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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8

       지난 며칠 간, 수많은 마도사들이 아카데미에 있는 학회로 모여들었다.

         

       사실 소집되었다는 편이 더 옳을 것이다. 그들을 불러들인 건 다름 아닌 틸레트의 이사장이었다.

         

       대륙에서 저명한 화계마도사와 화계마도사들은 모두 초청했다. 단 한 명, 하스펠트 교수만이 거절한 걸 제외하면 다 왔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이들이 모이게 된 이유는 단순했다.

         

       논문 심사. 고작 그런 이유 하나 때문에 석학들이 이세계판 솔베이 회의를 개최한 것이다.

         

       그 기간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논문에는 문제가 없었고, 동료 학자들은 그들이 생각하던 것 이상의 영감을 얻어서 돌아갔다. 모두가 돌아간 뒤, 이사장은 같은 영상을 몇 번이고 돌려보았다.

         

       “아무리 봐도 믿을 수가 없군.”

         

       제출된 논문에는 종이뿐만 아니라, 사진 몇 장과 필름 하나도 동봉되어 있었다. 참고 자료랍시고 저자가 집어넣은 것이었다.

         

       그중에서 영상을 확인하면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눈앞에 나타난다.

         

       영상 속 배경은 설원이었다. 얼어붙은 지형, 누나타크 봉우리가 듬성듬성 있는 눈보라 속의 고요. 그 고요를 뚫고 커다란 마수 하나가 튀어나왔다.

         

       틸레트 아카데미의 이사장, 야코브 로베스피에르도 잘 아는 마수, ‘호마루스’였다.

         

       호마루스는 재앙급 마수로 분류된다. 장갑이 단단하며, 숙련된 마도사 여럿이 달라붙어야 겨우 처치할 수 있는 존재였다.

         

       그런 마수가, 단 한 번의 빛줄기에 쓰러졌다.

         

       로베스피에르는 벌써 몇 번이고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이게 조작이 아니라니….’

         

       얼마나 믿지 못했으면 필름의 조작유무를 확인하기 위해 영상 기술자들을 불렀을 정도였다. 판독 결과는 허무하리만치 단순했다.

         

       ─ 조작 및 편집의 흔적이 그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음.

         

       로베스피에르는 집무실 책상을 톡톡 두드리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 논문의 제목이 시야에 들어왔다.

         

       [지계마도 장비를 활용한 플레어 스크롤의 구축과 격발법에 대한 연구]

         

       ‘정말 플레어가 완성된 것인가?’

         

       완성되었다면 대륙 역사에 한 획을 그을 만큼 위대한 업적이었다. 재앙급 마수를 마법 한 번에 쓰러뜨렸다면 절멸급 마수에게도 유효타를 먹일 수 있음이 자명했기 때문이었다.

         

       그간 인류는 절멸급을 상대할 수단이 전무했다. 그래서 늘 마수에 대한 본능적인 공포에 떨며 지내야 했다. 마치 전염병의 원인을 모른 채 신에게 기도하는 것만이 최선이었던 옛날과도 같이….

         

       ‘플레어가 완성되었다면, 더는 떨 필요가 없다.’

         

       북부전선은 개척될 것이고, 재앙급은 마도사들이 하급 마수를 상대할 때처럼 픽픽 쓰러져나갈 것이다. 제국의 영토는 더욱 넓어지고, 민생은 조금이나마 안정을 되찾을 것이다. 어쩌면 마수와의 기나긴 전쟁이 종결될지도 모른다.

         

       ‘누구인지 참 궁금하군.’

         

       로베스피에르는 논문 적합성 승인을 알리는 인감을 찍은 뒤 며칠을 더 기다렸다. 학술지에 게재 승인된 논문은 그제야 학회 인물들에게 공개되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때는 5월을 넘어섰다. 이사장은 뜻밖의 인물의 등장에 감탄했다.

         

       [제1저자 및 교신저자 : 에테르]

       [공저자 : 로테 살리에르 / 프레이 셸커니]

         

       ‘셋 다 아카데미 학부생 아닌가? 그것도 1학년이라니!’

         

       특히 교신저자로 등록된 소녀의 이름이 의외였다.

         

       에테르.

         

       교정에서 그 이름을 모르는 교수진이 있을까.

         

       당장 하스펠트 교수 밑에서 3년을 노예로 구르다가, 기적적으로 아카데미에 합격해서 다니고 있다는 사실은 이사장의 귀에도 들어왔었다.

         

       어디 그뿐인가. 입학 성적은 차석이었는데, 그중 필기가 만점이었다. 400점 만점에 400점, 틸레트 역사상 최초이자 최고의 점수였다.

         

       금안족으로 태어난 게 유일한 단점이었다. 그럼에도 실기에서 과락을 넘기지 않았다는 건 에테르가 종족의 한계를 뛰어넘었다는 방증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딱 학부생 수준인 줄로만 알았는데.

         

       ‘설마하니 입학하고 두 달 만에 이런 걸 만들어낼 줄이야.’

         

       머리 좋다고 소문난 금안족이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하스펠트 교수 밑에서 오랜 기간 구른 탓에 이만한 연구역량을 지니게 된 걸까?

         

       어느 쪽이든 놀랄 만한 일이었다. 적어도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인재라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주인이 연구하던 걸 가져다가 완성시킨 전 노예라니, 흥미롭네요.”

       “헤를라인 교수, 자네는 하스펠트 교수와 10년지기 친구인 걸로 아는데. 그런 식으로 뒷담을 까서 쓰겠나?”

       “후후, 그러니까 할 수 있는 말이죠. 저로선 제 친구가 한 가지에만 매몰되어서 다른 걸 보지 못한다는 게 마음에 걸렸거든요.”

         

       헤를라인 교수는 소파에 몸을 파묻은 채 찻잔을 들었다.

         

       “조만간 그 소녀에게 학회에 참석해달라고 부탁하실 생각이신 거 다 알아요. 그때 저도 참석할게요.”

       “마치 하스펠트가 아니라 자네가 담임인 것처럼 말하는군.”

       “아, 이사장님껜 그걸 말씀드리지 않았네요.”

       “……?”

       “아뇨, 상관하지 않으셔도 돼요. 이미 다 지나간 일이니까요.”

         

       뒤쪽에서 후르륵, 하는 소리가 들린다. 상큼한 홍찻잎의 향기가 이사장실을 가득 메웠다.

         

       “딱히 궁금하지도 않다. 그보다도 플레어가 완성되었다면 황실에 똬리를 틀고 있는 연놈들도 싹다 청소할 수 있겠군.”

       “뭐 단두대라도 준비하시게요?”

       “그 놈들에겐 길로틴조차도 성에 안 차지. 애초에 작두의 날이 듣질 않을 거다.”

       “그러면…그동안 기획했던 일은 어떡하고요?”

       “그건 최후의 수단으로 남기고….”

         

       후르륵.

         

       “일단은 시기를 봐 암살을 시도한다.”

         

       **

         

       틸레트에 입학한 지 두 달이 흘렀다.

         

       세월 참 빠르다. 노예 생활을 했을 적에는 하루하루가 지옥 그 자체였는데.

         

       하염없이 할 일을 하고 있다 보니까 기숙사에 내 명의로 편지가 하나 도착했다.

         

       [발신인 : 야코브 로베스피에르]

         

       이 사람, 어디서 많이 본 이름인데.

         

       나는 기억을 반추해가며 편지지를 뜯어보았다. 몇 줄을 읽고 나서야 나에게 편지를 보낸 사람의 정체가 아카데미의 이사장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학생이 이번에 제출한 논문에 대한 발표회를 열도록 하겠습니다. 화염마도학계의 발전이 보다 빠르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에테르 학생의 고견을 학계의 모두에게 전해주시길 바랍니다.]

         

       [현재 이사회에서는 제1저자인 에테르 학생과, 공저자로 참여하신 로테 살리에르 학생 및 프레이 셸커니 학생에게 학업 장려금과 표창을 수여하려는 내부 논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최대한 좋은 쪽으로 논의가 진행되도록 해서 다음 학기 등록금을 면제할 수 있도록 조치해 보겠습니다.]

         

       [또한 에테르 학생이 아카데미를 졸업한 직후 황제 폐하로부터 최소 자작 지위를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저희 이사회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모든 건 학생이 그에 걸맞는 업적을 세웠기 때문이니 부담 갖지 마시고, 더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드리기 위해 노력해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틸레트 마도 아카데미 이사장, 야코브 로베스피에르 후작 (인)]

         

       아카데미 이사장이라는 사람이 성씨도 없는 아카데미의 일개 재학생에게 이리 저자세로 나와도 되나, 싶었지만… 그래. 플레어가 그만큼 중요한 마법으로 인지되고 있다는 거겠지.

         

       그건 그렇고, 내 ‘고견’을 학계 모두에게 전해달라니.

         

       이른바 질의응답 시간을 가져달라는 소리였다. 이쪽 학게에 발을 내디딘 지 얼마 되지 않은 초짜에겐 살짝 버거운 일이었다.

         

       그래도 못 할 정도는 아니었다.

         

       중간고사도 끝나고, 마침 시간에 공백이 생겼겠다.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학계에 높은 사람들을 만날 기회는 흔치 않았다. 인맥을 만들어둔다는 생각으로 나간다면 앞으로 도감을 채우는 일도 더 편해지겠지. 적어도 피해를 보거나 기분이 잡칠 만한 사건은 벌어지지 않으리라.

         

       [기한은 사흘 정도인가요. 생각보다 준비할 기간이 짧네요.]

         

       프로시딩을 준비하는 것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단순한 발표다. 그래도 학부 1학년생 상대인데, 그렇게까지 심하게 쪼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다. 대강 발표할 거리만 간추려서 가져가기로 했다.

         

       뭐, 이런 일 한두 번 하는 것도 아니고.

         

       **

         

       5월 초순, 화창한 어느 날의 일이었다.

         

       “돼, 됐어요…. 됐어요!”

         

       최종 실험에도 성공했다. 오랜 세대를 거친 극강의 화계마도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마소-에너지 교환성 정리’와, 자신만의 독특한 고안법으로 플레어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 클라이스는 마력초를 연신 뻐끔대면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논문 작성은 거의 마친 상태였다. 거기에 최종 데이터를 기입하고 몇 가지 계산을 마치자 세기의 역작이 탄생했다. 플레어 마도의 완성이었다.

         

       드디어, 가문의 비원이 이루어졌다.

         

       길었다.

         

       정말로, 길었다.

         

       보수적으로 생각한다면 자신이 개발한 플레어로 절멸급을 쓰러뜨릴 수 있을진 확실하지 않았지만, 모든 재앙급 마수의 장갑을 녹여버리는 실험을 진행했었으니 분명 절멸급에도 유효타를 먹일 수 있으리라고 확신한다.

         

       어쨌거나 금안족의 힘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 해낸 연구성과는 달콤하기 그지없었다. 어릴 적부터 졸졸 따라다녔던 아버지에게 칭찬받을 생각에 클라이스의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클라이스는 온갖 자료를 밀봉한 뒤 마녀모를 눌러쓰고 밖으로 나왔다. 아직 수리하지 않은 전등이 요란하게 점멸했지만, 지금으로선 신경쓸 만한 내용이 아니었다.

         

       바깥은 따스했다. 내일 비가 오려는 건지, 점차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했지만 아직 기온은 푸근했다. 가까운 뒷산에선 뻐꾸기 우는 소리가 시간을 두고 들려왔다.

         

       “어서 오세요!”

         

       학회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인사를 받은 뒤 논문을 제출하기 위해 데스크로 향했다. 데스크로 가는 복도는 일자로 기다란 구조를 취하고 있었다.

         

       “어…. 저 사람은….”

         

       복도 반대편에서 두 사람이 이쪽을 향해 걸어왔다. 클라이스는 눈을 찌푸려서 그중 키가 큰 중년의 남성을 노려보았다.

         

       “오랜만에 생산성 있는 대화를 나눠보는군요. 틸레트에 학생 같은 인재를 들일 수 있어서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목소리도 익숙하다.

         

       틸레트 아카데미의 이사장, 로베스피에르였다.

         

       “하하…. 과찬이세요.”

         

       이사장의 말을 받아준 건 어떤 소녀였다. 학부생 교복을 단정하게 차려입었고, 허리께까지 오는 긴 머릿결에선 윤기가 났다. 이목구비는 황금비에 맞춰 오밀조밀하게 붙어있었는데, 그중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건 금색으로 빛나는 홍채였다.

         

       “그런데 말이죠…….”

         

       그 다음 순간.

         

       우뚝, 하고 소녀의 발걸음이 멎었다. 동시에 클라이스의 발걸음도 멈춰섰다.

         

       클라이스는 금안족 소녀의 품에 들려있던 두꺼운 봉투로 시선을 흘겼다.

         

       시선과 시선이 교차했다. 클라이스는 무언가가 잘못되었노라고,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윽고, 소녀가 입을 열었다.

         

       “……플레어의 특허는 제가 가져가도 될까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PV=nT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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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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