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48

       다시 생각해보면, 아제르나 전기 14편부터의 게임은 그저 레오 한 명 뿐인 것은 아니었다.

        

       레오가 플레이어블 캐릭터고, 도중에 파티에서 이탈하거나 하는 일도 없으며, 애초에 파티에서 절대로 뺄 수 없는 캐릭터라는 것을 생각하면 대놓고 플레이어가 이입하기 좋게 만들어 둔 캐릭터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다른 캐릭터를 이용하지 못하는 것은 또 아니니까.

        

       같은 파티 안에 있는 다른 캐릭터가 있다면 대표 캐릭터로 설정해 필드에서 보이는 캐릭터를 다르게 할 수 있었다. 필드에서 몬스터를 먼저 공격하는 것으로 선공을 빼앗아 올 수 있다던가, 뒤에서 조심스럽게 다가가 공격하는 것으로 스턴을 걸 수 있다든가 하는 필드 전용 기믹이 있어서 이것도 나름대로 중요했다.

        

       그래서 보통 공략에서는 검을 쓰는 주인공보다는 원거리 공격을 하는 캐릭터를 대표로 선정해두고 멀리서 몬스터 뒤통수를 쳐 전투를 시작하곤 했었다.

        

       가장 많이 활용되는 캐릭터 중 하나가 바로 기본 공격으로 얼음 화살을 쏘아대는 미아 크로우필드였고.

        

       그리고 그 파티 캐릭터 중 단 하나도 ‘이곳은 더러워서 안 들어가겠다’라거나, ‘냄새나는 곳은 가기 싫다’라거나 하는 캐릭터가 없었다. 심지어 환기구를 기어서 통과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거부하는 캐릭터가 단 하나도 없다. 그게 황녀나 왕녀, 심지어 게스트 캐릭터로 참가하는 제니퍼 같은 캐릭터라고 하더라도.

        

       “…….”

        

       “…….”

        

       “…….”

        

       그러니, ‘냄새가 이렇게 지독하니 알아서 포기할 거다’라고 생각했던 나의 선택은 굉장히 멍청한 선택지였다고 할만했다.

        

       하수도에 들어오고 나서 약 10분이 지났을 때 나는 이미 후회하고 있었다.

        

       내 뒤를 따라오는 두 사람이야 뭐 원래 초인적인 신체 능력을 가진 이들이었으니 냄새고 뭐고 아무렇지도 않게 참아낼 수 있겠지만, 아무리 신체 능력을 키워도 그 ‘초인’의 ‘ㅊ’ 근처에 겨우 턱걸이를 할 수 있을까 말까 한 나로서는 죽을 맛이었다.

        

       게다가 그 ‘ㅊ’ 근처 턱걸이라는 것도 그냥 내 짐작일 뿐이니 실제로는 또 어떨지 알 수 없고.

        

       그 10분 사이에 다시 시간을 돌려야 하는가 진지하게 고민했지만…… 결국 하지 않기로 했다.

        

       뭐랄까, 그런 기분이다.

        

       호기롭게 1회차를 최고난이도로 시작했다가 잘못된 공략으로 보스전에서 막힌 뒤, 세 번 정도 파티의 전멸을 맛보고 화면에 뜬 ‘더 낮은 난이도로 재설정하시겠습니까?’라는 문구를 보고 있는 기분이다.

        

       제작사야 플레이어가 어떻게든 포기하지 않기를 바라기에 넣은 문구겠지만, 그걸 읽는 입장에서는 자존심이 자극당한다. 어차피 옆에서 누가 보고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그 게임으로 방송을 하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그걸 누르는 게 쪽팔린 거다.

        

       어차피 공략을 쓰기 위해서는 다회차 플레이가 필수고, 지금 당장 난이도 관련 메달을 따지 못해도 결국에는 딸 수밖에 없는데.

        

       결국, 나는 그 선택지에서 ‘아니오’를 누르고 다시 플레이에 도전하는 것 같은 마음으로, 이번에는 시간을 돌리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뒤쪽 두 사람도 나한테 뭔가 말을 걸만한 여유가 없어 보였다는 거다. 말을 걸려고 입을 열었다가는 입 안으로 그 냄새 나는 기체가 확 들어올 테니까. 입으로 냄새를 맡을 수야 없겠지만 그 특유의 찝찝하고 기분 나쁜 느낌이 있지 않은가.

        

       “이쪽입니다.”

        

       혹시라도 말이 끊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서 나는 목소리를 냈다. 뒤쪽에서 대답이 돌아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발소리는 끊어지지 않고 계속 들렸다.

        

       사실 이쯤 와서는 혼자서 나가고 싶어도 영 애매하다. 여기까지 오는데도 충분히 복잡한 길을 지나왔으니까. 완전히 미로 안과 같은 수준은 아니더라도, 처음 오는 사람이 헷갈릴법한 곳이기는 했다.

        

       그렇다. ‘처음 오는 사람’은.

        

       나는 아니다.

        

       내 기억 속과 다른 부분이 있기는 했다. 해상도 떨어지는 텍스처를 이용해 적당히 만들어진 맵은 그렇게까지 혐오스러운 느낌은 아니었다. 그리고 어두움을 표현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공포게임처럼 어두워서 빛이 없으면 도저히 앞을 볼 수 없을 정도인 것도 아니다.

        

       아니지, 오히려 밝기만 따지면 그냥 형광등 켜둔 것처럼 밝긴 했다. 공포 게임도 아니고, 그런 짜증 나는 기믹을 넣어봐야 좋은 반응을 얻을 수는 없을 테니까.

        

       미니맵은 블록별로 밝혀지기에 그 블록에 한 발자국이라도 들어가면 곧장 앞 지역의 모습이 미니맵에 나타났고, 시계도 나쁘지 않았기에 게임에서는 길을 헤맬 일이 거의 없었다. 그저 종종 기믹을 잊어버리고 와서 다시 돌아가야 하는 경우가 있어 짜증 날 뿐이지.

        

       그런 의미에서,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이 하수도는 게임과는 여러모로 달랐다. 특히 분위기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둡지는 않았다. 어느 정도의 주기인지는 알 수 없지만 관리하는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이었고, 그래서 희미하긴 했지만, 마력석을 이용한 램프들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램프와 램프 사이의 길이 무척 어두웠다. 물이 흐르는 곳에는 정말…… 지저분한 액체가 흐르고 있었고, 아무리 봐도 바퀴벌레인 것 같은 검은 것들이 심심찮게 바닥을 기어가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그래도 구조 자체는 내가 알고 있던 그곳이었다.

        

       중간중간 철문으로 막힌 곳 너머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몰라도 상관없다. 애초에 게임에서도 갈 수 없는 곳이니까.

        

       게임을 공략하기 위해 몇 번이나 돌았던 던전.

        

       아, 물론, 무슨 네비게이션마냥 전부 다 기억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래봐야 10년 전의 일이니까.

        

       하지만, 그래도 정말 중요한 곳에 대한 기억은 가지고 있었다. 이쪽으로 넘어오자마자 최대한 기억나는 대로 정리해둔 노트에 적혀있는 부분에 나와 있었다.

        

       “어디로 가는지 알고서 가는 거 맞아?”

        

       “예, 물론입니다.”

        

       앨리스의 조금 불안한 목소리에 나는 확신을 담아 대답했다.

        

       적어도 여기가 어디인지는 알고 있다. 아마 더 깊은 곳으로 가면 진짜 몬스터들도 바글바글하겠지.

        

       하지만 그 몬스터들이 여기까지 올 일은 없다. 아직 게임의 극 초반이다. 그 몬스터들이 문제가 되는 것은 지금으로부터 조금 더 시간이 지나서다.

        

       그리고, 뭐…….

        

       사실 온다고 해서 크게 문제 될 일은 없을 거다.

        

       게임에서야 ‘레벨’ 때문에 강한 몬스터 취급이지만, 현실에서는 그런 것이 없다. 애초에 아제르나 전기는 드넓은 필드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모험을 즐기는 게임이 아니라서, 진행 상황에 따라갈 수 있는 지역이 열리고 등장하는 몬스터가 정해진다. 몬스터의 레벨은 그 지역에 가지 못하게 막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 지역에 갈 때 쯤 그만큼 강해진 주인공들을 상대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애초에 턴제라서 가만히 서서 칼에 맞고 총에 맞아야 하는 게임과 다르니, 내가 쏘는 쇠뇌에 맞는 것만으로 여기 사는 짐승들은 죽을 테니까.

        

       “이곳입니다.”

        

       마지막으로 한번 크게 꺾어서, 하나의 작은 방 같이 생긴 곳으로 들어갔다.

        

       어째서 하수도에 이런 공간이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게임 안에서야 말이 하수도지 역할은 모험을 위한 던전이었으니 있어도 그냥 게임이니까, 하고 넘어갈 수 있겠지만, 현실의 하수도에는 이런 공간이 있을 필요가 없다.

        

       ……뭐, 그냥 창고 비슷한 곳인 모양이지. 하수도는 길고 넓으니 중간중간 사람이 쉴만한 공간을 만들어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것 치고는 방이 잠겨있지도 않았고, 그 안에 있는 것은 여기저기 널브러진 쓰레기 몇 개와 닫혀있는 상자 하나뿐이었지만.

        

       게다가 상자의 모양은 게임에서 나오던 아이템이 들어있는 상자와 거의 똑같이 생겼다.

        

       조명도 없고 텅 비어있는 방 한가운데 상자가 우두커니 있는 모습은 조금 으스스해 보이기까지 했다.

        

       “……상자?”

        

       뒤에서 앨리스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굳이 대답하지 않고 상자까지 다가갔다.

        

       상자 위에는 먼지가 두껍게 쌓여있었다. 아마 위에 손으로 그림도 그릴 수 있을 것 같은 수준으로.

        

       주머니에서 검은 가죽 장갑을 꺼내서 손에 끼웠다.

        

       그리고 천천히 허리를 숙여 상자를 열었다.

        

       먼지 쌓인 상자는 싱거울 정도로 쉽게 열렸다. 특별한 잠금장치는 되어있지 않았다.

        

       그리고 이 점은 게임과 다를 것이 없었다.

        

       “…….”

        

       내 생각과 기억이 옳다는 것은 확인했지만, 막상 이렇게 보고 나니 기분이 조금 이상했다.

        

       이 상자는 대체 언제부터 여기에 있었는가. 누가 여기 이걸 가져다 두었고, 방 안이 텅 비는 와중에도 상자 하나만 여기에 남게 되었는가.

        

       나는 허리를 숙여 상자 안에 있던 물건을 꺼냈다.

        

       “어?”

        

       “그건……?”

        

       마르마로스.

        

       내가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마르마로스였다.

        

       게임에서 등장하던 마르마로스들과 비교하면 특별히 비싸거나 희귀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게임’이 아니라 이 ‘현실’에 비교하면, 이 마르마로스는 그야말로 최상급의 마르마로스였다. 게임에서야 후반부에 제국에 온갖 정신 나간 상황이 벌어지면서 희귀 마르마로스를 얻을 기회가 많아지고, 아마 현실에서도 그렇게 되겠지만…… 적어도 지금 시점에서는, 돈이 있다고 해도 쉽게 살 수 있는 물건은 아니었다.

        

       완벽하게 구체로 깎아낸 그 푸른 마르마로스는 장갑 너머로도 그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차가웠다. 맨손으로 만졌다고 다치지는 않았겠지만, 냉장고에서 갓 꺼낸 음료 캔을 쥐고 있는 것처럼 손이 시렸으리라.

        

       내가 제니퍼에게 받은 불 속성 마르마로스보다 훨씬 더 강력한 이 마르마로스는, 스토리 중반 이후에 미아 크로우필드의 지팡이에 장착해서 공격력을 보조하는 역할로 쓰인다.

        

       게임에서는 얼음계열 마법의 데미지가 어느 정도 올라가는 수준이었겠지만, 현실에서는 훨씬 더 위협적이겠지.

        

       “그런 물건이 왜 여기에 있죠?”

        

       샤를로트가 내 쪽으로 몇 걸음 다가오면서 물었다. 설정상 마르마로스는 마법 병기에 그대로 박아넣는 용도로도 쓰이니까. 만약 내가 이걸 혼자 챙겨서 남들 몰래 무기를 만들었다면 누구도 모르게 무기를 가지고 다닐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만약 이걸 찾은 사람이 내가 아니라 우리가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조금 위험하게 되었을지도 모르고. 총기 그 자체보다 위험한가? 그렇게 묻는다면야 나는 할 말 없긴 했지만.

        

       위험도야 어쨌건 이건 귀중한 물건이다. 샤를로트가 나에게 물어보는 것은 ‘이 물건’이 왜 여기 있는가 뿐만이 아닐 거다.

        

       그보다는, 내가 어째서 여기에 이 물건이 있는지 알고 있는가에 관한 질문이겠지.

        

       나는 샤를로트와 앨리스를 한 번씩 보았다. 마력석 램프의 빛에 밝혀진 그 두 명의 얼굴에는 의문이 가득했다.

        

       지금까지는 그저 ‘실력이 좋아서’라고 포장할 수 있었지만, 지금 이곳까지 온 것은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행동이다.

        

       처음부터 이 물건이 여기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어야만 올 수 있으니까.

        

       게다가 이 방 안에는 먼지가 수북하게 쌓여있었다. 누군가가 미리 와서 준비했고, 나에게 그 사실을 알려줬다고 하기에 이 방은 지나치게 오래 방치되었던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샤를로트가 이렇게 물어보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너는 어떻게 그 사실을 알고 여기까지 왔지?’

        

       그게 샤를로트가 하고 싶은 질문의 본질이리라.

        

       “그건 다음에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마르마로스를 코트 주머니에 넣었다.

        

       이렇게 하면 솔직히 코트를 입고 있는 이유가 사라지는 짓이긴 한데, 그래도…… 뭐, 그렇다고 손에 들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내가 그렇게 말하고 문을 향하는데,

        

       척.

        

       누군가의 몸이 내 앞을 막았다.

        

       굳이 살펴볼 것도 없이 내 앞에 있는 사람은 앨리스였다.

        

       “말해.”

        

       앨리스는 눈에 의지를 담아 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대체 어떻게 그런 물건이 여기 있는지 알고 찾아왔는지. 말하지 않으면 비키지 않을 거니까.”

        

       “…….”

        

       음.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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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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