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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8

   앞이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 나의 목을 조르고 있는 느낌.

     

   숨이 막혀오는데도 나의 몸은 꼼짝도 하지 않고 뱀에게 노려진 개구리처럼 굳어있다.

     

   시야가 가려져 있음에도 느껴지는 축축함.

     

   이마에서 무엇인가 흐르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비? 아니다 물의 감촉보다는 질퍽한 느낌이 든다. 이것은 아마도 피겠지.

     

   그럼 나의 상태는 지금 이마에서 피가 흐르고 있으며 알 수 없는 무엇인가에 구속된 상태인 건가?

     

   머릿속으로 상황을 정리해보려 기억을 더듬어 갔다.

     

   분명 응접실에서 에스테반 상단주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것까지는 기억이 나지만 그 이후의 기억이 끊겨있다.

     

   저택에서 나는 습격을 당한 것인가?

     

   대체 누구에게?

     

   설마 장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것인가?

     

   아뿔싸 장인들을 혹사한 것이 하루 이틀은 아니기에 이건 반박의 여지가 없다.

     

   최근 크룬의 합류로 그들이 똘똘 뭉쳐가는 것을 간과하다니. 이건 블랙 기업의 사장인 나의 실책이다.

     

   “으…주 6일로 근무를 바꿀 테니 이쯤에서 타협 ….”

     

   입은 움직였기에 간신히 말을 꺼내었다.

     

   하지만 아무런 대답이 들려오지 않아 혹시나 해 귀를 기울여 보니.

     

   -쌔근쌔근

     

   살짝 들려오는 숙면의 소리.

     

   나는 그제야 이상함을 깨달았다.

     

   그리고 움직이지 않는 신체에 온 힘을 기울이자 조금씩 반응하는 나의 몸.

     

   나는 힘겹게 눈꺼풀을 살짝 들어 올렸다.

     

   그러자 나의 눈에 들어온 것은 나의 목을 조르고 있는 통통한 작은 발이었다.

     

   “…에이다?”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도 내 이마에 고개를 박은채 숙면을 하는 에이다.

     

   나는 내 이마에 흐르고 있는 것이 에이다의 침이었음을 깨달았다.

     

   대체 이게 무슨 영문인가 싶어 삐걱거리는 몸을 겨우 일으켰다.

     

   물론 에이다를 옆에 조심히 눕히느라 고생하며.

     

   “알랭!”

     

   얼마나 잠들어 있던 건지 조금 큰 소리를 냈을 뿐인데 목이 갈라지는 걸 넘어 통증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일어나셨습니까, 도련님!”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기억이 가물가물해.”

     

   내 목소리에 바로 문을 열고 들어온 알랭.

     

   알랭은 깨어난 나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내 곁으로 달려왔다.

     

   내가 괜찮은지 허둥지둥 살피던 알랭은 나의 질문에 그제야 진정하고 대답해주었다.

     

   횡설수설하여 알아듣기 어려웠지만 대략 내가 상단주와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실신하였고, 이유는 다름 아닌 과로 때문이었다고 한다.

     

   “백작님께서 도련님의 건강이 회복되기 전까지는 절대 방에서 나오지 못하게 엄명을 내리셨습니다.”

     

   “아… 후우, 어쩔 수 없네. 그런데 에이다는 왜 여기에 이러고 있는 거지?”

     

   잘 거면 본인 방에서 편하게 잘 것이지 왜 나를 암살하려고 한 걸까?

     

   “그게…도련님이 쓰러지신 걸 보고 자신이 깨울 수 있다며 고집을 피우시는 통에….”

     

   하긴 우리 집에 에이다를 말릴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나는 내 침대 한편에 누워있는 에이다를 쳐다보며 생각했다.

     

   -오빠… 독사과….

     

   무슨 꿈을 꾸는 건지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입술을 복어처럼 오므리는 게 귀여워 나도 모르게 볼을 눌러주었다.

     

   아무튼 이제 다시 일을 시작해야겠다.

     

   조만간 성녀가 방문한다는데 성화를 그릴 준비도 해야 했고, <철혈의 연금술사> 5권 콘티도 짜야 하니 할 일이 태산이었다.

     

   그리고 동화책도 꾸준히 만들어야 해서 그것도 미리 계획해야 밀리지 않고 만들 수 있을 거다.

     

   아직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지만, 활력 포션 한병 마시면 거동할 수 있을 느낌이다.

     

   “알랭, 활력 포션 한 병만 가져다줘.”

     

   “안 됩니다. 이미 마누엘 수도사께서 진단을 내려주셨습니다.”

     

   “대체 무슨 진단인데?”

     

   나의 질문에 알랭이 하나하나 진단을 말해주기 시작했다.

     

   첫째, 활력 포션 압수.

   둘째, 작업실 출입 금지.

   셋째, 하루 10시간 이상 수면

   넷째, 아침마다 1시간씩 체력 단련.

     

   뭐지 이 말도 안 되는 흉악한 조건들은?

     

   사람이 저렇게 많이 자면 곰이랑 다를 바가 무엇인가?

     

   작업실 출입 금지? 지금 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이 쌓여있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아침 체력 단련도 그렇다. 운동은 이렇게 살다 죽을 때쯤 몸에게 안심시켜주기 위해 보여주기식으로 하는 것이거늘.

     

   그리고 무엇보다 활력 포션 복용 금지라니 이건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이세계에 와서 불만족스러운 부분은 수없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만족하는 것 중 단연 1순위를 꼽으라면 활력 포션이다.

     

   이건 정말 여신이 인류에게 내려준 선물이 아닐까?

     

   현대에서 마셨던 수많은 영양음료와 각성 음료들이 그저 맹물로 보이게 만드는 그 화끈한 효과.

     

   게다가 기분 탓인지 몰라도 마시면 기분도 좋아지는 그야말로 신의 음료와 다름없는데.

     

   그걸 금지?

     

   이건 횡포다. 나는 알랭에게 당장 따지려 들었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아 헛된 시도로 그쳤다.

     

   루퍼트 이 자식은 아직 십대인 주제에 이 정도로 몸이 뻗어버리다니.

     

   원래의 나는 고등학생 때 밤을 새우고 학교에 가서 야자를 마친 뒤 집에 돌아와 컴퓨터로 게임을 하다 학교에 가도 버텼는데.

     

   고작 이 정도 작업 일정을 못 버티다니, 심지어 성직자가 와서 힐도 해주는 최상급 복지 여건으로도 부족했단 말인가?

     

   “알랭…알랭이 어떻게 나를… 배신.”

     

   “배신이 아니라 도련님은 지금 무조건 안정이 필요하신 상태입니다.”

     

   “5권도 만들어야 하고 성화도 그려야 하는데 쉴 틈이….”

     

   “도련님, 그거 안 해도 아무런 문제 없습니다.”

     

   알랭의 말에 나는 말문이 턱 막혔다.

   아무런 문제가 없다니 그게 말이나 되는가?

     

   연재 일정이 하루만 펑크나도 편집자의 독촉부터 독자들의 악플까지 난리가 나는 것이 한순간인데.

     

   ‘아, 그러고 보니 여기는 편집자가 없었지?’

     

   문득 나는 왜 이렇게 아등바등 필사적으로 작품을 그렸는지를 깊게 고민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처음엔 에이다를 위한 선물을 만들어 주기 위해.

     

   그다음엔 이걸로 쇠락한 가문의 재정을 부활시키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젠 에이다를 위한 장난감도 잔뜩 사줄 수 있었고, 가문의 재정은 회복되다 못해 예전 부유했을 때보다도 더 탄탄해졌는데.

     

   자신은 무슨 이유로 그렇게 열심히 그림을 그렸던 것일까?

     

   ‘그냥 재미있었지.’

     

   생각해보면 언제부턴가 돈을 버는 게 목적이 아닌 순전히 동화책이나 만화책을 만드는 그 자체가 즐거웠다.

     

   마치 학창 시절 노트에 끄적였던 장난 같던 연습 만화들을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반응을 보았던 그 시절처럼.

     

   내가 만든 작품들을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빨리 선보여주고 싶었다.

     

   나 또한 독자였었기에 사람들이 얼마나 다음 이야기들을 기다리는지 알고 있어서 더욱 그랬던 것 같다.

     

   ‘푹 자고 일어나서인가? 뭔가 전에는 못 느꼈던 것들인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경주마처럼 달리고 있다는 게 새삼 느껴졌다.

     

   오로지 앞만 보고 달리도록 시야를 좁힌 채 트랙을 달리는 경주마.

     

   나는 자는 에이다를 쳐다보았고.

     

   그런 나의 행동을 지켜보던 알랭이 조용히 내게 말하였다.

     

   “도련님은 이제 서머셋 가문의 후계자이십니다.”

     

   -저뿐만 아니라 가문의 모든 사람에게는 책의 작가이시기 전에 온 힘을 다해 지켜야 할 분이란걸 잊지 않아 주셨으면 합니다.

     

   맞는 말이다.

     

   내 주변의 사람들조차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는 놈이 무슨 독자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겠는가?

     

   이제 서머셋 가에 남은 가족이라곤 아버지인 브래들리 백작과 나 그리고 에이다뿐이다.

     

   가문의 첫째인 ‘리처드 서머셋’은 벌써 실종된 지 오래라 모두가 전쟁에서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이런 상황에 내가 쓰러지는 게 아니라 만약 죽는다면 아직 어린 에이다가 가문을 책임져야 할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그건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다.

     

   결심했다.

     

   귀찮고 힘들다는 이유로 내팽개쳤던 운동을 다시 시작하여 이세계의 기사들처럼 건강한 육체를 만들어야겠다.

     

   그리고 지금까지 너무 오버페이스로 달려온 탓에 나뿐만 아니라 장인들도 지쳐있을 테니 그들도 같이 운동해야겠다.

     

   우리 가문에서 일하는 사람들 모두가 건강해지는 그 날이 온다면 오히려 작업속도가 빨라질 테니.

     

   주변 사람들도 작품을 기다리는 독자들도 모두 만족하는 최고의 결말 아니겠는가?

     

   나는 마침내 생각이 정리되자 홀가분해졌고, 알랭도 나의 개운한 표정을 보고 기뻐하였다.

     

   “드디어 알아주시는군요, 도련님!”

     

   “미안해, 알랭. 그동안 내가 너무 걱정을 끼쳤네 하지만 걱정하지 마 이제 모두 알았으니까.”

     

   나의 말에 알랭은 감격한 듯 손등으로 눈가에 맺힌 눈물을 훔쳤다.

     

   그러고 보니 알랭도 이제 나이가 제법 있는데 같이 운동해야겠다.

     

     

   ***

     

     

   “분명히 나나를 살려낼 거라니까?”

     

   대기 줄에 서 있던 남성 한 명이 큰 소리로 말했고, 많은 이들이 그에 동조했다.

     

   “그렇지. 작가도 사람인데 설마 그렇게 나나를 끝나게 할까?”

     

   “주인공 형제가 화금석을 이용해서 살려낼 게 분명해! 아니라면…”

     

   내 감옥에 가는 한이 있더라도 그 작가 얼굴에 주먹을 날려버릴 테니까!

     

   라는 말은 뒤로 삼켰지만,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하지도 않은 뒷말을 자연스럽게 예측하였다.

     

   “그나저나 오늘 4권은 대체 무슨 내용으로 진행이 되려나?”

     

   “주인공과 스칼이 싸우는 내용이 나오지 않겠나? 그 망할 놈의 서부 원주민 놈! 나나가 무슨 죄가 있다고 애를 죽여?”

     

   “흠…근데 만약 나라면 그런 흉측한 키메라가 되었다면, 차라리 죽여주는 게 나았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는데?”

     

   턱!

     

   마지막 말을 내뱉은 남자의 멱살이 순식간에 붙잡혔고 이에 당황한 남자가 주변을 둘러보는데 곳곳에서 살기 어린 시선이 느껴졌다.

     

   “어이, 애송이… 그 말 취소해라.”

     

   “취소!”

     

   탁!

     

   남자의 재빠른 취소에 간신히 멱살을 잡은 손과 함께 흉흉한 시선이 물러났고 남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요즘 <철혈의 연금술사> 독자 중 일부 열혈 팬들이 만화책의 내용에 관하여서 통제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는데.

     

   그 통제의 내용은 여럿이 있었다.

     

   예를 들면 어떤 이가 술집에서 이야기 도중 화염의 연금술사 그거 비 오면 무쓸모 아님? 이라는 발언을 했다가 뒷골목에서 쓰러진 채 발견되었다는 소문이 들려올 정도로 흉포하였다.

     

   그래서 다른 독자들은 그런 이들을 보고 철혈길드라고 비꼬았지만, 그 세력이 자못 강하였기에 대놓고 하지는 못했는데.

     

   그 철혈길드 중 귀족들이 상당수 포함되어있기에 괜스레 시비가 붙지 않기 위함이 그 이유였다.

     

   그렇게 작은 소란이 있었던 <철혈의 연금술사> 4권 판매 대기 줄.

     

   마침내 판매가 시작되고, 몇몇 이들은 그 자리에서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곳곳에 모여 간신히 구한 책들을 나눠보던 이들은 감탄사와 비명을 내지르며 마침내 책을 완독하였고.

     

   기쁜 마음으로 독서를 마무리하려는 순간.

     

   마지막 장에 적힌 한줄기 글귀를 발견했다.

     

   -작가의 건강사정으로 5권은 발매일이 연기되었습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엠무님 소중한 10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즐겁게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재미있게 보실 수 있도록 열심히 연재하겠습니다!

Ilham Senjaya님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 좋은 밤 되시기 바랍니다.

다음화는 08월 22일 23시 업데이트 됩니다.


           


Martial Arts Ain’t That Big of a Deal

Martial Arts Ain’t That Big of a Deal

무공 뭐 별거 없더라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fell into a phony martial world. But they say martial arts are so hard? Hmm… is that all there is to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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