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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84

        

       순수하게 기관진식만으로 사람의 목소리를 흉내 내거나 혹은 담아두었다 꺼낸다?

       일개 미개 고대 중 중원 원시 시대(합격 목걸이)에서 등장하기에는 너무나 고등한 기술이다.

       제아무리 혈교 공혈단 기술자라고 해도 석문이 열릴 때 문이 열립니다 따위의 안내 음성을 넣지는 못한다는 뜻이었다.

         

       안내 음성은커녕, 사실 석문은 스스로 움직여 열리지도 못했다.

       철저한 가내수공업, 도르래를 사용하여 손수 인력으로 올리는 수동문이다.

       공혈단 기술자들이 달라붙어 영차영차 열심히 석문을 돌려서 열기 시작했다.

       

       너무 수동이 아니냐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신가지묘는 산을 파서 만든 묘실임을 감안해 주어야 한다.

       기관장치 하나를 붙이려거든 그만큼의 공간을 직접 파서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어차피 사람이 조작할 바에야 그냥 땀을 한 번 빼는 쪽이 돌산을 파는 것보다는 효율적이라서.

        

       공혈단 기술자들이 구슬땀을 흘리는 사이에도 전투는 계속 진행중이다.

         

       돌이 돌을 긁으며 맷돌 갈리는 듯한 소리가 울려퍼지기는 했지만, 사방에 도검이 난무하여 시퍼런 칼날이 춤추는 때에 그까짓 맷돌 소리가 대수겠는가.

         

       다만, 개중 사도 형님들에게 멀대라 불리는 철혈검천의 이계위 무사에게는 벼락처럼 크게 뇌리에 꽂히는 소리였다.

         

       “문! 문! 문 열린다고!”

         

       고작 석문 하나 열렸다고 아주 호들갑을 떤다.

       하지만 멀대의 입장도 이해해줘야 한다.

       마치 사람의 가죽을 뒤집어쓴 듯한, 중원식 표현으로는 인두겁을 뒤집어쓴 모양으로 요괴같이 끔찍한 괴물년(서문청, 정파 도사)의 칼질에 시달리고 있었으니까.

       멀대의 상체 대부분이 바둑판처럼 죽죽 그러져 시뻘겋게 물들었으니, 청은 그야말로 무아지경으로 살육을 즐기는 중이었다.

         

       이 때에 들리는 맷돌 소리.

       저쪽에 문이 서서히 올라가는 모습이 비쳤다.

       멀대에게 있어서 한 줄기 광명이자 더없는 구원이었던 것!

         

       “문?”

         

       “그래 문! 문 열렸으니까-”

         

       “필요 없어!”

         

       갑자기 무슨 문 타령이야?

       청에게 이제 문은 아예 안중에 없다.

       눈앞의 죽일 놈이 철혈검천의 무복을 입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저네들 편한 휴게실 하나 차지하겠다고 무고한 촌락에 씨족말살(요새형 촌락은 거진 집성촌이다)을 일으킨 놈이 아닌가.

       그 더러운 목숨 살려보겠다고, 그것도 하다하다 팔 게 없어서 이제는 애꿎은 문을 파네, 하고.

         

       그러다가, 음? 문? 무슨 문? 석문?

         

       쾌락에 푹 젖어 몽롱하게 풀려 있던 청의 눈빛이 또렷해진다.

       정신을 휘감던 살기가 빠져나가고, 현자 특유의 허무 반 현기 반 도사다운 눈빛이 자리를 잡는다.

       즉, 청은 완벽하게 정상으로 돌아왔다.

         

       과하게 활짝 피어 부담스럽던 미소도 이내 은은하게 가라앉는다.

       덕분에 인피면구가 제자리를 되찾아 괴물 같던 위화감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지고 나니, 지옥의 흉신악살 나찰녀가 정파의 청수한 도사처럼 바뀌는 극적인 풍경이다.

         

       그 광경에 멀대가 마음을 턱 놓았다.

       아, 끝났구나. 나는 살아남았구나……!

       멀대가 그렇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심장이 시큰!

         

       “허윽, 왜……?”

         

       제 명치에 박힌 칼날을 확인한 멀대가 떨리는 눈동자로 묻는다.

         

       “노산 산자락에 이름 모를 촌락이 하나 있는데 이제는 없어요. 왜? 철혈검천이라는 죽일 놈들이 지워버렸거든.”

         

       “그깟 촌것들 때문에……”

         

       그와 동시에 청의 칼날이 아래로 향했다.

       청의 신념은 한결같았다.

       칼은 들어간 방향과 다른 쪽으로 빠져나와야 한다.

         

       명치로부터 사타구니까지 일자로 잘린 멀대의 몸뚱아리가 바닥에 쏟아졌다.

       참고로 청은 완벽하게 정상인 상태다.

         

       제 속에 든 것을 바닥에 쏟아낸 채로, 멀대가 턱 막히는 숨통 꺼져가는 시야에 필사적으로 열린 문을 담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마디.

         

       “문, 열렸다고…….”

         

       문 열렸는데도 죽은 것이 어지간해도 분했던 모양이었다.

       왜 죽는지 알려줘도 문을 탓하고 있으니 도대체 사파 놈들은 뭐가 문제람.

         

       청이 검을 휘둘러 달라붙은 핏물을 뿌렸다.

       음. 하필이면 거기에 누가 서있을 것이 무엇이람.

       졸지에 피 외 내장 찌꺼기 지방 덩어리 등등 오물을 뒤집어쓴 모르는 무인이 왈칵 치미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씨벌, 누가, 어으, 목이 막 뻐근하네. 담이 오려고 하나?”

         

       범인을 확인하고는 자연스럽게 목을 돌리며 근육을 푸는 시늉을 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자존심은 자존심이고, 산 채로 사람을 토막 치며 웃는 년이랑은 시비가 붙는 일은 또 따로였으니까.

       물론, 청이 다소곳하니 여성스러운 참여인이라 해도 마찬가지였을 터다.

         

       “이보게, 친구. 언제 합일의 경지를 이뤘는가? 좀 따라잡았나 싶었더니 꼭 그렇게 앞서나가야 하나? 그야말로 내 검 친구다운 신위로군!”

         

       신검합일을 이룬 고수가 오물을 뿌리면 그냥 맞아야지 어쩔거야.

       괜히 대들면 오물에 더해서 칼도 맞게 되는 것이다.

       

       “훗. 그게 뭐 어려운 거라고. 나한테 걸리면 그 정도야, 음? 그러고 보니 쌍검을 쓰면 신검합일은 어떻게 해? 검만 두 자루 남나?”

         

       “그야 당연한 것이 아닌가. 쌍검이란 두 자루 검을 하나로 다루는 것이니, 검이 두 자루가 하나의 병기로 작용하는 것이지.”

         

       “그걸 합일이라고 부르는 게 맞나? 아니 애초에 그게 가능해? 의식은 하나잖아.”

         

       “하지만 병기는 하나가 아닌가.”

         

       “쌍검인데?”

         

       “쌍검은 하나의 병기라고 하지 않았나. 그러니 쌍검술이란 슬프게도 하자가 있는 무공이라고 할 수 있지.”

         

       “뭐라구욧?”

         

       모용주희가 쌍심지를 켰다.

       남궁가의 장남이 아니었으면 당장 생사결을 청할 정도의 심한 모욕이자, 나날이 주량이 일취월장 늘어나는 남궁 가주가 직접 나서서 사과를 해야 할 정도의 폭언이다.

         

       하지만 첫만남부터 그러했듯이, 남궁신재는 말을 가려하는 사람이 아니다.

       남궁가의 적장자로 말을 가릴 필요가 없는 유년기를 보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이런 놈으로 태어났을 수도 있다.

         

       “그렇지 않은가. 본래 무인의 기본은 병기 하나와 유사 무공 하나. 검이건 반검이건, 긴검이건 간에 좌수로 수법을 두지 않나. 병장기의 힘이 열이라면, 소위 박투술이라 하는 유사 무공은 삼 정도 되겠지. 그러니 병기와 좌수로 무인이 내는 힘은 도합이 십삼 점이 아니겠나.”

         

       고수의 대화는 자체로 무형의 보물이다.

       무려 신검합일에 이른 초절정 후기의 고수와, 그냥 초절정 고수의 담론이라면 체면 불구하고 귀를 쫑긋 엿들어야 하는 귀중한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안 듣는 척 귀를 기울이던 사파 무인들이 고개를 갸웃거리거나 끄덕이거나 일부는 분개했다.

         

       갸웃거리는 자들.

       검은 알겠는데 반검은 뭐고 긴검은 뭔데?

       (정답은 검과 도와 창이다)

         

       끄덕이는 자들.

       그래그래. 박투술은 유사 무공이 맞지.

       무도가가 유사 무인인 것처럼.

       그런데 삼 점도 너무 후한 것 같다.

       일 점, 아니 반 점 정도 줘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분개한 자들은 바로 그 유사 무인들 되시겠다.

       하지만 유사 무인 주제에 화가 난다고 한들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쌍검을 들면 두 병기가 하나, 꼴랑 십 점이니 오히려 한 손을 비우는 것만 못하지 않나.”

         

       “오우. 설득력이 있는걸.”

         

       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용주희는 많이 서운한 표정이었지만.

       사실. 검에 대해서라면 남궁신재의 말은 대개는 맞는 편이 아니던가.

       그래서 청이 맞장구치고 흘려들었다.

         

       남궁신재는 딱 검에 대해서만 맞는 말을 했다.

       나머지에 대해서는 처맞는 말을 하고.

         

       “그런 의미에서 궁극의 무도란 역시 양검이라고 할 수 있네. 좌우로 다른 검을 들었으니 십 점에 십 점, 좌우로 이십 점이 아니겠나?”

         

       이거 봐라.

       결국, 결론이 이상해지잖아.

         

       “그럼, 병기 두 개가 무조건 좋은 거 아냐? 그럼, 다들 양병을 쓰지 왜 한 손을 비워두는데?”

         

       “그야 세상 사람들이 나와 같은 천재가 아니기 때문이라네. 각 손에 다른 검을 쓴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너무 험하고 어려운 길이라 지레 겁을 먹고 포기하고 타협하고 만 게지.”

         

       “음?”

         

       청이 눈을 빛냈다.

       원래 누구 놀려먹을 기회는 놓치지 않는 청이라서.

         

       “그게 어려운가?”

         

       “어렵지. 애초에 검술이란 사방의 방위를 모두 대응하도록 되어있는 것, 당연히 그 검로가 세상으로 뻗어나가니 두 검술을 써서 서로 방해되지 않고 조화롭게 뻗어나가기란 기실 한없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지. 다만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곧 불가능인 것은-”

         

       “헹. 검 줘봐.”

         

       청의 무공 습득은 강제로 머리와 몸에 때려 박히는 저 우주 너머 근원적 공포와 닿아있는 것이다.

       청의 고향에서는 근기억이라 하는 무의식 영역에까지 마수를 뻗는, 위대한 옛 상태창이 끼치는 심각한 정신적 신체적 오염이다. -라고 청은 여기고 있다.

         

       어쨌거나 청의 아주 날로 먹다 못해 손질도 없이 홀라당 삼키는 뇌 주물럭 학습법은 오른손잡이와 왼손잡이를 따로 구분하기 귀찮았던 모양.

       그냥 우수 좌수를 다 때려 박았다.

         

       오른손에 월녀검결(진).

       왼손에 백팔수라검.

         

       세상에 단 한 명 유일한 전승자로 명맥을 이은 인류 최초의 위대한 무공과 천하십대마공의 흉악한 마공이 동시에 펼쳐진다.

         

       물론, 월녀검결은 억울할 수 있다.

       같이 펼치려면 적어도 급이 맞게 보라색 검법이라도 써야지, 격이 떨어지게 어디다 금색을 들이대냐고.

       하지만 원래 청은 숨만 쉬어도 누군가를 억울하게 만드는 습성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그게 되면 누구나 병기를 두 개씩 들고 다녔을 것이다.

         

       챙! 두 검이 격렬하게 부딪치며 짧은 검무가 끝을 맺는다.

         

       “엥. 쉽지 않네.”

         

       “오오! 대단하군! 하지만 여전히 흉내에 가깝다고 하겠네. 양검은 초식을 하나하나 해체하여 둘이 어울리도록 재조립하는 것. 그러면서도 각자의 검술이 가진 진의가 상해서는 안 되는 고도의 공부일세. 자네는 그저 각각의 검술에서 어울리는 두 초식을 꺼내 들었을 뿐이 아닌가.”

         

       청의 눈동자가 떨렸다.

       진짜 귀신이네, 귀신. 검 귀신.

         

       거기에 더해 전음까지.

         

       -그리고 검우? 방금 혹시 그 흉악하도록 호쾌한 검술은 천하십대마공의 백팔수라검이 아닌가? 어찌 그런 흉악한 마공 중의 마공을 익혔던 말인가? 멋진 검술이로군! 나중에 대련할 때 자세히 좀 보여주게나.

         

       “……?”

         

       이걸 알아본다고? 하고 찔끔하기도 잠시.

       결론이? 왜?

         

       하지만 남궁신재는 다 이해할 수 있다.

       아니, 이해하다 못해 감탄하고 말았다.

         

       과연 검우!

       진정한 검객이 이름난 검술을 보고 어떻게 지나칠 수 있겠나.

       천하십대마공 이전에 검법!

       검을 궁구하는 검도에는 선악이 없으니 정사마가 없는 법이로다!

         

       물론, 검우가 아니었으면 얄짤없었다.

       무림공적 수라마검의 재등장일 뿐.

       하지만 저 옛날 춘추전국시대에 종자기가 죽고 백아는 연주를 끊었으니 이를 이러러 음을 알아주는 친구라 하여 지음(知音)이라 하여 우정의 최고 경지를 말하지 않는가.

       고작 소리 따위를 알아주는 친우임에도 그러한데, 세상 가장 위대한 검을 알아주는 검우라면야.

         

       그때였다.

         

       “이봐요, 계속 떠들고만 있을 건가요? 슬슬 움직여야 하지 않나? 다들 기다리고 있는데.”

         

       조아요 이혜혜가 끼어들었다.

         

       “엥. 이제 다들 갈 길 가면 되는 거 아니에요? 문 열렸잖아요.”

         

       “음?”

         

       청이 주변을 둘러보다 인상을 쓴다.

         

       “뭐야. 다들 왜 남이 노닥거리는 걸 주워듣고 있어요? 갈 사람 가고 쉴 사람 쉬고. 부상자 돌보고 싶은 사람은 남고. 알아서들 해야지.”

         

       그에 좌중은 조금 억울해졌다.

       사실, 어느 무리라도 대장이 없을 수는 없은 법이다.

       한 명이 딱히 나서지 않더라도 암묵적으로 누군가를 대장으로 꼽게 되는 것이 인간의 습성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는 압도적인 무위와 그보다 더 흉악한 살심을 선보이며, 심지어 그 태산마군의 목을 분리한 끔찍한 여마두가 존재하고 있지 않겠는가.

       문이 열렸지만 다들 눈치를 보며 영양가 없는 양검론을 주워듣고 있던 이유였다.

         

       청이 손을 내저었다.

         

       “뭐해요? 할 일들 해요.”

         

       그에 무인들이 어색하게 눈치를 보다가 석문 너머로 자취를 감춘다.

       일부는 부상자를 부축하여 석문을 넘고, 또 일부는 이제 다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으로 부상자 옆에 자리를 잡기도 하고.

         

       “우리는 조금 쉬다 가요. 돌아가는 꼴을 보니 서두를 필요가 없는 것 같아.”

         

       어차피 돌아가는 꼴을 보니 쉬다 가나 먼저 가나 별 차이가 없을 것도 같고.

       어차피 또 인원수 나누는 방이 나오면 다들 기다리고 있을 것이 뻔하지 않겠나.

       그게 아니면 알아서 함정을 터뜨려 주거나 이제부터 서로 죽여라 그 두 번째 계절 같은 이 절을 하거나 하겠지 뭐.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일개미개 고대 중중 원원 시시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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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This Murim’s Crazy B*tch

I Am This Murim’s Crazy B*tch

이 무림의 미친년은 나야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female character in a martial arts game I’ve played for the first time. I know absolutely nothing about Murim, th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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