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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8

       개막식이 가까이 다가오자 엘라는 단원들의 훈련 시간을 서서히 줄여나갔다.

       무작정 훈련량을 늘리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걸 그녀도 알고 있었다.

       몸을 쉬게 해주는 것도 중요했다.

         

       단원들은 다들 그녀의 결정을 반겼다.

         

       지난 한 달간 쉬는 날도 없이 얼마나 굴렀던가?

         

       그들은 메트로폴 호텔의 24시간 안마 서비스를 싫어하는 유일한 투숙객들이었다.

         

       하루 내내 흙먼지와 구르다가 이 정도면 내일은 못 일어나겠지 싶어 침대에 누우면, 엘라가 안마사들을 각 단원의 방에 투입했다.

         

       천국 같은 마사지.

       동시에 내일의 지옥을 위한 마사지.

         

       그렇게 안마를 받다가 잠들면, 다음날 근육은 언제 뭉쳤냐는 듯 풀려있었다.

         

       그걸 꼬박 한 달을 반복했다.

       오랜만에 맞이하는 휴식은 너무 달콤했다.

         

       그렇다고 가만히 뒹굴고 노는 것은 엘라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그녀는 하루에 한 번 단원들을 소집해 공연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이걸 넣으면 어떨까, 저걸 바꾸면 어떨까, 요건 빼면 어떨까.

       처음에는 엘라의 일방적인 주도로 이끌어지던 회의가 시간이 갈수록, 단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활기를 띠어갔다.

         

       의상에 불편한 부분이 있으면 수정하고, 자주 망가지는 소품은 다른 것으로 대체하고, 아직 활용하기 무리다 싶은 무대 장치는 과감히 빼버렸다.

         

       그렇게 매일 회의실에 모이는 것도 5일째를 맞았다.

       오늘 회의의 주제는 바로 시각효과에 대한 것이었다.

         

       지금까지 대본에 있는 시각효과는 대부분 생략해 왔었다.

       그들에겐 환상 마법사가 없었다.

       꼭 필요한 장면은 엘라의 손재주로 도구를 제작해 비슷한 효과를 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들에게도 드디어 환상 마법사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가장 반긴 건 우몬과 밴딕이었다.

         

       “드디어 진짜 불에 안 뛰어들어도 되는 거죠?”

       “붕대를…이제 좀…덜 갈아도 되겠군….”

         

       그동안 우몬은 지옥에서 올라온 악마의 분위기를 풍기기 위해 불구덩이 속에서 뛰쳐나오는 연습을 했다.

       밴딕은 독을 퍼트리는 미라의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몸 주위에 운무를 띄우고 초록색 전등으로 색을 입혔다.

         

       코뿔소의 것만큼이나 튼튼한 피부를 가진 우몬이었지만, 이글거리는 화염을 맨몸으로 통과하는 것은 뛸 때마다 새로운 각오를 다져야 했다.

         

       밴딕은 썩어 문드러진 자신의 피부에 애착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운무 속에서 몇 시간이나 있으면 붕대가 축축해져서 갈아야 하는 상황을 성가셔했다.

         

       둘의 시선이 회의실 구석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그저께 들어온 신입 단원이 앉아 있었다.

         

       하얀 머리칼에 하얀 피부.

       앞치마를 연상케 하는 검은색 원피스, 그 안에 껴입은 노란색 티셔츠, 그리고 적갈색 베레모.

       인형 같다는 말이 잘 어울릴 정도로 예쁘장한 외모를 지닌 소녀였다.

         

       마법사 마야.

       다들 웃고 떠드는 회의실 안에서 그녀는 혼자 동떨어져 있는 분위기를 풍겼다.

       자신의 이름이 몇 번이나 언급되었음에도 고개 한 번 들지 않았다.

         

       회의가 시작할 때부터 그랬다.

       엘라가 브리핑을 해도 눈길 한 번 주지 않았고, 주제가 환상 마법으로 넘어갔는데도 여전히 자신과 관련 없는 이야기라는 듯 읽고 있는 책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마, 마야, 네 의견은 어때?”

         

       엘라가 입가에 어색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단원들이 난처한 시선을 교환했다.

       그들은 알 수 있었다.

       부단장이 지금 화를 참고 있다는 것을.

         

       그녀는 팀워크를 해치는 행위를 가장 싫어했다.

         

       마야는 엘라를 향해 눈동자를 흘끗거리더니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못해.”

       “어……뭐라고?”

       “나 그런 건 못한다고.”

         

       그렇게 말을 마친 그녀는 읽던 책을 계속 읽어나갔다.

       이해할 수 없는 그림과 숫자들이 빼곡히 적힌 것이었다.

         

       엘라의 미간에 힘이 들어갔다.

         

       함께하는 자리에서 자기 일에만 몰두하는 협동성 없는 자세.

       다른 사람의 기분을 배려하지 않는 무심한 태도.

       차갑고 냉정한 말투.

       내 알 바 아니라는 식의 매몰찬 표정.

         

       어느 것 하나 그녀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게 없었다.

       평소라면 참다못해 소리를 빽 질렀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한 번 더 참았다.

       오늘의 주제는 환상 마법이었으니까.

       그녀의 협조가 필수적이었다.

         

       후우, 화내지 말자. 화내지 말자.

         

       엘라는 가까스로 미소를 짓는 데 성공했다.

         

       “그, 그러니까……못하겠다는 건, 그 ……하기 싫다는 거야?”

         

       그녀는 대단한 수준의 환상 마법사였다.

       그런 그녀에게 불꽃과 안개 같은 수준 낮은 환상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 자존심 상하는 일일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든 단원을 달래서 일을 하도록 하는 게 부단장인 자신의 역할이었다.

         

       ‘아니, 사실 단장의 역할이지.’

         

       엘라는 속으로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다.

         

       그러나 마야는 그런 엘라의 노력을 비웃듯 차가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못’한다고.”

         

       사람 말귀를 못 알아먹겠냐는 식의 나무라는 말투.

       무감각한 목소리였지만, 그 너머에 있는 경멸까지 못 읽을 엘라가 아니었다.

         

       그녀의 인내심에도 드디어 한계가 왔다.

       그녀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간단한 불꽃도 안개도 못 만든다는 거야? 너 환상 마법사 맞아?”

       “응. 맞아. 그런데 못 만들어.”

       “다른 건 잘 만들었잖아!”

       “내 환상은 다른 환상과 달라.”

       “뭐가 다른데?”

         

       마야는 아주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보고 있던 책을 덮었다.

       그녀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엘라를 바라봤다.

         

       “기본 원리 자체가 다르다는 말이야. 네가 요구하는 걸 하려면 준비 기간이 필요해.”

       “얼마?”

       “몇 주는 있어야지.”

         

       엘라가 입을 딱 벌렸다.

         

       “고작 환상 하나 준비하는 데 몇 주? 그런 걸 어디 써먹어?”

       “불이나 안개 같은 것만 그래. 정형화된 물건은 금방 만들 수 있어.”

         

       엘라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가 알고 있는 환상 마법에 대한 상식과 완전 반대였다.

         

       불꽃, 폭발, 빛, 안개 같은 것은 환상 중에서도 쉬운 기초에 속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건 몇 달이나 걸린다는 애가 다른 건 금방 만들 수 있다?

         

       엘라는 황당해서 자기도 모르게 말이 툭 튀어나왔다.

         

       “뭐 그딴 마법이 다 있대?”

         

       그딴 마법?

       마야의 눈썹이 아주 살짝 꿈틀했다.

         

       “함부로 말하지 마.”

       “아니, 이상하니까 그렇지. 너 제대로 배운 거 맞아?”

       “단장님께서 가르쳐주신 마법이야.”

         

       다른 단원이 들었다면 ‘아이고, 그렇군요. 죄송합니다.’하고 물러났을 것이다.

         

       그러나 상대는 엘라였다.

       서커스단에서 누구보다 원더스타인을 증오하는 사람.

         

       하! 단장님이라고?

         

       속에서 뭔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아, 그래그래. 알겠어. 그 인간이 가르쳐 준 거라고? 이제 이해가 가네. 하긴 그딴 인간한테 배웠으니 제대로 된 마법일 리 없지.”

         

       엘라의 입가에 어린 조소.

       명백한 빈정거림이었다.

         

       책을 쥔 마야의 손이 눈에 띄게 떨렸다.

         

       “너 뭐라고 했어?”

         

       그녀 주위로 마력이 퍼져나갔다.

       단원들은 실내인데도 불구하고 순간 차가운 바람을 느꼈다.

       순식간에 방 안의 온도가 가라앉았다.

       그들은 몸을 부르르 떨며 마야에게서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반면, 엘라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수천 명의 관중 앞에서도 떨지 않을 자신이 있는 그녀였다.

       기세니 위압감이니 아우라니.

       그런 것으로 그녀를 위축시킬 순 없었다.

         

       “너……. 그분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하지 마.”

         

       마야의 붉은 눈동자에서 서늘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동안 엘라만 마야에 대해 참고 있던 게 아니었다.

       마야 역시 엘라에 대해 쌓인 게 많았다.

         

       회의 시간 내내 무례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마이페이스로 군 것도 엘라에 대한 반발심이 작용한 것이었다.

         

       마야가 서커스단에 들어와서 가장 놀란 것은 단원들이 괴물이라는 사실이 아니었다.

       ‘저주받은 자들’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있었다. 신기할 게 없었다.

       그들은 그저 좀 다르게 생긴 사람들일 뿐이었다.

         

       마야가 그들에게 냉담하게 군 것은, 그들의 외모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단장님을 대하는 태도 때문이었다.

         

       단원들 대다수가 그들의 단장을 꺼림칙하게 여기고 있었다.

       단장님이 웃으며 인사를 걸어도 어딘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피하기 일쑤였다.

       그런데 자기네들끼리 모여서는 잘도 시시덕거렸다.

         

       따돌림.

       그 기저에 단장님에 두려움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로 단원들을 옹호하고 싶지는 않았다.

         

       마야는 그런 눈빛에 익숙했다.

         

       어휴, 나 저 애를 보면 왠지 소름이 돋아.

       진짜 생긴 것도 하는 행동도 인형 같다고 해야 할까?

       자기 부모가 죽어도 눈물 한 방울 안 흘릴 아이야.

         

       자신을 바라보던 주변의 시선도 그와 유사했다.

       그녀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남다를 뿐, 다른 사람과 느끼는 감정은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주변에서는 그녀를 별종 보듯 두려워하며 멸시했다.

         

       프랑크 원더스타인.

       달리 고민 없이 사는 마냥 호인이기만 한 남자인 줄 알았다.

       모욕이나 냉대도 웃어넘기는 그의 여유 넘치는 태도를 처음엔 조금 깔보기도 했다.

       자신과 달리 주변 사람들과 두루두루 친하고 모난 구석 없는 삶을 살았을 거라고 여겼다.

         

       그러나 여기 들어와서 알게 되었다.

       그것은 자신의 착각이었다.

       그 역시 보통 사람들의 이해를 받지 못하는 어두운 구석이 있는 사람이었다.

       마치 자신처럼…….

         

       설마…….

       그는 자신에게 이런 면까지 투영했던 것일까?

       홀로 있는 그녀를 보고 남 일 같지 않다고 느꼈던 것일까?

       그렇기에 옆에 와서 서 주었던 것일까?

         

       그냥 마법만 전수하면 되는데도 일주일 넘게 자신을 지켜보았던 이유도 그럼…….

         

       서커스단에 들어온 지 고작 며칠밖에 안 됐다.

       그러나 마야는 그에 대한 친근감이 한층 깊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자신과 동류였다.

       마법뿐만이 아니라 삶도.

         

       그렇기에 그런 그에게 버릇없이 구는 저 부단장이라는 아이가 눈에 거슬렸다.

         

       단장님은 꼬박꼬박 존댓말을 쓰는데, 자기가 뭐라고 반말을 찍찍 내뱉는단 말인가.

       그것도 이 인간 저 인간 거리면서.

         

       서커스에 대해 좀 잘 안다고 그걸 지위 삼아 단장님을 쥐고 흔들며 천방지축처럼 구는 계집애.

         

       그것이 마야가 엘라에 대해 가진 첫인상이었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엘라는 자신을 노려보는 그녀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코웃음 쳤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웃기고 있네.

       여기서 나보다 그 인간을 잘 아는 사람은 없을걸.

         

       엘라가 화가 난 이유는 마야가 원더스타인을 옹호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 잘생긴 얼굴과 서글서글한 웃음은 대인관계에 있어서 사기적인 기술이었다.

       그를 보고 호감을 느끼는 사람마다 화를 내고 다녔다면, 그녀는 제명에 죽지 못했을 것이다.

         

       네가 그의 본 모습을 본 적이 있어?

       어떤 끔찍한 짓을 저질렀는지 알기나 해?

       누구 앞에서 아는 척이야 아는 척은.

         

       둘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치며 불꽃이 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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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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