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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8

       

       산으로 오는 것 자체도 오래 걸렸다.

       

       성문을 빠져나와 한참이 지나서야 도착한 산이니까.

       

       “허억…후우…”

       

       도대체 내가 왜 이 고생을 하는지 모르겠다.

       

       점사에 나왔던 고생길이 산길을 말한 것일까.

       

       올라가도 올라가도 끝이 보이질 않았다.

       

       길이라도 잘 닦여 있으면 이렇게까지는 힘들지 않았을 것이다.

       

       이곳의 산은 야생 그 자체였다.

       

       “후우…후우….”

       

       “괜찮은가?”

       

       클로셀 영감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홱 돌렸다.

       

       “영감님, 저희 그냥 날아가면 안 되나요?”

       

       “마나가 뒤엉켜 흔적이 사라질 수도 있다네.”

       

       “후우…”

       

       자세히 살펴보면 일행들 중에 힘들어하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세레나야 원래 숲에사는 원주민이니 오히려 더 활기찼고, 마법사들 또한 그렇게 힘들어 하지는 않았다.

       

       몸에 마나를 돌리면 등산 정도야 해낼 수 있다고 했던가.

       

       이곳에 온 마법사들은 다들 경지가 높으니 그럴 만도 했다.

       

       “괴물 같은 사람들…”

       

       내가 하는 말은 기사들을 향한 말이었다.

       

       맨몸으로 올라와도 힘들어 죽겠는데 저들은 갑옷을 걸치고 있었다.

       

       심지어 다 죽어 가는 나와는 다르게 아주 쌩쌩했다.

       

       “자네, 그 강신이라는 걸 하면 편하게 갈 수 있는 것 아닌가?”

       

       “절대 안 돼요.”

       

       등산을 하는데 접신?

       

       무슨 등산을 하는데 신의 도움을 받겠는가.

       

       당장 벌전이 떨어져도 할 말이 없는 행동이다.

       

       그렇다고 영기를 몸에 두를 수도 없다.

       

       내 영기는 마나가 풍만한 저들에 비하면 쥐꼬리만 했으니까.

       

       길어봐야 세네시간이면 다시 이렇게 돌아온다는 소리다.

       

       그럴 바에는 가끔만 쓰며 아끼는 게 나았다.

       

       “나도 알루어드랑 같이 남을 걸…”

       

       교단에서 파견된 성기사들을 기다린다는 명목으로 알루어드는 산 밑에 남았다.

       

       기사 몇 명과 마법사들도 같이.

       

       장승도 거기에 남아 있긴 했다.

       

       “자네는 꼭 같이 와야 했네. 그만 받아들이시게나.”

       

       “…발은 또 왜 이렇게 안 떨어져.”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 정말이다.

       

       진흙을 밟은 듯 발이 끈적했다.

       

       솔직히 말하면 지독하게 가기가 싫었다.

       

       산에 오르고 부터 느낌들이 계속 이상했다.

       

       “후우…이게 무슨 고생이야…”

       

       올라오면서 살펴봐도 주변에는 영혼이 없었다.

       

       이 정도로 기운이 풍부한 명산에 영혼이 없다는 게 아무래도 이상했다.

       

       이 근처만 통째로 영혼이 사라진 느낌.

       

       “하다못해 산신령이라도 없나…?”

       

       뭐라도 있어야 물어보면서 갈 것 아닌가.

       

       나는 팔을 들어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냈다.

       

       소매가 푹 젖을 정도로 땀이 묻어나왔다.

       

       산을 오르는 동안 나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이 이것이다.

       

       “나만 더워요?”

       

       산에 들어서자마자 공기가 후덥지근 해졌다.

       

       나무 그늘 밑에 있어도 똑같았다.

       

       중요한 건 뜨거운 날씨가 아니라는 것.

       

       나 빼고는 모두 뜨거움을 느끼지 못 하는 것 같았다.

       

       “파라몬 영감님, 혹시 저 위에서 뭐 안느껴지시나요?”

       

       “허허…내가 자네보다 잘 느낄 수 있는 건 살기 밖에 없을 것이네.”

       

       “….클로셀 영감님은요?”

       

       “미약한 마나의 흔적들이 저곳으로 이어지고 있기는 하네.”

       

       “하아…저기는 또 왜 저렇게 어두워…”

       

       쾌청한 하늘이다.

       

       심지어 구름조차 끼지 않아 멀리까지 잘도 보이는 날씨였다.

       

       그런데 내 눈에는 어두침침했다.

       

       덥지도 않은데 더웠고, 밝았지만 어두웠다.

       

       “아까부터 이상한 소리만 하는군.”

       

       옆에서 걷던 기사 한 명이 어리둥절하게 나를 바라봤다.

       

       그래도 이 양반은 나에게 꽤 호의적인 사람이었다.

       

       다른 기사들은 신분이 어쩌니 하면서 나를 불편해 하는 듯했다.

       

       영감들이 나를 아끼니 대놓고 티를 내지는 못하고 있지만.

       

       “…그런 게 있어요.”

       

       “영혼을 본다고 들었네. 아…! 인사가 늦었군. 펠리시아 하버라고 하네. 수도에서 근무 중이네.”

       

       “크리스예요. 성은 없어요. 평민이라…”

       

       “괘의치 말게나 나도 따지자면 평민 출신이니…”

       

       평민 출신의 기사라···?

       

       평민들도 기사가 될 수 있기는 하다.

       

       그 방법이 쉽지는 않지만.

       

       내 얼굴을 본 하버가 고개를 저었다.

       

       “정확하게는 조부님께서 평민 출신이셨네. 대륙전쟁 때 공을 세워 기사로 서임을 받으셨지.”

       

       “아…”

       

       “영혼을 본다고 들었네만, 혹 내 근처에도 영혼이 있는가?”

       

       “아니요. 없어요.”

       

       붙어 있는 영혼은 없었다.

       

       대신에 업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아무래도 기사이다 보니 사람을 죽이고 쌓은 업보이지 싶었다.

       

       “대신에 언젠가 크게 고생은 하겠네요.”

       

       “으음?”

       

       “원래 죄를 지으면 다 돌아오는 법이거든요. 되도록 사람을 죽이지는 마세요.”

       

       내 말에 앞에서 걷던 기사들이 피식피식 웃음을 흘렸다.

       

       노골적인 비웃음이었다.

       

       기사에게 사람을 죽이지 말라니.

       

       검을 놓고 살라는 말이 아닌가.

       

       이곳에서는 이것마저 직업이니 참 애매했다.

       

       “아 참, 하버…?”

       

       “경이라고 부르면 돼네.”

       

       “어쨌든 경께서는 급하게 하면 일이 풀리다가도 엉켜 버리니까 항상 천천히 해야 해요.”

       

       “흐음…점이라고 하는 것인가 보군.”

       

       “말년에 다리가 불편해 질 수도 있으니까 조심하시구요.”

       

       “아직 믿지는 못하겠지만 고맙네.”

       

       하버경이 갑옷사이로 손을 넣어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복채라는 것을 줘야 한다지?”

       

       “아, 됐어요.”

       

       복채를 거절하는 내 말이 의외였던 것일까.

       

       클로셀 영감이 의아한 듯 나를 쳐다보았다.

       

       “복채를 안내면 재수가 없다고 하지 않았나?”

       

       “하버경의 복채는 이미 다른 사람이 냈어요. 이건 그때 본 점괘를 말해드린 거고…”

       

       “내 복채를 말인가? 누가…?”

       

       “비밀이에요.”

       

       아마 파라몬 영감님의 성격상 굉장히 부끄러워할게 분명하다.

       

       지금도 앞에서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게 보였으니까.

       

       그때, 선두에서 걷던 마법사가 멈춰 섰다.

       

       “흔적이 끊어졌습니다.”

       

       “여기까지 와서 흔적이 끊기다니…”

       

       멈춰 선 일행들이 하나둘씩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마법사들은 어서 뭐라도 해 보라는 눈빛을.

       

       기사들은 어디 한번 해 보라는 눈빛을 보내 왔다.

       

       “흠흠…”

       

       기사들의 눈빛이 아주 마음에 들지 않았다.

       

       꼭 사기꾼을 보는 눈빛이었으니 말이다.

       

       무속인으로 살면 어쩔 수 없이 받아야 하는 시선이긴 했다.

       

       “어디 보자…”

       

       방울을 손에 쥐고 살포시 흔들었다.

       

       딸랑 –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산의 기운이었다.

       

       맑고 깨끗한.

       

       아주 명산이었다.

       

       딸랑 –

       

       그리고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장면.

       

       그 속에는 알루어드가 보였다.

       

       “왜 이놈이 먼저 보이지…”

       

       알루어드는 성기사와 사제들을 만난 것 같았다.

       

       느껴지는 분위기가 상황이 좋지는 않은 것 같다.

       

       딸랑 –

       

       방울을 한 번 더 흔들자 주위의 공기가 훅 뜨거워졌다.

       

       금세 이마에 땀이 맺히며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주위에 보이는 하늘도 한층 더 어두컴컴했다.

       

       “이거…많이 큰데…왜 이런 공수가…”

       

       방울을 흔드는 손이 떨릴 정도로 압박감이 강해지고 있었다.

       

       “…크리스?”

       

       세레나가 무언가를 느낀 듯 나를 불렀다.

       

       아마 공수의 크기가 크다 보니 신가물인 세레나 역시 느낌이 있었던 모양이다.

       

       딸랑 –

       

       순간, 정신이 후욱 빨려가며 어디론가 뻗어 갔다.

       

       산 중턱의 빛이 나는 곳을 지나 장면들이 더 올라가기 시작했다.

       

       산의 정상이었다.

       

       온통 어두컴컴했고, 공포가 가득했다.

       

       “…이미 늦었네.”

       

       “늦었다고 했는가?”

       

       오래전부터 시작된 일인 듯했다.

       

       내가 이곳에 오기 한참 전부터 진행된 일일지도 모른다.

       

       마무리 단계였다.

       

       이미 내 손을 훌쩍 벗어나 버린.

       

       이걸 왜 이제서야 보여주는 것일까.

       

       너무나 늦은 점사였다.

       

       무엇보다 직접적인 강신이 없었다.

       

       내 입에서 공수가 터져 나오지 않고 있었으니까.

       

       “얼른 말을 해 보시게.”

       

       “좀…조용히…”

       

       집중을 해야 한다.

       

       잡힐 듯 잡히지가 않았다.

       

       딸랑 –

       

       두 가지의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정상에서 내려오는 망자들.

       

       헌데, 그들의 모습이 이상했다.

       

       앞으로 뛰지 않고 뒤로 달리고 있었다.

       

       그중의 몇몇은 물구나무를 서서 달리기도 했다.

       

       그리고 산의 정상에는 검은 기운을 가진 사람들이 서 있었다.

       

       네크로맨서였다.

       

       그 위치가 너무나 명확했다.

       

       같이 올라온 사람들과 함께 간다면 무조건 승리할 것이라는 느낌.

       

       가려면 지금 당장 가야 한다.

       

       딸랑 –

       

       그들을 잡으러 간 우리의 모습이 보였다.

       

       기사와 마법사들이 죽기는 했지만 분명히 네크로맨서의 머리를 밟고 올라 있었다.

       

       하지만 산 밑으로 죽음이 가득했다.

       

       사라진 영지 너머에 또 다른 영지.

       

       사람들이 하나둘씩 거꾸로 걷기 시작했다.

       

       네크로맨서에게로 향했을 때 벌어질 일이었다.

       

       “…..”

       

       아직도 입에서는 공수가 터져 나오지 않았다.

       

       다만, 느껴지는 것은 나를 바라보는 신령님의 시선.

       

       할아버지 같기도, 할머니 같기도 한 묘한 모습이었다.

       

       항상 도움을 주던 손길이 나에게서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숙제네…”

       

       시선의 느낌이 묘했다.

       

       나에게 내리는 가르침이었으며, 또한 질문이기도 했다.

       

       마치, ‘어떤것을 고를테냐’라고 묻는 듯했다.

       

       “이것 때문에 산으로 왔네.”

       

       큰 갈림길이었고, 나에게는 시험이다.

       

       앞으로의 무업에 큰 영향을 줄.

       

       애동제자가 아닌 박수무당으로서의 길이었다.

       

       “벌써 시기가 다가왔다고…?”

       

       무업을 쌓아가다 보면 반드시 부딪치게 되는 순간이 있다.

       

       애동을 벗어나 어엿한 신제자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는 순간.

       

       사람들은 말한다.

       

       ‘신이 알아서 다 해결해 주는 것 아닌가?’

       

       애동제자는 신의 가르침을 받고 배운다.

       

       한창 배우는 시기이며, 신령님들이 가장 신경을 써 주는 때 이다.

       

       동자신을 받은 무속인들은 그 말투마저 변할 정도로 깊은 관심이기도 하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고 박수가 된 제자는 가르침을 받으며 길을 나아간다.

       

       스스로 답을 찾으며 무업을 쌓아가야 하는 시기라는 것이다.

       

       해결은 가르침을 받은 신 제자의 몫이다.

       

       신령님의 도움을 받을 때도 있지만···.

       

       딸랑 –

       

       마지막으로 산 중턱에서 빛이나던 곳이 보이며 장면들이 뚝 끊어졌다.

       

       “….”

       

       “크리스, 괜찮은가…?”

       

       “세레나, 자네는 왜 그러는가..?”

       

       세레나가 겁에 질린 듯이 몸을 떨고 있었다.

       

       신령님의 시선이 왔다 갔으니 저럴 만 했다.

       

       “세레나. 괜찮아.”

       

       나는 부드럽게 등을 쓰다듬어 주며 세레나를 진정시켰다.

       

       “…”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닿아 있었다.

       

       “산 정상에 네크로맨서들이 있어요.”

       

       영감들이 나의 설명을 기다리며 입을 닫고 있었다.

       

       “이미, 영지민들은 다 죽은 것 같네요. 이대로 올라가면 저들을 잡을 수 있을거에요.”

       

       움찔.

       

       당장에라도 몸을 움직이려는 사람들.

       

       하지만.

       

       “잡으러 가면 산 근처에 다른 영지민들이 모두 죽을 거에요. 바로 가면 살릴 수 있을지도 몰라요.”

       

       “….”

       

       “대신, 네크로맨서는 못 잡아요. 기회가 멀어지는 거죠.”

       

       이것이 신령님이 던진 물음이었다.

       

       죄인을 잡을 것인가.

       

       사람을 구할 것인가.

       

       다행히도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내 생각과 같은 선택을 한 것 같았다.

       

       몇몇의 기사들은 빼고 말이다.

       

       “쯧쯧…공명심에 눈이 멀어서는…”

       

       움찔.

       

       “당장 내려가세요. 성기사들이 도착 해 있어요.”

       

       파라몬 영감이 내 말에서 이상함을 눈치챈 듯 물어왔다.

       

       “우리만 가라는 것처럼 들리는군.”

       

       정확했다.

       

       나는 그 전에 먼저 해야 할 것이 있었으니까.

       

       “제 일은… 산에 있어요.”

       

       빛이 나던 곳으로 가야 한다.

       

       “명당이 있거든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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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판타지 세계의 무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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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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