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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8

       생도들은 당혹스러웠다.

       당혹스러운 이유?

       말해 뭐하겠는가.

         

       “훌륭한 기세가 느껴지는군. 부디, 요정들마저 감탄을 마지않을 멋진 전투를 기대하지.”

         

       왕녀가, 왕실계승서열 순위 1위에 빛나시는 고귀한 왕태녀가 그들을 ‘격려’하고 있었으니 냉정을 유지하는 게 도리어 이상하지 않을까 싶다.

         

       ……꿈인가?

         

       “허나 마냥 멋진 전투를 벌이고 싶어 다치는 것은 안 될 말일 테지. 부디 몸을 챙기거라. 그대들은 모두 훗날 나라를 이롭게 할 인재들이니.”

         

       아….

         

       허나 당혹스러움도 잠시.

       그녀를 올려다보던 이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조아리고 말았다.

       이는 본능이었다.

         

       ‘저, 저런 분이 존재하실 수 있는 거구나.’

         

       아름다운, 아니 아름답다는 표현조차 왠지 저분에겐 불경스러운 발언이다.

       천사가 강림하신 것 같은 인세를 초월한 아름다움.

       결코 더럽혀선 안 될 고귀함이 거기 있다.

         

       뒷골목 출신들이 감히 눈을 마주하는 것도 불경스럽다.

         

       생도들은 고개를 감히 들지 못하며 눈을 깔길 망설이지 않았으며, 마냥 얼굴을 붉혔다.

       또한 그들은 목표를 가지게 되었다.

         

       아아! 오늘 반드시 승리하여 저분에게 영광을 바치겠노라-!

         

       그들은 감히 결심하며 가슴이 들끓었다.

         

       이는 전사든 마법사든 상관없이 동일하게 떠올린 결심이었으며, 두 집단은 오늘 반드시 승리해야 할 이유를 한 가지 더 추가했다.

       마법사와 전사의 자존심뿐만이 아니라, 감히 천사를,

         

       왕녀를 배알할 영광을 얻기 위한 투쟁을 각오하였음이다.

         

       사내들의 눈이 이글거렸다.

         

       “염병, 놀 옆구리 차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한편, 이 모든 광경을 보던 교관은 혀를 찼다.

       자고로 도산검림과 같은 무림, 아니 왕도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세 가지가 무엇이겠는가?

         

       노인과 아이, 그리고 미녀다.

         

       자칫 방심을 불러일으키는 요소.

       그리고 그중 미녀의 존재만큼 위험천만한 것이 없다.

         

       특히.

         

       ‘꼬리 아홉 개 달린 여우한테 홀리면 답도 없는데.’

         

       그는 슬쩍 VIP 관람석과 같은 상석 위에서 오연히 앉아 그를 내려다보는 왕녀에게 시선을 주었다.

       간만에 보는 건데도 여전히 소름이 돋는 불길함이 풀풀 풍긴다.

       야생동물의 직감이랄까.

       엮이면 뭐 된다는 게 확연히 느껴지는 바.

         

       으으….

         

       이한은 앓는 소리를 내며 몸을 떨었고, 반대로 그와 시선이 마주친 왕녀는.

         

       ‘불경한 녀석, 곁에 있었다면 엄벌을 내렸을 것을.’

         

       타악.

         

       손 안에 부채를 만지작거리며 아이시스는 눈살을 찌푸리고 말았다.

         

       하여튼 건방진 벗이라며.

         

       * * *

         

       워 게임이 진행되는 콜로세움은 마치 축소된 전장과 같았다.

       축구장 두 개를 이어 붙여 만든 것 같은 거대한 전장.

       조경된 숲과 바위들도 그득하다.

       인공적인 자연환경이 조성된 것이 마치 테라리움(Terrarium)을 연상케 하니.

         

       귀족들의 유희라고 하지만, 얼마나 진심으로 유희에 임하는지 알만한 대목이었다.

       하여튼 돈 많은 인간들의 심리란 건 잘 이해가 안 간다.

         

       허나 한 가지 분명한 건 이러한 거대 테라리움에서 벌어지는 시합은 단순히 귀족들만 아니라, 백성들에게도 매력적이란 것이다.

       생도만이 아니라 시민들에게도 개방된 콜로세움이었고, 그들은 관람석에서 소리를 힘껏 높이며 응원의 목소리를 높였다.

         

       [와아아아아!]

         

       가히 열광적.

       하긴, 엔터테인먼트가 압도적으로 부족한 중세 시대에 있어 이러한 시합은 귀중한 자극이다.

       인기로 따지면 미국의 미식축구 못지않을 테니.

       그리고 하필.

         

       “…으음.”

       “나, 나 떨고 있냐?”

       “어, 미친 듯이 떨고 있네. ……나도 그렇고.”

         

       생도들은 아찔했다.

       대략 수천 명은 가뿐히 넘길 사람들이 그들을 보고 있다.

       관심과 기대, 흥분.

       다양한 감정의 열화가 그들을 덮치니 어깨와 목이 다 묵직하다.

       그나마 이러한 무게를 견딜 수 있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불칸에서 겪은 가혹하고도 불합리한 환경 덕분이리라.

         

       “와아, 그 지옥 같은 시간이 이럴 때 도움이 다 되네.”

       “그러니까.”

       “하하….”

         

       허나 그렇다고 한들, 첫 전장의 규모가 지나치게 크다.

       아마, 왕녀의 행차 때문일 테지.

         

       왕의 후예.

       그들이 훗날 기사가 된다면 충의로 모셔야 할 위대한 여군주.

       그리고 왕국제일의 미색을 뽐내며, 왕국의 귀족만이 아니라 백성들마저 동경하게 만든 그녀가 있기에 더욱 열광하고 그들을 주목하는 것일 터.

         

       그들이 무슨 가치가 있기에 차세대 국왕이 일부러 행차했는지 낱낱이 파헤칠 셈이리라.

       물론 왕녀의 행차가 영광스러운 건 그들도 마찬가지지만, 이 때문에 도리어 더 긴장감이 높아지는 게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이러고 계실 때가 아니에요, 사형들. 이제 전술을 짜야죠.”

       “…….”

         

       사내놈들 모두가 떨고 있을 때, 유일하게 강심장을 유지하는 강직한 소녀가 있었다.

         

       “응? 왜 그런 눈으로 보세요?”

       “…폴트 영애님도 정말 참여하실 생각입니까? 지금이라도 올라가시죠.”

       “말씀 편하게 하세요, 사형. 그리고 전날에도 말했다시피 저는 포기할 마음이 없답니다.”

       “으음….”

         

       여전히 귀족이 어려운 그들로선 아무리 유약해 보이는 여성일지언정 불편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한 달 동안 같이 동고동락하며 전우 비스름한 감정을 느끼게 된 레비 폴트이니 이렇게 의견을 내기라도 하는 거지.

       그런 뜻에서 그들은 레비 폴트가 워 게임에 참전한 것에 여전히 자그마한 불안을 느끼고 있다.

       귀족이기 전에, 저들보다 한참은 작은 소녀가 자칫 다치기라도 한다면 죄책감을 느낄 것 같아서.

         

       허나 소녀의 눈은 강직했다.

         

       “사형들, 비록 제가 약하긴 하지만, 그래도 저 또한 배울 수 있는 건 다 배웠어요. 그러니 걱정은 하지 마세요. 저도, ─마냥 평범한 각오로 이 자리에 선 것은 아니니까요.”

       “으음.”

         

       그래, 저 말대로다.

         

       레비 폴트와 어울리고 한 달.

       그동안 겪은 소녀는 강한 사람이었다.

       무력을 말하는 게 아니라, 정신이 강인한 사람.

       분명히 말하건대, 지금 당장은 그들이 레비 폴트보단 강할 수 있어도 훗날은 모를 것이리라.

       소녀가 가진 정신의 강직함은 가히 로엔 공자조차 감탄한 바 있으니.

       

       “이겨요, 우리. 저는 저라는 사람의 가치를 증명하고, 사형들도 사형들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응.”

         

       때때로 사내란 놈들은 지극히 순박해진다.

       미녀의 손길 한 번에 목숨을 바치기도 하며, 어떨 때는 타인의 응원에 열을 올리기도 하니까.

       그리고 귀족임에도 불구하고 예의 바르게 ‘사형’이라 불러주는 소녀가 격려해준다?

         

       이건 뭐.

         

       “-쟤도 꼬리가 좀 있네.”

         

       누님 정도는 아니지만, 아홉 개까진 아니고, 두 개 정도?

       사내놈들의 피를 들끓게 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는 이제 더는 병아리라 부르지 못할 소녀의 성장이 만족스러워 웃고 말았다.

         

       * * *

         

       다행스럽게도 국왕이 행차하는 일은 없었다.

         

       천만다행을 넘어 십년을 감수했다.

         

       예측이지만, 아이시스가 손을 썼을 확률이 높다.

       안 그래도 갈라하드와 라이오넬이 움직이는데, 국왕마저 움직인다면 그건 그것대로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큰일로 번질 우려가 있으니까.

         

       ‘국왕이 움직이면 군이 움직이지.’

         

       사단 규모의 병력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더 나아가 대귀족들마저 움직여야 한다.

       감히 왕이 행차하는데 어찌 그들이라고 가만히 있을 수 있으랴.

       그리고 그렇게 됐다간 이 학예회(워 게임)는 더는 생도들의 것이 아닌, 권력의 장이 되어버린다.

       이는 항상 중립을 유지해야 하는 학술원의 존재의의를 크게 벗어나는 바.

         

       하니, 아이시스가 왕의 대리자로 마냥 가볍게 참석한 것이 그나마 아카데미가 받아들일 한계선이다.

         

       “공작이나 대공도 안 보여서 다행이긴 하네.”

       “그, 교관님. 그분들을 함부로 언급하시는 건 좀.”

       “내가 그 양반들 신하가 아니잖아? 그리고 잠행(潛行) 중인 양반들이잖아? 그러니 내가 뭐라 한다고 해서 나오면 안 되지. 잠행 중이면 잠행 중답게 얌전히 관람이나 하고 가면 되는 거야.”

       “…가끔 생각하는 거지만, 교관님은 목숨이 여러 개가 아닌지 의심도 갑니다.”

       “부러우냐?”

       “아니요, 전혀.”

       “흐흐.”

         

       공작과 대공.

         

       그 둘이 지금 어디 있는지는 이한도 그렇고 생도나 교원들도 모른다.

       아니, 아예 왔다는 사실 자체를 극소수만 안다는 것이 맞다.

       왕녀만이 공식적인 발표와 함께 방문했을 뿐, 두 군주는 현재 모습을 전혀 드러내지 않은 상황.

       솔직히 이 정도면 안 왔다고 해도 무방하리라.

         

       레이라의 정보가 잘못됐던 것일까?

         

       ‘아니네, 이 인간들 진짜 왔네.’

         

       허나 이한은 레이라 윈터가 가지고 온 정보가 정확하다는 걸 알았다.

       만약 그녀에게 듣지 못했다면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겼겠으나, 알고 나니 보이는 게, 아니 느껴지는 게 있다.

         

       ‘살벌한데?’

         

       일반 관람석에서 생도들과 일반 구경꾼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이질적인 기세.

       숨겼다고 숨겼지만, 이한의 감각을 피할 정도는 아니다.

       그리고 기세를 느낀 순간 직감한다.

         

       ‘하나같이 내 아래가 아니야.’

         

       감각이란 영역 안으로 들어온 이들이 가진 힘의 크기는 하나같이 거대했다.

         

       특히 두 놈.

       각각 멀리 떨어져 있었으나, 유독 신경을 거슬리게 한다.

       또한 어떤 놈은 마치 자신은 여기 있다고 대놓고 말하는 듯하다.

       송곳을 찌르듯이 저의 뒤통수를 노려보는 것이 아주….

         

       ‘이 새끼가?’

         

       하!

         

       누군지 알겠다.

       그놈이다.

       전날 그와 무차별 주먹다짐을 했던 시건방진 놈.

       공작의 기사.

         

       놈이 그를 도발하고 있었다.

         

       우드득!

         

       당장이라도 찾아가 그날 끝내지 못한 승패를 가리고 싶은 마음이 든다.

       지난 한 달 동안 발전한 건 생도들만이 아니다.

       그도 가르치며, 그들보다 더욱 험난하게 몸을 굴리며 발전했다.

       전날처럼 기술로 지지 않을 자신도 있으니, 당장 시험하고 싶었으나.

         

       “…후우.”

         

       애써 들끓는 피를 억눌렀다.

       그래, ‘오늘은’ 참아야 한다.

       오늘의 주역은 그가 아니니까.

       그가 키운 새싹이,

       분재(盆栽)들이 어느 정도로 컸는지 확인하는 날이다.

         

       하여 참는다.

         

       건방지게 제 존재감을 드러내며 도발하는 놈이 있더라도.

         

       ‘넌 다음에 두고 보자.’

         

       그때는 오늘처럼 끝나지 않을 테니.

         

       이한은 다음을 기약하며 자신이 키워낸 제자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이한은 알아야 했다.

         

       그가 다른 이들을 느끼고 관찰한 것처럼.

         

       “호오, 재밌는 자가 있군요, 형님.”

         

       다른 누군가도 저를 관측할 수 있음을.

         

       흑발의 사내가 그에게 관심을 드러냈다.

         

       “무슨 뜻이냐.”

       “말 그대롭니다, 저놈 저거 물건입니다. 싸우면 승패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네가 그렇게 평가할 정도라고?”

       “예에, 그거 말고도, 저기 저놈 있지 않습니까, 저쪽도 만만치 않습니다. 공작가가 괴물을 키웠군요.”

       “…….”

       “쩝, 그 ‘세 마리 괴물’ 말고는 상대가 없다고 여겼는데, 좀 반성해야겠습니다그려.”

       “…그런가, 완전히 부패했다고 여겼거늘, 아직 이 정도 저력이 있었는가.”

         

       흑발의 사내들이 이토록 먼 왕도까지 온 저의는 이 웃기지도 않은 촌극을 보러 온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왕가를 견제하려는 얄팍한 생각도 없었고.

       그들이 여기까지 온 이유는 다름 아닌.

         

       “로엔, 네가 보고 싶은 게 저런 것이었더냐….”

         

       가출한 건방진 ‘핏줄’을 보기 위해 왕도까지 왔을 뿐이었다.

       하여 이러한 재롱잔치에는 그다지 큰 관심이 없었다.

       어차피 북부의 삶에 비하면 이곳에 투쟁은 그저 재롱에 불과할 테니.

       한데, 이러한 곳에 북부의 챔피언이 감히 승부를 장담할 수 없는 이들이 무려 둘이나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중 한 명이 키운 어린 전사들이 무대 위에 있다.

       이는.

         

       “…어쩌면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뭘 말입니까?”

       “내 핏줄 중 유일하게 사자라 불릴만한 자격을 갖춘 저 아이가, 내 아들 놈이 중앙까지 오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를.”

       “호오.”

       “그걸, 지금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

       “그거 참, 재밌을 것 같군요, 흐흐.”

         

       그렇게 본의 아니게 기대 어린 관심을 끌게 되었다는 것도 모르는 채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무수한 이들의 기대감을 품게 한 워 게임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말이다.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환생 30년, 알고 보니 장르가 로판이었다?
Status: Ongoing Author: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the genre was romance fantasy? ...Really, how? I lived as a magician's slave, experimented on, then as an assassin, mercenary, soldier, and even a knight. This is a story where I'm in a genre all by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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