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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83

        

         

       신발은 주인의 몸에 딱 맞는 의복이다.

       그냥 입고 다니는 것이 아닌, ‘딱 맞는 것’을 입고 다닌다는 것이 중요한 점이다.

         

       예부터 사람과 의복은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였다.

       체온을 조절하기 위해, 외부의 위협에서 몸을 지키기 위해, 멋을 내기 위해, 부끄러운 부위를 감추기 위해.

       사람들은 옷을 만들고, 옷을 입고 다녔다.

         

       하지만 옷이라는 것은 문화마다, 지역마다, 환경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덥고 습한 곳에서는 거의 헐벗은 것이나 다름없는 수준의 의복을 입고 다녔고, 추운 곳에서는 털이 많고 두꺼운 옷을 입고 다녔고, 모래가 많고 햇볕이 강한 사막 지역에서는 자기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몸을 전부 가리는 형태의 옷을 입고 다녔다.

       어떤 곳에서는 긴 천을 몸에 휘감는 형태의 의복을 입고 다녔다. 어느 지역에서는 가죽으로 된 옷만을 입고 다녔고, 어떤 곳에서는 특정 동물을 재료로 만든 옷만을 입고 다니기도 했다.

         

       제각각.

       지역마다 의상은 다르다.

       심지어 같은 지역이라도, 같은 문화권이라고 할지라도 소득 수준에 따라, 신분에 따라 의상이 달랐다.

         

       높은 위치에 있는 이들은 온갖 금은보화로 치장한 옷을 입고 다니거나, 이것을 입고 일상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 정도로 치렁치렁하고 거추장스러운 옷을 입고 다닌다. 게다가 그 의상에 사용된 재료는 같은 무게의 금보다 비싼 옷감이라거나, 1만 마리의 고둥을 잡아야 겨우 1g을 얻을 수 있는 색으로 염색이 되어있기도 한다.

       

       하지만 낮은 곳에 있는 이들은?

       몸을 가릴 수 있는 것을 간신히 걸치고 다니는 수준이다.

       3대, 5대가 한 옷을 물려받으며 입고 다니는 경우도 흔하고, 걸레짝이나 다름없는 것을 몸에 걸치고 다니기도 한다.

       몸에 맞지 않아 포대를 뒤집어쓰고 다니는 듯한 모습이 우스꽝스럽지만 어쩌랴? 입을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고, 이것을 입지 않는다면 야만인처럼 알몸으로 다녀야 하는 것을.

         

       염색 같은 것은 꿈도 꿀 수 없고, 구멍이 송송 뚫리고 조금만 힘을 주면 뜯어져 버리는 옷은 ‘몸을 보호한다’라는 의복의 목적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

       거기에 오랫동안 입고 다닌 지저분한 옷에는 온갖 해충들이 가득하기까지 하니.

         

       그야말로 극과 극.

       위와 아래의 차이는 이처럼 극명하다.

         

       하지만 신발은 그렇지 않다.

         

       가진 것에 차이가 있음에도.

       사는 곳에 차이가 있음에도.

       먹는 것부터 씻는 것까지 수많은 차이가 있음에도.

         

       신발은 높은 자와 낮은 자 모두 동일하게 ‘발에 맞는 것’을 신고 다닌다.

       크기가 너무 커서 덜그럭거리는 것을 신지도 아니하고, 크기가 너무 작아 제대로 서기도 힘든 것을 신고 다니지도 아니한다.

         

       발에 맞는 것.

       걷기에 불편하지 않은 것.

         

       부유한 자도, 가난한 자도.

       고귀한 자도, 천한 자도.

         

       모두가 발에 맞는 것을 신는다.

       모두가.

       모두가!

         

       그렇기에 신발이라는 것은 특별하다.

       특별하고, 특별하고, 또 특별하다.

         

       딱 맞는 의복이기에 신발은 주인과 연결되어 있다.

       한 몸이나 다름이 없으며, 주인의 삶과 밀접하게 관련이 되어있다.

       그렇기에 신발은 육신이 그러하듯, 주인의 영혼을 품는 특별함을 지니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신발의 특별함이다.

       

       신발은 초자연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신발은 잠재력이 가득하다.

       신발은.

         

       신발은-

         

         

         

        * * *

         

         

         

         

       사람이 죽어도 시간은 흐른다.

       사람을 죽인 사람을 찾아 헤매고 있어도 시간은 흐른다.

       하늘은 움직이고, 구름은 흐르고, 천체는 나아간다.

         

       그리하여 마침내 밤이 찾아왔으니.

         

       충주가 새까맣게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충주에 어둠이 내려앉았다고 해서 도시 자체가 어둠에 잠긴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낮에 하지 못했던 것을 하기라도 하려는 듯, 곳곳에는 불이 켜져 있다.

       불이 켜지는 것으로 모자라 어느 곳에는 사람들이 가득 모여있기도 했고, 어느 곳에서는 사람들이 술잔을 높이 들고 취기에 몸을 맡기며 술자리를 즐기고 있기도 했다. 어느 곳에서는 사람들 여럿이 모여 노래를 부르기도 했고, 어떤 곳에서는 술과 안주를 간식 삼아 게임을 하며 놀고 있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 곳에서는, 사람들이 축제의 기쁨에 취해있기도 했다.

         

       와아아아-!

         

       대단한 축제는 아니었다.

       그냥 지역 축제에 불과한 것이었다.

       지역 특산품을 홍보하고, 초청 가수 몇몇이 나와서 노래를 부르고….

         

       뭐 그런 축제.

       전국 곳곳에서 때가 되면 열리는, 그런 축제였다.

         

       하지만 즐길 거리가 없는 사람에게는 이만한 즐길 거리가 또 없었다.

         

       조금 비싼 감이 있긴 하지만 맛있어 보이는 음식들.

       나름 이름을 들어본 이들이 하는 공연들.

       사람들을 혹하게 만드는 경품들.

       거기에 입담 좋은 개그맨이 진행하는 것까지.

         

       시간을 보내기에는 나쁘지 않았다.

       그래,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축제를 구경하는 이들은 알고 있을까?

         

       자신만큼이나 축제를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공연자들이, 잠깐 모습을 드러냈다가 뒤로 사라져버리는 연예인이, 축제에 에너지를 불태우며 즐기고 있는 자신들과는 다르게, 정말 생명의 불꽃을 활활 불태우며 피로를 이겨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하아….”

         

       본명, 김선미.

       예명, 차이네.

         

       두 가지 이름을 가지고 있는 여성이 대기실에서 한숨을 쉬고 있었다.

       낡고 좁아터진 대기실에서 차이네는 눈을 감은 채 깊은 한숨을 쉬고 있었는데, 그 한숨은 깊은 피로감이 가득 묻어나오고 있었다. 정말 생명을 갈아 넣으며 몸을 혹사하는 사람만이 내쉴 수 있을 것 같은, 짙은 한숨이었다.

         

       “차이네 씨. 피곤하십니까?”

         

       그리고 의자에 걸터앉은 채 한숨을 쉬고 있는 차이네의 옆에는 날카로운 인상의 여성이 서 있었다.

       등산이라도 가려는 것처럼 화려한 색을 뽐내는 편안한 의상을 입고 있는 여성은 무표정한 얼굴로 차이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의 담당 연예인이 힘들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쉬고 있음에도 그 어떤 감정의 동요 없이, 기계적으로 그냥 물어본 것이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훨씬 낫지 않습니까?

         

       심지어 그냥 물어본 것도 아니었다.

       차이네를 질타라도 하는 것처럼.

       복에 겨운 것도 모르고 한숨이나 쉬냐는 듯한 말투로 질문을 던진 것이다.

         

       차이네는 여성의 말에 한숨을 푹푹 쉬면서 지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차이네에게 동정 따윈 하나도 품지 않은 눈으로 빤히 바라볼 뿐이었다.

         

       “차이네 씨. 그렇게 한숨을 쉬셔도 곤란합니다. 본인이 동의한 거잖아요?”

         

       “하아.”

         

       차이네는 ‘엄살 그만 피우고 빨리 일어나라. 다른 행사 하러 가야 한다.’라며 무언으로 재촉하는 매니저를 바라보았다.

         

       매니저.

       얼마 전까지 같이 다녔던 매니저가 아닌…새 매니저.

         

       ‘그래…. 예전보다 낫기는 하지.’

         

       예전의 매니저는 남자였다.

       강행군을 함께하며 나름 정도 쌓아왔었고.

         

       하지만 정을 쌓아왔다는 것은 차이네의 생각이었을 뿐.

       실제로 그녀의 매니저는 끔찍한 개자식이었다.

         

       개자식.

       그래, 개자식이다.

         

       그 단어로밖에 표현할 수가 없다.

         

       그의 스마트폰 안에 들어있는 내용물을 보고 얼마나 경악했었는지.

       매니저의 스마트폰에는 소속사에 있는 연예인들의 개인 정보가 가득 들어있었다.

         

       연예인을 관리하는 매니저가 연예인의 개인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게 뭐가 문제냐고?

       그래, 그것도 맞는 말이다.

       담당하는 연예인에 대한 정보가 있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담당하지 않는 연예인에 대한 정보가 잔뜩 있는 것은 이야기가 달랐다.

       심지어 그 개인 정보가 엄청나게 세밀하고 상세한…스토커가 조사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의 내용들이었다면 더더욱.

         

       ‘사생팬하고 거래하는 매니저라니, 미친놈.’

         

       차이네의 전 매니저는 도박에 미쳐있었다.

       도박에 월급을 다 때려 박고, 그것으로 모자라 빚까지 지면서 도박했다.

       그리고 더 이상 돈을 빌릴 곳조차 없게 되자, 소속사 연예인들에 대한 정보를 사생팬에게 팔아치우며 돈을 벌어 도박하고 있었다.

         

       전 매니저가 팔아치우는 정보는 다양했다.

       행사 일정, 앨범 정보 같은 것에서부터…소속사에 있는 연예인들의 가족 관계, 취미, 개인 정보까지.

       아주 다양하게 팔아먹고 있었다.

         

       ‘요새 사생팬이 너무 심하다 싶었는데 범인이….’

         

       소속사는 사생팬에게 시달리고 있었다.

       사생팬이 CCTV의 사각지대를 통해서 침입해서 서류를 훔쳐 가지를 않나, 보안이 미비한 곳을 이용해 소속사 안으로 들어온 뒤 연예인에게 달라붙으며 난동을 피우지를 않나, 남자 아이돌의 숙소에 침입해서 장롱에 숨어있다가 들켜서 경찰이 오게 만들지를 않나….

         

       사생팬 때문에 입은 소속사의 피해만 생각해도 꽤 대단한 수준이다.

         

       ‘거기다가 도청 장치까지….’

         

       게다가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자신과 거래하는 사생팬에게 받은 도청 장치를 남자 연예인 숙소에다가 설치해놓기까지 했다. 다행히 도청 장치를 설치한 지 오래되지 않았는지 녹음된 것은 별로 없었던 것이 다행이었다.

         

       회사 기밀을 팔아먹고, 소속사 연예인들의 개인 정보를 팔아먹고, 도청하고….

         

       거기에 이 빌어먹을 놈이 이제는 사생팬에 그치지 않고 악질 기자에게 접근해서 기삿거리가 될만한 것을 팔아넘길 계획이었다는 사실까지 더해지면….

         

       ‘개자식.’

         

       심지어 기자한테 팔아넘길 정보 중에는 전 매니저와 같이 일해왔던 그녀, ‘차이네’에 대한 기삿거리도 있었으며, 심지어 그 기삿거리가 남자 연예인들이 사생팬에게 시달리는 것에서 시선을 돌리기 위해 ‘차이네가 같은 소속사 남자 아이돌들에게 꼬리를 치고 다녔다.’는 거짓밖에 없는 자극적인 찌라시이기까지 했으니.

         

       아마 전 매니저의 진상을 알지 못한 채 조금만 더 시간이 흘렀다면, 차이네는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었으리라.

         

       그 빌어먹을 개자식이 자기 도박할 자금을 벌기 위해 벌인 더러운 짓에 의해서 말이다.

         

       하지만 천운으로 그녀는 전 매니저의 본성을 알게 되었다.

       하늘의 도움으로….

         

       아니.

       자신을 기자라고 소개한, 광인(狂人)의 도움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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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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