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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82

    <482 – 공개고로시>

     

    매스각키 황녀는 오크노디의 정보가치가 높은 것이 불만일 뿐이었지만 로지니는 적색마탑의 수비현황이 개판인 정보가 헐값이라는 사실을 주목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마탑이 습격의 위기에 처했는데 내부수비가 개판인 정보가 헐값에 취급되고 있다니!”

    “해당 이유에 대해 알고 싶다면 동등한 정보를 테이블에 제시해주십시오.”

    “하겠어!”

     

    로지니는 당장 교환정보를 제시했다.

     

    ━━━

    적색마탑의 견습마법사 로지니는 <적염赤炎>학파의 유일한 계승자이며 학파의 부흥을 위해 아카데미에 입학했다. 적색마탑 최대파벌 <작렬炸裂>학파는 로지니의 성공을 원치 않는다.

    ━━━

     

    정보교환원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불가. 말씀드리기 송구하오나 로지나 고객님은 가치가 부족합니다.”

     

    적색마탑 수비현황이 헐값에 취급되는 이유조차도 거래할 수 없다.

    로지니의 개인적인 숙원과 정적 따위, 유령호텔의 정보교환원에게는 무가치 그 자체였다.

    마치 면전에서 인생이 부정당한 기분.

    자존심이 무너질만한 경험이다.

    로지니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마탑의 견습마법사가 그렇지.’

     

    매스각키 황녀는 냉정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제국에서 대부분의 개인은 자신이 속한 조직의 정보 하나만도 못한 값어치를 지니고 있다.

    조직의 강함이란 개인의 헌신을 쌓아올린 전통과 역사의 상아탑.

     

    ‘긴 세월의 파편이라도 건져내려면 개인의 힘이 조직을 뒤흔들 정도로 강하지 않으면 안 돼♡’

     

    고개 숙인 로지니의 뺨을 오크노디의 작은 손가락이 쿡 찔렀다.

     

    “로지니. 울어요?”

    “안 울어. 조금… 체념했을 뿐이지. 아카데미 1학년이 되고 여러 일들을 겪으면서 이런 나라도 뭐라도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다 착각이었어. 그런 현실을 깨달았어. 단지 그것뿐이야.”

    “그럼 제가 정보를 얹어줄까요?”

    “왜?”

     

    로지니의 의문은 타당했다.

     

    “마탑에서도 해주지 않는 지원을 네가 왜 해주는데. 나한테 대체 뭘 바라는 거야? 해줄 수 있는 것 따윈 아무것도 없는데!”

    “음. 종말플래그 관리라고 할까요?”

    “종말플래그…?”

    “저는요. 로지니가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

    “세상을 불태우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나더라도 마지막까지 곁에 있어줄 수 있어요.”

     

    매스각키 황녀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자신도 모르게 그녀는 두 손을 들어 제 입을 틀어막았다.

     

    “로지니는 좋은 사람이니까요. 좋은 사람은 지루해도 보살펴주고 싶은 구석이 있어요. 그런 배드엔딩을 맞이하게 두고 싶지 않아요!”

    “네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어. 샌드쿠커처럼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심지어 나보다도 더 어린 아이인데 내가 왜 너한테 이런 말을 들어야해?”

    “로지니보다 훨씬 못되고 나쁜 사람들도 떵떵 거리며 잘사는데 로지니만 나쁜 일을 겪고 무너지는 건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하니까요!”

     

    매스각키 황녀는 순간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재단에는 이미 계획이 있는 건가?

    입지가 불안한, 의지할 구석이 없는, 적색마탑의 이름만을 빌릴 뿐인 저 힘없는 소녀마저도 재단의 목적을 위해 이용할 계획이.

     

    “혹시 제가 도와줘서 싫어요?”

     

    주춤거리며 조심스럽게 묻는 오크노디.

    소심하게 얼굴을 올려다보는 평상시와 어울리지 않는 행동에 로지니의 얼굴 위로 죄책감이 떠올랐다.

     

    “빚을 다 갚지는 못할 수도 있어.”

     

    로지니는 고개를 숙였다.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릴지도 몰라.”

     

    그녀의 몸 위로 열기가 느껴졌다.

     

    “그래도 괜찮다면, 역시 도와줬으면 좋겠어…!”

    “후후. 걱정 말아요. 하비노디는 대중과 약자의 친구이니까요!”

    “오크노디…!”

     

    고맙다며 눈물을 글썽이는 로지니나 감동적이라며 고개를 끄덕이던 매스각키나 내심 고개가 갸웃해졌다.

    하비노디는 또 뭐지?

     

    “정보는 얹어주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지금의 대화로 얻은 정보를 가산하여 평행이 이루어졌습니다.”

    “와 정말요?”

    “VIP고객이신 오크노디 님과 일반고객 로지니 님의 우정, 그리고 <하비>의 의지를 잇는 용기와 결단을 정보로 감안하였습니다.”

     

    하비. 하비.

    이 이름을 왠지 잊어서는 안 될 것만 같았다.

    매스각키 황녀는 속으로 되새겼다.

    아카데미에 돌아가면 꼭 알아봐야겠다고.

     

     

    * * *

     

     

    적색마탑의 허술한 수비는 이미 널리 알려졌다.

    적색마탑이 스스로 의도했기 때문이다.

    로지니는 충격에 빠졌다.

     

    ‘긍지 높은 마탑이 어떻게 그런 짓을!’

     

    아니, 설마 함정인가?

    마인을 속여서 끌어들이려는 함정이겠지?

    마지막 기대를 담아 찾아간 적색마탑.

    아니겠지.

    아닐 거라고 지부 문을 여는 순간까지도 기대했건만.

    발을 들이자마자 전해지는 열기로 깨달았다.

    구매한 정보는 사실이었다.

    지부를 지킬 마법사들의 열기는 너무나도 작았다.

    속성친화력 수련에 최적화된 화산지대임에도.

    이곳에 머무르는 적색마탑 마법사들의 수행은 시설의 중대함과 가치에 비해 너무나도 작았다.

    로지니의 가슴 속에 의심의 불길이 치솟았다.

     

    “적색마탑은 정말로 습격에 당할 위기에 놓인 게 맞을까? 여기 있는 사람들은 전부 비주류 파벌 사람들이잖아. 적색마탑의 진체는 자기들 주류학파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일삼았으면서 이럴 때만 없다니!”

     

    기존대로라면 주류파벌이 절대로 놓칠 리가 없는 주요시설을 텅 비운 주류파벌.

    적색마탑의 불을 해석하는 학파 중에서도 최대의 세력을 자랑하는 폭발의 <작렬炸裂>학파는 코빼기도 보이지도 않았다.

    이곳에 남은 이들은 적색마탑 내 과반수를 차지하는 작렬학파에 비해 훨씬 한미하여 제자 몇 명도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약소파벌이다.

     

    열의 파동을 전문화로 삼은 <열파熱波>학파.

    빛과 열을 동반한 산화를 전문화로 삼은 <연소燃燒>학파.

     

    대규모 화염을 전문화로 삼은 <적염赤炎>학파의 로지니는 그보다도 못하다.

    제자가 단 한 명뿐인 단절 직전의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는 학파.

    누가 누굴 걱정 하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처지는 더욱 열악하겠지만…

     

    “주류학파가 설계한 함정이라면 모두를 데리고 그냥 달아나면 되잖아요! 굳이 남이 떠넘긴 책임을 대신 짊어질 이유가 있어요?”

     

    자유분방한 오크노디의 말이 어쩌면 정답에 가깝다는 것을 알아도 그녀는 수긍할 수 없었다.

     

    “그럴 수는 없어. 내가 외면하거나 지부에 남은 비주류 학파의 선배분들을 대피시키더라도 그분들은 돌이킬 수 없는 평판의 피해를 입을 거야. 이 판이 그려진 시점에서 선배들은 이미 벗어날 수 없어. 이건 주류학파의 함정이야.”

    “들어본 적 있어♡ 적색마탑은 주류학파와 비주류학파의 밸런스가 무너진 허접마탑이라고♡”

     

    매스각키 황녀의 말은 정말 킹받지만 부정할 수 없는 지적이었다.

     

    “황녀의 말이 맞아. 그래서 더 그분들을 지켜드리고 싶어.”

    “왜요?”

    “열파학파와 연소학파의 선배 분들은 주류작렬학파와는 달랐어. 노쇠한 스승님을 비웃지도 않았고, 그분의 길을 존중해주셨어.”

    “아하.”

    “적염이란 그저 새빨간 불꽃에 이끌렸을 뿐인 바보 같은 학파야. 기원은 오래되었지만 시대가 발전하며 불의 속성이 분류되고 파헤쳐지며 낡고 구태의연한 옛 시대의 학파로 전락했어. 부정할 마음도 없고. 실제로도 그게 사실이니까.”

     

    로지니는 그저 진솔하게 자신의 마음을 전했다.

     

    “젊은 마법사들은 명확한 현상과 함께 마법의 위력을 직관적으로 올려줄 수 있는 작렬학파를 추종했고, 위력만을 앞세우는 것이 싫었던 이들도 다른 학파의 전문화 특성에 따라 열파학파나 연소학파, 소환계에 발을 걸친 화령학파 따위를 추종하면 추종했지 적염학파에 들어오지는 않았어.”

    “그럼 로지니는 왜 적염학파에 들어갔어요?”

    “내게 불의 첫 인상은 늙은 스승님이 보여주셨던 동글동글하고 귀여운 불꽃이었어. 떠돌이마법사들이 으레 보여주는 관상용 마법 쇼였지. 위력도 효력도 전부 상관없었어. 나한테 있어서 불이란 사람을 효과적으로 죽이는 폭발도, 적은 마나로 다양한 효과를 낼 수 있는 열파나 연소도 아니었던 거야.”

     

    그저 즐거움만을 위한 존재.

    기쁨을 일으키기 위한 불빛.

     

    “원시적이네♡ 모닥불 감성. 싫지는 않아♡”

     

    세상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1학년일 매스각키 황녀의 공감에 로지니는 왠지 멋쩍은 기분이 들었다.

     

    “비주류 학파가 무너지면 일인전승의 적염학파 따위, 순식간에 사라질 거야. 나야 마탑을 나가면 그만이지만 스승님이, 학파를 이끌어온 선대 분들의 노력이 모두 무가치하다고 버려지는 것은 인정할 수 없어. 그러니 같이 베수비오 화산지부를 지켜줘.”

    “후후. 로지니도 참 겁이 많다니까요. 한참 전부터 도와드리겠다고 몇 번이나 말씀드렸잖아요.”

    “네가 생각했을 적색마탑은 주류학파이고, 날 돕더라도 주류학파의 도움은커녕 배척을 당할 뿐인데 그런데도 돕겠다는 거야…?”

    “상관없어요. 마탑은 제가 그리는 미래에 딱히 필요한 존재가 아니니까요!”

     

    도대체 자신만의 도화지에 무슨 그림을 그리고 있을지 겁이 나는 아이지만, 오늘만큼은 그런 오크노디의 호언장담이 더욱 든든한 로지니였다.

     

    “덤으로 지부분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설득하기도 귀찮아서 방금 한 대화를 안에 계신 모든 분들에게 전해주었어요. 두 번 설명은 안 해도 돼요!”

    “뭐어? 너, 너 잠깐만. 그 손 위에 떠오른 마나술식은 설마…?!”

     

    비주류 학파 선배님들 앞에서는 차마 부끄러워서 전하지 못할 진심이 모조리 전해진 건가?!

    아니나 다를까, 불길한 예감은 현실로 적중했다.

    지부 문이 벌컥 열리더니 중장년층의 마법사들이 우르르 튀어나왔다.

     

    “로지니, 네가 그런 깊은 생각으로 우릴 도와주러 왔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모든 것을 터뜨리고 흩뿌릴 뿐인 작렬학파에는 존재하지 않는 불의 온화함을 이 어린 견습마법사가 깨우치다니, 마탑의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구나.”

    “적색마탑의 적염에는 감동이 있다…!”

    “적염펀치! 적염펀치! 적염펀치!”

    “적노께서도 제자를 이토록 잘 키우셨으니 참 뿌듯하시겠어.”

    “하나뿐인 제자가 잘 자라주어서 다행이야.”

    “우린 네가 자랑스럽단다, 로지니!”

    “우리학파 막내가 참 반듯한 젊은이인데 남자친구로 어떻게 생각하니?”

     

    환영인사와 함께 쏟아지는 무수한 박수갈채!

    느닷없이 공개고로시를 당한 로지니의 얼굴이 적색마탑의 깃발만큼 새빨개졌다.

    일말의 악의도 없이 사람을 고로시할 수 있는 다크프린세스 오크노디의 사악함은 역시 이 아이를 두고 방심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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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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