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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84

   “정말 귀찮게 구시네요.”

   

   루카는 앞으로 고꾸라진 칼을 보면서 혀를 찼다. 그를 잠재우는 일은 쉽지 않았다.

   

   공허의 권능에 더해 루카 개인이 설치한 여러 마법까지 더했음에도 불구하고 칼은 거기에 저항하려 했다.

   

   ‘아가씨의 명입니다!…’

   

   그가 검을 뽑아든 순간에 공허의 사도가 찾아오지 않았다면 루카는 그에게 시간을 낭비하고 말았으리라.

   

   “결계에 구멍이 생겨났다고요?”

   

   앞으로 고꾸라진 칼을 살피던 루카는 공허의 사도가 전한 이야기에 놀라 저도 모르게 되물음을 던졌다.

   

   “예. 지금 인원을 보내 대처하고 있습니다.”

   “신기하네요.”

   

   루카가 놀란 부분은 결계의 일부가 무너졌단 점이 아니었다. 그가 놀란 것은 어디까지나 ‘벌써’ 부서졌다는 지점이었다.

   

   “누군지는 파악 됐습니까?”

   “검성입니다.”

   “…예?”

   “검성 유덴. 그녀가 이 결계 안에 들어왔습니다.”

   

   상대의 정체를 들은 순간 루카의 눈동자가 작게 떨렸다. 왜. 왜 그녀가 여기에.

   

   …알른 영애. 그녀다. 그녀가 모종의 수단으로 유덴을 불러낸 거야.

   

   일주일 전 나를 건드릴 때 그녀의 이름을 언급하는 걸 보고 혹시나 했는데.

   

   그녀는 도대체 뭐지? 도대체 어떻게 내 과거에 대해 그리 잘 알고 있는 거야?

   

   주신께서는 자신이 아끼는 아이에게 과거를 살필 능력마저도 주었다는 말이냐.

   

   “루카?”

   “아. 죄송합니다. 잠시 생각을 하느라.”

   

   그가 별이 되는 것을 포기하게 만들었던 이가 이 곳에 도착했단 사실에 경악하던 루카는 공허의 사도가 자신을 부르는 걸 듣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진정하자. 결국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다.

   

   내가 알른 영애에게 남길 흔적은 언젠가 개화하여 그녀를 누구보다도 드높은 별로 만들 거다.

   

   그 때가 되면 유덴의 빛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게 될 거라고.

   

   “미리 계획했던 대로 대처하죠.”

   “상황이 자꾸만 꼬이는군요.”

   “하하. 베네딕 경께서 자신의 기사들을 이끌고 진군하는 것보다야 낫지 않습니까.”

   

   그들이 가정한 최악의 경우는 정말 끔찍했다.

   

   솔라딘 왕국이라는 나라가 높은 위치에 머물 수 있게 하는 여러 괴물들이 모두 다 이 곳에 출현하는 경우까지도 고려해야 했으니까.

   

   그에 비해 검성 유덴 한 명이 출현한 것은 아무런 일도 아니었다.

   

   “결계의 마법이 있는 곳으로 향합시다.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목적만 완수하면 저희가 이기는 거잖아요.”

   

   *

   

   조이는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벌떡 일어나서는 주변의 영애들을 살폈다. 모두들 똑같았다.

   

   모두들 검게 물든 결계에 의해 깊고도 깊은 잠을 자는 중이었다.

   

   가끔 가다 들려오는 중얼거림으로 보았을 때 다들 지옥의 풍경을 보고 있는 거겠지.

   

   조이는 자신의 마법으로 친구들을 깨우고자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이건 섣불리 건드려선 안 돼. 꿈에 강제로 빠진 인간을 억지로 깨웠다가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

   

   페이비가 옆에 있는 거라면 모를까 내가 일을 벌였다간.

   

   그래! 페이비! 우선은 페이비를 만나러가자! 페이비라면 분명 그 장소가 꿈이라는 걸 눈치 채고 빠져나왔을 거야!

   

   루시도 마찬가지야! 오래 전부터 이 상황을 대비하고 있던 루시라면 지금쯤 꿈에서 빠져나와 자신이 할 일을 하고 있겠지!

   

   진작에 무슨 일이 벌어질 거라는 걸 알고 있었던 탓일까.

   

   조이는 위험에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냉정하게 상황을 정리할 수 있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갑작스럽게 위기를 마주했다면 어떻게 됐으려나. 다른 분들이 자주 그러는 것처럼 또 얼빵한 짓을 하고 있었을 것 같은데.

   

   친구들의 장난스러운 웃음을 생각하니 안심이 되네.

   

   조금 있으면 만날 수 있겠지? 그리 생각하며 건물 바깥으로 나가려던 조이는 저 멀리에서 들려오는 발소리를 듣고 다급히 기척을 죽였다.

   

   모두가 잠들어 버린 이 장소에서 제 마음대로 움직이는 자들이라면 분명 악신의 추종자들이겠지.

   

   저들이 다급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건 무슨 일이 벌어졌단 것.

   

   루시? 아니면 그녀가 준비한 누군가?

   

   “…결계…침입…”

   “아카데미…”

   “…버텨…”

   

   소란스러운 목소리와 거리가 있어 저들의 이야기를 완벽하게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중간중간 들려오는 내용만으로도 조이에겐 충분했다.

   

   악신의 추종자들이 장악한 결계에 무언가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대처를 위해 저들이 움직이고 있다.

   

   정확한 상황까지는 알 수 없지만 저 정도면 충분해.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져서 저들이 혼란스러워 하고 있단 소리니까.

   

   소란이 잦아든 후 조이는 자신의 존재감을 감추기 위한 마법을 사용했다.

   

   본래는 사교장에서 영애들과 어울리다 지쳐 쉬고 싶을 때 사용하던 마법. 수도 없이 사용을 해 보았기에 다른 마법들만큼이나 자신 있는 것.

   

   후우. 지금 페이비는 어디에 있을까.

   

   걔라면 나보다 더 빠르게 악몽에서 빠져나왔을 거야.

   

   아니 어쩌면 악몽에 빠져들지 않았을지도 몰라.

   

   그렇다면. 아니. 아니지.

   

   반대로 생각을 해보자. 상대 입장에서도 페이비는 요주의 인물이야.

   

   성녀라는 직함을 지닌 그녀는 여태까지 수많은 이들을 해왔으니까. 당연히 경계를 샀겠지.

   

   그렇다면 추종자들이 그녀라는 변수를 없애기 위해 움직일 가능성도 충분히.

   

   “페이비!”

   

   결론에 닿기 무섭게 바닥에 발을 뗀 조이는 바람을 조종해 걸음 소리를 지워가며 다급히 페이비가 머무는 곳으로 향했다.

   

   특별하게 대우를 하지 않으면 주신 교회의 신도들이 자신들을 비난할 것이라는 아카데미 측의 의견 탓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그녀의 방은 귀족 기숙사 중에서도 고위에 속하는 곳에 배정되어 있었다.

   

   그 방에 몇 번이나 오가보았던 조이는 채 몇 분이 지나기도 전에 그 곳에 도착했다.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조이.”

   

   페이비는 자신의 방에서 부드러운 웃음을 흘리고 있었지만 그녀의 주변에 펼쳐진 정경을 부드러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습격… 당한 거죠?”

   “보시다시피.”

   

   그녀의 주변에는 몇 명의 사람들이 널부러져 있었다.

   

   그들은 하나 같이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기괴한 가면을 쓰고 있었는데 그 가면의 아래에서는 입에 문 거품이 흘러나오는 중이었다.

   

   “뭘 한 거에요?”

   “회복마법을 통해 몸을 회복시키면 극도의 고통이 느껴지는 거 아시죠?”

   “그게 왜요?”

   “감각을 조작해서 그걸 지우는 게 가능한데 증폭시키는 건 불가능할까요?”

   

   페이비의 말을 들은 조이는 등줄기가 싸늘하게 식는 것을 느꼈다.

   

   회복마법의 고통을 오히려 증폭시켰다고?! 그런 짓을 벌였다간 고통을 견디다 못해 죽을 지도 모르는데!?

   

   “정화의 빛에 의해 다친 부분을 회복시키는 걸 반복하니 어느새 다들 깊은 잠에 빠지셨답니다.”

   “…그거 웃으면서 말하지 말아 주실래요. 엄청 무서워요.”

   “그런가요? 저는 안심시키려고 지은 표정인데.”

   “표정이 아무리 좋아도 주변 상황이 안 그러면 좋을 수가 없답니다. 성녀님.”

   “히야… 읍. 으으읍!?”

   

   무섭다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 듯 페이비가 고갤 갸웃거리던 그 때 조이의 뒤 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에 깜짝 놀란 조이가 비명을 질렀지만 그녀의 다급한 목소리는 굳은살이 잔뜩 박힌 손에 의해 가로 막혔다.

   

   “진정하세요. 파트란 영애. 저 나쁜 사람 아니니까요.”

   “검성님께서 어째서 여기에?”

   

   유덴이 조이를 진정시키는 동안 놀람을 다스린 페이비가 의문을 표한다.

   

   “알른 영애께서 불러서 왔습니다. 정확한 건 저도 잘 몰라요. 그 분의 계획에 휘둘리는 중이라서.”

   “영애님께서.”

   

   알른 영애라는 단어를 언급하자마자 활짝 피어나는 페이비의 웃음에 유덴이 몸을 살짝 뒤로 뺐다.

   

   예전에 성녀님을 뵈었을 때는 나이에 비해 너무도 어른스럽고 믿음직스러워서 없던 신앙심도 자연스레 생겨나게 만들 것 같단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은.

   

   음.

   

   지금도 크게 달라진 건 없지만 뭐랄까. 신앙심에서 약간 위험한 분위기가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아니. 됐다. 지금은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냐.

   

   “여러분들은 알른 영애께 따로 들은 것이 없습니까?”

   “무슨 일이 생길 거라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만 저희도 자세한 건.”

   “읍! 으으읍!”

   

   페이비가 고개를 젓던 그 때 조이가 유덴의 손을 강하게 건드렸다.

   

   “아. 죄송합니다. 파트란 영애. 결례를.”

   “그건 됐고요. 루시가 얼마 전에 저희에게 알려준 게 있어요.”

   “뭐죠?”

   “아카데미의 결계. 그걸 수정하는 방법.”

   

   정확하게는 루시가 아닌 대마법사 에르기누스가 가르쳐 준 부분이었지만 조이는 그를 언급하지 않았다. 괜한 말을 해봐야 설명만 더 귀찮아 질 게 분명했으니까.

   

   “지금 아카데미에 문제가 생긴 건 결계 때문이잖아요. 그렇다는 건 결계에 생긴 문제를 해결하면 현 상황을 타개할 수 있단 거겠죠.”

   

   지금쯤 루시는 아카데미의 결계가 있는 곳으로 향하고 있을 거다. 아카데미에서 극비로 여겨지는 장소라도 그녀라면 알고 있을 테니까.

   

   그러니 우리도 아카데미의 결계가 있는 곳으로 간다면 자연스럽게 루시와 합류해서 이번 일을 해결하는 걸 도울 수 있겠지.

   

   “파트란 영애께서 무얼 말씀하시려는지는 알겠습니다만. 그 결계. 어디에 있습니까?”

   “…어. 그게.”

   “…모르십니까?”

   “아뇨! 그. 페이비! 루시의 신성이 느껴지는 곳을 알려주세요! 페이비라면 감지할 수 있잖아요!”

   “죄송합니다만. 조이. 지금 이 장소는 공허의 권능으로 가득 차 있는지라 저도 감지가 어려운 상태랍니다.”

   “…그럼 어떡하죠?”

   “그걸 저한테 물으셔도.”

   

   갈 길을 잃어버린 이들이 눈을 끔뻑거리던 도중 유덴이 자신의 검 위에 손을 올렸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네요. 저희에게 정보를 알려주려는 멍청이들이 여기 오고 있거든요.”

   “네?”

   “쉽게 말해 죽고 싶어 안달 난 병신들이 있단 소리입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너무 늦어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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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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