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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8

        

       진성을 모시러 온 것은 리무진.

       운전기사로 보이는 늙은 일본인은 잘 빼입은 양복과 하얀 장갑을 손에 낀 채 뒷좌석의 문을 열어주었다.

         

       “짐은 제가 실어드리겠습니다. 이리 주시지요.”

         

       운전기사는 정중하게 진성이 손에 들고 있는 가방을 받으려고 했지만, 진성은 고개를 절레절레 지으면서 친절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이건 구락부에 계신 분들께 드릴 중요한 선물인지라 제가 손에 들고 있는 것이 안심됩니다.”

         

       정중하게 운전기사의 호의를 거절한 진성은 가방을 든 채 리무진에 올랐다.

       리무진 안에는 영화에서나 보았을 법한 화려한 내부의 모습이 보였다. 특히 진성을 대접하기 위해서인지 냉장고에는 비싼 와인과 치즈가 있었다.

         

       진성은 안에 들어있는 치즈들을 확인해보았다.

         

       ‘보자. 이건 아니고, 이것도 아니고. 이것도 아니고…. 쯧. 쓸데없이 품질이 좋은 것들로만 모아놓았구나.’

         

       안타깝게도 안에 들어있는 치즈는 전부 고급품.

       진성이 안에 벌레를 심어서 번식시키기에는 쓸데없이 품질이 좋은 것들뿐이었다.

         

       게다가 와인 역시 마찬가지.

       숙성이 잘 되어서 슬쩍 냄새만 맡았는데도 그 향에 취해버릴 것 같은 고급품이었다.

         

       ‘보자. 이건 좋구나. 오직 포도만을 이용해 정성으로 빚어낸 것들이로다.’

         

       진성은 적당한 와인 하나를 골라 따고는 손바닥으로 입구를 막고 마구 흔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을 한참이나 반복하곤 보이지 않는 칼로 자신의 손바닥을 긋는 시늉을 했다.

       보이지 않은 칼을 쥐고 내리긋듯 허공을 긋는 것을 한 번, 손톱으로 손바닥을 천천히 긋는 것을 한 번, 그리고 날카로운 것을 쥔 것처럼 손바닥을 찌르는 행위를 한 번.

       그는 그렇게 세 번 흉내를 내곤 천천히 주언을 외웠다.

         

       “Sanguis Dómini nostri Jesu Christi custódiat ánimam meam in vitam ætérnam.”

         

       주언을 외운 진성은 품속에서 미리 뽑아두었던 신력이 담긴 가시 하나를 꺼내서 와인병의 병목을 휘감았다. 그리곤 손톱으로 와인병을 톡톡 몇 번 튕기더니 가지고 온 가방의 문을 열고는 와인을 거꾸로 뒤집어 모조리 쏟아내었다.

         

       콸콸 쏟아지는 와인은 가방 안에 있는 인형을 흠뻑 적셔서 붉게 만들었고, 20개의 인형 전부가 붉게 물든 것을 보고 나서야 진성은 다시 입을 열었다.

         

       “Corpus Dómini nostri Jesu Christi custódiat ánimam tuam in vitam æternam.”

         

       그러자 조금 전까지 와인이었던 것의 색이 변하기 시작했다.

       포도주였던 것이 점차 생기를 품듯 색이 변했고, 알코올 특유의 냄새 대신에 비릿하고 코를 찌르는 냄새로 서서히 변해갔다.

       진성은 가방을 다시 닫으며 중얼거렸다.

         

       “Amen.”

         

       그렇게 와인으로 무언가 주술을 행한 진성은 그대로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비싼 차라서 그런지 끝내주게 편안한 것이, 가만히 눈을 감고 있으면 그대로 잠이 들 것 같았다.

       하지만 진성은 잠을 자는 대신 가방 안에서 들리는 얼음을 핥는 듯한 소리를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얼마나 몸을 기댄 채 있었을까.

       마침내 리무진이 목적지에 도달한 듯 세워지고, 운전기사가 내려 정중한 태도로 문을 열어주었다.

         

       진성이 도착한 곳은 시내에 있는 한 호텔.

       일본도의 검집을 떠올리게 하는 살짝 휘어진 형태의 호텔은 외벽은 검은 광택이 나고 있었다.

         

       진성은 그 검은 광택을 한 번 흘낏 보고는 호텔 안으로 걸어갔다.

         

       호텔 내부에서는 미리 이야기를 듣기라도 한 듯 직원이 정중하게 그를 수행했고, 운전기사에게 미리 소식이라도 들은 것인지 짐을 들어주겠다는 소리 없이 친절하게 그를 안내해주었다.

         

       하지만 친절한 직원의 접객에도 진성은 편안함 대신에 살짝 짜증을 느꼈다.

         

       그 이유인즉, 이 호텔 역시 주술사를 찾으려는 조치가 되어있었기 때문이었다.

         

       진성이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공항에서처럼 그림인 척 곳곳에 음양술로 만들어낸 부적이 곳곳에 걸려있었고, 엘리베이터 앞에는 체내 에너지 센서가 숨겨져 있었다.

       게다가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면 실내장식인 척 음양술을 깔아놓은 것이 보였다. 심지어는 엘리베이터 안에 붙어있는 안내문에 적힌 히라가나(ひらがな)에도 음양술이 깔려있었으니, 정말 지독하다는 말 말고는 표현할 말이 없을 정도였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로구나.’

         

       주술사를 찾기 위한 일본인들의 집착은 상상 이상이었다.

       관광지뿐만 아니라 호텔에까지, 그것도 엘리베이터에 함정처럼 깔아놓다니.

         

       게다가 그뿐만이 아니다.

       진성을 수행하는 직원 역시 무언가 감지 장치라도 가졌는지 살짝 당황한 기색으로 진성을 훔쳐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게보(Gebo)의 룬을 이용해 입국했던 때와는 다르게 아무것도 걸려있지 않은 몸이기에 무언가 감지된 것 같았다.

         

       하지만 직원은 곧바로 표정을 고치고는 진성의 시야가 닿지 않을 곳으로 이동해 스마트폰으로 문자를 보냈다.

         

       진성이 눈을 강화해 훔쳐보니, 그 내용은 『 출동 취소. 신원 확실. 차기 신관. 초대. 손님. 』 이었다.

         

       ‘나의 판단은 옳았도다.’

         

       프리패스.

       진성은 이제 일본을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는 프리패스를 갖게 되었다.

         

       “오, 차기 신관님! 오셨습니까!”

         

       권력자의 비호, 차기 신관의 신분이라는 프리패스를 말이다!

         

       한국처럼 주민등록증을 쓰지 않아 운전면허증을 그 대용으로 쓰는 것이 일본이라는 나라다.

       그런 나라이니만큼 ‘차기 신관’이라는 가볍지 않은 신분과 권력자의 초대를 받을 정도의 위치는 진성이 외부에서 온 주술사가 아닌 일본 내부의 존재라는 것을 보증해줄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되었다. 그리고 저 두 근거가 갖춰진 이상, 누가 의심을 한다고 해도 이젠 의미가 없다.

       저 두 가지는 새끼를 치듯 다른 근거를 부르고, 종국에는 확실한 증거가 있어도 그것을 뭉개버릴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갖출 수 있을 테니까.

       아니, 애초에 일본인들 대부분이 권력과 권위에 약한 만큼 아예 증거를 찾거나 그걸로 풍파를 일으킬 생각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권력은 강할수록 좋고, 권위는 높을수록 좋은 법.

         

       진성은 자신을 반갑게 맞이해주는 ‘축복’을 받았던 정치인을 향해 환하게 웃어주었다. 그리고 의례적인 말을 몇 번 주고받고는 정치인의 안내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아—앙!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들린 것은 교성.

       비음이 잔뜩 섞인 여자의 비음은 방음처리가 된 문을 지나자마자 울려 퍼졌고, 진성이 교성이 들린 쪽으로 시선을 옮기자 진성에게서 일찍이 ‘축복’을 받았던 정치인 중 한 명이 여자의 몸에 올라타서 정신없이 행위에 몰두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흠. 저 여자는 TV에서 본 것 같은데?’

         

       진성이 여자를 가만히 쳐다보자 진성을 안내해주던 정치인이 음흉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알아보시는군요. 요새 광고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유명 연예인입니다. 광고주를 소개해준다고 꼬셔서 구락부에 데리고 왔지요.”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호텔의 두 층을 써서 만든 최상위층 곳곳에서 교성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저 멀리 방에서는 여자 둘의 교성과 남자 셋의 헐떡이는 소리가, 어떤 방에서는 여자 셋의 교성과 남자 하나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역시 이런 클럽이었군.’

         

       진성이 초대받은 것은 난교 클럽.

       여자에 미쳐있는 권력자들이 가입할 수 있는 클럽이었다.

         

       ‘잘되었다. 내가 오늘 너희에게 잊을 수 없는 밤을 선사해주마.’

         

       진성은 곳곳에서 들리는 소리를 배경음악이라도 되는 듯 자연스럽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정치인의 안내를 받아 2층으로 올라갔다. 2층 역시 곳곳에서 소리가 울려 퍼지고는 있었으나 최소한의 방음 시설이 갖춰져 있기라도 한 듯 아래층보다는 확연하게 교성 소리가 작았다.

         

       그리고 개중에는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는 방이 있었는데, 그 문은 다른 방과는 다르게 나전칠기로 화려하게 장식이 되어있었다.

         

       “저기가 원로께서 계시는 방입니다. 원로께서 차기 신관님께 큰 관심을 보이니, 실례만 범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는 탄탄대로이실 겁니다.”

         

       정치인은 그렇게 말하더니 작게 진성에게 충고했다.

         

       “원로님은 이런 곳에서 빼는 사람을 싫어하십니다. 당당한 야마토 남자는 여자를 숨 쉬듯 안을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이십니다. 여자에 쩔쩔매거나 여자를 다루는 것이 서툴러 보이는 사람에게는 불호령도 내릴 정도죠. 차기 신관님께서는 ‘축복’을 할 수 있으시니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긴 한데…. 그래도 호방하고 충성심 강한 사나이의 모습을 보이시는 것이 첫인상에 도움이 될 겁니다.”

         

       진심으로 자신에게 충고해주는 정치인의 모습에 진성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걱정할 것 없느니라. 분명 나를 마음에 들어 할 것이니까. 그리고 그런 나를 데리고 온 자네도 중히 쓰이게 될 것이야.”

         

       진성의 장담에 정치인은 믿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을 두드리고는 진성이 안에 왔음을 알렸다. 그러자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문이 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열렸다.

         

       방 안에는 반라의 여자 네 명에게 둘러싸인 채 시중을 받는 남성이 보였다.

       남성은 침대에 누운 채 나른한 눈빛으로 진성과 정치인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홀딱 벗고 있는 그의 몸은 탄탄한 근육으로 뒤덮여 있었다.

         

       진성은 그 근육을 보며 생각했다.

         

       ‘쯧. 시술이 아니라 무인 쪽이었나.’

         

       하지만 실망은 이르다.

       애초에 근육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다 무인이라고는 할 수 없지 않은가.

       중년이 몸 관리를 하겠다고 열심히 운동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게다가 무인이라고 해도 시술을 받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는 법.

         

       확인해볼 가치는 충분히 있었다.

         

       “그래, 네가 그 소문이 자자한 차기 신관이냐? 어디, 나에게도 그 축복을 걸어봐라.”

         

       남성은 나른한 눈빛으로 진성을 향해 말했다.

       진성은 나른해 보이는 남성의 시선에 방긋 웃으며 답해주었다.

         

       “알겠습니다.”

         

       진성은 남성의 말이 기껍다는 듯, 웃었다.

         

       “축복은 물론이고 다른 것도 걸어드리죠. 절대로 실망하진 않을 겁니다.”

       “그래? 장담할 수 있나?”

       “물론입니다.”

         

       진성은 웃었다.

         

       “장담할 수 있습니다. 반드시 만족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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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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