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485

   어느 건물 지붕 위에 선 카리아와 프레테는 유덴이 낸 구멍을 두고서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는 악신의 추종자들과 주신 교회의 사제들을 살폈다.

   

   서로를 극히 혐오하는 두 무리의 전력은 비등해보였다.

   

   공허의 추종자들이 더 유리한 환경에 서 있다는 걸 생각해본다면 주신 교회의 사제들이 지닌 힘이 악신의 추종자들보다 더 강하다고 봐야 할 테지.

   

   “이상하네. 고용주님은 교회가 불리할거라고 확신한 눈치였는데.”

   

   중간에 끼어들어서 대치를 유지해달란 부탁을 받은 카리아는 그 광경을 보며 한 쪽 눈썹을 내렸다.

   

   “영애께서도 틀릴 때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건 그렇지만. 고용주님이 확신에 차있을 땐 보통 맞단 말야.”

   

   무엇이 다른 걸까 고민하던 카리아는 이내 아무렴 어떤가 생각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좀 쉬고 있자. 조금 있으면 죽어라고 뛰어다녀야 할 테니까.”

   

   고용주님이 말한 일이 정말 일어난다면 진짜 개판이 날 테니. 그 때를 위해서라도 힘을 아끼는 편이 좋아.

   

   그리 생각한 카리아가 몸에 힘을 빼자 프레테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카리아님. 정말 영애께서 말씀하신 일이 일어날 거라 생각하십니까?”

   “음. 글쎄. 허황된단 생각이 드는 건 사실이야.”

   

   루시가 해주고 간 이야기는 그녀를 신뢰하는 카리아의 입장에서도 다소 헛소리 같다 싶은 소리였다.

   

   “그치만 그걸 말한 건 고용주님인 걸.”

   

   일면식이 없는 자가 그런 말을 했다면 카리아는 가뿐히 무시했을 테지만 이번 상대는 루시였다.

   

   주신의 사랑을 받는 자이며, 지금까지 수도 없이 악신의 무리와 싸워 온 영웅인 여자아이 말이다.

   

   “일단 믿어야지.”

   “…그렇겠지요.”

   

   *

   

   유덴은 검을 뽑아 들고서 바깥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방 안에 널부러져 있던 이들처럼 기괴한 가면을 쓴 자들 셋이 바깥에 서 있었다.

   

   “이것 참. 재밌네. 설마 너희 셋만으로 날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검을 뽑아 든 유덴은 대놓고 저들을 낮잡아보는 티를 냈지만 상대는 거기에 대답하는 대신 자신들이 지닌 권능을 사용했다.

   

   공허의 추종자들이 쓴 가면의 위에 아카데미 전체에 펼쳐진 불길한 기운이 스며들더니 저들의 형상이 바뀐다.

   

   “아주 불가능하지 않을 것 같다 대답하면 너무 오만한가?”

   

   처음으로 목소리를 낸 것은 노년이라는 말이 어울릴 남자의 형상을 취한 자였다. 몸의 근육이 자리 잡은 것이나 자세 같은 걸 보면 권술을 주력으로 하는 사람인가.

   

   “뭐 어때요. 저 쪽도 오만한 걸로 따지자면 만만찮을 텐데.”

   

   다음으로 목소리를 낸 건 자신의 몸보다 더 큰 나무 지팡이를 든 여성이었다. 숨을 쉬듯이 만들어내는 마법진들은 악신의 추종자 따위가 펼쳤다는 게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두 분. 그런 대화를 나눌 만큼 여유로운 상대는 아닌 것 같습니다만.”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추종자가 취한 형상은 유덴이 익히 아는 자의 얼굴이었다.

   

   루카. 그녀의 친구이자 그녀를 더 높은 곳으로 이끌어주었던 은인. 여전히 자그마한 감사함을 품고 있는 상대.

   

   “허. 이 씹새끼들이 선을 넘네?”

   

   상대가 친우의 모습을 빌렸다는 사실에 유덴이 당장에라도 달려들 것처럼 살벌한 기색을 드러내자 페이비가 다급히 목소리를 냈다.

   

   “잠시만요. 검성님. 저들을 쉬이 봐선 안 됩니다.”

   “왜요.”

   “저것은 공허의 추종자들 중 일정 이상의 지위를 지닌 이들이 쓰는 권능입니다. 저들이 흉내내고자 하는 이가 지닌 것마저 어느 정도 재현할 수 있죠.”

   

   그 재현도는 추종자 본인이 지닌 힘과 주변의 환경에 의해 정해진다.

   

   페이비가 여태까지 공허의 추종자들을 상대해보며 느낀 바를 기점으로 생각해본다면 저들의 재현도는 8할 가량.

   

   “저 분들은 아카데미 교수분들 중에서도 현직에서 이름을 날리신 분들입니다.”

   

   전투학과의 학과장. 수많은 마법학과를 총괄하는 학과장. 그리고 실력은 다소 모자랄 수 있지만 전략적 발상과 지휘에 강점을 지닌 루카.

   

   그들이 지닌 것 대부분을 재현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저들을 상대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성녀님. 그렇게 잘 안다니까 물어보는 건데. 저 대상이 된 사람 목숨은 붙어 있어?”

   “오히려 저 대상이 되었기에 더 안전합니다. 완벽한 재현을 위해선 상대의 목숨이 붙어 있어야 하니까요.”

   “그럼 됐어.”

   

   유덴의 검 위에 그녀의 오러가 깃든다. 그녀가 지닌 오러는 맹렬히 불타오르는 화염처럼 짙고도 짙은 붉은 색을 띄고 있었다.

   

   닿으면 불타 재가 되어버릴 것처럼 강렬한 오러로 모두를 짓누른 유덴은 다른 이들을 바라보면서 입술을 끌어 올렸다.

   

   “성녀님이 뭘 걱정하는 지는 알겠어.”

   “그럼.”

   “그치만 말야. 내가 검성이 된 이유는 전대 검성을 포함해서 날고 긴다 하던 작자들을 모두 박살내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거든.”

   

   유덴이 허공에 검을 휘두르자 그녀의 검에 담겨 있던 오러가 주변으로 뻗어 나와 세상을 불태운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공허의 권능으로 가득 찼던 공간이 유덴의 불꽃으로 물들고 그 한 가운데에 선 유덴이 살벌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덤벼. 개새끼들아.”

   

   시비를 터는 건 좋은데 마지막 선은 지켰어야지.

   

   씨발. 건드려도 감히 다른 사람의 친구를 건드려?

   

   내가 루카의 얼굴을 하고 있으면 검을 휘두르는 걸 망설일 거라고 생각한 건가?

   

   만약 그딴 병신 같은 생각을 한 거라면 후회를 하게 될 거야.

   

   내가 괜히 짐승 같은 년이라는 소리를 듣는 줄 알게 될 테니까!

   

   유덴이 땅에서 발을 뗀 순간 그녀의 모습이 순간 세상에서 사라진다.

   

   뒤늦게 무언가를 눈치 챈 전투학장과 루카가 몸을 움직이지만 그것보다 유덴의 모습이 다시 드러나는 것이 더 빨랐다.

   

   마법학장의 앞에 선 유덴이 당혹으로 물든 눈동자를 바라보며 검 손잡이에 힘을 더한다.

   

   이걸로 한.

   

   “씹.”

   

   살기만으로 죽음을 감지한 마법학장이 뒤로 나자빠졌지만 정작 그녀가 두려워 한 검은 휘둘러지지 않았다.

   

   그 직전. 유덴이 갑작스럽게 뒤로 훌쩍 물러선 것이다.

   

   “좆같은 새끼들. 악신의 추종자들은 하나 같이 너네들 같은 썅놈들이냐?”

   

   잔뜩 성질이 난 유덴이 내뱉는 욕지거리에 대답한 것은 루카의 흉내를 내는 자였다.

   

   “무슨 소리를 하시는 지 모르겠군요.”

   “꼴 받게 지랄하지 마. 너네들 몸 주변에 사람이 묶여 있잖아. 씨발 새끼들아.”

   

   비난의 목소리를 들은 루카가 말없이 웃음을 짓는다.

   

   “유덴님. 그게 무슨.”

   “말 그대로야. 성녀님. 저 새끼들 몸 어딘가에 사람을 묶어놨어. 자기들을 죽이면 같이 죽도록.”

   “…그런 정신나간 짓을.”

   

   저들이 벌인 일은 페이비가 험한 말을 입에 담을 정도로 끔찍한 것이었지만 정작 공허의 추종자들은 태연했다.

   

   “뭐 어떻습니까. 모든 것은 공허의 품에 안기게 될 텐데 현세의 죄가 무슨 상관인가요.”

   “그 번지르르한 아가리로 지랄하지 말아줄래? 그러니까 진짜 루카 그 놈 같잖아.”

   

   지금 저들이 하는 짓거리도 그렇다.

   

   눈앞에서 변하는 모습을 일부러 보여주어서 안심하게 만든 후 그 밑에 한 가지 함정을 더 파놓는다.

   

   눈치챈다면 망설임이 생겨서 좋고 눈치채지 못한다면 고기방패로 씀과 동시에 마음의 동요를 만들어낼 수 있어서 좋다.

   

   루카가 자연스레 내놓던 음습한 계획과 닮은 구석이 있어.

   

   재현이란 게 저런 것까지 가능한 건가.

   

   “이 자에 대해 잘 아십니까?”

   “씨발. 존나 잘 알지. 그 놈이랑 몇 년을 같이 돌아다녔는데. 그래서 경고하는 거야. 그 이상 지랄하지 마. 루카는 이상한 구석이 있긴 해도 정신 나간 새끼는 아니라고.”

   

   루카라는 인간에 대한 호의를 내비친 순간 공허의 추종자들 사이에서 미묘한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것을 도발이라 판단한 유덴이 검을 쥔 손에 힘을 더하지만 그렇다 하여 검을 휘두르진 못했다.

   

   정확하게 어디에 어떻게 사람이 묶여있는지 알 수 없어. 그게 밝혀지기 전엔 무턱대고 검을 휘두르기 애매해. 계속 싸우다 보면 대충 감을 잡을 순 있겠지만.

   

   “공허의 권능에 의해 숨겨져 있는 거라면 쉽죠.”

   

   유덴이 진지하게 팔다리 하나를 날릴 생각으로 검을 휘두를까 고민하던 그 때 조이가 당당히 목소리를 내며 앞으로 나섰다.

   

   자신만만한 웃음을 짓고 있던 조이는 보란 듯 자신의 마법을 펼쳐보였다.

   

   아무것도 아닌 것에 존재를 부여하는 마법을 말이다.

   

   허나 조이의 마법은 아무런 결과도 낳지 못했다.

   

   그녀의 마법이 펼쳐짐과 동시에 마법학장이 무언가 마법을 펼쳐 상쇄시킨 것이다.

   

   “…어라?”

   “파트란 영애. 생각을 좀 하세요. 저희가 멀뚱히 서있는 골렘 같나요?”

   

   진짜 마법학장이 잔소리하는 것 같다 생각하며 미간을 찌푸린 조이는 방금 전에 일어난 일을 되새겼다.

   

   마법의 구성이 중간에 어긋났어. 구성 중간에 끼어들어서 구조를 비틀어 버린 거야.

   

   “조이. 어려울 것 같나요?”

   “조금만 시간을 줘요. 조금이면 되니까.”

   

   상대가 어떤 식으로 파훼했는지를 안다면 그걸 역으로 파훼하는 것도 가능해.

   

   상대가 진짜 마법학장님이었다면 엄두도 못 낼 일이지만 지금 저 사람은 학장님을 흉내 내었을 뿐인 가짜잖아?

   

   할 수 있어.

   

   에르기누스님께 가르침을 받은 지금의 나라면 분명!

   

   “파트란 영애. 5분 안에 해결해주십쇼. 그래도 안 되면 그냥 팔다리 하나 날렸다 붙일 생각할 테니까.”

   “최선을 다해볼게요!”

   

   조이의 확신 어린 목소리를 들은 유덴은 어깨를 으쓱이고는 자세를 바꿨다.

   

   앞으로 달려들기 위한 짐승의 자세에서 뒤에 있는 자들을 지키기 위한 기사의 자세로.

   

   “덤벼. 놀아줄게. 쓰레기들아.”

   

   유덴의 사나운 목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공허의 추종자들이 공세를 펼친다.

   

   *

   

   현실의 광신도들은 내가 생각한 이상으로 쓰레기였구나.

   

   설마 무고한 사람들을 고기방패로 삼을 생각을 하다니. 덕분에 유덴이 루카에 대해 지껄이는 말을 들으면서 유쾌해졌던 기분이 싹 달아나버렸어.

   

   <세상이 멸망하길 바라는 놈팽이들이다. 무얼 못하겠느냐.>

   ‘할아버지 때도 저런 게 있었어요?’

   <차고 넘쳤지.>

   

   무덤덤한 할아버지의 말 속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무게가 느껴졌다.

   

   그래서 난 더 이상 묻지 않고 유덴과 공허의 추종자들이 싸우는 것을 구경했다.

   

   진짜 압도적이네. 고기방패가 아니었다면 진즉에 추종자들의 목이 날아갔겠단 확신이 들 정도로.

   

   이렇게 경외스럽단 느낌을 받는 건 베네딕이랑 라샤 이후로 처음인 것 같은데.

   

   유덴이 휘두르는 검에 가만 집중하던 나는 그녀와 시선이 맞닿은 것을 느끼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걸렸나? 벌써 저기에 합류하면 안 되는데?!

   

   실수했단 생각에 식은땀이 흘러내렸지만 다행히도 유덴은 금새 시선을 거두었다.

   

   저 인간이 날 포착하지 못했을 것 같진 않고. 알고도 모른 척해주겠단 건가.

   

   …고맙기는 한데. 그래도 베네딕한테 잘 말해주진 않을 거야. 대신 다른 남자는 구해달라면 기꺼이 해주겠지만.

   

   이 이상 여기에 있다간 페이비마저도 나를 눈치챌 것 같단 생각이 든 나는 조심스레 다른 곳으로 발을 움직였다.

   

   왠진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도 잠들어 있는 배우를 깨우러 가기 위해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