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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83

       전력을 다한 일권을 내지르다 되치기를 당하는 바람에 흙바닥에 처박힌 백화령은 얼굴에 묻은 흙을 털어내고 엉망진창이 된 초원 한 가운데에 서 있는 아라를 노려봤다.

       

       저 빌어먹을 녀석. 본인이 파이스라는 작자의 힘을 파훼해내어 승부를 내기 직전이었거늘 방해를 하다니!

       

       입술을 꾹 깨문 그녀는 아라를 향해 원망을 내뱉으면서 몸을 일으켰다.

       

       본인을 더 짜증나게 만드는 것은 아라 저 녀석이 펼친 검이다.

       

       한없이 느리지만 모든 것을 파훼하는 일검.

       

       저것은 따로 이름이 있는 검술이 아니다.

       

       사실 검술이라고 말하기에도 애매하다.

       

       방금 전의 그 검은 어디까지나 백아라 자신의 경지로 나의 일권을 찍어 누른 것이니까.

       

       내가 내지르는 권의 모든 것을 알기에. 어디를 비틀어야하는 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벌일 수 있는 기행.

       

       저 미친 것은 왜 갑자기 자신의 경지를 자랑하는 게냐.

       

       우리 둘의 대련을 말릴 생각이었다면 그냥 여느 때 하던 것처럼 주먹이나 내지르면 될 것을.

       

       곰방대를 물고 싶단 생각에 품을 뒤지던 백화령은 담뱃대가 박살난 것을 보고 그를 맨바닥에 내던져버렸다.

       

       다른 쪽에 있던 파이스도 표정이 안 좋기는 마찬가지였다.

       

       방금 전 백화령이 승리를 확신했듯 파이스도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분명 백화령이 지니고 있는 무의 경지는 드높지만 그녀가 지니고 있는 육신의 힘은 그렇지 못하니.

       

       파이스의 일검은 분명 백화령을 힘으로 찍어 눌러 그녀를 무너트릴 수 있었을 터인데 아라가 중간에 끼어드는 바람에 중간에 무산되고 말았다.

       

       최초에 당했던 무시를 되갚아 줄 기회가 이렇게 날아가다니!

       

       억울함에 몸서리치던 파이스는 아라를 노려보다가 백화령과 시선을 마주했다.

       

       시선이 교차하는 시간은 짧았지만 두 사람은 그 사이에 서로의 의도를 파악했다.

       

       백화령의 자신의 내기를 끌어 올린다.

       

       파이스와 대련을 하며 어느 정도 소모가 있는 건 사실이다.

       

       허나 중간에 강제적으로 대련이 끝났기에 아직 백화령의 안에는 많은 것들이 남아 있었다.

       

       파이스가 자신의 성검에 빛을 더한다.

       

       백화령을 상대로 펼치려 했던 필사의 일격이 불발로 돌아감에 따라 자연스레 몸에 남은 것들을 모두 쏟아낸다.

       

       양 쪽의 불온한 기운을 느낀 아라는 한 쪽 눈썹을 슬며시 들어 올리고는 피식하는 웃음소리를 냈다.

       

       “만전의 상태로 덤벼도 본인에게 상처 하나 내지 못할 터인데 지금 덤벼도 괜찮겠느냐? 굳이 덤비고 싶다면 잠시 쉬고 오는 편을 추천하고 싶다만.”

       “혀가 길군. 겁 먹었나?”

       “하하. 안 되더라도 일단 시도를 해봐야죠.”

       “하. 기껏 배려를 해줬더니만. 되었다. 마음대로 하거라.”

       

       아라가 손을 휘휘 내젓기 무섭게 백화령과 파이스가 양 쪽에서 가운데를 향해 내달린다.

       

       둘의 공격에 깃든 것은 본래 서로를 향해야 했던 필살의 일격.

       

       서로가 나름대로 인정한 강자를 상대하기 위해 짜냈던 모든 것.

       

       그 어떤 초월자라도 응당 공포를 느껴야 할 그 공격들의 사이에서 백아라는 가만 검을 치켜들었다.

       

       “박살나도 원망은 마라.”

       

       *

       

       흐음. 확실히 어중이떠중이들을 상대하는 것보다 나름의 강자 둘을 상대하는 쪽이 더 즐겁군.

       

       백화령의 연륜이 더 깊어지고 파이스의 경지가 더 올라간다면 더 재밌을 듯 해.

       

       앞으로도 주기적으로 두 사람을 대련하게 하여 서로간의 상승을 도모하는 편이 옳겠어.

       

       “신선분들께서 노력해주신 덕에 자라난 곡식을 이용해 만든 빵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잠시 바깥으로 나갔던 베니가 직접 접시를 들고 식당에 등장했다.

       

       왕비라는 녀석이 저래도 되는 것일까 싶기는 했지만 잔뜩 신이 난 녀석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무어라 하기도 애매했다.

       

       “이봐. 백아라.”

       “흠?”

       “대체 이 세상에서 무슨 일을 벌였기에 한 나라의 머리 되는 자가 저리 황송해하는 것이냐.”

       

       백화령 이 녀석도 비슷하게 생각을 하고 있는 건가.

       

       “별 대단한 것은 하진 않았다. 그냥 거만한 녀석 하나를 때려 부수고 저들에게 먹을거리를 준 것 뿐이지.”

       “외신에 의해 멸망할 뻔한 세계를 구원해주셨으며 기아에 빠진 이들에게 식량을 베풀어 주셨고 더욱이 대지의 회복을 도와 대륙이 자생할 수 있도록 해주셨답니다.”

       “…네 녀석은 이름뿐만이 아닌 진짜 신이 될 생각인 것이냐.”

       

       질린다는 듯한 백화령의 눈빛에 차마 대꾸를 할 수가 없었다.

       

       타인의 입을 통해서 들으니 본인이 벌인 일들이 비범하긴 했던지라.

       

       괜히 말을 꺼내봐야 주변에 있는 녀석들에게 반박을 당할 듯 싶었던 나는 그냥 빵이나 집어 먹기로 결정했다.

       

       맛을 기대하진 않았다.

       

       슬로우쿡이라는 게임에서 대략적으로 제빵을 배워보았던 나다.

       

       현대의 맛을 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기름과 설탕이 들어가는지를 아는데 이 세계에서 어찌 그 맛을 기대하겠는가.

       

       내가 생각을 했던 대로 베니가 내어준 빵은 투박했다.

       

       다만 단순히 투박하기만 한 게 아니라 나름의 특색을 지닌 채로 투박했다.

       

       부드럽지도 않고 텁텁하지만 꽤 괜찮아.

       

       아. 혹여 오해할까 싶어 부연을 더하자면 본인의 혀에 괜찮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대중의 입맛을 기준으로 해도 나쁘지 않다는 말이다.

       

       이 정도면 엔리에게 가져다주어도 맛없다는 이야기는 안 할 듯 하다만.

       

       “반그로우의 공인가.”

       “네. 최악의 상황에서도 최선의 맛을 추구해야 한다면서 저희 요리사들을 가르쳐 주셨답니다.”

       

       흐음. 역시 그 녀석인가. 반그로우라면 능히 가능하다 생각을 하며 고개를 주억거리는 동안에 내 옆에 있는 백화령은 다급하게 빵을 입 안에 집어넣고 있었다.

       

       맛있다는 생각이 절로 드러나는 그 표정을 보고 있자니 흐뭇한 웃음이 생겼다.

       

       천마신교에 틀어박혀 온갖 괴악한 것만을 먹다가 제대로 된 음식을 먹으니 신이 나는 모양이구나.

       

       하기야 그 곳의 음식을 먹다가 멀쩡한 것을 먹으면 신이 날 수밖에 없지.

       

       입을 쉬지 않는 녀석을 보고 있자니 언제 한 번 현대에 데려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곳의 음식을 먹는다면 분명 이 녀석은 감탄을 그치지 못할 것이야.

       

       어쩌면 천마란 녀석이 배가 불러 헛구역질을 하는 꼴을 보게 될 지도 모르지.

       

       나중에 백호 녀석에게 백화령의 신분을 만들어두라 이야기해두어야겠구나.

       

       분명 잔뜩 불평을 늘어놓을 테지만 그 머리에 꿀밤을 먹여주면 알아서 일을 해주겠지.

       

       *

       

       파이스와 백화령이 대련을 나누고서 며칠이 지났을 즈음.

       

       나는 오랜만에 화룡무인의 세상에 발을 들였다.

       

       나의 육신이 아니라 화룡무인 민가의 육신으로 말이다.

       

       세상을 마음대로 유랑할 수 있는 내가 방송을 킨 것도 아닌데 VR기기의 힘을 빌린 것은 이 육신. 정확하게는 민가라는 인물이 지니고 있는 한 서책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화산의 중턱에 앉아 빙궁 지하에서 발견한 서책을 꺼낸 나는 여전히 책장에 들러붙어있는 균열을 보고 웃음을 지었다.

       

       이 서책을 막 발견했을 무렵에는 이 균열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세상에 규칙을 강요한 후 그것을 고정시켜 두었군.

       

       자신 이외의 다른 사람이 이 세상을 굴복시키지 않으면 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기이한 것은 세상을 굴복시켜둔 힘이 비교적 미약하다는 것이다.

       

       세월이 지나 허약해진 것인지 아니면 최초부터 이랬던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만 신기하군.

       

       겨우 이 정도로 세상에 명을 강요할 수 있단 말이더냐.

       

       어쩌면 본인은 많은 힘을 낭비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어.

       

       뭐어. 이 정도라면 여는 데에 별 고생하지 않아도 괜찮겠군.

       

       서책을 열고서 가장 먼저 나온 내용들은 과거 마공을 다루던 자가 최초로 정립한 신공에 대한 내용이었다.

       

       지금에 와서 보기에는 다소 낡고 투박한 내용들이 한 가득인지라 본인은 그를 대충 읽고 넘겨버렸다.

       

       본인이 바라는 것은 이런 내용이 아니다. 본인보다 앞서 세상을 굴복시키는 경지에 이른 자가 무얼 보았는지에 대한 것이지.

       

       ‘마공의 격이 일정 수준에 이르면 세상에 뜻을 강요해 기적을 일으킬 수 있게 된다.’

       

       …기적? 이건 또 무슨 헛소리인가.

       

       그 문장이 마음에 들지 않아 미간을 찌푸린 나는 곰방대를 꺼내면서 눈을 아래로 내렸다.

       

       ‘앞선 길을 걸은 자로써 경고하겠다. 그 기적에 잡아먹히지마라. 본좌와 같은 비참한 꼴이 되고 싶지 않다면 기적에 사로잡히지 말고 기적을 아래에 두어라.’

       

       그 뒤에 적혀 있는 것은 본인 이전에 이 경지에 오른 자의 회고록이었다.

       

       마공을 다루며 본인과 같은 경지에 오른 것이 서책의 저자였지만 그의 힘은 그리 강대하지 못했다.

       

       본인이 최초에 그러했듯 세상을 겁박하는 것은커녕 세상과 타협을 하는 방법부터 배웠지.

       

       허나 세상에 뜻을 강요할 수 있는 이 경지는 그만한 힘으로도 많은 것을 이룩할 수 있게 했으니.

       

       이 서책의 저자는 더 많은 것을 손에 쥐고 싶어 했다.

       

       힘만을 지닌 멍청한 것들이 흔히 추구하는 것. 영생이라거나. 죽은 자의 생환 같은 것들을 말이다.

       

       그 과정에서 저자는 자신의 힘만으로 자신이 바라는 것을 이룰 수 없단 걸 깨달았다.

       

       본디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수련을 통해 경지를 드높이는 것을 추구할 터이나 이 녀석은 아니었다.

       

       이 놈은 올바르고 어려운 길보다는 쉽고 더러운 길을 택했다.

       

       ‘본좌가 신교를 만든 까닭은 그들을 제물로 삼기 위함이었다.’

       

       천마신교가 최초에 제창된 까닭은 천마의 제물이 되기 위함이었다.

       

       강자의 먹잇감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를 확인한 나는 천마신교의 광기가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지를 깨닫고 이를 갈았다.

       

       빌어먹을. 천마신공의 내기가 포악한 까닭은 애초부터 다른 녀석들을 삼키기 위해 만들어진 무공이라서였나.

       

       서책을 불태워버리고 싶은 것을 참으며 그를 끝까지 읽은 나는 진지하게 최초의 천마란 작자를 어떻게든 되살려 영원한 고통 속에 내던지고 싶단 생각을 했다.

       

       삼매진화를 일으켜 서책의 끝에 불을 붙힌 나는 곰방대의 연기와 책이 타며 흘러나오는 연기가 합쳐지는 걸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서책을 읽으면서 얻은 것이 없지는 아니하지만 그렇다하여 기분이 나쁜 게 사라지진 않는 군.

       

       이 서책은 본인의 인생이 과거에 살았던 한 미치광이에게 놀아났다는 증명이니까.

       

       이 울분을 풀기 위해서라도 바깥으로 나가 복슬복슬 천국으로 향해야겠구나.

       

       작금의 본인이라면 아무 두려움 없이 그를 즐길 수 있을 터.

       

       푸른 색의 창을 열어 바깥으로 나갈 준비를 하던 내가 손을 멈춘 까닭은 이 곳을 향해 익숙한 기운이 달려오고 있기 때문이었다.

       

       “안 그래도 잘 됐다. 백화령. 혹여 지금 시간이.”

       “민가야! 나를 좀 도와다오!”

       

       도와달라고? 그게 무슨.

       

       “지금 내 제자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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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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