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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84

       백화령은 자기 제자가 통상적인 방법으로 파이스를 이길 수 없으리라 확신했다.

       

       그녀가 그를 제자로 거두었을만큼 나름의 무술적 재능을 지닌 것이 한서우이지만 결국에 그는 현대의 사람.

       

       내기를 지닌 몸보다 내기를 지니지 않은 몸을 움직이는데 익숙한 한서우가 지금의 파이스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길고도 긴 세월이 필요할 터.

       

       문제는 파이스가 제자리에 가만 서 있는 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나와 겨루고 백화령과 겨루며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지한 녀석은 기꺼이 자신이 배웠던 모든 검술을 내버리고 밑바닥부터 새로이 검을 쌓아나가고 있었다.

       

       자신의 경지에 한참 미치지 못하던 쓰레기같은 검이 아니라 자신에게 어울리는 검을 말이다.

       

       상황이 이러했기에 백화령은 제자의 소망을 이루어주기 위해, 그리고 제자가 한 번 벽을 넘어서게 하기 위해 한 가지 꼼수를 택했다.

       

       무의 경지를 올려 한서우가 파이스를 극복하게 하는 대신 파이스란 사람 자체를 공략하려 한 것이다.

       

       “제자 녀석이 스스로의 한계를 정하고 있는 상대이자 심마가 되는 녀석이니만큼 그 벽을 한 번 넘고 나면 새로운 것을 볼 수 있으리라 여겼지.”

       

       씁쓸한 표정으로 말을 잇는 백화령을 보면 알 수 있듯 그녀의 생각은 그녀가 바라던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쉬운 길이라는 것은 언제나 그 간단함만큼의 위험을 짊어지고 있는 바.

       

       백화령은 자신이 그것을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지만 무라는 것은 백화령의 오만함을 질책했다.

       

       그녀의 제자에게 대가를 치르게 함으로써 백화령을 혼낸 것이다.

       

       “설마 내가 가르친 것 때문에 제자 녀석이 심마에 빠지다니.”

       

       심마의 기미를 떨치기 위해 제자에게 건네준 가르침이 오히려 심마를 불러냈을 때에 백화령이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얼마나 많은 놀람을 느꼈기에 이 자존심 높은 녀석이 무작정 내게 달려왔을까.

       

       곰방대를 물 생각조차 하지 못할 만큼 당혹스러워 하는 백화령을 보고 있자니 되래 머리가 냉철해졌다.

       

       우리는 외톨이로 살기를 바라지 않았다. 평생을 홀로 살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 누구보다 타인의 온기를 바랐으나 타인에게 다가설 수 없음을 알기에 포기해버린 체념의 존재였다.

       

       그렇기에 우리는 거리낌 없이 온기를 내어준 자에게 애정을 선사할 수밖에 없다.

       

       내게는 엔리가 그런 존재였듯 백화령에게는 한서우가 그런 존재였던 거겠지.

       

       그녀의 심정에 공감하는 것은 어렵지 아니했다.

       

       만일 나의 실수로 엔리가 잘못되었다면 나도 그를 해결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사용했을 터이니.

       

       “살아있나?”

       “…그래. 아직 그 녀석의 괴리는 이 세상의 육신에 한정되어 있으니.”

       “스스로가 심마에 빠졌음을 인지하긴 했고?”

       “아니. 다른 육신에 영향을 끼칠까 싶어 말을 아꼈다.”

       

       흐음. 결국 한서우 그 녀석의 본신을 봐야 짐작이 되겠군.

       

       정확히 그 심마라는 게 어떤 것인지. 본인이 그걸 해결 할 수 있을지.

       

       “민가. 네 녀석은 나보다 훨씬 긴 세월을 살아오지 않았나. 그러니 그대에겐 해결책이 있을 터.”

       

       간절함이 담긴 백화령의 안에서 천마신공의 내기가 넘실거리는 것이 보인다.

       

       언제라도 주인을 먹을 기회를 노리는 저것들은 주인의 흔들림을 놓치지 않지.

       

       살짝 떨리는 백화령의 손을 잡은 나는 그녀의 안에 깃든 신공을 겁박했다.

       

       주제를 넘지 말라고. 도구면 도구답게 주인의 뜻을 따르라고.

       

       내기가 순한 개처럼 고개를 숙인 것을 확인한 나는 이제야 스스로의 흔들림을 자각한 백화령을 보며 웃음을 지었다.

       

       “걱정하지 마라. 나의 경지를 잘 알지 않으냐. 동물에게 거리낌 없이 다가갈 수 있게 된 본인에게 불가능이란 없다.”

       

       마침 잘 되었구나. 방금 전 빌어먹을 서책에서 읽은 몇 안 되는 배움 중 하나가 이 상황에 도움이 될 듯 하니.

       

       자세한 것은 한서우의 본신을 봐야 이야기해 줄 수 있겠지만 그 녀석을 돕는 건 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뭐. 이리 말을 해도 불안이 사라지지는 않겠지.”

       “그…렇지 않다. 난 그대를.”

       “그래? 그럼 굳이 현세의 제자를 보러 가지 않아도 괜찮겠군.”

       “…뭐?”

       “나야 나쁠 것 없지. 괜히 귀찮은 안 해도 되고 말이야.”

       

       곰방대를 품 안에 넣고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순간 백화령이 다급히 내 손목을 붙잡았다.

       

       “진정. 진정 그런 것이 가능한가?”

       “아니지. 지금 그대가 해야 할 답변은 그런 것이 아니야.”

       

       백화령의 손을 마주 잡은 채로 눈웃음을 지어 보이자 녀석이 목소리를 높였다.

       

       “가겠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제자를 만나러 갈 것이다!”

       

       *

       

       화룡무인에서 빠져나온 나는 백화령을 데리고서 나의 방으로 돌아왔다.

       

       여느 때처럼 떡볶이에 튀김을 우물거리던 바루는 내 옆에 서 있는 백화령을 보자마자 젓가락을 떨어트리며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지금 내가 환각에 빠진 것인가?”

       “…이 녀석. 산을 수호해야 할 신령이 다른 세상에 너무 적응한 것 아니냐?”

       “뭐 어떠냐. 귀여우면 그만이지.”

       “그것도 그렇군.”

       

       여유가 있는 상황이었다면 음식을 먹어보라 청한다거나 이런저런 곳에 데리고 간다거나 했을 터이지만 안타깝게도 작금의 우리들에겐 그럴 시간이 없었다.

       

       심마라는 것은 언제 어느 때에 사람을 집어삼킬지 알 수 없는 것이니 말이다.

       

       “우선은 옷부터 갈아입어라. 네 무복은 너무 눈에 띈다.”

       

       어차피 나와 체형이 같으니만큼 옷장에 있는 것을 아무거나 골라보라 그랬더니 백화령 녀석이 눈살을 찌푸렸다.

       

       “어째 다 후줄근해 보이는 것밖에 없구나.”

       “저런 것들이 움직이기에 편하거든.”

       “…천마로 살 적에 배우지 않았더냐? 위엄을 지켜야 한다고?”

       “그거야 신교에 머무를 때의 일이지. 지금 본인은 신교와 아무 관련이 없는 인간이다.”

       

       참 쓰잘데기 없는 걸 신경 쓴다고 타박했더니 백화령이 한숨을 내쉬고는 다른 옷을 보여달라며 짜증을 냈다.

       

       그래서 엔리가 본인에게 입히기 위해 사 준 여러 옷을 보여주었더니 그제서야 녀석의 표정이 밝아졌다.

       

       “호오. 옷감의 질이 좋고 형태도 멋있어. 무얼 입어야할지가 고민될 지경이다.”

       

       이 옷 저 옷을 매만지며 고민하는 백화령을 가만 살피고 있으려니 바루가 내 옷깃을 잡아 당겼다.

       

       “미적인 측면은 저 쪽이 더 뛰어난 듯 하구나.”

       “시끄럽다.”

       

       언젠가 엔리가 엄청나게 멋있다고 극찬한 복장을 입은 백화령을 데리고 바깥으로 나오자 녀석이 보법을 밟으려 들었다.

       

       내 옷을 갈아입는 동안 현세와 무림이 다르다고 죽어라 이야기를 했거늘 어찌 알아먹질 못하는 게야.

       

       “그냥 내 뒤만 졸졸 따라다니거라.”

       “…알겠다.”

       

       한서우가 있는 곳으로 향하는 동안 백화령의 표정은 줄곧 심각하기만 했다.

       

       택시를 탔음에도. 거리의 풍경을 둘러보게 되었음에도. 수많은 문물을 눈으로 접했음에도.

       

       그녀는 가만 앞을 바라볼 뿐 자그마한 감탄사조차 내뱉지 아니했다.

       

       한참 침묵을 지키던 백화령이 처음으로 목소리를 낸 것은 한서우가 머무르는 건물의 인근에 도달했을 즈음이었다.

       

       “이것은 내 제자의 기운이다!”

       “좀 가만 있으래도.”

       

       허공을 달려나가려는 녀석의 목덜미를 붙잡은 나는 당당히 QZ게이밍의 정문으로 향했다.

       

       문을 지키는 경비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화색을 띄웠다.

       

       “한서우씨를 만나러 왔는데요. 들어가도 괜찮을까요?”

       “화령님이라면 당연히 가능하죠! …어. 근데 옆에 분들은?”

       “제 동생들이에요. 한서우 씨를 꼭 한 번 보고 싶다 그래서.”

       “동생. 과연.”

       

       경비는 나와 백화령을 유심히 바라보더니 별 다른 것을 묻지 않고 안으로 들여보내 주었다.

       

       한서우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현실의 육신임에도 불구하고 넘실거리고 있는 내기는 못 알아차리기가 더 어려운 것이었으니까.

       

       “흐음.”

       

       VR기기 안에 잠들어 있는 그를 마주한 순간 녀석이 처한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무공에 사로잡혔구나. 조급한 마음에 마구잡이로 내달리다 도구에게 집어삼켜졌어.

       

       현실의 육신마저 어느 정도 뒤틀려 있는 것을 보면 VR의 세계에서는 제대로 된 무공을 다루는 것조차 버겁겠군.

       

       “…벌써 이렇게나. 치료를 하더라도 후유증이 남겠구나.”

       

       한탄이 서린 백화령의 말은 무인으로써 정확한 판단이었다.

       

       심마를 걷어낸다 한들 다시 무공을 다루기는 어려운 몸이 되겠지.

       

       허나 그것은 기존의 상식이고 본 세상의 상식이다.

       

       세상에게 규율을 강요할 수 있는 본인이 그 상식을 따를 필요는 없지.

       

       “바루야.”

       “결계는 이미 쳐두었다. 누구도 여기에 접근하지 않을 것이야.”

       

       툭툭 VR기기를 건드리자 한서우가 느릿하게 잠에서 깨어났다.

       

       방해를 받았다는 듯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던 그이지만 나와 백화령의 눈을 마주한 순간 표정이 굳는다.

       

       “…스승님?”

       

       이 와중에도 스승을 알아보는가. 갸륵하군.

       

       허나 그 동요는 방해가 될 뿐이다.

       

       “그래. 나다.”

       “어? 어어어?! 왜 스승님이 현실에. 아니. 뭐지? 이게 무…”

       

       당혹 속에서 기운이 넘실거리는 것이 귀찮아 점혈로 한서우를 재운 나는 그의 위에 세상을 덧씌웠다.

       

       뭉치 녀석에게 배운 것 중 하나. 본래는 본인의 경지를 가리기 위하여 만든 것이지만 이를 활용하면 한 사람을 본인이 만든 세상에 가두어버리는 것도 가능하지.

       

       본인의 규율과 본인의 뜻으로 이루어진 세상에 말이다.

       

       “백화령아. 내 제자의 몸 안을 잘 봐 두거라.”

       

       지금부터 내가 하려는 행동은 비틀려버린 혼에 개입하는 일일 지어니.

       

       아직 경지에 이르지 못한 그대는 내가 하는 일을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안이 어떻게 변하는 지를 보는 것만으로도 무언가 깨우침을 얻을 수 있을 터이니 반드시 눈에 새기고 잊어버리지 말도록 하라.

       

       “시작하겠다.”

       

       최초의 쓰레기가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포악함을 잠재우고 잡아먹혀버린 혼을 본래의 것으로 돌리자꾸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다음화 보기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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