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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83

    <483 – 학생에게 시킬 일>

     

    적색마탑 비주류학파 선배님들은 자신들의 체면을 살려준 로지니의 얼굴에 한껏 금칠을 해주었다.

     

    “적염학파가 낡고 비루한 학파라고 지금은 천시당하고 있지만 그건 입문이 어려워서 나오는 말이지, 근본은 괜히 근본이 아니야.”

    “옳은 말씀. 모닥불의 불 하나부터 시작한 화두로 불을 다루는 온갖 현상을 탐구하고 상상해온 적염학파의 이매저네이션Imagination 능력은 다른 학파가 따라할 수 없는 요령과 깊이가 있지.”

    “입문은 어려우나 가장 멀리 나아갈 수 있는 길은 적염학파를 따르는 것이지. 가능성만큼은 적염학파를 능가할 학파는 없어.”

     

    덕분에 로지니의 얼굴은 시종일관 뜨거웠고, 그녀의 고개는 잘 익은 벼처럼 무거워져 더욱 숙여졌다.

     

    “그런 말씀들 마세요. 이미지와 개념을 형상화하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한들, 기초단계의 체계적인 훈련과정의 모호함의 미비는 솔직히 입문자의 재능에 의지하는 난해한 학파인 건 사실이잖아요.”

    “우리 로지니 양이 그 어려운 걸 해낸 대단한 아이라네. 적노의 제자만 아니면 우리 학파로 데려왔을 텐데 참 아쉬워.”

    “이걸 또 칭찬각을 재다니?! 으으읏, 그래봤자 현실적으로 수련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이 다른 학파 대비 크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겠죠!”

    “양산형으로 제자를 찍어내는 중대형학파들과 다르게 수제자 하나를 번듯하게 키워내는 일인전승의 학파도 낭만이 있지. 적노도 로지니도 참 요즘 세태와 다르게 낭만을 아는 훌륭한 스승과 제자야.”

    “아닛!! 절 부끄러워 죽게 만드실 건가요!!! 일인전승이라고 해봤자 딱히 그런 전승기준은 없었지만 제자가 안 들어오고 다 도망쳐서 저만 남은 거잖아요!”

    “늙은 스승의 곁을 지키며 마지막까지 충효와 의리를 다하는 제자야말로 모든 스승들이 꿈꾸는 로망이지. 로지니를 스승으로 든 적노가 참 부러워.”

     

    맞아맞아.

    옳소옳소.

    눈가에 주름이 잡힐 정도로 연로한 비주류학파 장로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칭찬을 퍼부었다.

     

    “적색마탑은 칭찬으로 어린아이도 몸에 부담 없이 열기를 느낄 수 있게 만드는 커리큘럼이 있구나♡ 조기교육을 위한 시스템 상당히 영리해♡”

     

    매스각키 황녀가 잘못된 깨달음을 얻을 정도!

     

    “그런 거 아니라니깐!!”

     

    나 또한 반복되고 고조되는 칭찬은 로지니를 불안하게 만드는구나, 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다음에 용사한테도 한 번 써먹어봐야지!

     

     

    * * *

     

     

    마인 <오르데 타코>는 한때 북부 해안지대를 담당하던 해안명가 타코가문의 후계자였다.

     

    “북해를 얼려라. 그리하여 크라켄의 말예, 두족류의 침공을 저지할 것이다. 인류는 괴수와 마족에 의해 강요되던 양면전선을 하나로 좁히리라.”

     

    북부대공 유다는 타코가문이 지키던 해안을 모조리 얼려버렸다.

    항로가 막히고 상행이 어려워지며 북부는 척박해졌지만, 대신 북부전선에는 한결 여유가 생겼다.

     

    “가증스러운 핑계였지. 그 잘난 <대국적인 안목>을 핑계로 타코가문은 하루아침에 해안도시가 멸망하고 영지가 쇠락하여 무너졌다. 부를 잃을 수 없었던 아버지는 마족과 결탁했고, 나 역시 이를 원망하지 않았다. 가족을 지키기 위한 선택임을 알았으니까.”

     

    흐아암.

    마차에 동석한 마인이 따분하다며 하품을 했다.

     

    “아버지는 암흑마나에 적성이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몸을 안정시키는 대신, 가문에 남은 모든 부를 끌어 모아 내 육신을 개조했지. 그래, 이건 나 혼자만의 싸움이 아니다. 저승에 계신 아버지에게 바치는 명예로운 복수인 것이다.”

    “그럼 북부지역에서 작전을 벌이지, 왜 엄한 남부까지 내려와서 화산폭발을 하려고 하냐?”

     

    동료마인이 허리를 쭉 늘어뜨리며 기지개를 켰다.

    보슬보슬한 털이 난 팔다리를 쭉 뻗고 손가락과 발가락을 오므렸다.

    덜덜 떨다가 개운하게 늘어지는 팔자 좋은 동료의 태도를 오르데 타코는 탓하지 않았다.

     

    “아카데미가 기회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무슨 기회 말이냐?”

    “대륙평균기온을 올려서 북해의 얼어붙은 바다를 녹일 기회. 한때 괴수로부터 인류를 지키던 땅을 마족의 침공거점이자 타코가문의 새로운 영지로 삼아 부흥시킬 기회. 이 오르데 타코가 북부대공 유다에게 복수할 절호의 기회.”

    “대견하기도 하다냐.”

    “그 기회를 도와줬으면 좋겠다. 마왕군 사천왕 <엘니뇨>님께서도 이 작전의 성공을 바라시기에 너를 파견시켰고, 내가 이번 작전에 얼마나 진심인지를 지금 네게 알려주고 있는 거다.”

     

    유령호텔에서 오크노디가 논하지 않았던, 회차의 특수성에 의해 출현한 두 번째 마인.

    복슬복슬한 털을 지닌 고양이수인은 마차 내 지정석에 탑승하며 혀로 손을 날름거렸다.

     

    “그런 이유 따윈 아무래도 좋다냐. 일족의 막내가 가입한 아카데미 1학년의 실력이 궁금했을 뿐이다냐.”

     

    커다란 상자에 쏙 들어가 그루밍을 하는 마인, <박스캣>은 벽에 붙인 오크노디와 로지니의 사진만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학생이 여기로 올지는 어떻게 알았다냐? 아카데미 내부의 정보는 외부에서 알아낼 방도가 없다냐.”

    “외부에서 알 수 없으면 내부에서 알아내면 되지. 이번 정보는 외부조직의 협력을 얻었다.”

    “어떤 조직이다냐?”

    “와이히엠하이 재단. 그들의 협력을 얻는 대가로는 한 가지 조건만 들어주면 된다.”

     

    오르데 타코의 손가락에서 뻗어 나온 촉수가 오크노디의 초상화를 짚었다.

     

    “오크노디. 그녀를 <절대복종>시켜 재단관계자에게 넘기는 것. 그 대가로 받은 것이 암흑마나의 총량을 늘려주는 이 <암흑마나석>이다.”

     

     

    * * *

     

     

    리프는 우려를 금치 못했다.

     

    “정말로 아가씨를 보내도 괜찮았던 겁니까?”

    “아가씨가 먼저 청했던 지령이다. 이사장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겠지. 거절했다면 더 큰 보복이 기다렸을 뿐이다.”

    “변했군요. 아가씨들을 지키기 위해 온갖 무리를 저질렀던 당신이 순순히 아가씨를 떠나보내다니.”

     

    수많은 금속이 녹은 액체금속이 손가락 하나의 움직임에 조종당하며 회오리쳤다.

    조나는 자신이 일으킨 현상에 오히려 불만스럽다는 듯이 눈썹을 찌푸렸다.

     

    “변한 건 네가 아니던가? 재단에 맹목적으로 충성해왔던 주제에 아가씨를 ‘걱정’이나 하다니.”

    “저는 암살메이드. 이름마저도 거둬진 생명Reaped Life. 이사장의 뜻을 거스를 일은 추호도 없습니다. 괜한 기대라면 접어두십시오.”

    “그런 것치고는 내성훈련을 과할 정도로 꼼꼼하게 진행하던데.”

    “…”

    “메이드용 마나연공법의 전수도 마찬가지고. 에이프릴과 헤스티아, 티토소가가 아가씨를 지키기를 바라기에 후학양성에 진심이 된 건 아닌가?”

     

    리프의 암녹색 눈동자가 회오리 속에서 한 자루의 칼로 정련되는 액체금속을 무심히 쳐다보았다.

     

    “화산지대로 향해 마인과 조우하라. 아가씨에게 그런 지령이 내려진 시점에서 이사장은 아가씨를 <절대복종> 시킬 작정입니다. 당신이 알던 아가씨가 사라져도 괜찮은 겁니까?”

     

    조나의 손에 들린 검이 비수 크기로 줄어들었다.

    마치 리프의 암기케이스에 들린 비수처럼.

     

    “그 초조함이 오크노디를 아끼는 네 마음의 증거다. 지금의 너라면 믿고 맡길 수 있겠군.”

    “…이건?”

    “인챈트를 걸었다. 사물에 닿기 전까지는 무게가 감소되지만 접촉 직후에는 급격히 무게가 늘어나지. 취급에 주의하도록.”

    “이 암기를 제게 주시는 진의를 묻는 겁니다.”

    “정말로 몰라서 묻는 건가? 그저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기에 외면할 뿐인 건 아닌가.”

    “…”

    “네 마음은 이미 오크노디에게 기울었다. 이사장의 지령에 오크노디를 돕지 말라는 지시는 없었지. 마인을 모두 제거한다면 네 개입은 발각되지 않을 거다.”

     

    리프는 말없이 조나를 노려보다가 암기를 챙겼다.

    구름이 밀려오며 조나의 연공실 창턱에도 그림자가 드리웠다.

    딸칵.

    조명을 키자 어둠이 걷어졌다.

    열린 창가에 리프의 모습은 이미 사라졌다.

     

    “아가씨. 이 집사는 무척이나 걱정이 됩니다.”

     

    보험은 갖추었다.

    그러나 감출 수 없는 찝찝함이 남았다.

     

    “지령을 알고 간 것이라면 생각이 있으실 겁니다. 하지만… 정말로 친구를 도우러 간 것이라면 그 나약함이 어떤 화근을 초래할지 두렵습니다.”

     

     

    * * *

     

     

    베수비오 화산의 분화구로 향하는 길에는 세 종류의 보안구역이 존재한다.

     

    자연마나에 이끌린 정령과 영초, 그리고 이들의 기운을 받아 변이한 화염몬스터에 의한 몬스터구역.

    작렬학파가 설계해두고 떠난 기존의 보안술식으로 침입자가 인계철선에 닿으면 철선과 연결된 뇌관이 폭발하는 작렬함정구역.

    관광객들이 다니는 관광루트 근처에 세워진 경계초소에서 머무르다가 침입이 감지되면 5분경계조마냥 우르르 마법사들이 튀어나오는 마법사경비구역.

     

    “작렬학파는 세 가지의 길을 모조리 개판 쳐놓고 우리에게 뒤처리를 떠넘겼다네.”

     

    현장에 있는 비주류 마법사들의 대표이자 6위계 마도사 <마그니>가 보안지도를 펼쳤다.

     

    “몬스터 서식지에는 고등급 몬스터를 싹 포획하거나 토벌하고 사라졌고, 작렬함정구역은 표기된 함정 일부를 해체하고 다른 곳에 심고 위력도 제멋대로 바꿔두어서 우리도 접근하기 어렵네.”

    “마그니어르신. 그럼 마법사경비구역 빼고 나머지 두 곳을 저희가 도와드리면 돼요?”

    “아니. 자네들에게는 마법사경비구역을 부탁하고 싶네. 이곳마저도 작렬학파 놈들이 깽판을 치고 가버렸어. 그것도 가장 골치 아픈 깽판이야.”

     

    마그니 어르신은 축제포스트를 펼쳤다.

     

    ━━━

    [베수비오 화산쇼!]

    남부신성도시국가연맹에 알립니다.

    ☆★☆★환상의 불꽃쇼☆★☆★ 저희 적색마탑이 베수비오 화산에서 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

    적색마탑의 열파熱波학파와 연소燃燒학파가 보여주는 화산쇼, 여러분을 실망시켰다면 관광비는 전액 무료로 마탑에서 지급해드립니다!

    지금 바로 베수비오 화산에 오셔서 세기의 화산쇼에 참여하세요!

    ━━━

     

    “……설마?”

     

    로지니의 아니라고 말해달라는 얼굴에 마그니어르신이 애써 시선을 피하며 대답했다.

     

    “그, 내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적노 어르신의 적염학파가 불꽃쇼는 또 전문 아닌가. 수제자인 자네라면 분명 잘할 수 있을 게야.”

     

    불의를 참지 못해 찾아온 로지니.

    그녀에게 배정된 역할은 환상의불꽃쇼 담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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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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