시청자들 엔딩크래딧을 보며 다음 화를 기대하고 볼 수밖에 없게 만든다.

         

       한동훈이 감히 평가하기를 927 작가는 그냥 드라마의 도사다.

         

       한빛예고의 이사장인 송하율 역시 적어도 이번 세기의 한국에서 927 작가를 뛰어넘을 각본가는 등장하지 않을 거라고 극찬할 정도였으니까.

         

       그래도 그런 이레귤러의 등장은 세상을 점점 변화시킨다.

         

       이제 눈앞의 수험생들은 그 작가를 목표로 잡고 엄청난 속도로 성장해 나가겠지.

         

       ……이상적인 현상이다.

         

         

       탁-

         

         

       그때였다.

         

       교실 어딘가에서 작은 소음이 들려왔다.

         

       그것은 팬을 책상에 아무렇지 않게 던져서 생긴 소음이었다.

         

       한동훈은 자연스레 그곳으로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어떤 한 남학생이 개운한 얼굴로 기지개를 피고 있었다.

         

         

       ‘저 아이는…….’

         

         

       한동훈은 그 남학생의 얼굴을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처음 이야기 구성의 시험지를 받고 수험생들은 보통 15분 정도 스토리를 어떻게 구성할지 고민을 한다.

         

       시험 시간이 총 2시간이 주어지기에 이 정도가 딱 적당한 선이었다.

         

       지금까지 시험 감독을 여러 번 맡으면서도 가장 빠른 학생이 약 10분 정도. 솔직히 그것마저도 스토리의 퀄리티가 떨어져서 많은 감점을 받았다.

         

       이건 당연한 얘기였다. 이런 유의 시험은 처음 기반이 가장 중요하다.

         

       짧게 생각하는 시간만큼은 스토리의 빈틈이 생기며, 중간중간 막히는 부분이 많아진다.

         

       ……하지만 말이다.

         

       저 남학생은 10분보다 짧았다.

         

       아니, 그보다 훨씬 짧았다.

         

       3분.

         

       저 남학생은 약 3분 정도만 고민하고 무언가를 거침없이 적어가기 시작했다.

         

       솔직히 요즘 라면도 3분은 안 끓인다. 그렇기에 상식적으로 더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일단 한동훈 자신도 저 짧은 시간 내에 스토리 구성은 불가능하다. 프로 레벨의 작가에게 저런 제시문을 주고 스토리를 구성해보라고 해도 최소 5분은 걸리겠지.

         

       여기서 중요한 건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그래. 어떻게 스토리를 구성했다고 치자. 근데 저 기지개의 의미는 도대체 뭔데.

         

       벌써 A4 한 장~두 장 분량의 스토리를 채웠다고?

         

       아니, 아직 시험 시작한 지 30분도 안 지났는데?

         

       한동훈은 어이가 없어서 순간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저 저 기지개의 의미가 잠시 뻣뻣한 몸을 풀기 위해서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그러니 이제 슬슬 펜을 다시 쥐고 시험지를 채워주면 안 되겠니?

         

       하지만…….

         

         

       “하암…….”

         

         

       그 남학생은 어째선지 하품을 한번 내뱉더니 그대로 책상에 얼굴을 들이박았다.

         

       혹시 몰라 한동훈은 천천히 그 남학생의 옆으로 걸어가 티 나지 않게 그의 상태를 확인했다.

         

         

       “…….”

         

         

       하지만 누가 들어도 세상 태평하게 잠을 자는 고른 숨소리가 들려왔고, 상상했던 예상이 전혀 빗나가질 않자 한동훈은 이마를 탁- 하고 짚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축 처진 어깨와 함께 다시 교탁으로 돌아갔다.

         

       하긴…….

         

       충분히 이해한다.

         

       이야기 구성 시험은 연습이 충분하지 않은 초보자들에게 엄청난 진입 장벽이다.

         

       학생의 빠른 포기는 한 사람의 교사로서 매우 안타까운 일이지만, 뭐 어쩌겠나.

         

       뭐든 중요한 건 본인의 의지다. 이대로 저 학생을 다시 일으켜 펜을 쥐게 해봤자 오히려 역효과만 날 것이다.

         

       적어도 다른 학생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있으니 일단은 넘어가도록 하자.

         

       그렇게 시간을 빠르게 흘러갔다.

         

       어느덧 약속된 2시간이 지나고 한동훈은 시험 종료 멘트를 내뱉었다.

         

       누구는 자신이 작성한 시험지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고, 누구는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누구는……

         

         

       “쓰으읍. 잘 잤다.”

         

         

       ……그냥 생각이 없어 보이네.

         

       그래. 너는 일단 침부터 좀 닦아라.

         

         

       “수고하셨습니다!”

         

         

       시험이 모두 종료되자 학생들은 교탁 앞에 서 있는 한동훈에게 시험지를 차례차례 건네고 다음 대기 장소로 넘어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교실 안에 남은 건 아직 잠에 덜 깬 그 남학생이었다.

         

         

       “잠은 잘 잤니?”

       “네?”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시험지를 건네기 위해 교탁 앞에 선 남학생. 한동훈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남학생에게 물었다.

         

       이에 남학생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이해한다. 이야기 구성이 초심자에겐 많이 어려운 시험이지. 그래도 연습만 충분히 한다면 후에 꼭 좋은 결과가 있을 거야.”

       “……?”

         

         

       한동훈의 위로에 남학생은 그게 무슨 개소리냐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 시험지를 한동훈에게 넘기고 곧바로 교실을 나섰다.

         

         

       “……이 정도면 저 아이에게 충분히 위로의 말이 됐겠지.”

         

         

       한동훈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마지막까지 그 학생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래. 언젠가 또 보게 될지도 모르니 이름이라도 외워둘까.”

         

         

       이윽고, 교실 안에 홀로 남게 된 한동훈은 마지막으로 교실 밖을 나선 남학생이 준 시험지를 읽었다.

         

       가장 위에는 그 남학생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이름이 서은우인가…….”

         

         

       한동훈은 계속해서 천천히 시선을 밑으로 내렸다.

         

       분명 이 밑은 시험 문제의 내용이 적혀있어야 했다.

         

       보아하니 아까 몇 분 정도는 펜을 쥐고 글을 깔짝깔짝 적긴 하던데…….

         

       음, 한 번 봐볼까?

         

       한동훈은 호기심에 서은우라는 학생이 적은 글을 읽었다.

         

       허나, 글을 읽기 전부터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어째서……

         

       왜 시험지 전체에 글이 빡빡하게 적혀있는 거지?

         

       한동훈은 혹시나 싶어서 시험지를 한 장 더 넘겼다.

         

       그리고 그는 뒷장의 내용을 보고 깜짝 놀라 눈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말도 안 돼…….”

         

         

       뒷장 역시 앞장과 마찬가지로 빡빡하게 글이 채워져 있었으니까.

         

       


           


I Became a Genius Writer Obsessed With a Popular Act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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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여배우에게 집착 받는 천재작가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She likes me enough to win an award. Meet Seo Eun-Woo, a passionate K-Drama fan turned writer, whose life takes an unexpected twist when he awakens in a world of mediocre dramas. Frustrated and desperate for the perfect storyline, he stumbles upon a former actress who sparks his creative genius. Watch as their fateful encounter turns his life into a captivating drama of its 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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