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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8

       첫 수업까지 남은 기간──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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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렉손. 용병왕의 자리에 가장 가까이 다가섰던 자. 기사 분쇄기. 웨펀 마스터.

       

       현시대에 칼 밥을 먹고 사는 이들 중에서,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언제나 최전선에서 도끼를 휘둘렀으며, 흉터를 얻었을지언정 패배하지는 않았다.

       

       그의 도끼에 목이 날아간 흑마법사의 면면들만 꼽아보아도, 알렉손의 위명이 세상을 울리는 이유를 알 수 있다. 『가죽 도둑』, 『사악한 땅지기』, 『핏줄 칼』.

       

       무엇보다도 그가 존경받는 이유는, 비정한 전장에서도 끝끝내 신의를 지켜냈기 때문이다. 동료를 버리지 않고, 누군가가 남아 시간을 끌어야 한다면 자신이 남았다. 가장 먼저 위험에 직면하고, 부족한 이들을 이끌었다.

       

       휘하 용병단과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서 대공의 영지 중 하나와 적대한 것은 유명한 일화였다. 그는 자기 사람을 무조건적으로 아꼈다.

       

       그렇기 때문에.

       

       알렉손의 제자로 들어가는 것은 최고의 위장이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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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네트 헬튼. 아카데미 2년차, 주 무기는 롱소드.

       

       입학 후 뛰어난 신체 능력과 살기 넘치는 검술로 학생들 사이에서 두각을 보였고, 알렉손의 눈에 들어 느슨한 사제관계를 맺게 되었다. 그 관계는 지금까지도 계속되어 오고 있었다.

       

       계획된 것이었다. 

       

       알렉손의 성향을 면밀히 파악하고, 그가 남에게 조언하는 것을 즐긴다는 결론이 나온 뒤에, 베네트는 일부러 나사 빠진 검술을 익힌 채로 접근했다. 유효한 전략이었다.

       

       알렉손의 주 무장은 도끼이지만, 그는 수많은 무기를 능히 다룬다. 어설프게 속이려고 들었다가는 ‘네놈은 어째서 일부러 검을 이상하게 휘두르는 거냐?’는 말이나 듣고, 의심을 사게 된다.

       

       그래서 베네트는 검술을 이상하게 익히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미치광이의 검술서를 보고 독학하며 따로 검술 스승을 두지 않았다. 그 노력이 하늘에 닿았음인가.

       

       알렉손은 ‘살기에 휘둘려서 기형적인 모습으로 성장한’ 베네트의 검술을 고치고 싶어 했고, 베네트는 인연을 쌓을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손아귀가 터질 정도로 검을 휘둘렀다. 알렉손은 그의 끈기와 집념을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했다.

       

       아카데미에서의 든든한 방패를 손에 넣은 것이다.

       

       알렉손은 자기 제자가 ‘억울한 누명’을 썼을 때, 확실하게 진상규명이 될 때까지 그를 지켜주려고 할 것이다. 사소한 누명 정도는 오해에 불과하다며 무마해 줄 것이다. 

       

       그러니, 혹시라도 일이 잘못되어, 베네트 자신이 흑마법사라는 사실을 들키더라도. 최소한 시간 벌이만큼은 가능했다. 계획에 아주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결행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카데미에 잠입한 흑마법사들은, 지정된 날짜까지 아카데미 곳곳에 마법진을 설치하고, 물밑에서 소란을 일으켜, 학생들의 공포와 불안을 부추길 것이다. 정체가 발각당하지 않으면 암약하고, 발각당했을 경우 최대한의 인명 피해를 낸다.

       

       이번 습격을 지휘할 흑마법사, 『공포 먹는 시체꽃』이 시전할 대마법──『악몽 소환』을 위한 비료다.

       

       그녀는 인간의 부정적인 감정을 흡수하여 마법의 위력을 한층 더 끌어올릴 수 있었다. 아카데미의 분위기가 음울하고 어두울수록, 그녀는 기하급수적으로 강해질 것이다. 

       

       이미, 아카데미의 분위기는 좋다고는 말할 수 없다. 

       

       두 파벌 사이의 갈등, 무한한 경쟁에 이를 갈아붙이는 학생들, 교수의 성과를 위해서 갈려 나가는 조교들, 유흥과 쾌락 없이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툭 건드리면 터질 정도의 스트레스가 쌓여 있었다.

       

       자연스럽게 아카데미의 분위기가 어두워진 것은, 흑마법사들이 잠입하고 발각당하기를 반복하며 30년에 걸쳐서 조금씩 완성한, 아카데미 전체에 작용하는 대마법진의 덕분이었다. 이 마법진은 범위 내 생명체들의 가장 커다란 감정을 은근히 자극했다.

       

       흑마법사들이 교묘하게 뿌린 아카데미의 소문들도 한몫했을 것이다. 신분 높은 자가 청탁을 넣어, 마음에 안 드는 학생을 죽여 없앤다는 내용의 괴담 같은 것. 

       

       조금 더 부추기면 된다. 조금만 더. 

       

       베네트는 아카데미 제복을 차려입고, 롱소드를 왼쪽 허리춤에 매달았다. 오늘은 알렉손으로부터 호출이 있었다. 그래서 교수 거주 구역으로 향하는 길이다. 무슨 용무인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시기다.

       

       베네트는 기숙사를 나서기 전, 거울 너머의 자기 모습을 바라보았다. 칙칙한 잿빛 머리카락과, 얼굴의 반쪽을 덮는 징그러운 흉터가 보였다. 멀어버린 눈도. 흉터는 기억이다. 베네트는 거울을 볼 때마다 해묵은 원한을 선명하게 떠올려 낼 수 있었다.

       

       아카데미에도 독종은 많았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베네트가 알렉손에게 받아들여진 것은, 피차 한 쪽 눈이 없는 신세라서 동질감을 품었던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알렉손과는, 결행일 이전에 조금이라도 더 친밀도를 쌓는 편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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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왔느냐, 베네트!”

       

       울림이 느껴질 정도로 커다란 목소리가 베네트를 반겼다. 알렉손이 거주하는 곳은 깔끔하게 꾸며진 아담한 사이즈의 단독주택이었다. 내부의 가구는 깔끔하게 각을 맞춰서 배치되어 있었다.

       

       생긴 것만 따지면 커다란 텐트나, 야만적인 느낌이 물씬 나는 오두막이 어울렸겠지만. 알렉손은 보기와는 다르게 섬세한 인간이었다. 

       

       “부르셨습니까, 스승님.”

       

       “그래, 별다른 건 아니고, 네 스승으로 어울리는 사람을 찾았다.”

       

       베네트의 경계도가 바짝 올라갔다. 갑자기 다른 스승을 알아보다니, 자신이 뭔가 실수한 점이 있었던가? 혹은, 알렉손이 아카데미를 떠나기라도 하려는 것인가?

       

       “하하하! 그런 표정 짓지 마라, 베네트! 정말 순수한 의미에서, 네가 가르침을 구할 만한 사람을 찾은 거니까.”

       

       쾅!

       

       알렉손은 솥뚜껑 같은 투박한 손으로 베네트의 등을 두드렸다. 베네트는, 이대로 세 번만 더 맞으면 전투 불능이 되겠구나 생각했다. 자신을 방심시킨 채로 데미지를 넣어두려는 수작은 아닐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알렉손은 덥수룩한 수염을 손으로 비벼대었다. 그가 무언가를 고민하거나 회상할 때의 습관이었다.

       

       “아카데미에서는 『환상 마법 대응』을 무조건 가르쳐야 한다는 규칙이 있지 않더냐. 그런데 이전 교수가 불미스러운 일로 떠났으니 말이다. 새로 사람을 구해야 했지.”

       

       “그렇군요.”

       

       “자색 마탑에 교수 파견을 의뢰할 생각이었다. 실전 경험 풍부하고 경력 많은 사람으로 말이다. 인품도 훌륭하다고 알려진『꼭두각시 로레이』도 후보였고, 『고통의 찰리』도, 악명이 꽤 있는 편이지만 교수로는 더할 나위 없었지.”

       

       “⋯⋯⋯⋯.”

       

       “그런데⋯⋯ 2황자님이 갑자기 사람을 꽂으시더군. 『환상 마법 대응』에 더해서, 학생들의 부족한 실전 경험은 이자에게 맡기면 될 거라고 말이다.”

       

       “⋯⋯설마, 환상 마법으로 실전을 겪게 한다는 겁니까?”

       

       웃기지도 않는 소리였다. 환상 마법을 실전 훈련에 접목시키려는 시도는 여러 번 있어 왔지만, 모두 실패했기 때문이다. 실제와 환상의 괴리감이 너무 크거나, 출력이 약해서 쉽게 깨졌다.

       

       사실감을 불어넣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환상 마법사 세 명이 마력을 쥐어짜 내 만든 세계는, 정보의 크기를 낮추기 위해 사람이며 사물을 데포르메로 만들어야 했다. 

       

       뭉개진 찰흙 덩어리 같은 고블린으로는 실전 경험을 쌓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 말이 안 되는 일이라서⋯⋯ 반대했지. 그래서 그놈에게 어디 한번 증명해 보라고 했다. 어디 한번, 2황자를 구워삶은 혀 놀림이라도 보여 보라는 생각으로. 그런데, 알레한드로 그 속 좁은 녀석이 당했다.”

       

       “알레한드로 교수님이 말입니까⋯⋯?”

       

       “더 놀랄 게 남았다. 내가, 마법사한테 논검으로 졌어.”

       

       “⋯⋯예?”

       

       베네트는 머리가 덜컥 굳었다. 성직자가 지나가던 농부에게 말싸움에서 패배한 꼴이다. 다른 얼뜨기였다면 ‘어떻게 마법사에게 논검으로 지느냐’면서 한심함을 욕했겠지만, 알렉손은 그런 말을 들을 수준의 사람이 아니었다.

       

       “누누이 말하지만, 무기에는 마음이 담긴다. 이건 결코 철학적인 헛소리가 아니야.”

       

       알렉손이 40년간 전장에서 구르며 얻은 깨달음이었다.

       

       “공격할까, 회피할까, 방어할까. 공격한다면, 자신이 입을 피해를 어디까지 감수할 것인가. 노림수를 어디에 섞어 넣을까. 이러한 판단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엮이는 것이 전투지.”

       

       체스와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었다. 행동에는 판단이 섞인다. 공격에 60%, 방어에 40%의 가중치를 두고 휘두를 수도 있고, 상대방의 다다음 수를 예상하며 카운터를 노리거나, 특정 순간에 힘을 싣기도 한다.

       

       그렇기에, 무기에 실린 판단을 뜯어보면, 사람이 보이게 된다. 어떤 식으로 싸우며, 어떤 식으로 행동하는지를 유추해 나갈 수 있었다.

       

       “그래서 네 검에는 살기가 풀풀 날린다고 말하는 거다. 네 검은 기본적으로 ‘팔 한쪽 정도는 내주면서 상대방을 이기는’ 것을 전제로 하니까. 그런데, 그 자식의 혓바닥 위에서 피어난 검술은⋯⋯.”

       

       알렉손의 눈빛에서, 미약하게나마 두려움이 스쳤다.

       

       귀신 따위를 무서워하는 두려움이 아니었다. 그것은, 해가 서쪽에서 뜨는 것을 목도하거나, 바닷물이 하늘로 떨어지는 것 같은, 불가해에 대한 공포였다. 

       

       그는 회고했다.

       

       “첫 수는 꾀어내기 위한 수였다. 그러자 상대도 탐색하기 위한 수를 날려 오더군. 그때 이미 예사롭지 않다고 느꼈다. 논검은 말싸움⋯⋯ 어느 한 쪽이 억지를 부리기 시작하면 성립이 되지 않지. 하지만 그 녀석은, 제대로 계산하고 있었어.”

       

       체중과, 파괴력. 근육량 등.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마력과 우화를 제외한 나머지 데이터를 충실하게 고려하는 것이 느껴졌다. 자신의 피지컬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휘둘러져 오는 도끼를 흘려내는 수.

       

       서로 말이 오가고 있을 뿐이었지만, 알렉손은 말로부터 구체적인 전투를 상상해 낼 수 있었다. 머릿속에서 검과 도끼가 오갔다.

       

       “그렇게 세 합이 지나가고 네 번째 합. 그때였다. 내가⋯⋯ 이상함을 느낀 건.”

       

       그건, 그 휘두름은.

       

       현존하는 어떤 무술 유파에서도 목격한 적 없는 궤적이었다. 알렉손은 마법사의 혓바닥이 그려내는 궤적을 머릿속으로 떠올린 후에, 순간적으로 멍해졌다. 

       

       머리로는, 무술의 무자도 알지 못하는 마법사가 대충 그려낸 한 수라고 말했다.

       

       하지만, 가슴은. 여태까지 전장에서 쌓아 온 본능은 정반대의 답을 도출해 냈다. 위험하다, 고. 심장이 조여오는 것을 느꼈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것은 결정적인 수였다.

       

       “어느 순간, 공수가 뒤바뀌었다.”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눈치채고 보면, 공격을 이끌어나가던 알렉손은 방어에 급급하게 되었다. 분명히 느리고, 허약한데도, 마법사의 칼날은 늦게 발해서 앞서 도달해 있었다.

       

       그러나, 알렉손은 고절한 무예에 감탄하는 대신, 벌레가 혈관을 타고 꾸물대는 듯한 불쾌함을 느끼고 소스라쳤다.

       

       해체.

       

       마법사의 검은 효율적으로 알렉손을 해체하고 있었다. 기계적으로, 필요한 만큼만 움직이고, 더하고 덜함 없이 휘둘러, 항상 아주 약간의 이득을 보고 넘어갔다.

       

       그곳에는 마음이 없었다. 공격을 중요시하는지, 방어를 중요시하는지, 무엇을 노리는지, 모든 것은 효율에 따라 바뀌었다. 알렉손은, 머리가 백 개 달린 괴물과 싸우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괴물은, 언제나 가장 효율적인 수만을 도출해 낸다.

       

       깎여나간다.

       

       겉으로부터 조금씩, 도려내어, 사라져간다.

       

       “후반에는⋯⋯ 발버둥이나 다름이 없었지.”

       

       피부로부터 얇게 포를 뜨는 행위를, 그 존재가 사라질 때까지 반복하는 듯한 작업. 알렉손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발악했다. 그러나. 한 겹씩 벗겨져 나간다는 결과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나는 147합째에 죽었다.”

       

       회상이 끝났다.

       

       알렉손의 표정은 한껏 일그러져 있었고, 다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식은땀이 흘렀다. 어느샌가 그의 두 손은 꽉 쥔 채로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베네트는 알렉손의 그런 모습을 처음 보았다.

       

       “⋯⋯그때 인정했다. 그 마법사가, 육체마저 완벽하게 태어났다면⋯⋯ 언젠가 제국의 소년 기사를, 노려볼 수도 있었겠다고.”

       

       “⋯⋯⋯⋯.”

       

       “가서 가르침을 구해라, 베네트. 내가 우화를 하지 않았더라면⋯⋯ 그 마법사가 싸우는 방법을 닮으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내 길을 정했고, 이미 굳어졌지. 너는 다르다. 베네트⋯⋯ 가서, 그 마법사의 검술을 배워라.”

       

       좀 더 큰 물에서, 좀 더 나은 스승에게서 배우라. 알렉손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자신의 제자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베네트는 이빨을 잘근 깨물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예, 스승님.”

       

       베네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변수였다.

       

       자색 마탑에서 온 마법사⋯⋯. 알렉손이 그만큼 고평가하는 인물이라면, 분명히 계획에 변수가 된다. 그에 대해서 조사하고, 잠입한 흑마법사들에게 알려야 했다. 문제가 된다면 우선해서 제거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베네트는, 어딘가 공허함을 느끼는 것 같은 알렉손의 모습을 바라보며. 자기도 모르게 툭 내뱉었다.

       

       “그래도, 제 스승님은 한 분뿐이십니다.”

       

       “녀석⋯⋯.”

       

       알렉손의 표정이 희미하게 밝아졌다. 베네트는 허리를 꾸벅 숙이고, 알렉손의 거처에서 빠져나갔다. 

       

       알렉손의 사회적 위치는 변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좋은 위장막이자 좋은 방패였다. 그러니까, 풀죽은 듯한 알렉손에게 듣기 좋은 말을 해서 점수를 따는 건, 계획에도 필요한 일⋯⋯ 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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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네트가 흑마법사들, 그리고 친분이 있는 동급생들로부터 긁어모은 정보는 다음과 같았다.

       

       이름 불명. 

       나이 불명.

       

       자색 마탑 소속.

       자색 마탑주의 수제자.

       

       뒷배로 2황자를 두고 있음.

       

       정장 차림의 여집사에게 안긴 채로 돌아다님.

       

       여집사와 아카데미 여학생 사이의 치정 싸움이 일어남.

       

       아카데미에 입장하자마자 교내 여성 속옷 판매점에 방문함.

       

       아카데미의 몇몇 장소에 수상한 짓을 하는 정황이 포착됨.

       

       어젯밤 교수 거주 구역에서 벗어나 남쪽으로 움직였다는 목격 증언.

       

       “⋯⋯⋯⋯.”

       

       베네트는 윗선에 보고할 내용에 호색한이라고 적기로 했다. 이렇게나 밝히는 인물이라면, 미인계가 유효할 것이라고도.

       

       “수상한 짓이라⋯⋯.”

       

       그와 직접적으로 접촉하는 것은 나중으로 미뤘다. 베네트는 우선 자탑 마법사가 아카데미에서 무슨 짓을 꾸미는지 확인해 볼 생각이었다. 바로 오늘, 모두가 잠든 깊은 밤에 말이다.

       

       베네트는 눈을 감고, 자신의 영혼의 윤곽을 더듬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한 귀퉁이를 뜯어냈다. 심장이 뜯겨나가는 듯한 고통이 잠깐 스쳐 지나가고, 그의 손끝에는 막대한 양의 마력이 남았다.

       

       영혼과 육신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영혼이 쇠하면, 육신 또한 타격을 입는다. 그러니 스스로의 영혼을 재료 삼아 흑마법을 시전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수명이 깎여나갔다.

       

       베네트는 자신의 영혼으로 흑마법을 사용할 때마다, 언제나 망설였다.

       

       그러나, 자신이 한때 가졌던 것은 모조리 화마 속에 집어삼켜졌다는 사실을. 두 손에 남은 것이라고는 고작 잿가루뿐임을 다시 되새기고 나면, 용기가 생겼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계획을 완성하겠다는 용기가.

       

       “번제(燔祭) – 『과거 추적』.”

       

       영혼을 소모해서 사용하는 마법의 강화. 마력이 소용돌이치며 풀려나가 베네트의 눈동자에 깃들었다. 울컥 치밀어오르는 핏물은, 쓰레기통 안에 뱉어냈다.

       

       방금 것으로 약 3년의 수명이 날아갔지만, 계획의 완성을 위해서라면 상관없었다.

       

       1분 전의 과거를 보여주는 마법은 강화되어, 하루 전의 모습까지 선명하게 드러냈다. 베네트는 후드를 뒤집어쓴 마법사와, 정장을 입은 미녀의 환상을 쫒았다.

       

       그는 강의시설 구역의 어느 공터에 도착했다.

       

       마법사가 삽으로 땅에 무언가를 묻는 이미지를 포착했다. 베네트는 주변을 살피고,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이후에 마법으로 단숨에 흙을 파냈다. 

       

       “⋯⋯검?”

       

       평범하게 생긴 검이 묻혀 있었다.

       

       단지 쓰레기를 매립하기 위해, 야밤에── 그것도 비 오는 날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해서, 그들은 삽을 사용했다. 마법의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이리라. 이토록 치밀하게 움직였는데, 평범한 검일 리가 없었다.

       

       베네트는 짐작 가는 바가 있어, 검으로 자기 손바닥을 얇게 베었다.

       

       피가 후두둑 떨어졌다. 그리고, 피를 머금은 마검이 절전 모드에서 깨어났다. 

       

       ‘마검한테 먹이를 줘야지’ 하고 민간인을 찔러 죽이는 것을 막기 위해, 피를 감지하면 즉각 깨어나서 활동을 개시하는 기능이 있었기 때문이다.

       

       -네가 나의 새로운 주인인가? 날 깨우다⋯⋯

       

       “『독늪마귀의 아티팩트 봉인』.”

       

       베네트는 마검이라는 것을 확인한 이후, 즉각 봉인했다. 그리고 마검을 허리에 찼다. 누군가에게 들켜서는 안 되니까.

       

       “⋯⋯여색을 밝히고, 2황자를 뒷배로 뒀으며, 알렉손을 논검으로 이길 정도의 지혜에, 아카데미에 마검을 숨겨 둔다라⋯⋯.”

       

       

       ⋯⋯같은 흑마법사인가?

       

       계획의 완성을 위해서 『공포 먹는 시체꽃』이 파견한 상위 흑마법사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흑마법사 커뮤니티는 점조직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베네트는 오직 ‘윗선’과만 소통할 수 있었으며, 아카데미의 누가 위장한 흑마법사인지도 알 수 없었다. 그렇기에 자탑의 마법사가 아군인지의 여부는, 지금 당장 확인하는 게 불가능했다.

       

       같은 흑마법사라면, 마검을 다시 묻어두는 편이 나을까. 

       

       흑마법사가 아니라면 마검을 챙겨도 상관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흑마법사가 아니라기에는, 상식적으로 마검을 아카데미에 묻을 이유가 없었다. 교회에 가져가면 알아서 처리해 주고, 사례금도 줄 테니까.

       

       고민이 깊어질 무렵, 인기척이 느껴졌다.

       

       “⋯⋯⋯⋯.”

       

       다시 묻을 시간도, 위장할 시간도 없다. 베네트는 마검을 챙긴 채로 서둘러 자리를 빠져나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메리 화이트 크리스마스, 디어 마이 프렌즈!
    연참은 불가능했지만⋯⋯ 6000자나 썼으니 넉넉하게 담은 게 아닐까요?!
    눈이 내리네요. 창문 너머로 바라보는 세상은 하얗고도 포근합니다.
    집에서⋯⋯ 이불과 함께⋯⋯ 따뜻한 밤을 보낼 거예요⋯⋯.

    언제나처럼 내일 뵙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다음화 보기


           


Otherworld TRPG Game Master

Otherworld TRPG Game Master

Another World TRPG Game Master, 이세계 TRPG 게임마스터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wizard of the Illusion Magic School and decided to create a virtual reality with illusion magic to play a tabletop role-playing game (TRPG). It was great to create a virtual reality, but I was in trouble because there were no suitable players. During that time, I received an offer to be the professor from the Royal Academy. The offer was to use illusion magic to fill the students’ lack of practical experience safely. And so, I became a professor at the academy. “Send me back, send me back to that world right now-!” “Outer god, someday an outer god will be our doom, we’ll all die!!” “I am not the bastard of the Redburn Ducal Family. I am the foremost disciple of the Great Namgung Clan, Namgung Qinghui!” But it seems there is a bit of a misunderstanding. This isn’t a spell for dimensional travel, kids. It’s 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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