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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8

       정령사란 그 자체로 희귀하다.

        일반적으로는 보지도, 느끼지도 못하는 정령과 직접 소통하기 위해서는 선천적인 재능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탑의 곳곳에는 정령들이 살고 있고 그들로부터 도움을 받느냐 방해를 받느냐는 등반의 난이도를 결정짓는 중대한 요소이다.

        그렇기에 정령학파는 다른 학파에 비해 규모가 작으면서도 굉장히 높은 입지를 구축했고.

        동시에 시기와 질투 역시 많이 받는 편이었다.

       

        ====

        칠현자호소인

        [마탑에서 재수 없는 학파 순위 및 특징]

       

        1. 정령학파 : 걍 운 좋아서 정령빨로 등반 중이면서 그게 자기 실력인줄 암, 선민의식에 가득 차서 정상적인 대화가 안 통함, 자기 부모보다 정령한테 인정받는 게 인생의 목표임, 방구석에서 잘 나오지 않고 씻지도 않음

       

        2. 점성학파 : 맨날 혼자 알지도 못하는 말 중얼거림, 가끔 술자리에서 마주치면 안쓰럽다는 눈으로 쳐다 봄, 선물 받은 거 필요 없으면 천칭에 올려서 중고거래함

       

        3. 원소학파 : 속성마다 다르긴 한데 대부분 무난함, 대신 갤에서 제일 목소리 크고 극렬분자들이 많이 보여서 짜증남

       

        4. 소환학파 : 빚쟁이, 자판기에서 음료 뽑아 먹을때도 더치페이함, 가끔 복도에서 넘어지면 마수 잡은 것마냥 동전 와르르 쏟아짐

       

        5. 신성학파 : 성능 좋은 청진기

       

        6. 연금학파 : 매사 젠틀하고 매너가 몸에 배여있음, 진득하게 연구에만 매진하느라 의외로 순수한 면이 부각됨, 현자의 돌 제작 같은 낭만적인 목표가 있음, 잘생김

       

        반박시 정령학파

       

        [추천 234 / 비추천 5327]

       

        — 네 다음 탄광 노동자

        — 일단 니가 어느 학파인지는 알겠다 ㅋㅋㅋ

        — 근데 정령학파 새끼들 좀 꼴받긴 해 ㅋㅋ

         ㄴ ㄹㅇ 정령문 하나만 있어도 무슨 훈장마냥 자랑하고 다님

         ㄴ 걔네야말로 성능 좋은 통역기 아니냐

         ㄴ 응 꼬우면 너네도 정령사 해~

        — 해주학파는 어딨음?

         ㄴ 마탑에 그런 학파는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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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사 잘난 척 하는 것 같아서 역겹다, 정령의 힘을 빌려쓰는 주제에 콧대만 높다, 모든 사람을 상하관계로 재단하려 한다 등.

        평판은 나쁘지만 그들의 실력 자체는 부정할 수 없는 게 현실.

       

        정령학파의 칠현자, 린지 스트리블링 역시 그런 면모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주딱이 만든 버튼으로 인해 갤러리가 초토화되고 있을 무렵.

        그녀는 정령계에서 고통받는 다른 파딱들의 모습을 관조하며 폭소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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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천재금발미소녀 : 주딱!! 당장 이 거지같은 버튼 시스템 삭제하세요!!

        — 벽력뇌제霹靂雷帝 : 등반에 방해가 들어와 죽을 뻔했다

        — 당신께축복을 : 호, 혹시 이거 관리자께서 주신 건가요? 죄송해요 한 입 먹고 버렸는데 ( ˃ ⌑ ˂ഃ )

        — 44층에갇혀있어요살 : ㅂㅜㄴㅌㅏㅇ ㄴㅓ무 많ㅇ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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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하하, 병신들. 그러게 누가 주딱을 믿으래?”

       

        린지는 처음부터 약관에 동의하지 않았다.

        갤러리 내에서 지대한 관심을 받는 파딱인 이상 다른 유저들이 만든 버튼의 영향은 받을 수밖에 없었으나 그녀는 현재 정령계에 머물고 있었다.

        식사도, 수면도 필요하지 않은 일종의 영체(靈體) 상태에선 대부분의 공격에 면역이었다.

       

        단점이라면 위치노트의 연결이 불안정하여 채팅이 제한적이라는 것 정도?

        허나 그조차 파딱의 업무를 수행하는데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

        — 말벌단수장 : 야 파딱 내가 왜 정지인데

        — 부엉부엉부엉이 : 부엉

        — 말벌단수장 : 먼저 분탕친 건 저 꿀벌 새끼들인데 왜 나만 일주일 차단되야 하냐고

        — 말벌단수장 : 하다 못해 쟤들도 같이 밴하던가

        — 부엉부엉부엉이 : 부…….

        — 말벌단수장 : 아니 납득할 수 있게 제대로 된 말을 하라니까?

        — 말벌단수장 : 너 지금 나 놀리냐?

        — 부엉부엉부엉이 : 엉

        ====

       

        컨셉충으로서의 본분에 충실하며 차단당한 유저를 보고 낄낄대던 그때.

        갑자기 자신을 찾는 정령들의 이상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쇄골과 팔꿈치에 새겨진 정령문이 경종을 울리듯 반짝였다.

       

        폭풍을 뚫고 바깥으로 나오니 왠 하급 정령들이 때를 지어 날아들며 다급히 외치고 있었다.

        20층에서 활동하는 하급 정령들이었다.

       

        “뭐야?”

        “큰일! 큰일 났다!”

        “회랑에 멸망이 도래했어! 재앙의 피를 묻힌 이가 발을 들여 버렸다!”

        “위정자들이 탐내던 단말마다!”

        “작은 여왕! 여왕의 도움이 필요해!”

        “내가? 하! 싫은데?”

       

        정령계의 위계질서는 명확하다.

        여섯 대공과 동등한 계약을 맺고 있는 린지였기에 그 휘하의 모든 정령들에게 절대적인 우위에 서 있었다.

       

        현 정령학파의 칠현자인 그녀의 이명은 ‘작은 폭군’

        누구에게도 자비를 베풀지 않고 다른 직계들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로 성격이 나빴기에 붙은 이명이었다.

       

        “시련에 문제라도 생겼나? 쯧, 나중에 애들 보내서 확인할 테니까 돌아가.”

        “작은 여왕! 여왕의 부하들로는 부족하다!”

        “최근 여왕의 부하들은 정령보다 더욱 이상한 존재를 섬긴다!”

        “미궁에서 단독 콘서트를 연다고 한다! 은발이라고 한다!”

        “됐으니까 꺼지라고! 왜 귀찮게 찾아오고 난…….”

       

        자신을 만나기 위해 심계(深界)까지 찾아온 건 가상하다만 저들을 위해 하층으로 내려가줄 이유가 전혀 없었다.

        정령들의 부탁을 매몰차게 거절하고 다시 수련을 위해 폭풍 속으로 들어가려던 그때.

       

        위치노트를 통해 주딱으로부터 메시지가 날아왔다.

       

       

       

        *

       

        미리 미궁의 안개를 켜두지 않았으면 서로 얼굴을 보고 흥겨워질뻔 했군.

        나는 갑자기 뿅! 하고 튀어나온 부엉이를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마침 이 근방에 있었던 모양인지 그녀는 메시지를 보낸 직후 내가 말한 장소에 도착했다.

       

        머리는 부엉이 탈을 쓴 것처럼 괴기했지만 목 아래로는 하늘하늘한 로브 아래 희끗하게 맨살이 비쳐 보였다.

        팔에 새겨진 정령문을 확인한 나는 노트를 덮으며 말했다.

       

        “생각보다 빨리 왔네?”

        “흥, 당연하지. 내 영체화는 무식하게 천장에 구멍이나 뚫는 클라우디아 따위랑은 격이 다른…….”

        “부엉이라고 해야지.”

        “……부, 부엉.”

       

        다 좋은데 얘는 컨셉이 자주 깨진다니까.

        왕관에 무게가 있듯이 가면에도 무게가 있다.

       

        어쨌거나 정령사를 초빙했으니 이번에는 정령들에게 무시당하진 않을 것이다.

        20층으로 향하는 계단 앞에서 나는 부엉이에게 왜 그녀를 불렀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이번에 갤러리에 새로 추가된 기능 있지? 내가 새로 만든 마법이라 회랑에 내보려 했는데 정령들이 아무도 관심을 안 가지더라고.”

        “부……엉?”

        “기껏 참신한 걸로 가져왔는데 취향에 안 맞는 건지 아니면 게을러 빠진 건지. 그래도 네가 있으면 좀 다르겠지?”

        “게을러? 설마…….”

       

        또 컨셉이 깨진 녀석은 제멋대로 인간의 언어를 주절거리기 시작했다.

        어차피 의사소통을 ‘부엉’만으로는 할 수 없을 테니 이번만큼은 적당히 봐주기로 했다.

       

        “회랑이 제대로 된 기능을 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해서 날 불렀다고? 갤러리의 주딱이……? 아니야, 저번 대미궁 때도 분명 탑을 제대로 운영하라고 했어. 그럼 역시……!”

        “이상한 소리 하지말고 가자. 참, 못 들어가는 건 아니지?”

        “뭐? 하아, 말이라고.”

       

        내가 부엉이에게 도움을 구한 이유는 결코 파딱 하나와 친목질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녀석이 아직 수련의 층에 머물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령의 회랑은 대미궁과 달리 출입이 자유로웠으나 혹시 부엉이가 이미 시련을 통과했다면 곤란했다.

       

        그녀는 일렁이는 결계 앞에서 한숨을 푹 쉬더니 손쉽게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고 나선 뭐가 그리 자랑스러운 건지 코웃음을 치며 부리부리한 눈으로 이쪽을 노려보았다.

       

        “흥, 됐지? 주딱이야말로 어떤데?”

        “나?”

        “모, 못하겠다면 내가 열어줄 수도 있고? 애초에 탑 내에서 정령학파가 관리하는 구역은 지금껏 한 번도 마족이나 다른 쓰레기들에게 침입을 허가한 적이…….”

        “너 생각보다 되게 말이 많았구나?”

        “……!!”

       

        정령학파는 학파에 가진 자부심이 대단하기로 유명하다.

        부엉이는 그 정도가 내가 보아 온 정령사 중 가장 심했다.

        단순히 계단을 오른 것 뿐인데 소스라치게 놀라서는 마치 도구를 사용하는 유인원을 처음 본 반응이었다.

       

        썩 유쾌하진 않았지만 어쨌거나 도움을 받는 입장이니 내색은 안 하기로 했다.

       

        “여, 여기 걸린 그림들은 역대 메이버 가문의 가주들이야. 6대에 걸쳐 정령계의 대공들과 계약을 맺어왔지.”

        “그렇구만.”

        “청소 상태도 깨끗하고 시설에 하자도 없어. 보, 본래는 그림을 지날 때마다 해당 속성의 하급 정령들이 마법에 관심을 보여야 하지만 지금은 사소한 문제 때문에…… 어쨌거나 관리는 잘 되고 있다고!”

       

        뜬금없이 정령학파의 전신인 메이버 가문의 자랑을 줄줄 늘어놓는 부엉이와 함께 회랑을 한 바퀴 돌았다.

        덕분에 별로 관심도 없던 정령학파의 칠현자가 어떤 인물이며 왜 여섯이나 되는 대공들의 정령문을 한 몸에 지니고 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어때? 회랑은 아무 문제 없어! 오히려 수련의 층을 통과하는 시련으로서 아주 충실히 기능하는 중이라고!”

        “그래서 정령들은 다 어디 갔는데?”

        “뭐? 그건…… 자, 잠시만 기다려.”

       

        미술관 복도처럼 꾸며진 장소가 데이트 코스론 재격일 지 모르나 내겐 다리만 아플 뿐, 빨리 심사받고 나가고 싶었다.

        허나 정작 중요한 정령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불만을 표하자 부엉이는 황급히 갈림길로 사라지더니, 잠시 후 다시 나타났다.

        조금 전과 바뀐 점은 없었지만 팔뚝과 허벅지의 정령문이 좀 더 푸르스름하게 빛나고 있었다.

       

        “잘 들어. 정령들은 기본적으로 상하관계에 굉장히 민감해.”

        “그런데?”

        “주딱이 나를 하대하는 걸 나와 계약한 정령들은 받아들일 수 있지만, 다른 녀석들은 아니라는 뜻이야.”

       

        그녀는 침을 꿀꺽 삼키더니 하늘거리는 로브를 벗어 내 목에 둘렀다.

        그리고는 지금부터 자신이 하는 말에 무조건적으로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내가 본래 회랑에 머물던 정령들을 불러왔는데, 절대로 걔들 앞에서 아까 같은 취급은 하면 안 돼.”

        “부엉이?”

        “그, 그래! 절대로야! 알겠어?”

       

        하긴, 나도 남들 앞에서 갤러리를 하고 있다고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는데 파딱이라는 걸 들키면 어지간히 부끄럽겠지.

        나는 별 고민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부엉이는 가슴에 손을 얹고 몇 차례 심호흡 하더니, 조금 전 빠져나온 갈림길 방향으로 가볍게 손짓했다.

       

        “여왕! 작은 여왕이 우리 부탁을 들어줬다!”

        “용의 피를 묻힌 자를 굴복시켰다!”

       

        그러자 처음 보는 쬐깐한 녀석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새 표지를 제작해 봤습니다.
    호감고닉 프리나나 님입니다.
    아직 본편에는 나오지 않은 모습이지만 빠르면 다음, 늦어도 다다음 챕터에는 등장할 예정입니다.

    오늘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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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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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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