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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80

   루카에 대해 이야기하는 유덴의 표정은 상당히 밝았다.

   

   “변태 교수랑 친해? 뇌가 텅텅 빈 너랑 변태교수는 좀 안 어울리는 것 같은데.”

   “반대입니다. 이런 바보라서 그 녀석과 잘 어울릴 수 있었죠.”

   

   과거 루카와 함께 했던 날의 기억이 상당히 즐거웠던 듯 유덴은 즉각적으로 예전의 일을 입 밖으로 꺼냈다. 아직 그녀가 검성이 되기 전 모험가로 살아갈 때의 이야기를 말이다.

   

   “예전부터 다른 이들을 가르치는 걸 잘 하던 녀석이었습니다. 저도 그 녀석의 도움을 많이 받았죠.”

   

   유덴은 루카에게 많은 조언을 받았다고 말을 했다. 그가 곁에 있었기에 한층 더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이다.

   

   허나 모든 실상을 아는 내 입장에서 그녀의 이야기는 전혀 다르게 들렸다.

   

   루카는 단 한 번도 유덴을 제대로 도와주고자 한 적이 없다.

   

   유덴의 재능을 질투한 루카는 언제나 그녀라는 별을 떨어트리고자 했지.

   

   그렇지만 루카의 계획은 모두 실패했다.

   

   훗날 검성이 될 유덴이라는 인간이 지녔던 재능은 당시의 루카 따위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루카의 계략은 되래 유덴이라는 무인을 성장시키는 결과만을 낳았다.

   

   별을 떨어트리고자 했던 모든 노력이 더욱 더 별을 빛내게 만든 것이다.

   

   “그래서 모험가 일을 때려 치고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을 하러 간다 그랬을 때 살짝 아쉽긴 했습니다. 벽을 넘기만 하면 훌쩍 날아오를 것이 분명해 보이는 녀석이었거든요. 그래도 교수 일을 잘 하고 있는 걸 보면 나름대로 옳은 선택이었던 거겠죠.”

   

   가볍게 웃음을 흘리는 유덴을 보면서 나는 확신했다.

   

   이 사람이라고.

   

   이 녀석이라면 진심으로 루카를 꼴 받게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루카가 쓰고 있는 가면을 박살내 버릴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 일거라고.

   

   “개인적으로 아쉬운 건 교수 일이 바쁜 건지 그 후로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단 겁니다. 제가 검성이 되었을 때에도 편지로 축하인사를 전할 뿐이었죠.”

   “만나고 싶어?”

   “물론입니다. 모험가 노릇을 하며 얻은 연 중 몇 안 되는 제대로 된 사람이니까요.”

   

   지금 유덴에게 루카가 무슨 수작을 부리고 있다 이야기하는 건 그리 좋지 못하다.

   

   나 같은 건방진 꼬맹이와 은혜를 입었다 생각할 만큼 긴밀하게 여기는 친구 중에서 누구를 믿을지는 뻔하잖아.

   

   그러니까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그녀의 두 눈으로 직접 루카를 마주하게 만든다. 그럼으로써 유덴의 진심이 루카의 속을 긁게 한다.

   

   아. 상상을 했을 뿐인데 벌써 재밌네. 유덴이 진심을 담은 감사를 전할 때 루카는 표정관리를 할 수 있을까?

   

   “오크녀. 혼자서 아무것도 못하는 멍청한 넌 나한테 부탁하고 싶은 게 잔뜩이야. 그치?”

   “네. 네에. 그렇죠.”

   “그래서 말하는 건데. 멍청한 너랑 아아아주 잘 어울리는 바보가 하나 있거든.”

   

   부탁을 할 게 있다 언급하며 슬며시 카리아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카리아가 자연스레 말을 이었다.

   

   “켄트 가문의 영애를 말하는 거야. 들어본 적 있지?”

   “아. 그 분 말입니까? 잘 알고 있죠. 실제로 그 분이 검을 휘두르는 걸 본 적도 있고.”

   “그랬어?”

   “켄트 영애께서 여러 대회에 활발히 참여하실 때가 있었잖습니까. 그 때 저도 전대 검성 분에게 질질 끌려 다니면서 이런저런 대회에 얼굴을 비췄거든요.”

   

   프레이라는 검사를 떠올리는 유덴의 표정은 미묘했다.

   

   어째서일까. 다른 건 몰라도 검에 대한 재능만큼은 압도적인 녀석인데 왜 저런 얼굴을 하는 거야?

   

   자기 자리를 위협할 게 걱정되어서?

   

   그런 건 아닐 거다. 적당한 때가 되면 검성 자리를 버릴 생각만을 하고 있는 게 이 인간이니까.

   

   그럼 왜지? 왤까?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동안 생각을 정리한 듯 유덴이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아마 알른 영애께서 제게 부탁하고자 하는 건 켄트 영애 분의 검을 봐달라는 거겠죠?”

   “응. 맞아. 오크녀치고는 눈치가 빨랐네.”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기억하는 켄트 영애가 그대로 남아 있다면 제가 곁에 선다 하여 달라질 건 없을 겁니다.”

   

   이 대사는 게임 속에서 들어봤던 내용이다.

   

   프레이의 개인 스토리를 진행하다보면 유덴이 프레이를 박살낼 후에 저 말을 하면서 떠나가 버리거든.

   

   그 후의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되는 지도 알고 있는 난 유덴의 미간이 찌푸려지는 것을 보며 웃음을 지었다.

   

   “우리 바보파파를 만나는 데에 그렇게 간절하지 않은가봐? 동경한다고는 했지만 겨우 그 정도의 마음이었던 거야?”

   “그 이야기가 갑자기 왜.”

   “돌아가면 바보 파파한테 오크녀에 대한 이야기를 잔뜩 해야겠네. 검 실력은 좋지만 그거 뿐이라고. 생긴 것도 지능도 인성도 별로라고. 같이 있어봐야 조금도 재미없는 짐승 같은.”

   “하면 되잖습니까! 하면!”

   

   베네딕을 동경한다는 말이 마냥 헛된 건 아니었던 듯 유덴은 내 협박 앞에 굴복했다.

   

   이걸로 검성을 아카데미로 부를 핑계를 댐과 동시에 프레이랑 아서한테 도움도 줄 수 있게 됐네.

   

   이러니저러니 해도 검 실력만큼은 현존하는 대륙의 검사 중 최고이니 두 사람이 얻어가는 게 있으면 좋을 텐데.

   

   “으으으. 쾌활하고 강직한 기사인 그 분 아래에 왜 이런 딸이…”

   

   고개를 떨군 채 투덜대는 유덴을 보고 있자니 안 좋은 말들이 자꾸 툭툭 튀어나오려 했다.

   

   내가 이렇게 유덴이라는 캐릭터를 싫어했었나? 그냥 별 감정 없었던 거 같은데. 왜 이렇게 이 녀석이 마음에 안 드는 걸까.

   

   이대로 있다가는 유덴이 폭발할 때까지 쿡쿡 찌르게 될 것 같단 생각이 든 나는 변태 사도쪽으로 슬그머니 고갤 돌렸다.

   

   “너도 이 녀석이랑 같이 와.”

   “저도 말입니까?”

   “그래. 이 짐승이 혼자 제대로 올 수 있을 리 없잖아.”

   “검성님께서 그 정도로 모자란 분은 아닙니다만.”

   “여자애 허벅지에서 시선을 뗄 줄 모르는 변태 주제에 말이 많네. 시키면 해. 쓰레기.”

   “…포상 감사합니다! 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테르샤 제국의 투기장. 한 여자아이가 남기고 간 폭풍의 잔재가 여전히 남아 있는 거리에는 천사 같은 외견을 지닌 여자아이의 장신구가 이리저리 늘어서 있다.

   

   모두들 그것이 예술 교단에서 만들어 낸 진품이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정작 그 장신구들은 교단의 진품과는 질적인 부분에서 여러모로 차이가 컸다.

   

   “쯧.”

   

   대장장이 이누키는 거리에 늘어선 가짜들을 구경하면서 혀를 찼다. 어째 이 곳의 쓰레기들은 시간이 지나도 달라지지가 않는 군.

   

   자기 실력을 키울 생각은 없고 어떤 식으로건 돈을 벌 생각 뿐이야.

   

   “거기 할아버님! 이것 좀 보고 가시지요! 예술 교단에서 만들어낸 장신구입니다! 불행을 떨치고 행운을 가져다주는 귀물이죠!”

   

   장사치의 목소리를 들은 이누키는 본 체도 하지 않고 지나가려 했지만 장사치는 그렇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나름대로 억센 장사치의 손이 이누키의 어깨를 붙잡는다.

   

   “…어?”

   

   그리고 장사치는 무언가 이상함을 깨달았다. 자그마해 보이던 노인의 어깨는 결코 부서지지 않는단 환상의 금속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단단했으니까.

   

   “뭘 보라고?”

   

   노인. 이누키가 고갤 돌리자 그의 고집스러운 눈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걸 본 장사치는 자신이 사람을 잘못 건드렸다는 걸 눈치 챘지만 그런다고 그가 손을 뻗었단 사실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어이. 네 놈. 이게 진짜 예술 교단에서 만든 장신구냐?”

   “예? 예에. 물론입니다.”

   “지랄하고 있네. 프레테 그 놈이 미치지 않고서야 이딴 게 나도는 걸 허락할까.”

   “무슨 소릴 하시는 겁니까. 이건 진짜.”

   “어디서부터 지적을 해주랴. 재료? 생김새? 마감? 그림? 하. 씨벌. 어째 하나 마음에 드는 게 없냐. 여신께서 아신다면 대노하실 거다. 이 놈아.”

   “거 노친네.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뇨?”

   

   장사치는 이누키의 말이 크게 틀리지 않았음을 알았지만 그럼에도 오히려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서 물건의 부족함을 인정해버리면 그대로 장사가 망해버린다. 지금은 노인의 안목이 잘못되었단 식으로 억지를 부려야 해.

   

   “눈깔이 낡았으면 말이라도 제대로 해야!…”

   “내가 낡아빠진 인간인지 아닌지 몸소 알려주랴?”

   

   그리 결심을 하고 날뛰려던 장사치는 이누키의 눈동자를 마주하고는 입을 뻥긋거렸다. 본능에서부터 차오르는 공포가 그를 압도한 것이다.

   

   그걸 본 이누키는 한심하단 듯 혀를 차고는 장신구 하나를 들어서 움켜쥐었다. 금속으로 만든 장신구가 인간의 손 안에서 으깨어진다.

   

   “사기를 치는 것까지는 그럴 수 있다 쳐도 신을 모욕하진 마라. 이 놈아.”

   “…예. 예에. 어르신.”

   

   구겨진 장신구를 바닥에 내버린 이누키는 바드로넬 거리의 뒷골목에 발을 디뎠다.

   

   “이누키 스승님! 오셨습니까!”

   

   뒷골목의 허름한 가게에서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방금 전까지 대장간 일을 하고 있었던 듯 땀으로 범벅이 된 남자의 모습을 훑어보던 이누키는 남자의 앞으로 다가가 그 종아리를 걷어찼다.

   

   “으악?! 왜. 왜 이러십니까?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아니. 딱히 잘못한 건 없다. 그냥 속 편한 제자 놈 상판떼기를 보니 짜증이 났을 뿐.”

   “…딱히 속이 편하진 않았습니다만.”

   “에잉! 스승이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야지. 가만 내버려뒀더니 건방져지기만 했어!”

   

   주제 파악을 시켜줘야겠다는 이야기에 식은땀을 흘리던 남자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다 다급히 목소리를 높였다.

   

   “그. 그보다! 얼마 전에 한 손님 분이 찾아왔습니다!”

   “손님?”

   “예! 알른 가문의 영애분이셨는데 꼭 스승님께 의뢰를 드리고 싶다 하셨습니다!”

   

   알른 가문의 영애라면 그 괴물의 자식인가. 얼마 전에 투기장에서 우승을 했다더니 제대로 된 대장장이를 찾아 이곳까지 흘러들어왔던 모양이군.

   

   뭐. 나름 실력은 있는 것 같다만 그래도 내가 망치질을 해줄 정도는 아닐 거다.

   

   아비되는 이라면 모를까. 그 꼬맹이한테는 그만한 격이 없어.

   

   “그냥 적당히 핑계대고 네가 만든 걸 주지 그랬냐. 그 성질 더러운 영애가 내 것과 네 것을 구분할 안목이 있진 않을 텐데.”

   “아닙니다. 스승님. 영애께서는 제 부족함을 알고 계셨습니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냐?”

   “제가 어찌 스승님께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호오. 퍽 괜찮은 외견 때문에 소문이 과장되었을 것이라 보았다만. 마냥 그런 것도 아닌가.

   

   “네가 보았을 때 알른 가문의 영애는 어떤 사람이었나.”

   “놀라운 재능을 지녔으나 자신의 재능에 안주하지 않고 노력을 거듭하는 무인이었습니다.”

   “근거는?”

   “그 분께서 입던 갑옷을 보고 그리 생각했습니다. 아마 스승님께서도 똑같이 평가하실 겁니다.”

   “허. 그래? 좋다. 어디 한 번 보자꾸나.”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안 쪽으로 뛰어 들어 간 남자는 어느 자그마한 갑옷을 들고 왔다.

   

   귀족 가문의 꼬마아이를 위해 만들어진 듯한 그 갑옷은 이누키가 보기에도 꽤나 질이 좋은 물건이었다.

   

   작은 갑옷을 잘 만드는 사람이 적단 걸 생각해보면 가문에서 여러모로 신경을 쓴 것일 테지. 헌데 이 갑옷의 사용자는 가문의 노고를 잘 몰랐던 듯 싶구나.

   

   그렇지 않고서야 이리도 갑옷을 험악하게 굴릴 수 없어.

   

   가만 갑옷에 남은 이런저런 흔적을 보던 이누키는 이내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알른 가문의 영애께서는 소문과 많이 다른 분이구나.”

   “예. 실로 그렇습니다.”

   “마침 잘 됐다. 안 그래도 이 빌어먹을 거리에 정이 떨어지던 참이었으니.”

   “영애를 만나러 가실 겁니까?”

   “일단 보고서 평가를 내릴 생각이다.”

   

   이누키는 일부러 심술궂은 목소리를 냈지만 갑옷을 바라보는 그 눈가에는 분명 흐뭇함이 스며 있었다.

   

   갑옷에 남아 있는 노력의 흔적은 노인의 까탈스러운 성미를 달랠 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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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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