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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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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전. 전(前) 용사라고요? (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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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겨왔던 아버지의 추태.

        둘째 어머니는 도대체 몇 살에 임신하신 걸까. 어쩐지 밝혀내기 두려워지는 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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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어째 하루하루가 조용히 지나가는 날이 없는 것 같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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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마 아버지가 덮치신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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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약하게 남아있는 아버지에 대한 신뢰와 존경심을 근거로 한 판단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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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희 아버지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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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해야…. 정말 오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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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도 허락한 일이란다 이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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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와 아버지의 말을 떠올린다.

        아버지가 원했던 관계는 아니었을 것이다. 음… 아마도.

        분명 뭔가 사정이 있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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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용사인 어머니와 그 동료였던 아버지가 어찌할 수 없을 정도의 일이 있었을 것이다. 있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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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 네가 한스 님의 아들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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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이지가 눈을 가늘게 뜨며 이안을 훑었다. 생각을 알 수 없는 눈이 희열로 번뜩였다. 이안은 자신이 발가벗겨지고 있다는 착각이 들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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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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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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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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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도 모르게 훌쩍 뒤로 물러난 이안. 반사적으로 검을 뽑았다.

        손이 덜덜 떨리고, 몰려오는 공포에 이빨이 부딪혔다. 피부에 닭살이 오소소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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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뭐야? 뭐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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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금 이안은, 자신이 거대한 맹수의 아가리 안에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대적할 수 없는 괴물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듯-. 본능이 경종을 울려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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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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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꽈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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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롱소드에 새겨진 용기의 룬이 깜빡거리며 점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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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이지는 태연하게 다가와 검의 끝을 두 손가락으로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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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이 놀랐구나.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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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으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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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에게 쏘아내고 있던 살기를 거둔 데이지. 이안은 그제야 숨을 크게 뱉었다.

        방금 전의 위압감이 거짓말이라는 듯, 무겁게 내려앉았던 공기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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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 도대체 당신은 누구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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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이지. 너의 둘째 어머니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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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이지는 다시 한번 자기소개했다.

        당연하지만 이안은 이름을 듣고자 한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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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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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리아에게 안내받으렴.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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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돌아선 데이지가 훌쩍 공중으로 뛰어오르더니 작은 점이 되었다. 뭔가 물어볼 틈이 없었다.

        기분 탓인지 데이지의 귓덜미가 조금 붉어진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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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단하세요 오라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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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리아가 한스의 곁에 다가왔다. 양손을 모아 잡고, 두 눈을 반짝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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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어머니가 저렇게 기뻐하시는 모습을 처음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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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게 좋아하시는 모습이라고? 죽이려는 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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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 어머니가 오라버니를 만나고 기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셔서 조금 실수하신 것 같아요. 평소에는 절대 이런 실수를 안 하시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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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 부끄러우셨던 걸까- 아리아가 중얼거렸다.

        일리 있는 추측이다. 어머니는 누구보다 이안과의 만남을 기대하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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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 실수하시면 송장 하나 치우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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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이 투덜거렸다. 생각했던 것보다 둘째 어머니와의 첫 만남은 거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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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서 가시죠 오라버니. 이제 도시가 코앞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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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리아가 앞장서서 일행을 안내했다.

        뽀득거리는 눈밭을 한참이나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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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나 걸었을까. 허벅지까지 눈에 젖었을 무렵, 그들은 한창 축제 준비로 떠들썩한 몬테그로스에 입성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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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오. 아주 시끌시끌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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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의 예상과 다르게 몬테그로스는 아주 활기찬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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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곳곳에 오색 종이가 걸려 있었으며, 먹음직스러운 순록 고기를 통째로 굽는 모습도 보였다.

        길가에 전시된 그림과 조각상, 웅장한 행진곡을 준비하는 악단에, 색종이를 뿌릴 아이들까지.

        ​

        그야말로 축제가 코앞이라는 느낌이 물씬 풍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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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헤. 마침 오늘이 ‘와일드 헌트’의 개최일이거든요. 몬테그로스의 자랑이나 다름없는 축제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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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리아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자랑스러워했다. 겉보기에는 15살쯤 되는 듯했지만, 하는 행동은 9살 무렵의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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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는 이 도시가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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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요. 저는 태어날 때부터 이 도시에서 살았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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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부인의 시선에서 본 몬테그로스는 춥고, 투박하고, 거친 땅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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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몰아치는 혹한의 추위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뜨거운 영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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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리아는 이 도시와 사람들을 사랑했다.

        그녀의 눈에 비친 몬테그로스는, 설원에 피어난 뜨거운 횃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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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주. 이제 우리는 해산해도 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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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응. 각자 볼일 마치고, 알아서 귀환해도 상관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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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크와 처녀들이 삼삼오오 빠르게 흩어졌다. 얼른 축제를 즐기고 싶어 엉덩이가 들썩거리는 것을 더 이상 참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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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들은 한창 꽃다울 나이였다. 

        오크도 포함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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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췻. 이번에 도끼 손자루 신제품이 나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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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헛…! 이번에 유행하는 롱소드 폼멜 너무 멋있다! 취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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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꺄악 미쳤다! 이 위장약 좀 봐! 완전 진흙색이야!! 이걸로 위장하면 대박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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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아하는 것이 또래와 아주 조금 달랐지만.

        아무튼 그들 나름대로 청춘을 즐기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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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라버니. 혹시 시간 되시면, 잠시…… 축제를 즐기시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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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리아가 이안을 돌아보며 말했다.

        어쩐지 조금 기대에 찬 눈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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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제? 나야 상관없는데. 둘째 어머니가 부르시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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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건 괜찮아요. 어머니도 와일드 헌트 축제를 좋아하시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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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나야 상관없긴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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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래도 되나? 싶은 의문이 이안을 스쳤다. 뭐어. 누구보다 둘째 어머니를 잘 알고 있을 아리아가 괜찮다고 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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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앗. 오라버니! 여기, 이쪽! 얼른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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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새 저 앞까지 달려간 아리아가 이안을 재촉했다. 언제 구했는지, 손에는 꼬치를 하나 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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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니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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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쩐지 주변이 조용하다 싶더니. 유니콘이 보이지 않았다.

        보나 마나 엉뚱한 곳에서 처녀나 따라다니고 있겠지. 이안은 유니콘에 대해 통제하는 것을 포기한 지 오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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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라버니…! 얼른, 얼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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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진이 가장 잘 보이는 앞줄에서 아리아가 이안을 불렀다. 이안은 피식 웃으며 아리아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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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인상이 조금 무뚝뚝하고 다가가기 어려울 뿐이지.

        아리아의 행동은 생각보다 무척이나 발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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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아아아아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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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아아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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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멀리서부터 함성이 들려왔다.

        ​

        아리아의 하얀 볼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꼭 쥔 주먹을 붕붕 휘둘렀다. 손에 쥐고 있던 꼬치가 휙 날아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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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은 잽싸게 꼬치를 붙잡아 아리아의 손에 들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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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ㅡㅡㅡㅡㅡ!!!

        ​

        때에 맞춰 음악단이 웅장한 행진곡을 연주했다.

        축제의 시작, 기병과 사냥꾼의 행진이 시작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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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

        .

        .

        .

        “…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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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리아가 잔뜩 만족하여 배부른 한숨을 뱉었다. 뺨에는 소스가 묻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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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밌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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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청났어요, 정말로…! 올해 최고의 사냥감으로 뽑힌 그레즐리 베어는 포악하기로 유명한 곰인데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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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리아가 마구 팔을 휘두르며 떠들었다. 

        이안은 흐뭇하게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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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처음 만났는데, 어색했던 공기는 날아간 지 오래였다.

        배다른 남매지만 남매라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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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뺨 이리 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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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부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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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이 아리아의 볼을 마구 닦았다.

        아리아의 볼살이 이안의 손길에 이러저리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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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보니까 좀 9살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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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래보다 아주 조금… 조금 많이 조숙할 뿐이지.

        아. 거기에 조금 더 잘 싸우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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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앗ㅡ! 오, 오라버니. 저기, 저쪽에 광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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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뛰다가 넘어지… 면 다치지는 않겠지만. 아무튼 조심해.”

        ​

        광장에서 광대가 마술 공연을 하고 있었다. 아리아는 우다다 달려가서 마술을 구경했다. 

        광대의 화려한 손재간에 아리아의 입이 점점 크게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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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은 간단한 과자를 아리아의 벌어진 입에 넣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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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앗…! 오라버니, 저쪽에서 격투경기를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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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살이 이런 걸 봐도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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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앗…! 이, 이안 오라버니. 저쪽, 저쪽에서 그레즐리 베어 도축 쇼를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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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허. 눈 가려. 저런 거 보는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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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과 아리아는 한참이나 축제를 누볐다. 주로 아리아가 달려 나가면, 이안이 뒤쫓아가는 형식이었다.

        ​

        정신없이 축제를 즐기다 보니, 어느새 뉘엿뉘엿 노을이 걸쳐졌다.

        그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축제를 즐겼을 아리아의 행색이 화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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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 재미있었어요……!”

        ​

        손에는 그레즐리 베어 뒷다리 통구리, 머리에는 와일드 헌트 축제의 머리띠를 쓰고 있었다.

        온종일 먹은 배가 빵빵하게 올라왔다.

        ​

        “다행이네.”

        ​

        이안은 흐뭇하게 웃으며 아리아를 바라봤다. 오늘 처음 만난 여동생이지만, 그 누구보다 순수한 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슥슥-

        ​

        “……앗.”

        ​

        무심코 아리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무의식적으로 일어난 일이었다. 마치 본능에 각인된 것 같다고 해야 할까.

        ​

        뒤늦게 자신의 행동을 깨달은 이안이 황급히 손을 거뒀다.

        ​

        “아. 미안…. 나도 모르게 그만.”

        ​

        “……아니에요.”

        ​

        아리아는 조심조심 이안의 손길이 닿았던 부분을 매만졌다.

        나쁘지 않은 감촉이었다. 누군가에게 쓰다듬을 받는 경험… 어머님을 제외하면 처음이었다.

        ​

        “……오라버니. 한 번만 더 쓰다듬어 주세요.”

        ​

        “어?”

        ​

        아리아가 조심스럽게 이안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

        잠시 당황했던 이안은 조심스럽게 아리아의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사락사락- 손끝에서 흐르는 머리카락, 살짝 따뜻한 정수리. 

        ​

        “……오라버니는, 제가 이상하지 않으신가요?”

        ​

        그리 묻는 아리아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

        “이상하다니. 뭐가?”

        ​

        “……그야. 저는, 다른 아이들보다 몸도 크고, 키도 크고…. 이상하잖아요……. 다른 아이들에 비하면 저는 꼭 괴물처럼….”

        ​

        아리아의 말 못 할 고민이자 콤플렉스였다.

        감히 대놓고 아리아를 흉보는 사람은 없었다. 데이지가 이끄는 부하들도 아리아의 모든 것을 긍정해줬다.

        ​

        하지만, 아리아는 자신이 또래의 친구들과 비교하면 많이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

        “……아마 제 몸에 있는 불꽃 때문이겠죠……. 저처럼 불꽃이 큰 사람도 없고, 성장이 빠른 사람은 없어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

        “불꽃?”

        ​

        떠오르는 것은 오크와 처녀들의 몸에 새겨져 있던 불꽃 형태의 문신. 유니콘은 이들을 불꽃을 키우는 자들이라고 칭했다.

        ​

        ‘그 문신이랑 지금 말하는 불꽃이 관계가 있는 건가.’

        ​

        일단 나중에.

        지금은 물어볼 분위기가 아니었다.

        ​

        “……나도 다른 친구들이랑…. 흐끕. 놀고 싶었는데….”

        ​

        아리아는 팔다리도 길고, 키도 크다.

        9살이 아니라 16, 17살 무렵의 언니들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

        또래의 9, 10살 친구들과 어울리면 친구가 아니라 보살피는 언니처럼 보일 정도였다.

        ​

        그리고 당연하지만.

        어린 나이일수록 자신과 다른 점에서 큰 거부감을 느낀다. 아이들은 순수하지만, 그렇기에 악의 없이 사악할 때도 있다.

        ​

        이안은 조심스럽게 아리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빠로서 여동생의 눈물을 어찌 모른 척할까.

        ​

        “나는 아리아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 없어.”

        ​

        “……흐윽. 정말요?”

        ​

        “그럼. 나는 아리아의 오빠잖아. …이복 오빠지만. 아무튼, 이 세상에 여동생을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오빠는 없어.”

        ​

        사실 모든 남매를 서로를 증오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는 어머니의 자궁에서부터, 유전자로 각인된 뿌리 깊은 분노와 혐오다.

        ​

        하지만 이복 남매로 맺어진 아리아와 이안에게는 조금 다른 이야기였다.

        ​

        “…헤헤. 오라버니.”

        ​

        아리아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살짝 울었던 눈망울이 불그스름했다.

        ​

        더 쓰다듬어 달라고 보채는 강아지처럼 이안의 손에 머리를 마구 비볐다.

        이안은 최선을 다해 아리아를 쓰다듬어줬다.

        ​

        “……과연.”

        ​

        사이좋은 이복 남매를, 저 멀리서 지켜보는 이가 있었으니.

        모든 투쟁의 주인이자 지존, 데이지였다.

        ​

        “…저 능숙한 쓰다듬기, 각도, 적절한 속도와 리듬.”

        ​

        아리아를 쓰다듬고 있는 이안을 노려보던 데이지가 중얼거렸다. 

        ​

        저 아이… 보통이 아니다.

        본능의 수준에서 가장 적절한 쓰다듬기를 해내고 있었다.

        ​

        “…전성기의 한스 님에 버금가는 수준….”

        ​

        역시 한스 님의 아들이다.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연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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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Install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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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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