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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8

    박람회 내부는 군인들로 인해서 상당히 어수선했다.

    기절하고 일어나니, 이런 난장판이라 더욱 그런 느낌이 심했다.

    박람회장에 있다가 갑자기 정신이 아득해지나 싶더니, 깨어나 보니 사건이 터져있는 것이다.

    지금은 군인들이 박람회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줄을 세워두고 차례대로 사정청취를 하고 있었다.

    예린은 시무룩한 표정이었다.

    “세희 언니, 아무래도 박람회는 이걸로 끝이겠죠?”

    “아무래도 그렇겠지. 저쪽에 보면 시체 가방들이 잔뜩 있더라. 사망자가 꽤 나왔다는 것 같아.”

    박람회장 한편에는 군인들이 시체를 가방에 집어넣고는 잔뜩 옮기고 있었다.

    이런 사건이 터졌는데, 박람회를 계속 진행할 리가 없지.

    주변에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사망자뿐만 아니라, 오브젝트 손실이 상상을 초월했다.

    줄은 계속해서 줄어들어서, 세희 연구소의 차례가 왔다.

    사정청취는 간단한 문답으로 이뤄졌다.

    분실된 오브젝트가 있는지, 연구소 인원 중 사망자가 있는지 등등을 간단하게 물어봤다.

    황금 나무에 관련된 질문도 많았다.

    <황금 나무를 이전에 발견하거나, 다른 연구소에서 본 적이 있습니까?>

    <부천 연구소 재건에 대한 사소한 소문이나 소식에 대해 아는 것이 있습니까?>

    정부에서 나온 조사원들은 이번 박람회 사태의 원인을 황금 나무로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사실 처음 보는 오브젝트가 박람회에 갑자기 출품되면 수상해야 정상이긴 했다.

    세희 연구소를 대상으로 한 사정청취가 끝나자, 철수 준비를 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철수 준비가 완료되시면 저쪽에 있는 데스크에 서류를 제출해주십시오. 제출하시는 순서대로 순번표를 받고 순번대로 철수하시면 됩니다.”

    철수 준비로 연구소 부스에서 짐을 정리하던 예린은 시무룩한 목소리로 말했다.

    “결국 고라니 잠옷은 꺼내보지도 못 했네요.”

    “글쎄, 사신이가 옷을 입어줄지부터가 미지수라….”

    내가 아는 한 사신이는 옷을 입은 적이 없으니까 말이다.

    세희 연구소는 딱히 오브젝트 손실은 없었다.

    얌전한 ‘귀여운 강아지’는 부스 구석에 멀쩡히 잘 있었고, 영체 고양이는 당연히 멀쩡했다.

    다만 어그로를 잘 끄는 파란 도마뱀은 누군가가 머리를 먹어치운 상태였다. 

    예전 중앙 연구소 데이터를 보면 꼬리가 남아있으면 꼬리를 기준으로 부활한다고 하니, 하반신만 가져가도 괜찮을 것이다.

    회색 사신?

    사신이는 주변을 뚜방뚜방 걸어 다니는 것 같더니, 어느 순간 사라져 있었다.

    아마, 연구소로 먼저 돌아갔겠지.

    전용 격리 트럭에 오브젝트들을 집어넣고, 세희 연구소편으로 보냈다.

    트럭 기사는 믿음과 신뢰의 김중뢰.

    나머지 연구원들은 짐을 들고 대절 버스로 올라탔다.

    필요한 짐들을 모두 차량에 실고, 박람회장을 벗어나 연구소로 출발했다.

    도로를 달리는 세희 연구소 대절 버스 안.

    옆자리의 예린은 텅 비어있는 디지털 카메라 데이터를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었다.

    “뭘 그렇게 찾아보는 거야?”

    “분명 사진을 찍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찾아보고 있었어요.”

    “착각이겠지. 카메라를 꺼낸 적도 없잖아?”

    “왠지 고라니 잠옷을 입은 사신이 사진을 잔뜩 찍었던 것 같은데, 착각이겠죠?”

    예린이는 카메라를 가방에 집어넣으며 ‘하긴, 그런 일이 현실에 있을 리가 없겠죠?’라고 중얼거렸다.

    세희 연구소 제 1회 박람회 참가는 이렇게 짧게 끝이 났다.

    ***

    박람회장 사건은 ‘동물원의 슬픈 징크스’를 다시 확인해주면서 끝이 났다.

    침대 위에 누워서 천장을 향해 손을 뻗었다.

    뀩.

    주먹을 작게 쥐었다가 폈다.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늘어났다.

    박람회장에서 오브젝트를 처리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제일 의문인 것은 황금 사신의 변화였다.

    하루살이 황금 사신의 지속시간이 꽤 늘어난 것이다.

    얻어낸 능력이 저절로 성장하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황금 사신이 죽인 오브젝트는 황금 사신의 힘이 되는 것 같았다.

    [아직도 ‘메이커’를 잡지 못했다는 게 말이 됩니까? 박람회장에서 그런 대형 사고를 일으켰는데?]

    [지금 테러 용의자가 버젓이 돌아다니고 있는데! 정부는 뭘 하는 겁니까?]

    TV에서는 박람회장을 털어간 범죄자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했다.

    통칭 ‘메이커’라고 불리는 범죄자에 대한 이야기였다.

    처음에는 온갖 이야기와 음모론이 나왔었다.

    <이번 박람회 사건은 회색 사신의 학살극이다.>

    <신종 회색 사신, 황금 사신이 벌인 일이다.>

    이런 데일리 오브젝트 같은 의견을 시작으로 온갖 말이 떠돌았지만, 어떤 소식이 퍼진 기점으로 그런 이야기는 싹 사라져버렸다.

    그건 바로 ‘부서지지 않는 큐브’가 사라졌다는 소식이었다.

    말 그대로 ‘부서지지 않는 큐브’인지라 부서졌을 리도 없고 어딘가로 이동하는 오브젝트도 아니었으니 도난일 수밖에 없었다.

    부서지지 않는 큐브의 가치는 측정하기 힘들 정도로 높았기에, 이번 사건 자체가 저 큐브를 빼돌리기 위한 것이라는 의견이 대세가 되었다.

    하지만 누가 이런 사건을 벌인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었다.

    그 용의자는 황금 나무의 재료가 밝혀지면서 확정되었다.

    <황금 나무는 황금뿔을 재료로 인공적으로 만들어졌다!>

    황금 나무는 황금뿔로 만들어진 오브젝트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그 용의자는 ‘메이커’로 지목되었다.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의 기술력으로 오브젝트를 만드는 범죄자.>

    <황금뿔로 오브젝트를 만드는 범죄자.>

    <최근 활동을 시작한 범죄자.>

    황금뿔을 재료로 오브젝트를 만들고 다니는 ‘메이커’가 유력한 용의자가 되었다.

    사실 내가 생각하기에 이번 사건에서 의문스러운 점은 몇 가지 더 있었지만, 이미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진 뒤였다.

    ‘군인들, 특히 봉쇄를 주도한 지휘관이 왜 박람회장에서 죽어있었는가.’

    ‘이번 박람회에는 왜 이렇게 위험한 오브젝트들이 다수 전시되었는가.’

    이런 의문점들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TV에서는 ‘메이커’만을 조명하고 있었다.

    똑같은 소리만 반복하는 TV를 꺼버리고 격리실 밖으로 나섰다.

    이번에 얻은 능력이나 테스트 해봐야지.

    ***

    강동구 외곽에 버려진 폐 연구소.

    연구소장은 박람회장에서 탈출한 뒤, 거처를 이곳으로 옮겼다.

    부천 연구소 명의로 사건을 일으킨 이상, 빠르든 늦든 발각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이 새로운 연구소에서 연구소장의 또 다른 실험이 시작되었다.

    “자, 그럼 실험을 시작하게.”

    시끄러운 신호음이 울리며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이전에 했던 실험과 유사한 방식의 실험이었다. 

    <황금뿔로 만든 밀실에 납치된 사람을 집어넣고 오브젝트에게 이름을 붙이도록 강제한다.>

    달라진 점은 딱 하나, ‘부서지지 않는 큐브’가 밀실 내부에 배치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철판을 거대한 망치로 내려치는 것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름 없음’이 나타나서 밀실을 사정없이 후려치기 시작한 것이다.

    큐브에 의해 강화된 밀실은 ‘파괴 불가’에 걸맞은 강도를 보여주고 있었다.

    아무리 빠르고 강하게 후려쳐도 밀실은 굳건하게 그 형상을 유지했다.

    계속 이어질 것만 같은 철판을 후려치는 굉음은 어느 순간 뚝, 끊어졌다.

    그리고 전혀 다른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연구실 전역에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칠판을 사정없이 긁는 것 같은 소름끼치는 소리였다.

    그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이름 없음’의 손가락이 밀실 벽을 천천히 뚫고 나왔다.

    처음에는 손가락 하나.

    조금 지나면 손목까지.

    그리고는 팔 전체.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지는 만큼 팔이 길게 길게 뚫고 나오고 있었다.

    ‘파괴 불가’를 뚫고 ‘이름 없음’의 팔이 나타난 것이다.

    ‘이름 없음’의 팔도 뭔가 손상이 생기는 것처럼 가루가 흩날렸지만, 순식간에 재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밀실은 재생하지 못했다.

    “살려줘, 살려줘! 살려줘!” 

    점점 밀고 들어오는 팔을 본 밀실의 남자는 귀를 막은 채 비명을 질렀다.

    살려달라고, 그저 살려달라고 계속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남자의 염원은 다른 실험의 희생양들과 마찬가지로 이뤄지지 못했다.

    상반신을 모두 집어넣은 ‘이름 없음’은 그대로 남자를 움켜쥐고는 천천히 짓이겨 죽였다.

    물리 면역인 만큼,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었다.

    결국 남자는 으깨져버리고, 밀실 내부에는 인간이었던 남자의 핏물만이 남았다.

    “큐브로도 막을 수가 없군. 물리 면역을 뚫는 방법이 존재했다니…. ‘이름 없음’에 대한 실험은 중지다. 다른 해결책이 생기기 전에는 시간 낭비겠어.”

    소장은 화가 난 표정으로 실험 종료를 선언했다.

    “이래서야 ‘KR – 897’ 연구는 시작할 수나 있을지 모르겠군.”

    소장이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가슴팍에서 핏물이 튀어 올랐다.

    “아, 이런.”

    가슴팍에서 튀어 나온 기괴한 팔은 천천히 소장의 몸을 반으로 가르고 있었다.

    소장은 입에서 피를 쏟아가며 죽어가고 있었지만, 별로 걱정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연구원 제군들. 그럼, 하루 간 휴식이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연구소장은 반으로 갈라져서 죽었다.

    소장이 말실수로 피떡이 되어버린 시체 위에서, 연구원들은 눈물을 흘리며 기쁨의 춤을 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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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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