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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8

    <48 – 첫 실습>

     

    <안목 기르기> 강의가 1학년과 2학년이 함께 들을 수 있다던 교수의 이야기와 달리, 정작 강의실에 앉아있는 2학년은 극소수였다.

    이사벨은 모험가 특유의 감각이 경고하는 불길함을 느꼈다.

     

    “2학년이 왜 이렇게 적지?”

    “아직 강의를 고르는 시간이지 않습니까. 분명 강의시작시간이 되면 사람이 더 늘어날 겁니다.”

     

    지젤의 말대로 시간이 지나자 강의실에 들르는 학생들이 점점 늘어났다.

    그러나 새로 나타난 이들 중 절대다수는 1학년이었고, 2학년은 더 이상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았다.

     

    “역시 늘어나질 않아.”

     

    이사벨의 불안이 전염되기라도 한 걸까.

    지젤이 못내 찝찝함을 감추지 못하고 2학년에게 걸어가서 물었다.

     

    “선배님들께 말씀 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이 강의를 들으려는 2학년 선배분들이 유독 적어보여서 말입니다.”

    “1학년은 잔뜩 있는 거에 비해 2학년은 우리 셋이 전부라서 마음에 걸려?”

     

    지젤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얼버무리자 2학년 선배 빅스톤은 2학년의 상징인 교복의 휘장을 만지작거렸다.

    선배라.

    작년까지는 그들도 1학년이었던 만큼 낯선 호칭이 생경하기도 하고 더 듣고 싶기도 해서 괜히 한번 뻐겨보고 싶은 마음에 대답을 미루었다.

     

    “그거 제가 알 것 같아요.”

    “응?”

    “평판이 나쁜 강의라서 그런 거 아닐까요?”

     

    오크노디가 호기심어린 얼굴로 지젤과 2학년 선배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 아니야! 큰일 날 소리 하지 마. 교수님도 계시는데 무슨 소리를….”

    “근데 왜 식은땀을 흘려요?”

    “누가 식은땀을 흘린다고 그래!”

    “선배님이요.”

    “아, 아니라니깐!”

    “혹시 작년에 F학점 받고 재수강 하느라 3명밖에 안 듣는 건 아니죠?”

    “아니야! 교수님이 학점을 짜게 주는 것도 아니고 과제가 어렵지도 않고 위험한 사람이라는 소문이 퍼지지도 않았다고!”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엿듣던 1학년생 몇 명이 떨떠름한 얼굴로 강의실을 나갔다.

     

    “1학년한테 내색하지 않으려던 이유가 한명이라도 더 밑에서 점수를 깔아주는 녀석이 있기를 바라는 건 더욱 아니야!!”

     

    열댓 명이 선배를 째려보다가 강의실을 나갔다.

     

    “교수님이 신성중앙제국에서 활약하던 의적이라서 강의 듣는 놈들이 예비도둑놈 취급을 당하거나 수강생의 평판이 낮아지는 위험도 전혀 없어!!”

     

    남은 인원의 반절이 우르르 먼저 나간 신입생들의 뒤를 따라 나갔다.

    대부분이 출세가도가 막히는 금단의 강의를 들을 용기가 없었던 B그룹 신입생들이었다.

     

    “호오. 빅스톤군. 자네가 그런 불순한 마음을 품으며 강의를 듣고 있었을 줄이야.”

    “아아악! 걸렸잖아!!”

     

    말을 안했으면 됐잖아.

    왜 갑자기 급발진 자폭을 하는 건데.

    이사벨은 속으로 이상한 선배라고 생각했다.

    키득키득.

    그 꼴이 우습다고 생각했는지 오크노디는 아카디아가 으레 그러는 것처럼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아카디아의 그 동작도 제국귀족영애들을 따라하는 것이기에 결과적으로는 제국귀족 흉내를 내는 꼴이 되었지만, 보기에야 귀여우니 아무렴 어떤가.

     

    “우, 우리도 갈까?”

    “오크노디가 듣잖아.”

    “A그룹 수석도 버티는데 우리라고 제국놈들 눈치를 볼 필요가 있겠어?”

    “중앙제국이다.”

     

    강의실 구석에 있던 입학생 한명이 진중한 목소리로 정정을 요청했다.

     

    “제국이라는 표현은 중앙제국과 동방제국을 동시에 지칭하는 표현이다. 동류 취급당하면 불쾌하니까 분명하게 정정해라.”

     

    입학시험부터 심상치 않은 존재감을 드러냈던 실력자 중 한 사람, 동방검객 싱이었다.

     

    “우왓, 표정 봐. 엄청 화난 것 같아.”

    “미안. 중앙놈들이랑 엮이면 나라도 기분 나빴겠어.”

    “우리야 당연히 중앙제국 말한 거였지.”

     

    싱이 다시 눈을 감고 검집에 얹었던 손을 내렸다.

    그제야 강의실에 도사렸던 긴장감이 내려갔다.

     

    “너희들, 오해하지마. 빅스톤은 정신이상자가 아니라 포션제조 도중 증기를 잘못 쐬어서 일주일간 지속되는 <본심고백> 상태이상에 걸렸을 뿐이야.”

    “아니야! 실은 남몰래 짝사랑하던 친구가 이 녀석이고 포션효과 때문에 고백했다가 차인 적도 없고 본심고백 상태이상에 빠진 적도 없어! 자살이 마렵지도 않고 아직 눈 마주치기가 쑥스럽지도 않다고!”

    “…이런 상태야.”

     

    이 선배, 엄청나게 고백하고 있잖아.

    그보다 의외로 가능성이 있는 건 아닐까?

    고백은 거절했지만 같이 다닌다니.

    이사벨을 포함한 1학년들 시선에 호기심이 가득했다.

    언제 고백했냐, 1학기 중간고사로는 어떤 시험이 나오냐, 숨겨둔 금고의 위치가 어디냐 등등의 질문이 쏟아지는 사이에 이사벨이 오크노디를 챙겼다.

     

    “오크노디는 어때. 이 강의, 괜찮을 것 같아?”

    “물론이죠! 강의야 어렵고 학점도 짜고 평판도 나락으로 가지만 아무튼 즐거우면 괜찮으니까요!”

    “…….”

     

    오크노디가 아니라 자신의 장래를 생각해서라도 강의실에서 탈출해야 하는 건 아닐까.

    진지하게 고민하던 이사벨은 2학년 선배 때문에 너무 많은 시간을 뺏겼음을 깨달았다.

     

    따르르릉…

     

    “잡담은 여기까지. 강의시작 시간이네.”

     

    강의가 시작됐다.

     

     

    * *

     

     

    교수는 우선 자신의 소개부터 했다.

    Bronze de estrada.

    칠판 위에 멋들어진 필기체가 큼직하게 적혔다.

     

    “브론즈 디 이스트라다. 본 교수의 이름이라네.”

     

    따르르릉…

     

    “빅스톤군이 말했다시피 아카데미에 교수로 초빙되기 전에는 중앙제국에서 의적으로 활동했었지.”

     

    따르르릉….

     

    “혹자는 본 교수의 자질을 의심하지만 의적이란 제국의 밤거리를 무대 삼아 모험하는 직업. 모험학부의 교수가 될 자격은 충분하니 안심해도 무방하네.”

     

    따르르릉…

     

    “교수님. 벨이 계속 울리는데요.”

     

    강의시작을 알린 이후로도 멈출 생각을 안 하고 계속 울리는 벨.

    참다못한 신입생 한 명이 손을 들고 말했다.

     

    “아. 그건 이번 강의에서 나갈 수 있는 방법이라네.”

    “네?”

    “안목이란 책을 보며 기르는 방법도 있지만 직관적인 실습을 통해서도 기를 수 있지. 하물며 의적은 발로 뛰는 클래스. 본 강의를 듣는 제군들에게도 가벼운 실습을 진행할 예정이네.”

     

    한 손에 든 지휘봉을 리듬감 있게 허공에 까딱 까딱 휘두르는 아스트라데 교수님.

    오크노디가 이사벨과 지젤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

     

    의아해하는 두 사람의 시선에 오크노디가 샐쭉 웃으며 두 손을 들어 제 귀를 덮었다.

    따라하라는 건가?

    아이 특유의 장난기가 도졌나보다.

    아무리 그래도 강의 도중에 귀를 덮는 행동을 저지르는 건 너무 무례하지 않은가.

    따끔히 타이르려던 도중, 아스트라데 교수님이 오케스트라 지휘자처럼 손을 좌우로 펼치며 오크노디를 닮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다음 순간.

    세계제일의 아카데미 강의실에서 일어날 일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소란이 시작됐다.

     

    삐비비비.

    땡땡땡!

    일어나. 아침이야! 일어나. 아침이야!

    찌르르르르릉. 찌르르르르릉.

    삐이이이익!

    위잉-. 위잉-. 위잉-.

    네귀에딩딩딩.

    삐-. 삐-. 삐-. 삐-. 삐-. 삐-. 삐-. 삐-.

    따르르릉…

     

    “아아악!”

    “내 귀!”

    “정신 나갈 것 같애!”

     

    봇물 터지듯이 사방에서 습격하는 벨소리!

    청각테러의 향연에 이사벨과 지젤도 기겁하며 귀부터 틀어막았다.

     

    “자, 제군들. 그럼 첫 강의의 실습을 알려주겠네. 교실에 숨겨진 벨을 찾아 작동을 해제하는 ‘안목’을 보여준 학생들은 즉시 강의실에서 탈출할 수 있네.”

    “물론 안목이 부족한 학생들은 벨소리로 가득 찬 강의실에서 본 교수와 함께 남아있게 된다네.”

    “참고로 모든 벨을 찾는다면 전원 즉시 강의실에서 탈출이 가능하네. 모두가 다 함께 힘을 합쳐서 모든 벨을 해제한다면 가산점도 주도록 하지. 마지막까지 함께 벨을 찾던 학생들에 한해서만.”

     

    1학년들은 2학년 빅스톤 선배가 했던 말의 의미를 단숨에 깨달았다.

     

    “이거 순 개악질 아니야?!”

    “이러니 2학년 선배들이 강의를 안 듣지!”

    “잠깐, 우리한테는 2학년 선배님이 있어! 선배님들이라면 분명 탈출할 방법을…”

     

    2학년들이 비상탈출용 도끼와 강의실 출구 위에 매달린 비상조명등, 의자를 들고 외쳤다.

     

    “사물이여, 본래의 형태를 되찾아라!”

    “리턴 투 오리지널 폼.”

    “찾았다, 이 망할 알람시계.”

     

    펑펑펑!

     

    본 모습으로 돌아온 알람시계의 버튼을 누른 2학년생들의 모습에 1년생들이 충격에 빠졌다.

     

    “시계가 형태변환마법까지 걸려 있잖아!”

    “맙소사. 이건 사기야!”

    “저거, 저런 거 우리는 아직 배운 적 없다고!!”

     

    교수는 2학년들이 제출하는 알람시계를 받고 음-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2학년답게 신입들처럼 굼뜨지는 않군. 합격이네. 재수강을 한 보람은 있어.”

    “그러시다네. 우린 먼저 갈게, 후배들.”

     

    1학년들이 배신감어린 눈으로 선배들을 쳐다봤다.

     

    “선배님들! 어떻게 후배들을 버리고 선배님들만 탈출하실 수가 있어요!”

    “우리도 작년엔 너희처럼 버려졌어.”

    “!!”

     

    학년을 뛰어넘어 강의시간에 이어지는 무구한 역사와 전통으로 이어지는 악의의 대물림!

    망연자실한 1학년생들 사이로 이사벨과 지젤만이 다른 표정을 지었다.

     

    “오크노디. 넌 이걸 어떻게 알았니?”

    “오크노디양의 가문에서는 혹시 실습과제도 알려주십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옆동네 어린이 마크2가 좋아하는 네귀에딩딩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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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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