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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8

       “크래프트 후작께서 새에 물려가?”

         

       비공정에서 내려 하늘고래 등 위에 도착한 싱클레어 상단주는 보고를 듣자 당혹스러웠다.

         

       다른 상단들도 소식을 듣고 혼란스러운지 책임자들의 웅성거림이 상당했다.

         

       “이러면 어찌 되는 거요?”

       “수색대를 만들어야 하는 건가?”

       “그보다 감사는?”

         

       감사를 통보받자 하늘고래 채집에 참여한 상단들은 학생회를 따돌리기로 합의를 마친 지 오래였다.

         

       하늘섬 총독부의 권한을 일부 넘겨받은 학생회가 강력하긴 해도 어차피 학생 집단이었다. 하늘고래 채집은 전문 기술이 필요해서 관련 종사자의 협조가 없다면 제대로 살펴보기 어려웠다.

         

       전문 영역 특유의 진입장벽에 단합된 얼버무림과 조작 증언이 이루어지면 탈세든 범법행위든 불가피한 관행적 절차로 속이기 쉬웠다.

         

       상단 단합은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이제 학생회엔 협조하는 척만 하며 무시하고 각자 채집에 열중하면 됐다.

         

       그런데 대뜸 크래프트 후작이 괴조에게 물려갔다.

         

       “도대체 왜?”

         

       정말 어이없는 일이었다. 채집 경험이 많은 상인들도 말로만 듣던 괴조 납치 사건이었다.

         

       “어찌 된 거요? 정말 새에게 물려가신 건 맞소?”

         

       상단 대표 중 하나가 의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다소 후작께 불경스러운 의심이긴 했지만 은근한 공감대가 형성됐다. 크래프트의 악명을 생각하면 거짓으로 방심시키고 감사를 시작해 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타당한 의심은 금세 해소됐다. 분홍색 소녀가 새 부리에 물린 채 휭~ 날아가는 광경은 너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우아앙~ 거리며 물려갔다는 증언이 수두룩하게 나왔다.

         

       어떤 상단주가 가슴을 쳤다.

         

       “아니, 도대체 왜?”

         

       껄끄럽긴 했던 학생회 업무가 스톱된 상황이지만 정작 상단 중 어느 누구도 원하지 않던 일이었다. 돈을 벌어야 할 인원 일부를 떼어 수색대를 만들어야 할 상황이니까.

         

       상단 대표들이 모인 천막으로 학생회 일원이 들어왔다.

         

       레너드가 오만하게 둘러보더니 통보했다.

         

       “사태는 이미 알고 있겠지? 수색대를 만들 거다. 알아서 인원을 차출해라. 왜 이렇게 굼뜨지? 당장 움직여!”

         

       일방적인 인원 차출로 수색대가 갖춰졌다. 납치한 범인이 명확하기 때문에 둥지가 있을 바위산까지 직행할 계획이었다.

         

       이윽고 각종 상단의 안내자와 용병들이 뒤섞인 수색대가 출발했다.

         

       상단 대표들이 한숨을 쉬며 해산했다. 손해를 벌충하려면 서둘러 움직여야 했다.

         

       그런데 정작 여기서 가장 큰 상단을 보유해 바쁠 싱클레어 상단주는 묘한 표정이 됐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아선 감사는커녕 그와 비슷한 일도 없을 듯했다. 굳이 있다면 불경죄를 저지른 괴조 토벌로 바위산 주변이 부산스러운 정도인가.

         

       1학년인데도 학생회를 장악하고도 순진한 겉모습을 유지하는 크래프트 후작의 존재는 부담스러워 계획은 잠정 보류했지만……. 지금이라면 크래프트 가문 특유의 음흉한 속내를 상대하지 않아도 된다.

         

       상단 천막에 들어온 싱클레어 상단주는 조용히 아랫사람을 불렀다. 언질을 주자 아랫사람은 그대로 천막을 나가 숲으로 사라졌다.

         

       하늘고래 어딘가에 있을 교단과 접촉할 것이다.

         

       프레지는 대를 이어 내려온 상단이다. 하늘섬에 정기 방문하는 하늘고래와 무수히 접촉하며 노하우를 쌓고 하늘고래 시장을 상당량 장악한 상단이었다.

         

       그런데 싱클레어 상단주였지만 이 상단의 역사와 전통에 혈연적인 연관성이 전혀 없었다. 상단주 가문이 우연히 단체 급사하자 당시 부상단주였던 싱클레어가 상단을 홀랑 넘겨받게 됐기 때문이다.

         

       우연한 단체 급사와 시기적절한 상단 지배.

         

       교단은 확실한 결과를 만들어줬다. 이젠 싱클레어가 대가를 지불할 때였다.

         

       약속대로 프레지 상단의 각종 핵심 장비와 기술을 교단에 넘겨줄 예정이다.

         

       이번 접촉만 마무리되면 교단은 제국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고급 소재의 수급이 자체적으로 가능해진다. 소재 밀무역을 통한 자금확보까지 원활해지는 건 물론이다.

         

       단 한 번의 접촉이면 된다.

         

       마계에서부터 하늘고래를 타고 온 교단 일원을 하늘섬의 프레지 상단이 마중 나가는 계획. 기사단도 아카데미도 신경 쓰기 난감한 하늘고래 등 위에서 이루어지는 접촉이었다.

         

       속내를 모를 크래프트 후작이 무슨 냄새를 맡았는지 감사를 시작한 게 꺼림칙하긴 했으나 정작 그 후작이 조난당했으니 지금보다 좋은 접촉 타이밍은 없었다.

         

       싱클레어 상단주는 분주히 움직였다.

         

         

         

       #

         

         

         

       파스텔은 까마득히 높은 나무의 가지 위에 엎드렸다. 거대한 나무라 신체가 넉넉히 얹어졌다.

         

       울창한 잎사귀로 몸을 가리곤 저 멀리 있는 구덩이를 내려봤다.

         

       프레지 상단의 일원들이 구덩이를 오가며 분주히 작업했다. 길고 큰 주삿바늘이 달린 장치가 구덩이에 박혔다. 장치에 붙은 톱니가 움직이자 붉은 액체가 바늘구멍을 채우며 올라왔다.

         

       파스텔은 작게 속닥였다.

         

       “뭐 하는 걸까요?”

         

       완전 수상쩍어 보여.

         

       『하늘고래에서 피를 뽑는 작업이다.』

       “네에?”

         

       설마 구덩이라 생각했던 건 고래 친구의 움푹 파인 피부?

         

       톱니장치가 달린 주사기가 뽑혔다. 인부들이 뽑힌 혈액을 큰 솥단지에 부었다. 장작불이 솥단지를 달구자 혈액이 끌었다. 붉은 액체가 방울졌다.

         

       으에에.

         

       파스텔은 오스스 떨었다.

         

       고래 친구, 네 피가……!

         

       산 채로 피를 뽑히다니……!

         

       으아아.

         

       “완전 사악해요!”

         

       누가 봐도 뱀파이어!

         

       사악한 교단과 연관성 100%

         

       『흠, 보긴 껄끄러워도 평범한 작업이다.』

       “네에?”

       『수분기를 날리고 각종 절차를 거쳐 혈청을 만들면 네가 먹던 마석 각성제의 소재가 되는 거다.』

         

       파스텔은 눈이 동그랗게 됐다.

         

       사탕 같던 마석 각성제가 사실 고래 친구에게서 산채로 뽑아낸 피로 만든 거?

         

       냠냠 쩝쩝하며 맛있게 먹던 과거가 떠올랐다.

         

       허억.

         

       벌어진 입을 양손으로 가렸다.

         

       미안해, 친구!

         

       대화 한번 안 해보긴 했지만 정말 미안해!

         

       『나도 잘은 모른다만, 끓이다 일정 이상 농축되면 오크통에 옮길 거다. 탈세는 오크통 개수를 속이며 이루어지지. 이 현장에서 확인해주면 탈세를 잡을 수 있다.』

       “그렇군요.”

         

       파스텔은 현장을 유심히 관찰했다.

         

       멀쩡히 살아 있는 고래의 피를 뽑는 광경이라 기괴했지만 사악하고 수상쩍은 무언가는 안 보였다.

         

       대신 현장 작업을 지켜보며 배우는 집단이 눈에 들어왔다. 용병인지 병장기를 들거나 마법사 로브를 걸친 소수 인원이었는데 정작 현장 작업을 배우는 게 묘했다.

         

       “저것도 탈세 행위에요?”

       『아마 아닐 거다. 인수인계 같은데, 상단 내부에 새 조직이라도 만드는 건가?』

         

       그 소수 인원에 싱클레어 상단주가 다가가더니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마법사가 현장을 가리키며 질문하자 팔짱을 낀 싱클레어가 대답했다. 기술 전수 같은 모습이었다.

         

       평범했지만 파스텔은 왠지 머리카락이 찌릿거렸다.

         

       “뭔가 이상해요.”

       『무엇이?』

       “그건…….”

         

       파스텔은 곰곰이 생각했다.

         

       팔짱을 끼고 심각한 표정을 짓다가 하늘을 올려보고 지상을 내려봤다가 단호히 말했다.

         

       “그냥 이상해요!”

         

       이것이 우문현답.

         

       『그러냐.』

         

       악마가 어이없어했다.

         

       우왓, 완전 바보 취급.

         

       “두고 보세요! 똑똑한 무의식의 근거를 제가 찾아 보일 테니까요!”

         

       파스텔은 온종일 나무 위에서 죽치고 현장을 지켜봤다.

         

       작업이 계속되다가 인부들이 식사를 했다. 노을이 지고 해가 떨어지자 작업이 중지됐다. 인부들이 현장 근처의 야영지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오늘 일은 끝인가 보군.』

         

       악마가 걱정하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어린 크래프트, 슬슬 돌아가는 게 어떻지? 노숙만 며칠째다. 이러다 몸이 축나. 넌 외부 감염에 매우 강한 거지 모든 질병에 면역인 게 아니다.』

       “악마님, 그 얘기만 며칠째에요.”

         

       병 걸릴 거 같다는 별걱정에 개울가에서 목욕도 꼬박꼬박하고 옷도 몇 번 빤지 오래다.

         

       덕분에 지금 파스텔은 진흙진흙 파스텔이 아니라 뽀득뽀득 파스텔이었다.

         

       뽀득뽀득 파스텔.

         

       악마가 손수 찾은 계면활성제 식물이 얼마나 효과가 좋았는지 아주 말끔했다.

         

       흐윽.

         

       파스텔은 살짝 서러워졌다.

         

       차가운 복수심을 담아 진흙 변장했더니 자기 전엔 씻어야 한다며 강제 세수 당하는 기분은 아무도 모를 거야…….

         

       강제로 어푸어푸.

         

       붙잡힌 파스텔은 허우적허우적.

         

       가주로서 지켜야 할 신의가……!

         

       교단을 노려야 할 복수심이……!

         

       그런 건 됐고 어푸어푸.

         

       우와앗! 악마님! 악마님! 개울물 차가워요! 진짜 차가워요오!

         

       “에휴우.”

         

       뽀득뽀득 파스텔은 한숨을 폭 쉬었다.

         

       그렇다고 악마님이 뻔히 걱정할 걸 아는데 교단에 마음이 팔려 있다고 말할 수도 없고.

         

       『돌아가고 싶은 건가? 지금 돌아가면 일주일간 네가 먹고 싶은 식단으로 차려주마. 영양 상관 없이 마음대로.』

         

       헛.

         

       일주일 내 마음대로?

         

       파스텔은 엄청나게 혹하다가 정신을 차렸다.

         

       차갑고 냉혹한 눈빛을 했다.

         

       “어차피 떼쓰면 다 들어주실 거 알아요.”

         

       전혀 메리트가 없다.

         

       『뭐라고……?』

         

       악마가 경악했다.

         

       파스텔은 조용해진 악마를 무시하고 작업 현장을 살폈다. 현장 정리를 완전히 마친 인부들이 모두 떠나기 시작했다.

         

       특이 사항이 보였는데 용병이면서도 기술 전수를 받던 인원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싱클레어 상단주 또한 인부들을 배웅하고 돌아왔다.

         

       오잉.

         

       수상쩍음 백만 배.

         

       일부 인부가 현장으로 돌아오더니 각종 자재 기구를 두고 다시 떠났다. 현장에서 쓰인 것과 동일한 장비들이었다.

         

       용병 인원이 싱클레어 상단주와 인사를 나누곤 장비를 챙겨 이동했다. 프레지 상단의 야영지와는 딴판인 방향이었다.

         

       파스텔은 곧장 뒤쫓았다.

         

       용병들이 당도한 곳은 생각보다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공터였다. 나무와 수풀에 둘러싸인 곳이었는데 위치가 절묘해 근처까지 가야만 숨겨진 비공정이 보였다.

         

       비공정?

         

       용병들이 비공정의 줄사다리를 붙잡고 갑판에 올라갔다. 고래를 모방한 비공정이 날개 지느러미를 움직였다. 광풍이 불고 거체가 서서히 떠올랐다.

         

       파스텔은 비공정 그림자에 숨어들 듯 달렸다. 완전한 사각지대에 당도하자 비공정을 향해 위로 도약했다.

         

       소녀의 몸이 붕 떠올랐다. 품에서 나이프가 부유하고 발치로 날아왔다. 도약음이 연달아났다. 나이프가 튕겨 나갔다가 돌아오길 반복하며 분홍 실루엣이 솟구쳤다.

         

       파스텔은 비공정 바닥을 향해 검을 내질렀다. 나무 재질이 쪼개지고 검이 꽂혔다. 몸을 회전해 그대로 매달렸다.

         

       더 떠오르던 비공정이 서서히 가속했다. 나무 위를 타듯 비행하자 수목이 밀려나며 바람 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으아아.

         

       각종 나뭇가지가 소녀 아래를 스쳤다.

         

       “우아앗! 이거 어디로 가는 걸까요?!”

       『호오. 낮은 비행을 고집하는 걸 보면 하늘고래를 떠나는 건 아닐 거다.』

       “그렇군요!”

         

       검에 대롱대롱 매달린 파스텔은 두근거렸다.

         

       당신들은 누군가요~!

         

       우릴 어디로 데려가나요~!

         

       아무것도 모르겠지만.

         

       “결론은 노숙 백만 배!”

         

       파스텔은 노숙할 생각이 가득해졌다.

         

       『뭐라고……?』

         

       악마가 경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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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It’s Mental Immunity

No, It’s Mental Immunity

Status: Ongoing Author:
The guardian demonic sword is troubled and in distress, believing it has been ruined because of me. Does striving for advancement through consuming demonic energy seem too 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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