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483

       아이러니하게도, 열차 안에서의 분위기는 이전에도 느껴본 적 있는 분위기였다.

        

       “요, 여동생!”

        

       잠깐 앞칸에 갔다가 돌아와 내가 앉았던 자리로 돌아가는데, 루카스가 나를 향해 손을 들어 보였다.

        

       아직은 어린 시절의 기억이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았지만, 이후에 제이든과 싸운 이후로는 내 생각을 존중해주기로 한 모양이었다.

        

       “이리 와서 앉아 봐, 시간도 많은데 같이 포커라도 하자고.”

        

       “…….”

        

       나는 카드를 쥐고 있는 루카스를 보았다.

        

       이전에 함께 기차를 탔을 때도 그랬다. 그때도 루카스는 나에게 카드 게임을 제안했다.

        

       그땐 거절했는데.

        

       이유는 단순했다. 카드 게임을 이겨보겠다고 시간을 돌리면 얼마나 돌려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나마 전투 같은 경우에는 목숨이 걸려있으니 어쩔 수 없지만, 굳이 카드 게임 한 번 완승해보겠다고 시간을 돌리는 건 너무 귀찮았으니까.

        

       “애한테 뭘 가르치려는 거냐.”

        

       제이든이 핀잔을 줬다.

        

       “애는 무슨 애? 너는 쟤가 애로 보이냐? 다 컸구만.”

        

       “동생한테 못 하는 소리가 없군.”

        

       제이든은 루카스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나에게 몹시 상냥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굳이 억지로 참석할 필요는 없다. 그냥 원하는 대로 시간을 보내면 돼.”

        

       음.

        

       왠지 짜증 나는데.

        

       지난번에는 루카스가 나를 부르는 것부터 이미 짜증 났지만, 지금은 제이든이 나를 애 취급하는 것이 짜증 났다.

        

       “…….”

        

       나는 잠깐 둘을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손을 휘휘 흔들어서 루카스를 옆으로 밀었다.

        

       “오, 앉으려고?”

        

       루카스는 얼굴에 화색을 띠며 말했다.

        

       “포커는 할 줄 몰라.”

        

       나는 루카스가 내어준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블랙잭으로 하자. 그게 규정이 훨씬 간단하니까.”

        

       “그래, 좋지. 판도 빨리 돌릴 수 있고.”

        

       루카스는 웃으면서 카드를 섞었다.

        

       “블랙잭이라니…….”

        

       제이든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물론 굳이 블랙잭이 싫어서 중얼거렸다기보다는, 내가 그런 게임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 충격받은 모양이다. 언제까지 귀여운 여동생으로만 남아있을 줄 알았던 모양이다.

        

       “자, 자, 판돈은 얼마로 할까?”

        

       “어이.”

        

       제이든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아니, 그보다, 판돈 같은 게 의미가 있나?

        

       물론 제이든도 루카스도 지금은 연금 상태이긴 했지만, 따지자면 이 둘도 황자다.

        

       당연한 말이지만, 돈 같은 걸 굳이 따질 필요는 없다. 무슨 성 하나나 저택 하나씩 거는 거라면 또 이야기가 다르긴 하겠지만.

        

       “그보다, 걸 돈은 있어?”

        

       그래. 그리고 이것도 중요했다.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있을 정도로 쪼들리게 만들진 않지만, 그렇다고 이들에게 돈을 주는 것도 아니다. 일단 황가에서 주는 돈은 전부 끊어졌다. 이것저것 요청하면 물건으로 가져다주긴 해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돈은 주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던 것도 죄다 동결되었을 것이고.

        

       “돈은 없지. 대신 이건 어때? ‘오라버니’권을 하루 단위로 거는 거야. 제이든한테는 해주겠다고 했다면서?”

        

       “네가 그런 것에 관심 있는 줄은 몰랐는데?”

        

       내가 인상을 팍 쓰면서 물어보자, 루카스는 창가에 등을 기대고 내 쪽으로 몸을 최대한 틀면서 말했다.

        

       “야, 나도 일단 네 오빠거든? 애초에 너는 우리 형제자매 중 막내잖아. 당연히 나도 오빠 소리 들어보고 싶지. 아, 그래. 나는 오라버니보다는 오빠가 더 좋겠다.”

        

       내가 루카스를 오빠라고 부르는 걸 상상하다가 등에 소름이 돋았다.

        

       그 상상하는데 쓴 뇌 부분만 도려내고 싶은데 어떻게 안 될까?

        

       “그 말, 그냥 두고 볼 수는 없겠는데.”

        

       그렇게 말하면서 끼어든 사람은…… 클레어였다.

        

       내가 다른 칸으로 가던 때만 해도 앨리스와 앉아있었던 것 같은데, 어느새 우리 쪽으로 와 있었다. 하긴 같은 칸이니 공간이 엄청나게 넓거나 한 건 아니었다. 거기다 칙칙폭폭 증기기관차 소리가 시끄러웠으니 다가오는 걸 모를 만도 했다.

        

       “실비아는 내 언니거든. 너희들한테 함부로 넘길 생각 없어.”

        

       “야, 그런데 어쩌냐. 네 언니는 이미 그 ‘오라버니’권 을 제이든한테 넘겼는데.”

        

       제이든이 어깨를 쫙 벌렸다. 마치 그 권리를 따낸 자기가 자랑스럽다는 표정이라 꼴 받았다.

        

       “무려 이틀이지!”

        

       제이든이 당당하게 선언하듯 말했다.

        

       클레어가 조금 충격받은 표정으로 날 봤다.

        

       어…… 그게.

        

       “이틀밖에 안 돼? 나는 일주일인데.”

        

       “뭐라!?”

        

       뜬금없이 벨라가 끼어들어 말하는 것을 듣고, 제이든의 입이 딱 벌어졌다.

        

       “언니라고 불러주는 거, 일주일 치 예약했거든. 나는 이번 여행지에 도착하면 그때부터 쓰려고.”

        

       음, 여행지에서는 그냥 방 안에만 틀어박혀 있기로 하자.

        

       “……그 말, 그냥 넘어갈 수는 없겠는데.”

        

       앨리스가 끼어들어 말했다.

        

       아주 전부 끼어드는구만.

        

       괜히 카드 게임을 하겠다고 앉았다가 전방위에서 집중 공격을 당하고 있었다.

        

       “너, 제이든이나 벨라한테는 너무 쉽게 그 호칭을 내주는 거 아니야? 하긴, 생각해보니까 지난번에도 그랬던 것 같아. 비행선 얻어타겠다고 그랬던 것 같은데.”

        

       “…….”

        

       “언니, 자신을 소중하게 여길 줄 알아야지.”

        

       아니, 클레어. 그 이야기랑은 좀 많이 다른 것 같다. 얘들은 형제자매잖아.

        

       “……앨리스, 너는 굳이 그런 호칭을 탐내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탐내지는 않아. 나는 굳이 여동생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은 없거든.”

        

       앨리스가 대답했다.

        

       “하지만 네가 나를 언니라고 부를 때마다 짓는 표정이 재미있긴 하거든.”

        

       “…….”

        

       나는 잠깐 침묵했다가 루카스를 보았다.

        

       “왜 앨리스한테는 그런 말을 안 하는 건데?”

        

       “앨리스한테?”

        

       루카스는 앨리스를 힐끔 보더니 잠깐 생각에 잠겼다.

        

       “어…… 글쎄. 굳이 그래야 하냐는 생각이 들어서?”

        

       “…….”

        

       “아마 어린 시절에 말을 엄청나게 안 들어서 그랬을 거다. 그러니 오라버니라고 불러달라고 해도 절대로 그렇게는 안 할 거라는 생각이 자리 잡아서 그렇겠지. 그때는 조금 벽도 느꼈고.”

        

       아, 그러네.

        

       얘네들이 보기에도 정통적인 의미에서 차기 황제는 앨리스였던 모양이다. 자기네한테는 황가의 피가 흐르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니까.

        

       나도 그랬고.

        

       하지만 밝혀진 사실을 종합해보면, 역으로 피가 섞이지 않은 사람은 이 중에서는 나 하나뿐이었다.

        

       “음…… 그럼 시험 삼아 한번 불러볼래?”

        

       루카스가 물어보자, 앨리스의 인상이 팍 찡그려졌다.

        

       “내가 왜?”

        

       “저렇다니까?”

        

       “아니, 나도 부르라고 하면 거절하잖아.”

        

       “너는 거절만 하지는 않잖아. 그걸로 이득 볼 수 있으면 얼마든지 쓸 수 있는 녀석이면서.”

        

       “…….”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할 거야, 안 할 거야?”

        

       “당연히 안 하지.”

        

       나는 딱 잘랐다.

        

       “이기면 본전이고 지면 손해만 보는데 내가 굳이 그 게임을 해야 할 필요가 있어?”

        

       “……그것도 그렇네.”

        

       루카스가 어깨를 으쓱해 보이면서 말했다.

        

       “그럼 그냥 승점제로 해서 누가 이기나만 따지자. 어차피 도착하려면 한 시간 넘게 남았다면서?”

        

       아무것도 걸 필요 없다면 괜찮겠지.

        

       내가 어깨를 으쓱해 보이자, 제이든도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들은 어때? 할래?”

        

       내가 앨리스와 클레어, 그리고 벨라를 보면서 말하자, 벨라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나도 됐어.”

        

       앨리스는 손을 흔들어 보이고는 몸을 돌렸다.

        

       하지만 굳이 멀리 가지 않고, 우리 테이블이 보이는 반대편으로 가 앉았다.

        

       “나는 할래.”

        

       클레어가 말하자 제이든이 신사답게도 자리를 옆으로 옮겨서 비켜줬다.

        

       “그런데 어떻게 하는 건데?”

        

       “아, 규칙이라면 간단해. 두 장을 먼저 받고, 그 카드의 숫자를 합쳐서 21에 가까운 사람이 이기는 거야. 딱 21이어도 되고. 하지만 넘으면 그냥 죽는 거고. 두 장 받은 다음에는 몇 장이고 카드를 다시 받아서 숫자를 맞출 수 있지만, 더 받은 카드 때문에 숫자가 넘어가도 죽어.”

        

       “오, 간단하네.”

        

       클레어는 즐겁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좋네. 그럼 내가 딜러한다—”

        

       “아니, 잠깐만.”

        

       나는 루카스에게 손바닥을 내밀어 보이며 말했다.

        

       “너는 못 믿어.”

        

       “…….”

        

       내 말에 루카스가 어이없다는 듯 눈을 부라렸지만, 나는 그런 루카스를 빤히 바라보면서 외쳤다.

        

       “데미안!”

        

       “……왜 부르지?”

        

       우리 뒤쪽의 의자에서 대놓고 귀찮다는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용케도 거기 앉아있네. 시끄럽다고 멀리 갈 줄 알았는데.

        

       하긴 지난번에 만나니까 아주 건어물이 되어있긴 했어. 어쩌면 데미안이 먼저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하필이면 그 뒤에 루카스와 제이든이 앉고, 데미안은 귀찮아서 그냥 버티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거, 딜러 좀 봐줘. 루카스는 못 믿어.”

        

       “야, 야, 아무것도 안 걸린 게임에서 이러기냐?”

        

       “너야말로 아무것도 안 걸린 게임에서 속임수를 쓸 생각이야?”

        

       “속임수 쓰는 건 확정이냐?”

        

       루카스는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지만, 나는 그 손에서 카드를 빼앗아서 몸을 돌려 데미안에게 카드를 넘겨주었다.

        

       데미안은 한숨을 푹 쉬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아. 그럼 딱 한 게임만 협력하도록 하지.”

        

       물론 데미안은 발을 빼지 못하고 우리가 도착할 때까지 계속 카드만 섞었다.

        

       정말 놀랍게도, 승점은 클레어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루카스와 제이든의 자존심에 생채기를 낼 만큼.

        

       승리한 클레어한테 ‘언니라고 불러줄까?’하고 물었더니, 클레어는 기겁했다.

        

       ……그렇게, 여행지를 향해 가는 기차 안은, 생각보다 꽤 즐거웠다.

        

       긴장했던 게 바보같이 느껴질 정도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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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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