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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80

        

         

        * * *

         

         

         

       [ 이보게 박진성이. 이리도 흔쾌히 내 부탁을 들어주어 고맙네. 게다가 사사로이 이득을 바라고 그런 것도 아니고, 나라를 위해 나서 주었다니 이것 참으로 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구먼. ]

         

       [ 하하, 아닙니다. ]

         

       [ 아니야, 아니야. 국제적인 행사는 곧 나라의 얼굴이 될 수 있다는 말, 아주 감명이 깊었어. 그래, 그게 맞는데도 무인이라는 놈들은 제 혈기를 이기지 못하고 얼굴에 먹칠이나 하는 것이 일상이었지. 내 자네가 한 말에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 말이야. ]

         

       [ 하하하하. ]

         

       [ 나라의 얼굴에 먹칠이 되기 전에 내려가서 해결하고 싶다. 분명히 힘을 보탤 수 있을 것이다…. 허허허. 이거 참, 내 듣기로는 무슨 행사도 제의받았다고 들었는데, 그거 준비하려면 심력을 많이 쏟아야 함에도 이렇게 손을 거들어준다는데 어찌 내가 이리 기뻐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이봐 박진성이. 자네는 어, 이 나라의 홍복이야 홍복. 그냥 주술사가 나타난 것도 기쁜데 이리도 애국심이 있는 사람이라니 이게 축복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거 하늘이 보우하심이 틀림이 없어! ]

         

       [ 과찬이십니다. ]

         

       [ 과찬이라니. 이거 사람이 겸손도 하지. 이봐 박진성이. 내가 일을 말끔히 마치고 돌아온다면 아주 후하게 보답한다고 약속하겠네. 암, 기대해도 좋아. 내가 자네가 좋아할 만한 것을 잘 추려내서 안겨줄 테니, 일을 잘 마무리하고 올라오게나! ]

         

         

         

        * * *

         

         

         

       시간이 흘렀다.

       저 멀리에서 떠올랐던 해는 점차 이동하여 하늘 높이 떠올랐고, 그 해가 조금씩 또 움직이기 시작할 때 차 한 대가 충주의 한 병원 앞에 섰다.

         

       차는 평범한 택시였다.

       다만 특별한 것이 있다면 그 택시는 서울에서 왔다는 것이리라.

         

       덜컹.

         

       약간 낡아 보이는 택시에서 내린 것은 젊은 남성이었다.

       장례식에라도 참가하는 것인지 검은 양복에 검은 넥타이를 차고 있는 젊은 남성.

       키는 크고 호리호리한 것이 양복이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그는 택시에서 내린 뒤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넥타이를 고쳐맸다.

       그리곤 스포츠백을 한 손에 들고 병원 안으로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남자는 거침없이 데스크로 향했다.

       그리곤 약간 피곤한 기색을 보이며 자신에게 묻는 직원에게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영안실에 가려고 합니다.”

         

       “네? 영안실이요?”

         

       매점이 어디에 있냐고 묻는듯한 평온한 말투.

       하지만 그 평온한 말 안에 오싹한 단어가 들어가 있었다.

         

       영안실.

         

       시신을 안치하는 장소.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찾지 않는 그 장소를 입에 담은 것이다.

         

       “영안실은 왜…. 아, 혹시 유족분이신가요? 아니면 염사(殮師)?”

         

       직원은 영안실에 가겠다는 남자의 말에 의아한 듯 되물었으나, 이내 그가 입고 있는 옷을 보고 짐작이 간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남자가 입고 있는 것은 검은 양복.

       그것도 장례식장에서나 볼법한, 새까만 복장이었다.

         

       저런 옷을 입는 것은 고인과 관련된 사람이 아니면 장의사였으니까.

         

       “아, 그건 아닙니다. 그렇지만 관계자는 맞습니다. 박진성이라는 이름인데….”

         

       “박진성…. 박진성…. 아. 그분이시구나!”

         

       직원은 ‘박진성’이라는 이름을 듣자 무언가 떠오른 듯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곤 피곤함에 젖은 눈을 번쩍 뜨고 진성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았고, 이내 얼마 전에 TV에서 봤던 모습과 똑같다는 것을 깨닫고 신기하다는 듯 그를 쳐다보았다.

         

       TV에 출연한 사람이 눈앞에 서 있으니 신기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서울의 대형병원 같은 곳이야 월드 스타 소리 듣는 연예인도 방문한다고는 했지만, 그녀가 근무하는 병원에는 연예인은 쉽게 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물론 박진성이 연예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TV에 나온 것은 맞지 않는가.

         

       그러니 신기할 수밖에.

         

       “예. 신분증 좀 주시겠어요…? 네. 신분증 확인했습니다. 자, 박진성 주술사님. 그냥 영안실이 아니라 급속 냉동구역으로 가셔야 하세요. 엘리베이터 타고 영안실 가시면 거기서 기다리고 계신 분들이 있는데, 그분들 따라가시면 되십니다.”

         

       “네. 감사합니다.”

         

       진성은 직원의 말대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영안실로 향했다.

       병원 엘리베이터라 그런지 느릿느릿 움직였지만, 그래도 이용하는 사람이 많이 없어서 그런지 오래 기다리지는 않았다.

         

       그렇게 영안실에 도착하자….

         

       “어이구, 주술사님 오셨네! 반갑습니다!”

         

       직원의 말대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건장한 체구의 남성들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우락부락한 몸을 하고 있었는데, 젊은 청년부터 꽤 나이가 있어 보이는 중년까지 근육질이 아닌 사람이 없었다. 몇몇 사람들은 경찰 제복을 입고 있었고, 몇몇 사람들은 뛰기 편해 보이는 옷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그 근처에서 벽에 등을 기댄 채 앉아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딱 봐도 의사처럼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마스크를 아래로 내린 채 커피를 홀짝거리고 있었는데, 진성이 오는 소리를 들었는지 몸을 천천히 일으키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그래요, 이거 반갑습니다. 거 먼 길 오셨다고 들었는데, 바로 병원으로 오셨다고?”

         

       “예. 어차피 시체를 확인해야 뭐든지 일이 진행되지 않겠습니까?”

         

       “아이고 몇 시간 동안 차 타고 오시느라 피곤할 텐데…. 아, 그럼 시간 끌지 말고 후딱 해봅시다. 저기 김가 놈이 안내해 줄 겁니다.”

         

       형사로 보이는 사람은 진성을 보자마자 격하게 환영해주었다.

       호들갑을 떤다고 느낄 정도로 말이다.

         

       “쯧, 멀쩡한 이름 보고 김가 놈이 뭐냐. 아무리 친구라지만 이럴 땐 한 대 후려치고 싶다니까….”

         

       “아 됐고, 주술사님 안내나 잘 해드려라. 난 잠깐 위에 좀 올라가서 볼일 좀 봐야겠으니까.”

         

       “아이고 등치도 커다란 게 겁은 많아서…. 이 층에도 화장실은 있는데 굳이 그거 안 쓰고 위에 가서 볼일 보겠다는 게 참….”

         

       “아 겁먹기는 뭘! 좀 그래서 그렇지! 보니까 음산한 게 기운이 안 좋아서 그렇다니까!”

         

       “음산하긴 뭘…. 귀신이라도 나올까 봐 그래? 그거 내가 말했잖아. 영안실에서 귀신 보는 일은 거의 없다고. 그냥 가서 볼일 보면 된다고.”

         

       “아 됐고, 이제 내 차례는 끝났으니까 네 일이나 잘해! 어차피 내가 저 안으로 들어가면 안 될 거 아냐.”

         

       “그렇긴 하지. 주술사님이 주술 쓰는 데 집중하려면 들어가는 사람은 적은 게 좋으니까.”

         

       형사는 이제 자신의 할 일이 끝났다는 듯 친구처럼 보이는 법의학자에게 진성을 안내하고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갔다. 물론 올라가는 것은 볼일을 봐야 한다고 말했던 형사 한 명뿐이었고, 다른 경찰들은 영안실 안까지 따라가는 대신 밖에서 얌전히 대기하는 것을 택했다.

         

       덜컹.

         

       그렇게 육중한 문이 열리고, 법의학자와 진성이 영안실로 들어섰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영안실에서도 특별한 곳으로 취급받는, 급속 냉동구역으로 향했다.

         

       삑.

         

       전자음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급속 냉동구역은 이름에 걸맞지 않게 따뜻한 편이었다.

       이름에서 느껴지는 살이 에일 것 같은 추위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놓은 수준에 불과했다.

         

       “이상하시죠? 급속 냉동구역이라는 이름만 보면 무슨 북극이나 남극 같은데, 그냥 어디 피서 온 것처럼 적당히 시원하기만 하고.”

         

       법의학자는 마스크를 천천히 쓰면서 진성에게 말을 걸었다.

       말투가 가벼운 것이, 진성의 긴장을 풀어주겠다는 의도가 보였다.

         

       “근데 이게 다 선택과 집중입니다. 좀 볼품없어 보이고 좁아 보이기는 해도, 이게 다 최신 기술이 접목이 된 거래요. 괜히 냉기를 방 전체에 퍼뜨려서 에너지 낭비할 이유가 없다고 하던가? 그래서….”

         

       법의학자는 라텍스 장갑을 낀 손으로 거대한 기계의 손잡이를 잡았다.

       그의 두 손이 바(bar) 형태의 손잡이를 꼭 붙잡았고, 그가 힘을 줌에 따라 드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안의 내용물이 바깥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스아아악.

         

       그리고 내용물과 함께 흘러나오는 끔찍한 냉기.

       숨을 쉬면 숨결에 포함된 수분조차도 얼음 알갱이가 되어 땅에 쏟아질 것 같은, 어마어마한 수준의 냉기였다.

         

       “…이렇게, 시체를 넣은 곳에만 냉기가 딱 집중되게 했다고 합니다. 보시는 것처럼 시체를 썩지 않게 오래 보관하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냉동시켜버리는 거죠. 성능 죽이죠? 이거 설계를 이렇게 안 했으면 냉매니, 전기세니…. 유지비가 어마어마했을 겁니다.”

         

       덜컹.

         

       법의학자는 시체를 빼내 해부용 침대 위에 올렸다. 해부용 침대 위에 레일로 끼워 넣을 수 있는 구조여서 호리호리해 보이는 팔뚝을 가지고 있음에도 손쉽게 해부용 침대 위에 시체를 놓을 수 있었다.

         

       그렇게 시체를 올린 법의학자는 기계의 뚜껑을 닫아 냉기가 더 흘러나오는 것을 막고는 손을 툭툭 털었다. 그리곤 이동식 선반 위에 있던 액체에 손을 집어넣고 손을 씻는 것처럼 손을 몇 차례 비비며 진성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냉동시키면 참 좋아요. 썩거나 상하지도 않아서 부검하기 딱 좋고. 뭐 바이러스나 세균 같은 거 있어도 같이 냉동되니까 좋고. 그런데 다 좋은데, 이게 부검을 하는 사람의 손이 너무 시리다는 게 문제입니다.”

         

       “흐음. 손이 시린 수준이 아닌 것 같은데….”

         

       “흐흐, 뭐 이 정도야 시린 정도지요. 이 코팅액을 손에다 쫙 발라주면 이 정도야 어렵지 않습니다. 동상 걱정이 없어요. 게다가 소독 효과도 강하기도 하고.”

         

       법의학자는 눈으로 호선을 그리며 진성에게 물었다.

         

       “주술사님도 시체를 직접 만져보실 거라면 이걸로 코팅 좀 하셔야 할 겁니다. 아, 이거 꽤 독하니까 장갑은 끼셔야 합니다. 저기 선반에 보시면 라텍스 장갑 있어요. 이 코팅액이 약간 발려져 있는 녀석이기는 한데, 확실하게 하려면 저처럼 푹 담가서 전체적으로 코팅을 싹 하는 게 좋지요.”

         

       진성은 법의학자의 말에 해부용 침대 위에 올라가 있는 시체를 바라보았다.

         

       얼굴 가죽이 벗겨져 흉한 얼굴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가슴에 구멍이 뻥 뚫려 있는 시체.

         

       진성은 시체에 난 흔적을 보고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만져볼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군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그것들은 추위와 함께 다시 왔습니다.
    덜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드러내는 기척들.
    작은 발로 뛰는 소리, 달그락거리는 소리, 사각거리는 소리….
    저의 머리 위에 있는 얇은 벽.
    상상이나 되십니까? 그 벽을 밟고 있을 저것들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저것들이 과연 얼마 전 있었던 것인지, 새로운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긴 꼬리! 여러개의 발! 날이 서 있는 이빨과 발톱!
    잠을 청할 적에는 머리맡에서 소리를 내고, 책상 앞에 앉았을 적에는 구석으로 향해서 소리를 내는 저 사악함!

    아, 신이시여.
    저는 무력합니다….

    태양과 역병, 쥐와 예언을 주관하시는 아폴론께 위대한 물질 쿠마테트라릴을 제물로 바치겠나이다!
    저 쥐새끼들이 쥐약을 먹게 해주소서….



    예.
    쥐들이 또 왔습니다….
    아무래도 맛집이라고 소문이 난 모양입니다….
    아니면 가출했던 애가 다시 돌아왔거나….

    슬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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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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