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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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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전. 전(前) 용사라고요? ( 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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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축제가 지나간 자리에는 미지근한 열기와 썰렁한 여운이 흐른다. 이안과 아리아는 축제가 빠져나간 공기를 천천히 헤치며 걸었다.

        ​

        “………후아. 정말로, 정말로 재밌었어요.”

        ​

        “다행이네.”

        ​

        아리아의 뺨은 아직도 축제의 열기가 남아 후끈거렸다. 이안은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헤, 헤헤. 오라버니랑 같이 다녀서 더 재밌었던 것 같아요.”

       

       

       아리아가 헤실헤실 웃었다. 

        ​

        ‘여동생이라는 게 이렇게나 좋은 거였구나.’

        ​

        전 세계의 모든 오빠가 들으면 기겁할 생각을, 이안은 아무렇지도 않게 해냈다.

        ​

        “……아. 시간이.”

        ​

        뉘엿뉘엿 설원에 걸쳐있던 해가 저물고, 그 반대편에서부터 어둠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곳곳에서는 축제의 뒤풀이를 위해 술과 음식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

        밤이 찾아온다.

        이제부터는 어른들의 축제가 시작되는 시간이었다.

        ​

        “……이안 오라버니. 어머니를 뵈러 가야 해요.”

        ​

        “그래. 어서 가자.”

        ​

        “……이쪽이에요.”

        ​

        아리아는 이안을 이끌고 도시를 가로질렀다.

        시끄럽고 따뜻한 인간의 땅을 벗어나자 무지막지한 설원이 펼쳐졌다. 야생과 생존의 영역이다.

        ​

        “둘째 어머니는 도대체 뭐 하는 분이셔?”

        ​

        주변에 듣는 귀가 사라진 것 같으니, 이안은 오랫동안 속에 담고 있던 의문을 꺼냈다.

        ​

        도대체 둘째 어머니는 뭐 하는 분이시지?

        불을 키우는 자들은 도대체 뭐고? 그게 아리아의 몸이 조숙한 것과 관련이 있나?

        ​

        “……아, 저희는 투쟁하는 자들ㅡ”

        ​

        “자세하게 부탁할게. 둘째 어머니가 이끄는 집단의 이름부터.”

        ​

        이안이 한 발 앞서 선수 쳤다. 저번처럼 불친절한 설명은 사양이다.

        ​

        “……오라버니는 모르시는구나. 저희는 ‘잿더미의 구도자’라는 이름을 쓰고 있어요. 어머니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이죠.”

        ​

        “오….”

        ​

        잿더미의 구도자. 이름부터 심상치 않은 느낌이다.

        ​

        “……모든 생명체의 영혼에는 불꽃이 있어요. 생존에 대한 갈망이죠. 저희는 그 불꽃을 끌어내서 다루는 방법을 익혀요.”

        ​

        “아. 그러면 저번에 오크들이랑 싸울 때 네가 보여줬던 게?”

        ​

        “네.”

        ​

        아리아의 주먹에서 붉은 기운이 짙게 일어났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이 영락없는 불꽃이었다.

        ​

        뽀득- 뽀득-

        ​

        설원은 설산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

        “……보통은 오크분들이 이 불꽃을 잘 다뤄요. 그래서 저희 중에는 오크분들이 많고……. 그다음은 언니들. 남자들은 불꽃을 다루지 못하는 분들이 많아요.”

        ​

        “그 문신이라는 건?”

        ​

        “……아. 그건….”

        ​

        잠깐 고민하던 아리아가 주변을 둘러봤다. 인기척 하나 없는 곳이다. 밤이 찾아온 마수의 산은 숙련된 사냥꾼들도 쉬이 올라오지 않는 곳이니.

        ​

        “으하악?!”

        ​

        이안이 괴상한 비명을 내지르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

        “아, 아리아?! 옷은 갑자기 왜?!”

        ​

        아리아가 뜬금없이 웃옷을 벗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안은 초인적인 반사신경으로 뒤돌았기에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

        “……? 오라버니. 이곳에는 아무도 없으니까 괜찮은ㅡ”

        ​

        “안 괜찮아!”

        ​

        “……일단 제 문신은 등에 있어서.”

        ​

        등에 있다고?

        ​

        이안은 조심조심 뒤돌았다. 가렸던 눈을 조심스레 떴다. 

        아리아의 하얀 등에 화려하게 장식된 불 문양이 눈에 들어왔다.

        ​

        “……이렇게, 불꽃을 얼마나 능숙하게 다루는지, 얼마나 크게 키웠는지에 따라 문신이 커져요. 극에 다르면… 어머니처럼 아무것도 안 보이고요.”

        ​

        “아, 알았으니까 얼른 옷 좀….”

        ​

        아리아가 주섬주섬 옷을 입었다. 이안은 그제야 가렸던 눈을 제대로 뜰 수 있었다.

        ​

        “후…. 아리아, 네 몸을 그렇게 함부로 막 보여주는 건ㅡ”

        ​

        이안은 그 자리에서 자신의 몸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에 대해 설교를 늘어놓았다. 정신과 나이는 9살이라고 하지만, 신체는 16살의 그것이니. 아리아는 자신의 몸을 더 소중히 여길 필요가 있었다.

        ​

        “……우으. 오라버니, 잔소리쟁이.”

        ​

        이안의 잔소리에 질린 아리아가 귀를 막고 달려 나갔다. 이안도 그 뒤를 쫓아 달렸다.

        ​

        “헉……. 허억…. 아이고 죽겠다.”

        ​

        체력의 차이는 컸다. 아리아가 날쌘 토끼처럼 산을 뛰어오르는 동안, 이안은 퍼진 마차처럼 간신히 산을 올랐다.

        ​

        체력 분배 없이 마구잡이로 달린 이안이 쓰러지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

        ​

        “……다 왔어요.” 

        ​

        “…고맙다…….”

        ​

        결국 꼴사납게 아리아의 등에 업혀서 산에 올라온 이안.

        9살 여동생에게 업혀서 옮겨졌다는 사실에 얼굴이 터질 듯 붉어졌다.

        ​

        “차ㅡ앗!”

        ​

        “히요옷ㅡ!”

        ​

        저 멀리서 쩌렁쩌렁한 기합이 들려왔다.

        ​

        아리아와 이안이 도착한 곳은 마수의 산 으슥한 곳에 있는 커다란 부락이었다. 울타리도 있고, 오두막도 있었고, 작지만 가축을 키우는 곳도 있었다.

        ​

        “…저게 도대체 뭐야?”

        ​

        하지만, 다른 부락과 확연히 다른 것이 있었다.

        마을 중앙, 가장 커다란 공터에서 오크와 여인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주먹과 발을 내지르고 있었다.

        ​

        그들의 열정이 뜨거운지, 추위를 뚫고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착각마저ㅡ

        ​

        “아니, 진짜로 아지랑이가 일고 있잖아?”

        ​

        “……잿더미 구도자분들이세요. 그리고 저기에ㅡ”

        ​

        아리아의 손끝이 공터에 위치한 단상을 향했다. 

        모두를 우러르는 가장 높은 단상 위, 한 여인이 고고한 시선를 보내고 있다.

        ​

        “…둘째 어머니?”

        ​

        팔짱을 끼고 진지한 시선으로 공터를 내려보던 데이지가 휙- 고개를 돌렸다. 한순간 데이지의 신형이 사라졌다.

        ​

        “…왔니.”

        ​

        “……네, 어머니.”

        ​

        아리아와 데이지는 짧게 서로 인사했다. 옆에서 보고 있는 이안은 숨이 조금 막혀왔다.

        ​

        “…이안, 이라고 했지. …오늘 처음 봤지만 한스 님을 똑 닮았구나.”

        ​

        “예? 저희 아까 만났던ㅡ”

        ​

        “…오늘 처음 봤지만. 얼굴이 낯익구나. 추울 텐데 우선 들어오렴.”

        ​

        “아, 예…….”

        ​

        데이지는 자신이 보였던 추태를 없었던 일 취급하고 싶어 했다. 이안도 적당히 어울려주기로 했다.

        ​

        “…모두 자율적으로 수행해라.”

        ​

        “‘“옛!”””

        ​

        구도자들은 저들끼리 조를 만들어 대련을 시작했다. 박터지게 싸우는 모습은 실전을 방불케했다.

        ​

        “쿠에에엑!”

        ​

        “취이이이익!!”

        ​

        “끼야아아아압!!”

        ​

        뼈와 살점, 유혈이 낭자하게 튀어 하얀 눈밭을 더럽힌다. 뜨거운 핏물은 금방 눈을 녹였다.

        ​

        데이지와 아리아는 익숙한 듯 그 사이를 가로질렀다. 이런 분위기에 익숙하지 않은 이안의 어깨만 괜히 위축됐다.

        ​

        데이지가 향한 곳은 제일 큰 오두막이었다. 내부는 제법 따뜻했다.

        ​

        달칵.

        ​

        “마시렴.”

        ​

        데이지가 따뜻한 꽃차를 내왔다. 팔목에 걸려있는 꽃팔찌가 유난히 시선을 끌었다.

        ​

        호롭ㅡ

        ​

        한 모금 마신 이안이 입을 열었다.

        ​

        “그, 둘째 어머니. 제가 돌아가는 상황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

        “……모른다, 라니. 어디서부터 모르니?”

        ​

        “편지에 쓰여있는 약속이라는 것부터 부탁드립니다.”

        ​

        “…아. 그렇구나.”

        ​

        데이지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

        “…약속이라는 건, 케니스 용사님과 한스 님을 내가 한번 구해 드린 일에 대한 보답이란다….”

        ​

        “저희 부모님을 구해주셨다고요?”

        ​

        전 용사랑 용사의 동료를?

        이안은 기겁하는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도대체 어떤 존재가 용사와 그 동료를 궁지에 몰아넣었단 말인가.

        ​

        “…심연에서 있었던 일이지. 마왕과의 싸움에서 내가 두 분을 도와드렸지. 그 대가로 세 개의 소원권을 받았지.”

        ​

        아. 마왕.

        ​

        이안은 납득했다. 

        마왕 발가르, 신대륙 심연의 지배자이자 모든 악마의 제왕.

        ​

        모든 욕망과 유혹을 지배하는, 인류의 대척점에 서 있는 존재. 원래라면 타도해야 마땅한 존재지만ㅡ

        ​

        어쩐 일인지 용사의 은퇴와 함께 마왕의 행적 또한 뚝 끊겨버렸다.

        ​

        덕분에 요즘 마왕에 대한 인식은, 음. 징벌은 해야 하는데, 마땅한 방법은 없고. 

        ​

        뭔가 애매하게 붕 떠버린 느낌이랄까.

        ​

        “…그때 마왕과 한 가지 약속했단다. 서로 때가 되면, 다시 심연에서 만나 못 끝낸 결판을 내기로 했지.”

        ​

        이안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기 시작했다.

        ​

        전 용사 케니스, 그의 동료 한스, 잿더미 구도자들의 지존 데이지와 마왕 발가르까지.

        그야말로 세계관 최강자들의 만남이지 않은가!

        ​

        ‘그런데 내가 그 심연을 도대체 왜…?’

        ​

        데이지가 이안과의 첫 만남에서 말하기를.

        ​

        – “…심연에 갈 준비는 됐니?”

        ​

        이안은 절대 심연에 가고 싶지 않았다. 만약 심연에 간다면, 평범한 자신은 1초도 걸리지 않아서 산산조각이 날 것이다.

        ​

        “둘째 어머니. 그, 그런데 제가 심연에 갈 거라는 말씀은… 서, 설마?”

        ​

        “……걱정 말렴. 너한테 싸우게 시키지는 않을 테니. 그런 방식으로 결판내기에는 서로 잃을 것이 너무 많아졌지.”

        ​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

        데이지는 고개를 저었다. 이 이상 알려줄 수 없다는 의미였다.

        ​

        “…다만 마왕과 약조했던 때가 가까워져서 너를 부른 거란다.”

        ​

        “……? 아니, 잠깐만. 둘째 어머니 말씀이 맞다면 굳이 저를 부르시지 않아도 심연에서 만났을 거란 말씀 아니신가요?”

        ​

        “……맞지.”

        ​

        “그런데 왜 굳이 소원권까지 써가시면서 저를…?”

        ​

        이안은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왜? 가만히 기다려도 결국 만났을 거란 소리 아닌가?

        ​

        잠깐 침묵하던 데이지가 입을 열었다.

        ​

        “………ㅡ.”

        ​

        “예?”

        ​

        너무 작아서 안 들렸다. 

        데이지가 고개를 푹 숙이고 다시 말했다.

        ​

        “……꼭 …얼굴 좀…….”

        ​

        “둘째 어머니. 잘 안 들렸습니다.”

        ​

        보다 못한 아리아가 끼어들었다.

        ​

        “…어머니는 오라버니를 하루라도 빨리 만나보고 싶어 하셨거든요. 그래서 오라버니를 부르신 것 같아요. 하나 남은 소원권을 쓸 정도로.”

        ​

        “아…….”

        ​

        음.

        이안은 고민했다.

        ​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전 용사에게 사용할 수 있는 소원권을 고작 이런 것에…?

        ​

        ‘모르겠다.’

        ​

        범인에 불과한 자신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

        “……흠, 흠.”

        ​

        얼굴이 조금 붉어진 데이지가 차를 들이켰다. 습관적으로 꽃팔찌를 매만지며 침착하려 애쓰는 모습이었다.

        ​

        “…아무튼. 이렇게라도 얼굴을 보니, 무척, 정말로, 반갑구나.”

        ​

        “아하하…. 저도 좋습니다, 둘째 어머니.”

        ​

        “…정말로, 정말로 한스 님을 쏙 빼닮았어.”

        ​

        스윽ㅡ

        ​

        데이지가 이안의 얼굴에 손을 가져갔다. 눈두덩이, 코, 뺨 등을 천천히 훑기 시작했다.

        ​

        “둘째, 둘째 어머니?”

        ​

        누군가 보기에는 야릇할 수 있다 생각하겠지만.

        글쎄.

        ​

        이안은 커다란 거미가 자기 얼굴을 쓰다듬는 기분이었다.

        ​

        “……아아. 그래. 맞아…. 한스 님의 눈도 이런 느낌이었지. 아…. 너는 정말 한스 님을 많이 닮았구나…. 코는 용사님을 닮았고, 입술은 한스 님을….”

        ​

        데이지가 중얼거리며 이안의 얼굴을 더듬었다.

        탁한 무저갱의 눈동자는, 음. 마치 까마득한 밤을 들여다보는 기분이었다.

        ​

        오싹ㅡ

        ​

        데이지는 이안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안을 창문 삼아서, 그 너머. 한스라는 대상을 그리고 있었다.

        ​

        “히익ㅡ!”

        ​

        이안은 풀릴 것 같은 방광을 꽉 참았다.

        ​

        이제 어머니의 결정을 이해할 수 있다. 어째서 자신을 둘째 어머니와 만나지 못하게 하셨는지. 성인식을 치르기 전에 둘째 어머니의 존재조차 알리지 않았는지.

        ​

        ‘아버지…. 당신은 지금까지 어떤 싸움을 해오신 겁니까……!’

        ​

        아아.

        아버지. 

        ​

        당신은 도대체.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휴… 여동생을 아끼는 오빠를 묘사하는게 정말 너무 힘들었습니다…

    여동생은 저와 부모님을 공유하는 숙적일 터… 여동생을 아끼는 오빠라는 것은… 그야말로 창작물 속의 전유물입니다…

    – ‘신선우’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정상인이 없다뇨…!! 케니스…가 나름 정상인 포지션 아닐까요?? 음. 아닌가? 그렇다면 한스는… 으음. 데이지는, 으으으음… 아리아… 는… 으, 으으음… 이안이 유일한 희망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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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Install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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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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