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482

       시간은 흐른다.

        

       이제는 잡아서 뒤로 돌리는 것도 불가능했기에, 나는 그 시간을 그저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의외로 그건 그렇게 나쁜 감각은 아니었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시간은 소중하다는 걸, 다시 한번 제대로 깨우칠 수 있었으니까.

        

       시간을 돌릴 수 있다고 하더라도, 사실 선택할 수 있는 쪽은 한 방향뿐이다.

        

       되돌리면 상대에게서는 그 기억이 사라지고, 내가 이루어놓았던 것도 완전히 사라지니까.

        

       몇 번이고 되돌리면서 내가 원하는 결과를 선택하고 나면, 나에게 남는 것은 결국 다시 시간을 앞으로 놓아주는 것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주제에, 나는 내가 시간을 무한정 가지고 놀 수 있는 것처럼 굴었다.

        

       결국 지금 내가 누리는 시간도 그렇게 선택된 결과였을 뿐이다.

        

       지금이야 뭐, 다들 내가 시간을 돌리던 걸 기억하긴 하지만.

        

       “꽃을 보십니까?”

        

       “응, 꽃을 보고 있어.”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나는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다.

        

       공부를 했다. 셀 수 없을 정도로 시간을 많이 돌리며 탄탄하게 다져둔 실력이 밑바탕이 되어서인지, 의외로 성적은 준수하게 나왔다. 이전처럼 앨리스와 순위권을 다투는 일은 없었지만, 나는 나름대로 만족했다.

        

       운동도 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을 돌리면 어차피 다 되돌아가니까’라는 말은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운동신경은 여전히 앨리스나 클레어에 비하면 떨어지지만, 1년 전의 나보다는 훨씬 좋아졌다. 하긴, 상대가 검성인데 좋아지지 않을 수가 없지.

        

       그리고 무엇보다, 추억을 만들고자 노력했다.

        

       많은 기억을 새겨보고자 노력했다.

        

       그토록 남아돌던 ‘시간’이 대부분 사라져버린 뒤로, 그게 비로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여유가 없었다.

        

       공부하고, 운동하는 와중에도 아이들을 꾸준히 만나고, 대화하고, 친분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언젠가 멀리 떨어지더라도 서로 잊지 않고, 다시 만났을 때 전혀 어색하지 않게 웃을 수 있도록.

        

       내가 장담하는데, 그건 나름대로 효과를 보았다.

        

       내 옆에서 미소 짓는 레나를 보면 확실했다.

        

       “동방에서 모셔 온 나무라는 모양이야. 예쁘지?”

        

       작년 여름 정도였을까.

        

       대륙의 다른 국가들과 교역을 넓히기로 했다. 온갖 품목들이 실험용으로 거래되었는데, 이 벚나무도 그중 하나였다.

        

       이렇게 큰 나무를 대체 어떻게 여기까지 옮겨온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실 처음 아이디어가 나왔을 때는 조금 우려했다. 제국이 판도를 넓혀서 언젠가 붕괴하고 말 식민제국 건설에 열을 올리는 것이 아닌가 하고.

        

       하지만 동쪽의 나라들은 나름대로 자기들 방식의 파워게임을 하고 있었다. 제국에 비해 기술력은 확연히 떨어지긴 했지만, 그들 나름의 방식대로 발전해와서 의외로 기술력 수준은 마냥 떨어지지만은 않았다.

        

       하긴, 이 세계관은 내가 저쪽 세상에서 했던 게임의 세계관과 같다.

        

       그 세계관에서 ‘동방’의 설정이 아직 자세하게 밝혀지진 않았지만, 언젠가 주 무대가 될 날이 올 거라고 누구나 예상했다.

        

       당연히 서방 국가에게 일방적으로 밀릴 정도는 아니겠지.

        

       아무튼, 그런 품목으로 들여온 첫 번째 벚나무는 아카데미에 심어졌다.

        

       그리고 봄이 오자, 화사한 벚꽃이 피었다.

        

       지나가던 학생들도 이 앞에 한 번씩은 멈춰서 입을 헤 벌리고 나무를 올려다볼 정도의 아름다운 벚꽃.

        

       “그렇습니다. 정말…… 예쁘네요.”

        

       레나의 컨셉은 아직 완벽하게 풀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 얼음 같던 표정은 서서히 풀리고 있어서, 지금은 그 풀린 것을 누구나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였다.

        

       솔직히 조금 질투가 났다.

        

       저것도 내가 노리던 방식이었는데. 얼음같이 차가운 미소녀였다가, 서서히 감정을 열어가는 거. 레나는 그걸 정말 완벽하게 해내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내후년 이 시기에 졸업할 때쯤이 되면 레나도 우리 앞에서 자주 활짝 웃는 성격이 되지 않을까.

        

       “언니!”

        

       그렇게 레나와 함께 벚나무를 올려다보고 있으니, 클레어가 달려와서 내 팔을 끌어안았다.

        

       “꽃 보고 있었어?”

        

       “응.”

        

       “예쁘네, 정말. 작년에 들여올 때는 그냥 평범한 나무 한 그루라고 생각했는데.”

        

       언젠가 이 벚나무를 잔뜩 심어서, 봄만 되면 벚꽃잎이 휘날리는 거리를 만들어볼까. 서양 배경 한가운데 그런 거리가 있어도 나쁘지는 않을 거다.

        

       “언니, 내가 들었는데, 가족여행 갈 생각이라면서?”

        

       “……응.”

        

       샤를로트와 왕국 측과도 이야기가 되었다.

        

       좋으나 싫으나, 이쪽 세상은 아직은 신분제가 강하게 남아있는 세상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옅어질 운명이긴 하지만, 지금 당장은 귀족이나 황족, 왕족이라는 이유로 죄를 용서받는 것이 가능한 시기다.

        

       그리고 샤를로트의 아버지인 벨부르 국왕도, 결국 왕족이다.

        

       벨부르의 체면을 챙기고, 이득과 명분을 다 챙기고 나면 남은 사람들이 어떻든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런 사고방식은 샤를로트에게도 국왕만큼은 아니더라도 그대로 남아있어서, 우리의 생각에 결국엔 동의했다.

        

       물론 그 동의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건, 앨리스와 나라는 존재였다.

        

       자기 친구들이 자기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을 보기 싫다는 생각.

        

       ……샤를로트에게는 하나 빚을 졌다고 생각하려고 한다. 샤를로트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지만.

        

       “…….”

        

       “가족 간의 이야기에 외부인이 낄 수는 없죠. 부디 편하게 이야기 나누시길.”

        

       레나가 나를 향해 웃어 보이고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나도 레나에게 살짝 손을 흔들어 주었다.

        

       내 인사를 본 레나는 기분 좋은 표정으로 몸을 돌려 우리와 멀어졌다.

        

       “그거 말인데, 나도 같이 가도 될까?”

        

       “…….”

        

       나는 클레어를 빤히 바라보았다.

        

       “아, 물론 나는 ‘그레이스’야. 내 부모님도 그레이스 영지에 계시고. 그런데, 그건 언니도 마찬가지잖아?”

        

       클레어가 짓궂게 웃으며 말했다.

        

       “어머니는 언니더러 편하게 생각해도 좋다고 하셨으니까.”

        

       “……그랬지.”

        

       “그러니까…… 뭐, 나도 형제자매들을 만나보고 싶긴 해. 어쨌거나 피가 섞인 사람들이잖아. 앞으로도 대단히 친하게 지낼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서로 존재 정도는 안 채로 살고 싶어.”

        

       “그렇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핏줄로 따지자면 나야말로 아무래도 관련 없는 존재인데 말이지.

        

       어떻게 이런 식으로 엮여서 여기까지 와버렸네.

        

       “좋아. 앨리스한테는 말해둘게.”

        

       “응.”

        

       내 말에 클레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그 뒤로도 한동안 벚나무를 올려다보았다.

        

       바람이 불 때마다 조금씩 잎이 떨어져 하늘하늘 공중을 날았다.

        

       그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다.

        

       어쩌면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벚나무가 가로수로 심겨 있던, 전생에 살던 내 동네를 조금 떠올렸는지도 모르겠다.

        

       *

        

       그렇게 시간이 조금 지나서, 주말.

        

       일정이 여러모로 바빠서, 우리는 방학 때 여행계획을 잡는 데 실패했다.

        

       어찌 보면 잘된 일이다. 핑계를 대고 너무 여행이 너무 길어지지 않도록 조정할 수 있었으니까.

        

       그렇지 않은가.

        

       황제의 아이들 사이는 몰라도, 황제와 그 아이들 사이의 관계는 아직 어떻게 될지 모르는 사이다.

        

       몇 박 며칠로 시간을 잡고 억지로 버티는 것보다는, 말끔하게 1박으로, 가까운 교외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돌아오는 편이 나으리라.

        

       “그렇게 열심히 짐을 챙길 필요가 있어?”

        

       그리고 그날 아침.

        

       떠나기 한 시간 전, 짐을 직접 챙기는 나를 보고 앨리스가 물었다.

        

       앨리스의 짐은 이미 황궁 안의 하인들이 모두 챙겨서 기차에 실으러 갔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짐을 직접 챙기면서 뭉그적거리고 있는 것이다.

        

       “나도 알아. 설령 이렇게 짐을 챙겨가지 않아도, 우리가 필요하다면 아마 몇 시간 내로 가져다주겠지.”

        

       “그런데?”

        

       “……그냥, 내가 직접 하지 않으면 안심이 되지 않아서.”

        

       이것도 어떻게 보면 직업병이다.

        

       평소에는 괜찮은데, 내가 긴장할만한 작전 직전이 되면 나는 시간을 돌려가면서 장비를 재점검했다.

        

       설령 실패하더라도 그 전으로 돌려 챙겨오면 될 일인데도, 이렇게 하는 편이 마음이 편했다. 아무리 뭐든 질러보는 사람이라도 매번 총 맞고 칼에 베이기는 싫었으니까.

        

       시간을 돌릴 수 없다고 하니 괜히 더 조바심이 나기도 했고.

        

       사실 내가 챙긴 거라고 해봐야 그렇게 대단한 것은 없었다.

        

       낚싯대라든지, 기차 안에서 읽을 책이라든지. 그 외에는 그냥 개인물품들이다.

        

       그런데도 이러고 있는 건, 앞으로 있을 일이 여러모로 ‘작전’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아무런 계획도 없이 참여하는 작전. 그것도 시간을 돌릴 수도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긴장을 안 하겠는가?

        

       “이제 슬슬 출발 안 하면.”

        

       “알았어. 이제 괜찮은 것 같아.”

        

       나는 여행 가방을 탁 닫았다.

        

       그리고 앨리스의 뒤를 따라 방 밖으로 나가, 하인에게 넘겼다.

        

       “뭘 그렇게 긴장해? 네가 계획한 거잖아? 그것도 1년 전부터.”

        

       “……여기서 관계가 깨져버리면 이젠 못 되돌리니까.”

        

       “그래?”

        

       내 말에 앨리스가 말했다.

        

       “너, 그것도 병이야. 시간을 돌리지 못하게 되었다고 해서, 한 번 실패한 일을 재시도하는 게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

        

       “……그런가?”

        

       “나처럼 매번 실패하면서 살아본 사람한테는 어이없는 말이거든?”

        

       앨리스가 웃으면서 한 말에,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그냥 마음 편하게 먹으라고. 어차피 우린 젊잖아. 시간은 많아. 이번에 실패하면, 조금 더 시간을 들여서, 더 공들여서 준비하면 되는 거야. 최악의 상황이라도 우리끼리의 신뢰는 깨지지 않을 테니까.”

        

       “…….”

        

       앨리스의 그 말에, 나는 결국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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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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