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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80

       데미안은…….

        

       얘는 또 어떻게 해야 할까.

        

       나머지 형제들과는 그래도 나름대로 친분이 있었지만, 데미안은…… 사실 얼굴을 거의 보지도 못했다. 보통은 황제의 명령을 받고 어디로 가 있었으니까.

        

       전투가 끝난 뒤에도 한 번 만나본 적은 있다. 하지만 그때도 데미안은 엄청나게 딱딱하게 굴었다.

        

       하긴 어떤 의미에서는 이쪽이 가장 양호한 상태일지도 모르겠다.

        

       전투 전이랑 지금의 상태 차이가 가장 덜 나는 사람이 데미안이었으니까.

        

       “안녕.”

        

       데미안을 찾아가 마주 앉아 그렇게 말했더니, 데미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잘 지내?”

        

       내 질문에, 데미안은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못 지낼 것은 없지. 목숨 걸고 싸울 일은 없으니까.”

        

       봐. 대답을 이런 식으로 하잖아.

        

       말을 섞다 보면 엄청나게 짜증 난다니까.

        

       “오늘은 몇 가지 물어보러 왔어.”

        

       “…….”

        

       데미안은 굳이 대답하지 않고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나는 그 표정이 긍정의 의미라고 멋대로 해석하기로 했다.

        

       “황제를 따랐던 이유가 뭐야?”

        

       “나를 그런 지옥에서 구해줬으니까.”

        

       데미안은 즉답했다.

        

       “권력이라던가, 그런 건 관심 없었어?”

        

       “뒷골목을 전전하던 삶이 황자까지 올라왔다면 그것만으로 만족하는 게 수순 아닐까.”

        

       ……아니, 뭐 맞는 말이긴 했다.

        

       게다가 황제가 한창 힘을 가지고 있었을 때는 국내의 유력 귀족들도 황제를 함부로 대할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으니까.

        

       그런 황제를 밀어낸다거나, 그 황제가 세운 후계자를 밀어내겠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바보스러운 생각이라고 판단해도 전혀 이상할 것 없다.

        

       “네 삶을 그렇게 만들어낸 사람이 황제일 수도 있잖아.”

        

       “그 생각도 꽤 오래 해봤지. 여기 들어와서 생각할 시간이 많았으니까.”

        

       루카스도 그랬다.

        

       처음엔 검성과 맞붙을 수 있도록 최대한 빨리 내보내 달라고 하던 녀석이, 내가 만나러 갈 때마다 점점 우울해지더니 급기야 자길 용서할 수 없다느니 하면서 이상한 소리를 해댔으니까.

        

       원래 사람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생각할 시간이 많아져서 자꾸 이상한 생각을 하게 되는 법이다. 군대에서도 경계서면서 온갖 생각을 다 하지 않던가?

        

       “결국 일은 그렇게 벌어졌다. 애초에 황제가 권력투쟁을 하지 않았다면 황실은 어떻게든 무너졌겠지. 그렇지 않도록 꽉 잡은 인간이 황제인 거고.”

        

       “필요한 희생이었다고?”

        

       “아니.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아. 그보다는…… 그냥 그렇게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는 거지.”

        

       알 듯하면서도 잘 모르겠다.

        

       “시간을 돌려 사건을 바꿀 수 있는 네게는 해당하지 않는 일이었나?”

        

       “…….”

        

       그 말에는 또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고.

        

       “그런 상황이었기에 네가 그곳에 있을 수 있었던 거 아닐까?”

        

       “…….”

        

       그 말에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아무런 피도 섞이지 않은 내가 황녀까지 될 수 있었던 건, 황제의 아이 중 하나인 루카스가 나를 보고 재미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루카스가 나와 클레어가 있는 고아원을 보고 있었던 이유는 황제가 흩뿌려놓은 자기 핏줄 중 훌륭한 실력을 갖춘 아이를 걸러내기 위해서였고.

        

       내 기준으로는 ‘게임이 있었기 때문’ 쪽의 이유가 먼저였지만, 이 세계를 기준으로 하자면 황제가 그런 일을 벌이지 않았다면 그 이후의 스토리는 존재할 수도 없었다.

        

       앨리스는 지금보다 훨씬 불행한 삶을 살고 있었을지 모르고, 아카데미에서 나름대로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아이들은 서로 권력을 두고 싸우고 있을지 모른다.

        

       최선은 아니지만, 동시에 최선. 지금 상황은 그런 상황이었다.

        

       “그래서, 따로 원망은 하지 않는다고?”

        

       데미안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이제 와서 죽인다고 해서 바뀔 것도 없으니까. 오히려 평화만 깨지게 되겠지.”

        

       “음…….”

        

       내가 애매한 표정을 지어 보이자, 데미안은 처음으로 나에게 흥미롭다는 듯 물었다.

        

       “네가 그렇게 우리를 모으려는 이유가 뭐지?”

        

       “형제고, 자매니까.”

        

       “별로 논리적인 이유는 아니군.”

        

       “논리적인 이유를 따지는 인간으로 보여?”

        

       데미안은 나를 가만히 바라보면서 말했다.

        

       “사실은 그렇게 생각했다. 무수한 선택지 중에서 오로지 자기에게 유리한, 자기 목적을 위한 선택지만 골라 세상에 자기만의 무늬를 새겨넣는 종류의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황제 또한 그렇게 생각했고.”

        

       나에 대한 평가가 너무 거창하다.

        

       그런데 그 평가를 받게 한 사람이 나구나.

        

       나는 부담스러움을 털어내듯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 말했다.

        

       “연기였을 뿐이야.”

        

       “그래도 훌륭했지.”

        

       데미안은 처음으로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결국 네가 원하는 세상을 만들어내고 말았으니까.”

        

       “…….”

        

       나는 데미안의 칭찬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괜히 소름 끼치네, 으으. 제이든이 하는 말과는 또 다른 점이 있었다. 평소에 거의 표정 없는 인간이라 더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그런 전혀 비논리적인 이유로 여기까지 온 거야. 너는 어떻게 생각해? 형제, 자매들과 함께 지내고 싶어?”

        

       “함께 지내면 뭘 해야 하지?”

        

       “…….”

        

       나는 말문이 막혔다.

        

       “어…… 뭐든지?”

        

       “그렇다면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도 괜찮은 건가?”

        

       “그렇, 지?”

        

       나는 미간을 살짝 찡그린 채 데미안을 바라보았다.

        

       “그냥 가만히 있고 싶어?”

        

       “글쎄, 나도 그걸 원하는 줄은 몰랐는데.”

        

       데미안은 곰곰이 생각해보더니 말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거의 쉬지 못했으니까. 뒷골목을 전전하던 시절에는 빵을 훔치고 도망치지 않으면 굶어야 했지. 그리고 그 빵을 어디서 몰래 먹을지도 중요했고. 뒷주머니를 털었다면 어디 숨길지 꾸준히 보면서 나만 아는 곳을 찾아 숨겨두고, 남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주기적으로 자리를 바꿔 숨겨야 했어.”

        

       “…….”

        

       “그런 삶을 살다가 황자가 된 이후에는, 이런저런 나라에 여러 가지 임무를 띠고 투입되었지. 하나같이 멀리 있는 나라였고, 꾸준히 생각을 해야 하는 일들 뿐이었다. 그러니까…… 그래. 나는 지금까지 거의 쉬지 못했지. 쉬는 것이 뭔지도 잘 몰랐고.”

        

       “그러니까, 지금 이 상황이 꽤 마음에 든다는 거?”

        

       “그래. 먹을 것도 나오고, 얼어 죽을 일도 없고, 깨끗하게 씻을 물도 많으니까.”

        

       생각보다 엄청나게 소박해서 놀랐다.

        

       아니, 오히려 이미지만 보면 어울리긴 하지만 말이야.

        

       “못 믿으면 어쩔 수 없고.”

        

       “……혹시, 이것저것 해본 게 없어서 뭘 원해야 할지도 모르는 거 아니야?”

        

       내 질문에, 데미안은 다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가?”

        

       “뭐, 그렇긴 한데…… 음, 잘 모르겠다.”

        

       데미안의 말에는 솔직히 엄청나게 공감하니까.

        

       나도 가끔은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고 싶을 때가 있다. 솔직히 요즘은 너무 바쁘기도 하고.

        

       “만약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는 것을 원하면, 여기 있다가 가면 되는 일 아닌가?”

        

       “응?”

        

       내 표정을 드디어 읽는 데 성공했는지, 데미안이 제안했다.

        

       “면회 시간에는 제한이 없는 것 같은데. 그럼 차라리 대화하느라 필요한 시간이라고 하고 그냥 가만히 있다가 나가면 되는 거 아닌가?”

        

       나는 한순간 그 유혹에 넘어갈 뻔했다.

        

       침낭 같은 거 가지고 와서 여기 바닥 아무 곳에나 깔아두고 그냥 누워있다가 나간다고? 그동안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않는다고? 엄청나게 좋은 생각이긴 했지만…….

        

       “사양할래.”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 내가 일하지 않는다고 내가 처리하지 않은 사안들이 알아서 처리되는 건 아니다.

        

       나는 아직은 황실의 중요한 부분을 맡지는 못하고 있었지만, 앨리스는 벌써 졸업 후에 나를 양껏 부려 먹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벌써 일을 미루면 곤란하다.

        

       “그래? 네 마음이니 알아서 해라.”

        

       뭐지?

        

       왜 이렇게 꼴 받지?

        

       지금까지는 제이든이 마주했을 때 가장 꼴 받는 순위 1위에 있었는데, 이 대화로 그 순위가 순식간에 바뀌어버렸다.

        

       혼자 해탈해버린 것 같은 태도를 하고 있으니 뭔가 열받는데. 뭐라도 시키고 싶어진다.

        

       그런데 지금 상황에서는 뭘 시킬 방법이 없으니 더 꼴 받는 거고.

        

       “아무튼, 그러니까 지금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거지? 내가 부르면 오겠다는 소리?”

        

       “……그렇다면 그렇긴 하다만.”

        

       데미안은 나를 보면서 말했다.

        

       “황제의 복권이라도 노리는 거냐.”

        

       “내가 미쳤어? 그냥 어디 놀러 가서 편안하게 다리 뻗고 있다가 돌아오는 거 정도만 생각 중이야.”

        

       “……그건, 그거대로…… 조금 충격적이군.”

        

       “다들 처음 얘기 꺼내면 이상한 사람 쳐다보듯 하더라.”

        

       나는 작게 숨을 내쉬고 말했다.

        

       “그런데, 솔직히 우리가 그랬던 적이 있긴 해? 내 기억으로는 한 자리에 모여서 식사한 적도 거의 없는 것 같은데?”

        

       “거의 없는 게 아니라, 아예 없을 거다.”

        

       “그것 보라니까.”

        

       물론 데미안은 여전히 ‘그래서 그게 왜 중요한데?’라는 표정이었지만, 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 말했다.

        

       “그럼, 참가하겠다는 걸로 안다? 다른 애들이랑 같이 부르면 와야 해?”

        

       “……안 가는 선택지가 없지 않나?”

        

       “그래도 기분이라는 게 중요하니까.”

        

       내가 그렇게 말하자, 데미안은 다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렇게까지 태평해도 되는 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부럽네, 젠장.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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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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