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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8

       “가보면 알아”

       

       내 말에 힌드라스타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어디를 가는 거냐고!”

       

       “가보면 안다니까. 이상한 곳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나, 나를 황성에 팔아 넘기려고….”

       

       “너 팔아서 금화 한 푼이나 받겠냐? 가만히 있어.”

       

       “속은 내가 바보지….”

       

       힌드라스타가 또 닭똥 같은 눈물을 떨구기 시작했다.

       

       저거 눈물이 엄청나게 많구나. 걸핏하면 우네.

       

       시내 외곽을 도는 도로를 지나 또 한참을 가자 저 멀리까지 지평선이 보이는 드넓은 경작지가 펼쳐졌다.

       

       그 유명한 칼바사르 평원이다.

       

       수도 칼바사르 인근에서부터 시작해 어지간한 왕국 하나가 통째로 들어갈 정도 크기로 이어지는 대평원.

       

       여기서 나는 작물로 제국 신민 전체를 먹여 살릴 수 있으며 제국이 빠르게 대륙을 재패한 중요요인 중 하나로 꼽히는 곳이다.

       

       경작지 군데군데에는 상당한 깊이로 파인 구덩이가 있는데 그건 모두 4년전쟁 때의 치열한 격전의 흔적.

       

       당시 마왕군은 제국 수도를 점령할 목적으로 이 평원에서 대규모 기동전을 펼쳤지만 결국 실패했다.

       

       은엄폐가 불가능한 지형이라 대륙 전체에서 긁어 모은 마법사들의 포화를 뚫지 못한 것.

       

       당시에 이미 나와 라이너스가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녀 전력이 많이 약해진 데다 칼바사르 대회전에서 패하며 크게 기세가 꺾인 마왕군은 결국 수세로 전환하게 되었고 이후 마왕사살특임대가 창설되면서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그런데 여기는 모두 밭이며 과수원뿐인데 라이너스가 이런 곳에 살고 있다고?

       

       주머니에서 편지를 꺼내 다시 한번 주소를 확인하니 확실히 여기 인근이 맞기는 한데….

       

       도심지도 아니고 탁 틔여 있으니 일단 계속 다가 보면 보이겠지.

       

       그래도 여기 참 좋다.

       

       하늘을 창창하고 시원한 봄바람이 불고 시야를 막는 것도 없고 농부들도 활기차 보이고.

       

       “왜 이런 인적 없는 곳으로 데리고 가는 거야…? 혹시 황성에서 나를 없애라는 밀명이라도 받은 건가? 응? 그런 거야? 그런 거지?”

       

       여전히 힌드라스타는 겁에 질려 횡설수설하고 있고.

       

       만약 여기가 수도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더라면 10년 전의 나는 브룬스웰이 아니라 여기에 정착했을지도.

       

       하지만 그러면 올리시아가 발광을 했겠지.

       

       브룬스웰은 그나마 명색이 항구도시라 최소한의 도시역할은 했는데 여기는 진짜 아무 것도 없으니까.

       

       그렇게 계속 가다 힌드라스타의 혼잣말조차 끊길 무렵.

       

       “저기인 것 같은데?”

       

       손을 들어 앞을 가리키자 힌드라스타가 고개를 홱 치켜 들었다.

       

       저앞에 성? 궁전? 아니, 대저택이 하나 떡하니 서있었다.

       

       멀리서 바라본 저택은 마치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았다.

       

       저택은 섬세하게 다듬어진 돌로 지어졌으며 따뜻한 아이보리 색의 외벽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다.

       

       중앙에 위치한 본관은 고전적인 디자인으로 대형 아치형 창문과 우아한 기둥, 그리고 붉은 기와로 덮인 지붕이 여러 개의 굴뚝과 함께 균형 잡힌 실루엣을 이루고 있다.

       

       저택 앞쪽으로는 잘 정돈된 정원이 펼쳐져 있으며 멀리서도 그 정교한 조경과 다양한 꽃들의 색감이 눈에 들어온다.

       

       그 사이로 돌로 포장된 길이 저택의 현관문까지 곧게 뻗어 있다.

       

       본관 양옆으로는 부속 건물들이 이어져 있으며 이들도 본관과 조화를 이루는 양식으로 지어져 저택 전체가 대칭을 이루며 균형 잡힌 모습이 인상적이다.

       

       저 멀리까지 이어진 칼바사르 평원의 배경 때문인지 저택의 규모와 아름다움은 더욱 두드러졌다.

       

       “너, 너 말이야, 너…!”

       

       그것을 본 힌드라스타가 식은땀을 흘리며 또 이상한 소리를 시작했다.

       

       “귀족에게 나를 바치려는 거지? 예쁘고 귀여운 여자아이를 주고 뭔가 받기로 한 거야? 그게 아니라면 폴리모프한 드래곤이 취향인 변태놈이…. 악!”

       

       딱밤을 때리자 힌드라스타가 하던 말을 멈추고 머리를 감싸 쥐었다.

       

       저택에 가까워지자 저쪽에서 누군가 말을 타고 이쪽으로 오는 게 보였다.

       

       “디안 님이시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를 따라 오십시오.”

       

       역시 라이너스의 집이었구나.

       

       라이너스 이 자식…. 엄청나게 잘살고 있잖아?

       

       우리는 사용인의 뒤를 따라 저택의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저택의 입구는 그 자체로도 웅장하고 정교한 조각품 같았다.

       

       커다란 철제 대문은 세밀한 문양과 장식으로 꾸며져 있었으며 그 위에는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주먹 쥔 굳건한 팔뚝이 서로 교차하는 직관적인 모양이었다.

       

       “여기서부터는 걸어서 가시겠습니다. 마차와 짐은 저희에게 맡기십시오.”

       

       마차에서 내리자 대문이 스르륵 열렸고 그 사이로 드러나는 풍경에 힌드라스타가 헛숨을 들이켰다.

       

       아름다운 정원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잘 정돈된 잔디밭은 푸른빛을 띠며 넓게 펼쳐져 있었고 잔디밭 사이로 돌로 포장된 산책로가 여러 갈래로 나 있었다.

       

       산책로를 따라 형형색색의 꽃들이 만발해 있었으며 꽃들의 향기가 바람에 실려 코끝을 간지럽혔다.

       

       정원의 중심에는 대형 분수가 자리하고 있었다.

       

       분수에서는 맑은 물줄기가 높이 솟아올라 햇빛을 받아 반짝였고 물이 떨어지며 만드는 청량한 소리가 정원 전체에 울려 퍼졌다.

       

       분수 주변에는 벤치가 놓여 있어 앉아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정원 곳곳에는 나무들이 심어져 있었는데 각 나무마다 가지가 넓게 퍼져 있어 그늘을 제공했다.

       

       나무 사이로는 다양한 조각상들이 세워져 있었고 각각의 조각상은 정교한 솜씨로 만들어져 있어 보는 이의 눈을 사로잡았다.

       

       정원 한쪽에는 작고 아담한 연못이 있었고 연못 가장자리에는 수련과 연꽃이 피어 있었다.

       

       연못 속을 들여다보니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었고 그 위로는 잠자리가 날아다니며 연못의 고요한 분위기를 더했다.

       

       그 광경에 넋을 놓은 힌드라스타가 중얼거렸다.

       

       “여기는 도대체 누가 사는 곳이야…?”

       

       “디안!”

       

       그때 저편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소리쳐 불렀다.

       

       지팡이를 짚은 여자가 저택 현관에 서서 나를 보고 있었다.

       

       칙칙한 밤색 머리칼에 주근깨 투성이의 순둥한 얼굴. 그리고 치마 아래로 보이는 왼발의족.

       

       내 옛 동료인 사냥꾼 셀린느다.

       

       

       

       

       

       

       

       

       “디안! 너 디안 맞지?!”

       

       “셀린느!”

       

       “세상에, 디안! 정말 너구나!”

       

       셀린느가 지팡이로 절뚝절뚝 위태롭게 정원을 가로질러 내게로 다가왔다.

       

       “거기 있어. 내가 갈게.”

       

       셀린느가 무리하지 않도록 그쪽으로 달려가자 셀린느가 한손으로 내 손을 덥썩 잡았다.

       

       “디안! 정말 보고 싶었어! 어쩜 너는 변한 게 하나도 없니!”

       

       “10년 동안 놀기만 해서 그래. 그런데 너는 이렇게 나와도 괜찮은 거야?”

       

       “으응, 괜찮아. 이제 다 회복됐어. 하아, 디안. 다시 보니까 정말 너무너무 좋다. 그런데….”

       

       셀린느가 내 뒤에 멀뚱멀뚱 서있는 힌드라스타를 쳐다봤다.

       

       “저분은 누구셔?”

       

       “아, 우리 아카데미 특기생. 주말에 혼자 놔두기 그래서 데리고 왔어. 이름은 소피에야.”

       

       “환영해요, 소피에 양.”

       

       “안녕하세요.”

       

       터무니없이 으리으리한 저택의 위용에 압도당했는지 힌드라스타가 다소 얌전한 태도로 인사를 받았다.

       

       “분홍머리에 분홍 눈동자라니 참 희귀하고 예쁜 색이네요. 일단 두 사람 들어와요. 여기 있을 게 아니라 안으로 들어가요.”

       

       셀린느는 지팡이를 짚고 씩씩하게 앞장서서 저택으로 향했다.

       

       “누구야…?”

       

       내 옆을 걸으며 힌드라스타가 낮게 물었다.

       

       “내 친구.”

       

       “뭔데 다리가 하나 없냐?”

       

       경쾌하게 나풀대는 셀린느의 치맛단 아래 의족으로 시선을 돌렸다.

       

       마왕성에서의 전투에서 셀린느는 왼쪽 무릎 아래를 잃었다.

       

       미래의 지식을 알고 있는 나로서도 도저히 그것을 막을 수 없었다.

       

       애초에 원작에서는 그런 세세한 부분까지는 묘사하지 않았으니까.

       

       그나마 빠른 응급처치로 죽음을 피한 게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그런데 아까 10년 전에 헤어진 것처럼 말하던데… 10년 전이면 딱 전쟁 끝났을 때 아니야…?”

       

       “맞아.”

       

       “전쟁 때 네놈의 친구면….”

       

       뭔가 더 말하려던 힌드라스타가 입을 다물고 멈춰섰다.

       

       “디안. 왔구나.”

       

       저택 현관에 라이너스가 웃으며 서있었다. 품에는 포대기에 싼 아기를 안은 채였다.

       

       “먼 길 오느라 수고 많았다. 어서 들어와.”

       

       “이런 좋은 곳에서 살고 있는 줄은 몰랐네.”

       

       “황성에서 많이 지원을 해줘서.”

       

       “그런데 왜 도시에 안 살고 밭 한 가운데에 사냐?”

       

       “이쪽 일대가 내 영지다.”

       

       “뭐라고…?”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비옥하기로 대륙 최고인 칼바사르 평원. 거기서도 수도 바로 옆에 위치한 금싸라기 노른자 땅이 라이너스의 영지라고?

       

       “원래 약속한 영지는 다른 곳 아니었어?”

       

       “거기도 맞아. 여기는 몇 년 전에 2황녀님께서 그 동안의 노고를 치하한다며 자신의 직할령을 일부 개편해서 하사하신 거다.”

       

       “2황녀님이? 그분 정말 시원시원하시네.”

       

       그래. 이게 맞지.

       

       마왕을 죽인 용사가 추방을 당하느니 배신을 당하느니 하는 건 말도 안 되잖아.

       

       “옆에는 누구지? 저번의 그 하녀는 아닌 듯한데.”

       

       “으으윽….”

       

       이상한 소리에 돌아보니 힌드라스타가 뻣뻣하게 굳은 채로 경련하듯 부들거리고 있었다.

       

       “괜찮으세요? 안색이 안 좋으신데요?”

       

       셀린느가 물었지만 힌드라스타는 대답조차 하지 못하고 당장이라도 주저앉을 기세.

       

       쪼르르륵-

       

       “어머나!”

       

       아래를 내려다 보니 아, 이런. 힌드라스타가 오줌을 지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라이너스가 모든 것을 이해했다는 듯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이군, 힌드라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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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A Quiet Life

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A Quiet Life

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Quietly 은퇴한 조력캐는 조용히 살고 싶다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stead of causing chaos with my knowledge of the original work, I assisted the protagonist.

I successfully completed the story and now planned to retire and live peacefully.

However, it seems the protagonist still needs my help.

An academy professor? That’s nothing much.

But why is the state of the academy so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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