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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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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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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말해서 저 사람이 말하는 말이 다 맞았다. 나는 마검이 없으면 허접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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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와서 마검을 꺼내긴 조금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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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르간도아는 생명을 죽여 피를 흡수하는 데 최적화 되어 있어 상대를 살려 보낸다는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다 보니 쉽사리 마검을 꺼내기 꺼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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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못해서 죽이면 어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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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은 평범한 검사가 아닌 검투노예였다. 소유주가 존재한다는 말이다. 내가 함부로 그들을 죽이면 돈으로 물어줘야 할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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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냥 대충 싸워주는 척하다가 져버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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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분이야 조금 나쁘겠지만 그 외에 마땅히 떠오르는 방법이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검을 주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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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련하자는 말이지?”
    “이게 어디다 대고 반말이야?”
    “너도 하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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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본인은 반말하면서 상대에게 존댓말을 원하는 걸까? 비앙카처럼 최상층이라는 선물을 들고 온 것도 아니면서 무례하게 구는 꼴이 못마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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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마검을 -…아니야 그건 진짜 화나면 꺼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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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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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어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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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을 들고 있던 놈이 준비 자세도 취하기 전에 갑작스럽게 달려들었다. 기습이었다. 대련이라기엔 너무나 비겁한 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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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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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놈이 내지른 검이 내 명치 부근을 정확히 찔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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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병신이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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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가 비웃음을 지으며 검을 옆으로 휘둘렀다. 갈비뼈가 부러지고 관통되는 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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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흑,콜록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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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가 찔리면서 핏물이 터져 나왔다. 근데 그 양이 조금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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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촤아악, 철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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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뭐야 미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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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의 수도꼭지를 최대로 틀어놓은 것처럼 핏물이 쏟아지자 거만한 표정을 짓고 있던 노예가 주춤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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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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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입에 가득 찬 피를 전부 게워냈다. 그리고는 입가를 손등으로 슥 닦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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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끙, 옷에 피가 다 튀었네.”
    “뭐,뭐야?! 너 어떻게 서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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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의 시선이 빠르게 내 상반신과 얼굴을 마구 오갔다. 그뿐만이 아니라 꽤 떨어진 거리에 앉아 싸움을 구경하던 노예들도 기겁하며 뒤로 주춤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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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야 서 있을 수 있으니까 서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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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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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뭔…?! 너 설마 언데드인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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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의 얼굴에 식은땀이 한가득 맺혔다. 언데드, 죽어도 죽지 않는 불사자이자 언제 이성을 잃고 달려들지 모르는 괴물. 남자는 그런 괴물에게 죽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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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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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는 검을 높게 들어 이번에는 리안의 어깨를 베어냈다. 검이 어깨를 지나 왼쪽 가슴까지 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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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억,헉…이번에야말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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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덥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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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기 베었으면 이만 뽑지? 아, 이 상태로 계속 싸우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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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태연한 표정으로 제 몸에 꽂힌 칼의 날 부분을 잡아 들어 올렸다. 남자는 혼란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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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읏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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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을 번쩍 들어 어깨에서 빼내자 남자의 표정이 하얗게 질렸다. 그때, 멀찍이 떨어져 있던 노예 중 한명이 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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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거,이거나 먹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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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아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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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손바닥만 한 브로치를 내밀어 보였다. 새하얀 빛이 리안에게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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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이 브로치는 무려 신성력 마법이 걸려있다고!”
    “그런 귀한 걸..!”
    “크흑, 친구를 위해서라면 아깝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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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이 우정을 돈독히 하고 있을 때, 들리지 말아야 할 언데드의 목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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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 상처가 다 나았네. 고마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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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챙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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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을 들고 있던 노예가 검을 떨어뜨리고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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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오지마!”
    “히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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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경지에 들어선 무언가를 보면 겁에 질려버린다. 그들에게 리안이 딱 그랬다. 칼로 찔러도 죽지 않고 평범하게 서 있고 태연하게 몸에 박힌 칼을 빼내는 존재. 거기다가 신성력도 통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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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의 꼴은 빈말로라도 좋은 상태가 아니었다. 피범벅이 되어 씩 웃어 보이는 모습은 꿈에 나올까 무서운 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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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은 시각적인 공포와 정신적인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아 바닥을 기며 도망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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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살려줘!”
    “괴물..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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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식간에 연무장은 텅 비게 되었다. 혼자 남은 리안은 턱을 긁적이다가 제 꼴을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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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씨…옷도 얼마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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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꼴로 아이리스에게 돌아갈 순 없었다. 리안은 어쩔 수 없이 아까 도망친 노예들에게 옷이라도 받아내기로 했다. 승부는 자신이 이겼으니 그 정도는 받아내도 괜찮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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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만 리안이 깜빡한 사실이 하나 있다면 -… 제 모습이 어떻게 보일지였다. 아이리스에게 보이는 것만 걱정했지, 다른 노예들에게 어떻게 보일지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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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탓에 리안은 피범벅이 된 상태로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검을 들고 복도를 걷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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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헉..”
    “흐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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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층에 있는 이들은 수많은 시체와 마물의 시체를 수없이 본 이들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움츠러들거나 놀라는 이유는 리안의 모습이 흡사 연쇄살인마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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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 중 몸을 더욱 움츠리는 이들은 대다수 조금 전에 있었던 리안의 경기를 직접 본 이들이었다. 아찔한 살기와 학살의 현장을 봐버린 이들은 리안이 뭘 하지 않아도 이미 겁에 질린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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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눈 마주치면 안 돼.’
    ‘누굴 죽였길래 무슨 피가..?’
    ‘분명 경기할 땐 피 한 방울도 안 묻히고 나왔는데?’
    ‘헉, 평범한 검을 들고 다니는 거 보니까 아이템 때문에 강해진 게 아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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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도치 않은 착각이 깊어져 가고 있을 때, 리안은 드디어 도망간 노예들의 방을 찾을 수 있었다. 다른 노예를 붙잡고 물어보니 금방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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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똑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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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예가 있을 것이라 추정되는 방에 노크를 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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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에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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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면 곤란한데.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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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생각을 하며 문손잡이를 잡은 채 문을 한 번 더 노크했다. 그 순간 문손잡이가 부드럽게 돌려졌다. 아무래도 문을 잠가두지 않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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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명 방에 있다고 했으니까 들어가서 부탁하면 되겠지. 노크 소리가 안 들렸을 수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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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 상대가 먼저 무례를 저지른 상태였기에 거리낌 없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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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가구도 둘 수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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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리스와 함께 사용하는 곳보다 훨씬 많은 가구가 놓인 집을 훑어보며 발걸음을 옮겼다. 방 두 개 중 하나는 닫혀있었고 하나는 열려있었다. 슬쩍 열린 문 안쪽을 봤는데 아무도 없었다. 남은 방은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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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기 있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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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곧바로 성큼성큼 걸어 닫힌 문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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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똑똑.
    ​
    ​
    예의상 한 번 노크해줬다. 대답이 없어도 어차피 들어갈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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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쾅,쿵! 우당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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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막 문손잡이를 돌리려는 순간 안쪽에서 큰 소음이 들렸다. 리안은 곧바로 문손잡이를 돌려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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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히익,히이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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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불을 뒤집어쓴 실루엣이 비명을 내지르며 침대 구석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움직이다가 선반에 부딪히기라도 했는지 물건 몇 개가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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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려, 살려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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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굴부터 몸까지 온통 피범벅인 상태인데다가 한 손에는 날 선 검을 들고 있다. 검 끝에선 핏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흡사 살인귀가 사람을 죽이고자 방에 쳐들어온 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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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까 연무장에 있던 사람이지?”
    “아,아니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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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예가 기겁하며 고개를 마구 저었다. 
    ​
    ​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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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썹을 까딱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리자 남자가 바로 머리를 침대에 박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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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저 맞습니다! 맞..맞아요!”
    “아, 그러면 부탁하고 싶은데.”
    ​
    ​
    순간 남자의 머릿속에 “네 녀석의 목숨, 잘 가져가마!”라고 외치는 리안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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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욕실 좀 빌려 쓰고 싶은데 -..”
    “제발 목숨만이라도..!”
    ​
    ​
    두 사람의 말이 허공에서 얽혔다.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
    ​
    “목숨은 필요 없고 욕실 좀 쓴다고.”
   “어,얼마든지 사용하세요!”
    ​
    ​
    리안은 남자의 욕실을 알차게 사용한 후 옷까지 뜯어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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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휴, 늦었다. 늦었어.’
    ​
    ​
    비앙카에게 다녀온 이후 아이리스는 내가 잠시라도 자리를 비우는 걸 싫어했다. 물론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니까 기다려달라고 하면 얌전히 기다려 주긴 했지만, 볼이 팅팅 부풀어있었다.
    ​
    ​
    ‘그래도 전보다 반응도 많아지고, 원하는 것도 생기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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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싱글벙글 웃으며 집 앞에 도착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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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 나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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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소라면 슝하고 달려와 안겼을 아이리스가 소파에 앉아 꿈쩍도 하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가자 그제야 내 쪽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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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리스 무슨 일 있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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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리스는 말없이 내 얼굴을 바라보다가 소심하게 손을 내밀어 내 옷자락을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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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른,옷..”
    “아, 이거 아는 사람한테 빌렸어.”
    “…”
    ​
    ​
    아이리스는 왠지 모르게 시무룩해 보였다. 내가 늦어서 그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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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안 아이리스 다음에는 좀 더 빨리 올게. 혼자 있어서 외로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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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리스는 대답 없이 내 옷자락을 꽉 붙잡았다. 이내 입술을 벙긋거리며 무어라 말을 하려는 듯싶었지만 결국 꾹 다물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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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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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고심하는 아이리스의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
    ​
    ‘비앙카씨를 따라서 최상층에 가고 싶어서 고민 중인 건가?’
    ​
    ​
    그것 말고는 아이리스가 갑자기 이런 표정을 지을 만한 일이 떠오르지 않아, 비앙카에 대해 떠올렸다.
    ​
    ​
    ‘으음, 사람을 함부로 무는 그림자가 있어서 보내기 좀 그런데.’
    ​
    ​
    어떻게 말해야 아이리스가 떠나지 않을까?
    ​
    ​
    ***
    ​
    ​
    리안이 끙끙거리며 고민하고 있을 때 아이리스는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
    ​
    아이리스는 리안이 시합이 끝났음에도 돌아오지 않자 방에서 기다리고 있으라는 그의 말을 어기고 집을 빠져나왔었다. 아이리스에겐 꽤 용기가 필요한 행동이었다. 
    ​
    ​
    그렇게 얼마나 돌아다녔을까, 어디선가 피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그것도 아주 진하게. 아이리스는 뭐에 홀린 사람처럼 피 냄새가 나는 곳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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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후원해주신 익명님! 혈소연님! 후원감사합니다! 연재열심히 하겠습니다! ‘0’9

Ilham Senjaya님! 오늘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3

다크 판타지 주민의 멘탈은 생각보다 말랑해서..개그 세계를 감당하지 못하네요.(절레절레)

한 경기 정도 더 뛰고 나면 다른 애들 시점도 간단히 나올 것 같습니다. 제스나 노아나 피아 같은.

비중은 제스가 제일 많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마..

추천과 선작은 사랑입니다!다음화 보기

‘어쩌지?’

솔직히 말해서 저 사람이 말하는 말이 다 맞았다. 나는 마검이 없으면 허접 그 자체였다.

‘지금 와서 마검을 꺼내긴 조금 그런데…’

가르간도아는 생명을 죽여 피를 흡수하는 데 최적화 되어 있어 상대를 살려 보낸다는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다 보니 쉽사리 마검을 꺼내기 꺼려졌다.

‘잘못해서 죽이면 어떡해?’

그들은 평범한 검사가 아닌 검투노예였다. 소유주가 존재한다는 말이다. 내가 함부로 그들을 죽이면 돈으로 물어줘야 할지도 몰랐다.

‘그냥 대충 싸워주는 척하다가 져버릴까?’

기분이야 조금 나쁘겠지만 그 외에 마땅히 떠오르는 방법이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검을 주워들었다.

“대련하자는 말이지?”

“이게 어디다 대고 반말이야?”

“너도 하길래.”

왜 본인은 반말하면서 상대에게 존댓말을 원하는 걸까? 비앙카처럼 최상층이라는 선물을 들고 온 것도 아니면서 무례하게 구는 꼴이 못마땅했다.

‘역시 마검을 -…아니야 그건 진짜 화나면 꺼내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죽어엇!”

“…!”

검을 들고 있던 놈이 준비 자세도 취하기 전에 갑작스럽게 달려들었다. 기습이었다. 대련이라기엔 너무나 비겁한 수였다.

푸욱!

놈이 내지른 검이 내 명치 부근을 정확히 찔렀다.

“역시 병신이었네.”

남자가 비웃음을 지으며 검을 옆으로 휘둘렀다. 갈비뼈가 부러지고 관통되는 게 느껴졌다.

“커흑,콜록콜록!”

폐가 찔리면서 핏물이 터져 나왔다. 근데 그 양이 조금 많았다.

촤아악, 철퍽!

“뭐,뭐야 미친..!”

거의 수도꼭지를 최대로 틀어놓은 것처럼 핏물이 쏟아지자 거만한 표정을 짓고 있던 노예가 주춤 물러났다.

“웨엑.”

나는 입에 가득 찬 피를 전부 게워냈다. 그리고는 입가를 손등으로 슥 닦으며 말했다.

“끙, 옷에 피가 다 튀었네.”

“뭐,뭐야?! 너 어떻게 서 있는 거야?”

남자의 시선이 빠르게 내 상반신과 얼굴을 마구 오갔다. 그뿐만이 아니라 꽤 떨어진 거리에 앉아 싸움을 구경하던 노예들도 기겁하며 뒤로 주춤 물러났다.

“…? 그야 서 있을 수 있으니까 서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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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뭔…?! 너 설마 언데드인거냐!”

남자의 얼굴에 식은땀이 한가득 맺혔다. 언데드, 죽어도 죽지 않는 불사자이자 언제 이성을 잃고 달려들지 모르는 괴물. 남자는 그런 괴물에게 죽고 싶지 않았다.

“이익..!”

남자는 검을 높게 들어 이번에는 리안의 어깨를 베어냈다. 검이 어깨를 지나 왼쪽 가슴까지 베었다.

“허억,헉…이번에야말로 -…”

덥석.

“…?!?!”

“저기 베었으면 이만 뽑지? 아, 이 상태로 계속 싸우는 건가?”

리안은 태연한 표정으로 제 몸에 꽂힌 칼의 날 부분을 잡아 들어 올렸다. 남자는 혼란에 빠졌다.

“읏차 -.”

검을 번쩍 들어 어깨에서 빼내자 남자의 표정이 하얗게 질렸다. 그때, 멀찍이 떨어져 있던 노예 중 한명이 달려왔다.

“이거,이거나 먹어라!”

파아앗!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손바닥만 한 브로치를 내밀어 보였다. 새하얀 빛이 리안에게 쏟아졌다.

“이,이 브로치는 무려 신성력 마법이 걸려있다고!”

“그런 귀한 걸..!”

“크흑, 친구를 위해서라면 아깝지 않아!”

그들이 우정을 돈독히 하고 있을 때, 들리지 말아야 할 언데드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야, 상처가 다 나았네. 고마워!”

“…?!”

“….?!?!”

챙그랑!

검을 들고 있던 노예가 검을 떨어뜨리고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오,오지마!”

“히이익!”

인간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경지에 들어선 무언가를 보면 겁에 질려버린다. 그들에게 리안이 딱 그랬다. 칼로 찔러도 죽지 않고 평범하게 서 있고 태연하게 몸에 박힌 칼을 빼내는 존재. 거기다가 신성력도 통하지 않는다!

리안의 꼴은 빈말로라도 좋은 상태가 아니었다. 피범벅이 되어 씩 웃어 보이는 모습은 꿈에 나올까 무서운 꼴이었다.

그들은 시각적인 공포와 정신적인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아 바닥을 기며 도망가기 시작했다.

“사,살려줘!”

“괴물..괴물!”

순식간에 연무장은 텅 비게 되었다. 혼자 남은 리안은 턱을 긁적이다가 제 꼴을 내려다보았다.

“이씨…옷도 얼마 없는데.”

이 꼴로 아이리스에게 돌아갈 순 없었다. 리안은 어쩔 수 없이 아까 도망친 노예들에게 옷이라도 받아내기로 했다. 승부는 자신이 이겼으니 그 정도는 받아내도 괜찮을 것이다.

다만 리안이 깜빡한 사실이 하나 있다면 -… 제 모습이 어떻게 보일지였다. 아이리스에게 보이는 것만 걱정했지, 다른 노예들에게 어떻게 보일지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 탓에 리안은 피범벅이 된 상태로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검을 들고 복도를 걷게 되었다.

“헉..”

“흐억…!”

현재 층에 있는 이들은 수많은 시체와 마물의 시체를 수없이 본 이들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움츠러들거나 놀라는 이유는 리안의 모습이 흡사 연쇄살인마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들 중 몸을 더욱 움츠리는 이들은 대다수 조금 전에 있었던 리안의 경기를 직접 본 이들이었다. 아찔한 살기와 학살의 현장을 봐버린 이들은 리안이 뭘 하지 않아도 이미 겁에 질린 상태였다.

‘눈,눈 마주치면 안 돼.’

‘누굴 죽였길래 무슨 피가..?’

‘분명 경기할 땐 피 한 방울도 안 묻히고 나왔는데?’

‘헉, 평범한 검을 들고 다니는 거 보니까 아이템 때문에 강해진 게 아니었네.’

의도치 않은 착각이 깊어져 가고 있을 때, 리안은 드디어 도망간 노예들의 방을 찾을 수 있었다. 다른 노예를 붙잡고 물어보니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똑똑.

노예가 있을 것이라 추정되는 방에 노크를 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 안에 없나?”

그러면 곤란한데. 어쩌지?

그런 생각을 하며 문손잡이를 잡은 채 문을 한 번 더 노크했다. 그 순간 문손잡이가 부드럽게 돌려졌다. 아무래도 문을 잠가두지 않은 듯했다.

‘분명 방에 있다고 했으니까 들어가서 부탁하면 되겠지. 노크 소리가 안 들렸을 수도 있고.’

이미 상대가 먼저 무례를 저지른 상태였기에 거리낌 없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런 가구도 둘 수 있구나?’

아이리스와 함께 사용하는 곳보다 훨씬 많은 가구가 놓인 집을 훑어보며 발걸음을 옮겼다. 방 두 개 중 하나는 닫혀있었고 하나는 열려있었다. 슬쩍 열린 문 안쪽을 봤는데 아무도 없었다. 남은 방은 하나였다.

‘저기 있겠구나.’

리안은 곧바로 성큼성큼 걸어 닫힌 문으로 향했다.

똑똑.

예의상 한 번 노크해줬다. 대답이 없어도 어차피 들어갈 생각이었다.

쾅,쿵! 우당탕!

막 문손잡이를 돌리려는 순간 안쪽에서 큰 소음이 들렸다. 리안은 곧바로 문손잡이를 돌려 안으로 들어갔다.

“히익,히이이익!”

이불을 뒤집어쓴 실루엣이 비명을 내지르며 침대 구석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움직이다가 선반에 부딪히기라도 했는지 물건 몇 개가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살려, 살려주세요!”

“…?”

얼굴부터 몸까지 온통 피범벅인 상태인데다가 한 손에는 날 선 검을 들고 있다. 검 끝에선 핏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흡사 살인귀가 사람을 죽이고자 방에 쳐들어온 꼴이었다.

“아까 연무장에 있던 사람이지?”

“아,아니요! 아닙니다!”

노예가 기겁하며 고개를 마구 저었다.

‘아닌가..?’

눈썹을 까딱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리자 남자가 바로 머리를 침대에 박으며 말했다.

“저,저 맞습니다! 맞..맞아요!”

“아, 그러면 부탁하고 싶은데.”

순간 남자의 머릿속에 “네 녀석의 목숨, 잘 가져가마!”라고 외치는 리안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욕실 좀 빌려 쓰고 싶은데 -..”

“제발 목숨만이라도..!”

두 사람의 말이 허공에서 얽혔다.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목숨은 필요 없고 욕실 좀 쓴다고.”

“어,얼마든지 사용하세요!”

리안은 남자의 욕실을 알차게 사용한 후 옷까지 뜯어냈다.

***

‘어휴, 늦었다. 늦었어.’

비앙카에게 다녀온 이후 아이리스는 내가 잠시라도 자리를 비우는 걸 싫어했다. 물론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니까 기다려달라고 하면 얌전히 기다려 주긴 했지만, 볼이 팅팅 부풀어있었다.

‘그래도 전보다 반응도 많아지고, 원하는 것도 생기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싱글벙글 웃으며 집 앞에 도착했다.

“아이리스 나왔어.”

평소라면 슝하고 달려와 안겼을 아이리스가 소파에 앉아 꿈쩍도 하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가자 그제야 내 쪽을 바라보았다.

“아이리스 무슨 일 있었어?”

“…”

아이리스는 말없이 내 얼굴을 바라보다가 소심하게 손을 내밀어 내 옷자락을 붙잡았다.

“다른,옷..”

“아, 이거 아는 사람한테 빌렸어.”

“…”

아이리스는 왠지 모르게 시무룩해 보였다. 내가 늦어서 그런 걸까?

“미안 아이리스 다음에는 좀 더 빨리 올게. 혼자 있어서 외로웠지?”

“…”

아이리스는 대답 없이 내 옷자락을 꽉 붙잡았다. 이내 입술을 벙긋거리며 무어라 말을 하려는 듯싶었지만 결국 꾹 다물어버렸다.

‘설마…’

나는 고심하는 아이리스의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비앙카씨를 따라서 최상층에 가고 싶어서 고민 중인 건가?’

그것 말고는 아이리스가 갑자기 이런 표정을 지을 만한 일이 떠오르지 않아, 비앙카에 대해 떠올렸다.

‘으음, 사람을 함부로 무는 그림자가 있어서 보내기 좀 그런데.’

어떻게 말해야 아이리스가 떠나지 않을까?

***

리안이 끙끙거리며 고민하고 있을 때 아이리스는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아이리스는 리안이 시합이 끝났음에도 돌아오지 않자 방에서 기다리고 있으라는 그의 말을 어기고 집을 빠져나왔었다. 아이리스에겐 꽤 용기가 필요한 행동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돌아다녔을까, 어디선가 피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그것도 아주 진하게. 아이리스는 뭐에 홀린 사람처럼 피 냄새가 나는 곳으로 향했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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