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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82

        

       “실마리가 잡히셨습니까?”

         

       “예. 피해자와 원한 관계인 사람이 가장 가능성이 크고, 이집트와 관련된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조건까지 더해지면…. 범인 추리는 것은 어렵진 않겠죠.”

         

       진성이 설명해준 의미를 생각해본다면 범인은 피해자와 원한 관계일 가능성이 컸다.

       영혼이 평생 구천을 떠돌기를 바라면서 이런 잔혹한 짓을 할 정도라면 원한 관계가 아니라면 무엇인가.

         

       게다가 손속이 잔인한 것 역시 원한 관계일 가능성이 컸다.

         

       이런 일을 오래 하다 보면 시체의 잔혹함만 보더라도 범인을 추정할 수 있는 법.

       

       시체가 난도질이 되거나, 너덜거리거나 할 때는 높은 확률로 원한 관계로 인한 살인이었다.

         

       물론 가능성이 높다 뿐이지 다 들어맞는 것은 아니기는 했다.

       범죄와 얽혀 있거나 첩보 쪽에 얽혀 있다면 특별한 원한 관계가 아니더라도 매우 잔혹하게 사람을 죽이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거기다가 정신병자나 연쇄살인범 같은 경우에는 말할 필요도 없겠고.

         

       하지만 그 가능성이라도 더해진 게 어디인가.

       지금 경찰들은 실마리가 없어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이 정도만 해도 감지덕지였다.

         

       게다가 또 다른 실마리도 있지 않은가.

         

       바로 범인이 이집트와 관련된 지식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

         

       단순히 교과서에서 볼법한 문명이 어쩌고 피라미드가 어쩌고 하는 단순한 내용이 아니라, 사자의 서니 심판이니 심장 달기 의식이니 하는 조금 더 깊이 들어가야 하는 지식은…분명히 실마리가 될 수 있었다.

       대학교에 다닐 때 이집트와 관련된 교양 수업을 들었다거나, 이집트에 관심을 가졌다거나, 이집트에 여행을 간 적이 있다거나 하는…충분히 조사할 수 있는 실마리 말이다.

         

       “게다가 이집트라는 나라가…. 음. 바가지와 과도한 호객 행위로 악명이 좀 높은 나라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 같은 경우, 이집트는 패키지여행으로 가는 것이 보통이고요. 그런 점을 생각해본다면…. 예. 범인을 추리기 더 좋겠군요.”

         

       법의학자의 얼굴은 희망에 젖어 있었다.

       하지만 진성은 법의학자의 희망찬 말에 맞장구를 쳐줄 수가 없었다.

         

       법의학자가 아주 중요한 사실을 하나 까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흠. 안타까운 이야기입니다만, 범인이 한국인이 아닐 가능성도 큽니다.”

         

       “예?”

         

       법의학자가 까먹고 있었던 것.

       그것은 바로, 범인이 외국인일 수 있다는 가능성이었다.

         

       법의학자는 시체 그 자체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그 가능성을 간과해버리고 만 것이다.

       여러 외국인이 몰려드는 충주에서 시체가 발견되었음에도 말이다!

         

       “…이런. 그렇겠군요.”

         

       법의학자는 진성의 말을 듣고 깨달았다.

         

       “외국인과 이집트라…. 이거 참, 곤란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법의학자의 얼굴은 그리 어둡지는 않았다.

       아차 싶은 표정을 짓기는 했지만, 그저 그뿐이었다.

         

       뭐, 당연한 일이리라.

         

       용의자를 추리고, 조사하고….

       이건 법의학자의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건 경찰의 일이다.

       그의 일이 아니었다.

         

       ‘그 녀석, 고생 좀 하겠군.’

         

       법의학자는 『 이놈의 형사 짓, 어휴. 집에 들어가질 못하니 원. 아내랑 아들이 내 얼굴을 까먹겠어. 』라며 허구한 날 불평을 늘어놓으면서도, 수사에 들어가기만 하면 눈에 불을 켜고 범인을 잡기 위해 노력하는 자기 친구를 떠올렸다.

         

       ‘좀 조사해야 할 범위가 넓기는 한데…. 뭐 경찰이 대대적으로 나서는 걸 보니 갈려 나갈 일도 없을 테고. 실마리도 잡혔으니 금방 용의자 찾아내겠지.’

         

       법의학자는 잠시 친구를 떠올렸다가 시선을 돌려 진성을 바라보았다.

         

       “흐음. 그것 말고는 더 없겠습니까?”

         

       “예. 일단 눈에 보이는 것은 그 정도로군요.”

         

       “혹시 그, 강령술이라던가 그런 건…?”

         

       “흐음. 강령술이라.”

         

       진성은 법의학자의 말에 무언가 잠시 생각하는 듯 턱을 쓰다듬었다가 고개를 천천히 좌우로 흔들었다.

         

       “안 되겠습니다.”

         

       “아, 그렇군요.”

         

       법의학자는 진성의 반응에 눈을 깜빡였다가, 진성의 젊은 외모를 보고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전문가 같은 느낌 때문에 잠시 잊고 있었지만, 눈앞의 주술사는 이제 막 성인이 된 젊다 못해 어리기까지 한 청년이었다. 심지어 주술 불모지인 대한민국의 토종 주술사이기까지 했고.

         

       그러니만큼 강령술을 잘 모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럴 수 있지.’

         

       법의학자는 진성이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음에도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더 이상 다른 방법에 관해 묻지 않았다.

         

       하지만….

         

       ‘강령술을 해봤자 의미가 없을 것이로다.’

         

       실제로 진성이 고개를 흔든 것은, 강령술을 사용하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그가 아는 강령술만 해도 어마어마했으니까.

       시신의 머리카락을 사용해서 혼령을 부르는 방법, 시신의 뼈를 이용해서 구조물을 만들어서 부르는 방법, 뼈를 태워서 부르는 방법, 썩은 살점을 그러모아서 우상을 만들어 부르는 방법, 위자 보드 같은 소통할 수 있는 도구를 매개로 부르는 방법, 고인의 물품을 매개로 사념체를 부르는 방법, 관을 재료로 인형을 만드는 방법, 시신 일부를 사용해 인형을 만들어 거기에 깃들게 하는 방법, 약물을 통해 트랜스 상태에 들어간 뒤 영혼을 몸에 끌어들이는 방법, 거울을 이용하는 방법, 기물들을 이용해 진을 만들어서 영혼을 붙들어놓는 방법 등….

         

       그가 알고 있는 강령술은 쉬이 세기 힘들 정도였다.

         

       진성이 돌았던 유적이 몇이고, 수집했던 주술이 얼마던가.

       그가 강령술을 모른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하지만 그런데도 진성이 고개를 저은 것은, 강령술이 의미가 없기 때문이었다.

         

       딱 봐도 강령술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수작을 부린 게 보였으니까.

         

       ‘갈비뼈에 새겨진 ‘바’, 이미 사라져버린 ‘카’, 비어버린 ‘이브’.’

         

       이 세 가지 요소만 하더라도 강령술을 방해하고 있는데,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사라져버린 진짜 얼굴 가죽. 그 위를 덮은 가짜 얼굴. 뭉개지고 지워져 버린 지문. 독성으로 오염된 피.’

         

       진성은 알 수가 있었다.

       어째서 이 시체의 얼굴 가죽이 없어진 것인지.

       어째서 가짜 얼굴이 씌워진 것인지.

       혈액이 어째서 오염이 된 것인지.

         

       이 모든 것은, 상징이었다.

         

       그 사람의 개성이자 존재에 큰 영향을 끼치는 얼굴 가죽을 뜯어 인연을 끊어버리고, 그 위에 가짜 가죽을 덮음으로써 진짜와 그림자의 차이를 없애며 둘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었다. 거기에 혈액을 오염시킴으로써 혈액을 타고 맥동하는 원초적인 생명의 힘을 더럽혔으며, 쉬이 정체를 알지 못하도록 해서 ‘렌’, 즉 어머니가 자식에게 젖을 줄 때 주는 최초의 이름에 해당하는 고대 이집트인들이 생각하는 ‘영혼’을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를 가려버리기까지 했다.

         

       이 모든 것이 누군가가 강령술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요소였다.

         

       ‘그리고 강령술을 방해하면서도, 영혼이 안식을 취하지 못하도록 하기도 하지.’

         

       잔혹하리만치 철저하다.

         

       어지간한 원한으로는 이렇게까지 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할 정도다.

         

       하지만.

         

       ‘흉수는, 이 자와 아무런 관계가 없음이라.’

         

       오히려 이러한 철저함이, 진성에게 확신을 불러왔다.

         

       이 시체를 만든 흉수는…그가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것과는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흡사하다.’

         

       진성은 알고 있었다.

       악인이라고 생각하는 이를 철저하게 짓밟는 주술사를.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주술을 총동원해서 악인이 죽어서도 안식을 취하지 못하게 하는 사람을.

       편집증에 걸리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악인의 영혼이 편안히 눈을 감지 못하게 상징을 도배시키고, 영혼을 자기 몸에서 해방하지 않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이는 존재를.

         

       그를.

       그 주술사를.

         

       진성은 알고 있다.

         

       ‘휠레.’

         

       미래에는 지옥으로 불리게 될 남자.

       지금은 죽음을 자칭하며 세상을 돌아다니고 있는 주술사.

       점괘에서 속삭였던 사람.

         

       배회하는 죽음.

         

       흉수는 죽음이다.

         

       이건, 확신이었다.

         

       하지만….

       진성은 확신하였음에도, 법의학자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여럿이니.

       첫째는 흉수를 말해도 의미가 없기 때문이요.

       둘째는 굳이 휠레의 행사를 방해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요.

       셋째는 휠레가 그와 그의 주변인에게 해가 될 자가 아니기 때문이요.

       넷째는 휠레가 악인을 죽이고 다니는 것이 그에게 손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진성은 휠레에 대해 입을 여는 대신에, 다른 것을 입에 담았다.

         

       “시체가 한 구 더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것도 볼 수 있겠습니까?”

         

       “예? 아, 그거야 어렵지 않지요.”

         

       채찍에 의해 맞아 죽었다는 시체.

       일본인 격투가의 시체를 볼 수 있냐는 말을 꺼낸 것이다.

         

       법의학자는 진성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뚜껑을 열어 또 다른 시체를 꺼냈다.

         

       드르륵.

       철컹.

         

       그렇게 시체 한 구가 더 꺼내져 침대 위에 올랐다.

         

       “아마 들으셨겠지만, 이 사람은 채찍에 맞아 사망했습니다. 보시다시피 채찍에 맞아서 아주 많은 상처가 생겼죠. 피부가 터지고, 근육이 터지고, 심지어 뼈가 드러날 정도로 살이 너덜거리고…. 그리고 이걸 보시면 아시겠지만, 곳곳에 멍이 들어있지요? 상처도 많고.”

         

       “피를 굉장히 많이 흘렸겠군요.”

         

       “그렇죠. 많이, 정말로 많이 흘렸습니다. 격한 전투를 벌인데다가, 전투 중에 계속해서 상처가 늘어났을 테니…. 쇼크가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겠지요.”

         

       “쇼크라….”

         

       “예. 출혈량이 상당했을 테니…. 아마 비가역성 쇼크 상태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 겁니다.”

         

       진성은 법의학자의 말을 들으며 시체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렇군요. 흐음. 주술적으로 특별한 건…. 보이진 않습니다. 흠. 더 봐도 알 수 있는 건 없을 것 같군요.”

         

       “흠, 역시 그렇군요….”

         

       법의학자는 진성의 말에 실망한 듯 답하고는 침대를 끌어 시체를 다시 원래 있던 곳에 집어넣기 시작했다.

         

       덜컹.

       덜컹.

         

       덜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다시 뚜껑이 열리고, 두 구의 시체는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차가운 냉기가 가득한 곳으로.

         

       그 속에서 그들은 범인이 잡힐 때까지 모습을 온전히 보존한 채 잠들게 되리라.

         

       그렇게 시체 두 구는 사라지고, 살아있는 두 사람만이 빈 곳을 온전히 차지하게 되었다.

         

       살아있는 그 두 사람은 곧 그 공간을 떠나게 될 터이니, 이제 이곳은 품고 있는 냉기만큼이나 시린 침묵 속에 다시 사람이 찾아오기를 기다리게 되리라.

         

       “후우. 이거, 시체 보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자, 빨리 올라가서 커피 한잔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커피. 좋지요.”

         

       다만 조금 전까지 주인의 몸에 붙어있었을 한 올의 머리카락이 벌레처럼 꿈틀대며 박진성의 명령에 따라 진성의 바지 주머니에 몰래 들어가게 되었으니, 영안실은 이전보다는 덜 외롭게 될 것이 분명했다.

         

       한 몸이었던 것은 멀리 떨어져도 한 몸인 법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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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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